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끝나지 않은 도전…히말라야에 잠든 사람들

입력 2019.09.13 (08:31) 수정 2019.09.1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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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신들의 산이라 불리는 히말라얍니다.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8천 미터 이상 고봉 등정에 도전하는 산악인들의 발길이 계속되는 만큼 사고도 끊이지 않았는데요,

이 시간에도 전해드렸지만 최근에는 10년 전 실종됐던 직지원정대 시신이 발견돼 돌아오는 기적같은 일도 있었죠.

하지만, 아직 히말라야에 잠든 우리나라 산악인들은 1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일까요?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리포트]

눈부시게 하얀 설산과 우뚝 솟은 봉우리, 수직으로 깎아지른 빙벽이 아찔한 이곳은 산악인이라면 생애 한번쯤 오르고 싶어한다는 히말라얍니다.

[남선우/한국등산학교 교장 : "히말라야가 가진 불확실성에 도전해서 그것을 극복하고 인간의 어떤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했던 산악인에게는 하나의 상징이고 어떻게 보면 궁극의 목표가 될 수도 있죠."]

우리나라 산악인이 히말라야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건 1970년대부터.

지난 50년 동안 정상에 오르기도 하고, 안타까운 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남선우/한국등산학교 교장 : "히말라야 등반을 하다가 조난사한 우리 한국 원정대원이 백 명이 넘습니다. 1972년 마나슬루 원정대 눈사태 조난사고, 이게 우리나라 등반 사상 가장 큰 사고로 기록돼 있죠. (사망자 15명 중) 네 명이 우리 한국 대원이었어요."]

한국 산악계의 자부심이자, 세계 최초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한 故 박영석 대장도 2011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2명의 대원과 함께 실종됐습니다.

지난해에는 히말라야 구르자히말 원정에 나섰던 김창호 대장을 포함해 5명의 대원이 사망해 산악계가 충격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2010년의 히말라야 마나슬루로 갑니다.

한국 원정대 김주형 대장과 중중장애산악인 김홍빈 대장, 윤치원, 강연룡, 김미곤, 박행수 대원은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었습니다.

정상 도전이 있던 그 날입니다.

[故 윤치원 대원/2010년 4월 : "(뭘 그렇게 챙기는지?) 원래 이렇게 많이 안 챙기는 데 대원들 많이 먹이려고."]

그렇게 나눠먹을 음식을 챙겨 떠난 원정대는 정상에 닿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김미곤/2010년 마나슬루 원정대원 : "화이트아웃이라고 해서 산이 구름에 싸여서, 서 있으면 내 발등이 안 보일 정도 되니까요. 그러니까 상당히 어려웠죠. 기상악화에 갇혀 있다가 (하산하던 중) 그런 사고가 발생한 거죠."]

다음을 기약하며 하산을 결정했지만, 눈 속에서 며칠 동안 비박을 하며 버틴 대원들의 체력은 이미 바닥 나 있었습니다.

고 윤치원 대원은 막내 박행수 대원의 몸 상태가 나빠지자, 일단 다른 일행을 먼저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미곤/2010년 마나슬루 원정대원 : "(당시) 박행수 대원 같은 경우는 고소(고산병이) 심하게 와서 윤치원 대원이 자기가 박행수 데리고 가겠다, (부상당한) 강연룡 대원한테 너 먼저 내려가라고 얘기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끝내 산을 내려오지 못한 두 대원.

당시 현지로 달려간 고 윤치원 대원의 형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동생이 이번에도 돌아올거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윤종진/故 윤치원 대원 형 : "그 전에 (다른) 등반 가서 (해발) 7,000m 넘는 데서 (동생이) 십이지장이 터졌는데, 거기서 진통제 먹고 내려왔습니다. 그때 죽었다고 사람들이 말 할 정도였는데 그래도 살아왔습니다."]

그런 일을 겪고도 다시 히말라야로 향한 강인한 동생이었지만, 이번에는 어쩌면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윤종진/故 윤치원 대원 형 : "헬기 타고 (해발) 7,000m까지는 올라가 봤습니다. 다같이. (보니까) 사실 (동생을) 찾기란 힘들 것이다. 지형이 바뀌는데 다 눈이고 어딘지도 모르는데, (위치를) 알아도 못 찾는 위치일수 있는데…."]

며칠 동안 이어진 수색에서 헬기구조팀은 해발 7,500미터 지점에서 '점'처럼 보이는 시신 한 구를 발견했습니다.

여러 정황상 故 박행수 대원 같았다는데요,

박 대원이 맞다면, 그 주위에 故 윤치원 대원이 있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하지만, 시신 수습은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꼬박 1년이 지난 뒤, 김미곤 대원은 시신수습대에 합류해 다시 마나슬루에 올랐습니다.

