[통일로 미래로] 탈북민 자영업…북한 음식 ‘도전’

입력 2019.07.13 (08:19) 수정 2019.07.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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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국내 정착한 탈북민 사이에도 창업이 각광을 받고 있나 봅니다.

해마다 2천 명 정도의 탈북민이 창업에 나선다는 통계도 있는데요.

하지만 치열한 창업 전선에서 어려움은 더욱 많겠죠.

오늘 소개해드릴 청년 탈북민 사장님 사연에 해답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2년 전 스물셋 나이로 태권도 선수를 꿈꾸며 탈북했다는데, 음식점 사장님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네요.

음식점 문을 연 지 불과 다섯 달밖에 안 됐지만 성적이 꽤 괜찮다는데요. 비결이 뭘까요?

채유나 리포터와 함께 찾아보시죠.

[리포트]

주방용 두건과 앞치마를 두르고 재료 손질에 한창인 청년.

북한음식점을 운영한 지 다섯 달에 접어든 초보 사장, 탈북민 최현 씨입니다.

[최 현/35세/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북한, 우리 고향에서 먹던 음식 그대로 하는 거예요. 사람 고용하기 어려워서... 지금은 혼자 하고 있어요."]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손님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주방이 바빠집니다.

식당의 주메뉴는 감자 냉면.

농마 국수라고도 불리는 대표적인 북한의 서민 음식입니다.

[최 현/35세/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저는) 백두산 밑이 고양이거든요. 양강도라고. 그쪽이 감자 고장이니까 감자가 많이 나와요. 점심시간에 냉면 드시러 많이 오세요. 요즘에 더우니까."]

색다르면서도 거부감 없는 맛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기는데요.

[이영미/손님 : "감자로 만들어진 면이라서요. 제가 처음 먹어봤거든요. 되게 쫄깃쫄깃하고요. 북한이라고 생각하면 모르겠는데 전혀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먹어서 일반 식당에서 먹는 것 같이 편안하게…."]

또 다른 인기메뉴인 두부밥은 이곳 탈북민에게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김성태(가명)/탈북민 : "이건 이제 두부로 만든 거예요. (한국의) 유부초밥하고 같은 계열이죠. 맛은 조금 다르고. 북한의 대중 음식이죠. (고향 생각 많이 나세요?) 네, 고향 생각 많이 나죠."]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고, 잠깐 짬을 내 산책에 나선 최현 씨.

이제는 가게 일이 제법 익숙해졌지만 12년 전 한국에 올 때까지만 해도 식당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최 현/35세/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저는 한국 올 때, 그리고 한국 와서 태권도 국가대표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근데 이미 오니까 나이가... 벌써 23살에 왔거든요. 늦었더라고요. 그래서 지방에 있는 대학을 다니면서 운동을 한 거죠."]

북한에서 태권도 전문학교를 다녔다는 최 현 씨.

한국으로 넘어와 대학을 졸업하고 태권도 사범 일을 시작했지만, 가족을 부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운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최 현/35세/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한국 와서 일단 안 해본 일은 없어요. 막노동은 다 했어요. (용접으로) 큰 차, 화물차 만들고 자동차 페인트칠하고 이런 거 있잖아요. 그걸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온 몸이다 데잖아요."]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했지만, 생각과 다른 현실에 막막했는데요.

북한 음식점 개업은, 최 현 씨에게 마지막 희망이 된 셈입니다.

[최 현/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저는 어릴 적부터 순탄한 삶을 한 번도 산 적이 없어요. 어머님 빨리 돌아가시고 그래서... 여기 한국에 와서도 자꾸 순탄하지 않더라고요. 노력하면 되겠죠. 지금 해볼 때까지 한 번 해보는 거죠."]

새로운 삶을 꿈꾸며 떠나온 고향.

잘해보려는 노력과 달리 한국에서의 삶은 늘 녹록지 않았는데요.

새로운 시작을 한 지도 어느덧 5개월, 힘든 시기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이 있습니다.

며칠 뒤, 휴일을 맞아 외출에 나선 최 현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최 현/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여기 자주 와요. 자주 오는 누나 집(가게)인데. 제가 음식 할 줄 모르니까 저를 처음부터 가르쳐 주신 분 찾아오고 있어요."]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람은 고향 누나 최은옥 씨.

북한 음식점을 운영한 지 6년째 된다는 은옥 씨는 최 현 씨의 요리 스승입니다.

이날은 신메뉴인 감자 꽈배기를 배우기로 한 날인데요.