동상에 걸린 발가락을 잘라내는 수술을 하고, 상처가 다 아물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그 산에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김미곤/한국도로공사 산악팀 대장 : "살아서 왔기 때문에 죄인이다. 어떻게든 데려와야겠다. 그래야지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 내가 지은 죄를 덜 수 있을까?"]

하지만 히말라야 7,000미터 이상 고지대에 있는 성인남성의 시신을 수습해 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김미곤/2010년 마나슬루 원정대원 : "(해발) 7,500m에 있는 시신을 우리가 데리고 내려온다니까 다들 못 데리고 온다 했거든요."]

하지만 기어이 산을 거슬러 올랐고, 마침내 눈 속에 잠들어있는 고 박행수 대원을 찾아냈습니다.

박 대원의 양손에는 양말이 끼워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옆에 같이 있을 줄 알았던 고 윤치원 대원은 끝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김미곤/2010년 마나슬루 원정대원 : "분명히 우리가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 주위에 故 윤치원 대원의 시신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못 찾은 거죠."]

그렇게 박 대원의 시신과 함께 하산했고, 윤 대원은 아직 히말라야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 후 2016년 고 윤치원 대원이 활동했던 지역 선후배 산악인들은 다시 히말라야를 향했습니다.

마나슬루 원정대 사고당시 손가락10개를 잃은 강연룡 대원의 부탁으로 꾸려진 팀입니다.

[박명환/경남산악연맹 부회장 : "(故 강연룡 대원이) 자기가 꼭 한번 치원이를 찾고 싶다 해서 (갔죠). 어쨌든 찾아서 우리가 유가족한테 넘겨주는 것이 산악인의 의무기도 하니까 1%의 가능성을 보고 가는 거죠.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거기에 먼저 간 친구한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자세가 아닐까 싶어서."]

대원들은 45일간 故 윤치원 대원을 찾았지만 흔적 조차 찾지 못했고, 대신 소박한 제사상을 마련했습니다.

기약없는 인사를 건넸던 강 대원도 이제 고인이 됐습니다.

들어보시죠.

[故 강연룡 대원/2010년 마나슬루 원정대원 : "이제 그만 혼자 좋은데 있지 말고 내려갑시다."]

실종 1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직지원정대.

故 윤치원 대원 가족, 동료들은 기적이 또 한번 찾아오기를 기대합니다.

[윤종진/故 윤치원 대원 형 : "등반대든 셰르파든 주위에 이렇게 지나가다가 (동생을) 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죠. 마지막 모습 그 배낭, 유품이라도 꼭 봤으면 좋겠다. 그게 (동생의) 마지막 모습 아니겠나 싶어서…."]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빌리는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죠.

산악인들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히말라야를 찾고 있습니다.

히말라야에서 잠든 우리 산악인들이 언젠가는 고국, 가족,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모두들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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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13 08:35:44
    • 수정2019-09-13 08: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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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신들의 산이라 불리는 히말라얍니다.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8천 미터 이상 고봉 등정에 도전하는 산악인들의 발길이 계속되는 만큼 사고도 끊이지 않았는데요,

이 시간에도 전해드렸지만 최근에는 10년 전 실종됐던 직지원정대 시신이 발견돼 돌아오는 기적같은 일도 있었죠.

하지만, 아직 히말라야에 잠든 우리나라 산악인들은 1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일까요?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리포트]

눈부시게 하얀 설산과 우뚝 솟은 봉우리, 수직으로 깎아지른 빙벽이 아찔한 이곳은 산악인이라면 생애 한번쯤 오르고 싶어한다는 히말라얍니다.

[남선우/한국등산학교 교장 : "히말라야가 가진 불확실성에 도전해서 그것을 극복하고 인간의 어떤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했던 산악인에게는 하나의 상징이고 어떻게 보면 궁극의 목표가 될 수도 있죠."]

우리나라 산악인이 히말라야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건 1970년대부터.

지난 50년 동안 정상에 오르기도 하고, 안타까운 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남선우/한국등산학교 교장 : "히말라야 등반을 하다가 조난사한 우리 한국 원정대원이 백 명이 넘습니다. 1972년 마나슬루 원정대 눈사태 조난사고, 이게 우리나라 등반 사상 가장 큰 사고로 기록돼 있죠. (사망자 15명 중) 네 명이 우리 한국 대원이었어요."]

한국 산악계의 자부심이자, 세계 최초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한 故 박영석 대장도 2011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2명의 대원과 함께 실종됐습니다.

지난해에는 히말라야 구르자히말 원정에 나섰던 김창호 대장을 포함해 5명의 대원이 사망해 산악계가 충격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2010년의 히말라야 마나슬루로 갑니다.