평소에는 따뜻한 누나지만 요리에서만큼은 호랑이 선생님이나 다름없습니다.

요리 경험이 없던 최 현 씨에게, 음식점 운영을 권유한 것도 다름 아닌 은옥 씨였습니다.

2012년 한국에 와 안 해 본 일이 없었다는 은옥 씨.

북한음식점을 연 후에도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는데요.

[최은옥/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가게 시작하고) 한 달 만에 전기 요금고지서가 날아왔는데 180만 원이 날아왔더라고요. 전기를 그렇게 썼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공업용하고 주민용을 잘 모르니까 그저 전기는 꼽아서 쓰면 되는 줄 알았어요."]

설상가상으로 북한산 재료를 사용한 사실이 문제가 돼 재판까지 받기도 했습니다.

[최은옥/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우리는 북한 사람이니까 북한 걸 팔아도 되고 먹어도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5.24조치고 나라 법이 그래서 (북한에서 재료를) 못 가져다 판다 그래서 법원에 열 번도 더 다녀왔을 거예요."]

창업 6년 차,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손님이 점점 늘면서 이제는 조금씩 여유를 찾고 있다는 은옥 씨.

한국 정착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최현 씨를 위해 두 발 벗고 나섰습니다

[최현/35세/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가게 오픈할 때도 (가진 것) 없이 시작했거든요. 누나가 물건 다 (사비로) 도와주시고 장사하는 노하우 새로운 메뉴들도 배우고 하니까…."]

요리법 전수는 물론 가게 운영에 필요한 것들을 대가 없이 도운 건데요.

[최은옥/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돈이라는 건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게 돈인데 먼저 도와서 일어서는 게 중요하니까."]

그 마음을 아는 최현 씨도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운 마음을 전해봅니다.

[최현/35세/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우리는 여기 오면 도와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항상 누나한테 고맙게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자영업자 열 명 중 여섯 명이 5년을 버티지 못하는 한국 사회지만 주변 도움과 악착같은 노력이 더해져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요.

[최현/35세/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그냥 남들처럼요. 나는 부자 되는 것도 꿈이 아니고 돈 많은 것도 안 부러워요. 그냥 평범하게 행복하게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최현 씨의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길, 응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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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탈북민 자영업…북한 음식 ‘도전’
    • 입력 2019-07-13 08:55:15
    • 수정2019-07-13 09:05:20
    남북의 창
[앵커]

국내 정착한 탈북민 사이에도 창업이 각광을 받고 있나 봅니다.

해마다 2천 명 정도의 탈북민이 창업에 나선다는 통계도 있는데요.

하지만 치열한 창업 전선에서 어려움은 더욱 많겠죠.

오늘 소개해드릴 청년 탈북민 사장님 사연에 해답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2년 전 스물셋 나이로 태권도 선수를 꿈꾸며 탈북했다는데, 음식점 사장님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네요.

음식점 문을 연 지 불과 다섯 달밖에 안 됐지만 성적이 꽤 괜찮다는데요. 비결이 뭘까요?

채유나 리포터와 함께 찾아보시죠.

[리포트]

주방용 두건과 앞치마를 두르고 재료 손질에 한창인 청년.

북한음식점을 운영한 지 다섯 달에 접어든 초보 사장, 탈북민 최현 씨입니다.

[최 현/35세/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북한, 우리 고향에서 먹던 음식 그대로 하는 거예요. 사람 고용하기 어려워서... 지금은 혼자 하고 있어요."]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손님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주방이 바빠집니다.

식당의 주메뉴는 감자 냉면.

농마 국수라고도 불리는 대표적인 북한의 서민 음식입니다.

[최 현/35세/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저는) 백두산 밑이 고양이거든요. 양강도라고. 그쪽이 감자 고장이니까 감자가 많이 나와요. 점심시간에 냉면 드시러 많이 오세요. 요즘에 더우니까."]

색다르면서도 거부감 없는 맛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기는데요.

[이영미/손님 : "감자로 만들어진 면이라서요. 제가 처음 먹어봤거든요. 되게 쫄깃쫄깃하고요. 북한이라고 생각하면 모르겠는데 전혀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먹어서 일반 식당에서 먹는 것 같이 편안하게…."]

또 다른 인기메뉴인 두부밥은 이곳 탈북민에게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김성태(가명)/탈북민 : "이건 이제 두부로 만든 거예요. (한국의) 유부초밥하고 같은 계열이죠. 맛은 조금 다르고. 북한의 대중 음식이죠. (고향 생각 많이 나세요?) 네, 고향 생각 많이 나죠."]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고, 잠깐 짬을 내 산책에 나선 최현 씨.

이제는 가게 일이 제법 익숙해졌지만 12년 전 한국에 올 때까지만 해도 식당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최 현/35세/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저는 한국 올 때, 그리고 한국 와서 태권도 국가대표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근데 이미 오니까 나이가... 벌써 23살에 왔거든요. 늦었더라고요. 그래서 지방에 있는 대학을 다니면서 운동을 한 거죠."]

북한에서 태권도 전문학교를 다녔다는 최 현 씨.

한국으로 넘어와 대학을 졸업하고 태권도 사범 일을 시작했지만, 가족을 부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운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최 현/35세/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한국 와서 일단 안 해본 일은 없어요. 막노동은 다 했어요. (용접으로) 큰 차, 화물차 만들고 자동차 페인트칠하고 이런 거 있잖아요. 그걸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온 몸이다 데잖아요."]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했지만, 생각과 다른 현실에 막막했는데요.

북한 음식점 개업은, 최 현 씨에게 마지막 희망이 된 셈입니다.

[최 현/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저는 어릴 적부터 순탄한 삶을 한 번도 산 적이 없어요. 어머님 빨리 돌아가시고 그래서... 여기 한국에 와서도 자꾸 순탄하지 않더라고요. 노력하면 되겠죠. 지금 해볼 때까지 한 번 해보는 거죠."]

새로운 삶을 꿈꾸며 떠나온 고향.

잘해보려는 노력과 달리 한국에서의 삶은 늘 녹록지 않았는데요.

새로운 시작을 한 지도 어느덧 5개월, 힘든 시기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이 있습니다.

며칠 뒤, 휴일을 맞아 외출에 나선 최 현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최 현/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여기 자주 와요. 자주 오는 누나 집(가게)인데. 제가 음식 할 줄 모르니까 저를 처음부터 가르쳐 주신 분 찾아오고 있어요."]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람은 고향 누나 최은옥 씨.

북한 음식점을 운영한 지 6년째 된다는 은옥 씨는 최 현 씨의 요리 스승입니다.

이날은 신메뉴인 감자 꽈배기를 배우기로 한 날인데요.

평소에는 따뜻한 누나지만 요리에서만큼은 호랑이 선생님이나 다름없습니다.

요리 경험이 없던 최 현 씨에게, 음식점 운영을 권유한 것도 다름 아닌 은옥 씨였습니다.

2012년 한국에 와 안 해 본 일이 없었다는 은옥 씨.

북한음식점을 연 후에도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는데요.

[최은옥/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가게 시작하고) 한 달 만에 전기 요금고지서가 날아왔는데 180만 원이 날아왔더라고요. 전기를 그렇게 썼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공업용하고 주민용을 잘 모르니까 그저 전기는 꼽아서 쓰면 되는 줄 알았어요."]

설상가상으로 북한산 재료를 사용한 사실이 문제가 돼 재판까지 받기도 했습니다.

[최은옥/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우리는 북한 사람이니까 북한 걸 팔아도 되고 먹어도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5.24조치고 나라 법이 그래서 (북한에서 재료를) 못 가져다 판다 그래서 법원에 열 번도 더 다녀왔을 거예요."]

창업 6년 차,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손님이 점점 늘면서 이제는 조금씩 여유를 찾고 있다는 은옥 씨.

한국 정착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최현 씨를 위해 두 발 벗고 나섰습니다

[최현/35세/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가게 오픈할 때도 (가진 것) 없이 시작했거든요. 누나가 물건 다 (사비로) 도와주시고 장사하는 노하우 새로운 메뉴들도 배우고 하니까…."]

요리법 전수는 물론 가게 운영에 필요한 것들을 대가 없이 도운 건데요.

[최은옥/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돈이라는 건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게 돈인데 먼저 도와서 일어서는 게 중요하니까."]

그 마음을 아는 최현 씨도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운 마음을 전해봅니다.

[최현/35세/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우리는 여기 오면 도와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항상 누나한테 고맙게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자영업자 열 명 중 여섯 명이 5년을 버티지 못하는 한국 사회지만 주변 도움과 악착같은 노력이 더해져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요.

[최현/35세/탈북민·북한음식점 운영 : "그냥 남들처럼요. 나는 부자 되는 것도 꿈이 아니고 돈 많은 것도 안 부러워요. 그냥 평범하게 행복하게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최현 씨의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길, 응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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