한국 원정대 김주형 대장과 중중장애산악인 김홍빈 대장, 윤치원, 강연룡, 김미곤, 박행수 대원은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었습니다.

정상 도전이 있던 그 날입니다.

[故 윤치원 대원/2010년 4월 : "(뭘 그렇게 챙기는지?) 원래 이렇게 많이 안 챙기는 데 대원들 많이 먹이려고."]

그렇게 나눠먹을 음식을 챙겨 떠난 원정대는 정상에 닿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김미곤/2010년 마나슬루 원정대원 : "화이트아웃이라고 해서 산이 구름에 싸여서, 서 있으면 내 발등이 안 보일 정도 되니까요. 그러니까 상당히 어려웠죠. 기상악화에 갇혀 있다가 (하산하던 중) 그런 사고가 발생한 거죠."]

다음을 기약하며 하산을 결정했지만, 눈 속에서 며칠 동안 비박을 하며 버틴 대원들의 체력은 이미 바닥 나 있었습니다.

고 윤치원 대원은 막내 박행수 대원의 몸 상태가 나빠지자, 일단 다른 일행을 먼저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미곤/2010년 마나슬루 원정대원 : "(당시) 박행수 대원 같은 경우는 고소(고산병이) 심하게 와서 윤치원 대원이 자기가 박행수 데리고 가겠다, (부상당한) 강연룡 대원한테 너 먼저 내려가라고 얘기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끝내 산을 내려오지 못한 두 대원.

당시 현지로 달려간 고 윤치원 대원의 형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동생이 이번에도 돌아올거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윤종진/故 윤치원 대원 형 : "그 전에 (다른) 등반 가서 (해발) 7,000m 넘는 데서 (동생이) 십이지장이 터졌는데, 거기서 진통제 먹고 내려왔습니다. 그때 죽었다고 사람들이 말 할 정도였는데 그래도 살아왔습니다."]

그런 일을 겪고도 다시 히말라야로 향한 강인한 동생이었지만, 이번에는 어쩌면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윤종진/故 윤치원 대원 형 : "헬기 타고 (해발) 7,000m까지는 올라가 봤습니다. 다같이. (보니까) 사실 (동생을) 찾기란 힘들 것이다. 지형이 바뀌는데 다 눈이고 어딘지도 모르는데, (위치를) 알아도 못 찾는 위치일수 있는데…."]

며칠 동안 이어진 수색에서 헬기구조팀은 해발 7,500미터 지점에서 '점'처럼 보이는 시신 한 구를 발견했습니다.

여러 정황상 故 박행수 대원 같았다는데요,

박 대원이 맞다면, 그 주위에 故 윤치원 대원이 있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하지만, 시신 수습은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꼬박 1년이 지난 뒤, 김미곤 대원은 시신수습대에 합류해 다시 마나슬루에 올랐습니다.

동상에 걸린 발가락을 잘라내는 수술을 하고, 상처가 다 아물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그 산에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김미곤/한국도로공사 산악팀 대장 : "살아서 왔기 때문에 죄인이다. 어떻게든 데려와야겠다. 그래야지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 내가 지은 죄를 덜 수 있을까?"]

하지만 히말라야 7,000미터 이상 고지대에 있는 성인남성의 시신을 수습해 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김미곤/2010년 마나슬루 원정대원 : "(해발) 7,500m에 있는 시신을 우리가 데리고 내려온다니까 다들 못 데리고 온다 했거든요."]

하지만 기어이 산을 거슬러 올랐고, 마침내 눈 속에 잠들어있는 고 박행수 대원을 찾아냈습니다.

박 대원의 양손에는 양말이 끼워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옆에 같이 있을 줄 알았던 고 윤치원 대원은 끝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김미곤/2010년 마나슬루 원정대원 : "분명히 우리가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 주위에 故 윤치원 대원의 시신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못 찾은 거죠."]

그렇게 박 대원의 시신과 함께 하산했고, 윤 대원은 아직 히말라야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 후 2016년 고 윤치원 대원이 활동했던 지역 선후배 산악인들은 다시 히말라야를 향했습니다.

마나슬루 원정대 사고당시 손가락10개를 잃은 강연룡 대원의 부탁으로 꾸려진 팀입니다.

[박명환/경남산악연맹 부회장 : "(故 강연룡 대원이) 자기가 꼭 한번 치원이를 찾고 싶다 해서 (갔죠). 어쨌든 찾아서 우리가 유가족한테 넘겨주는 것이 산악인의 의무기도 하니까 1%의 가능성을 보고 가는 거죠.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거기에 먼저 간 친구한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자세가 아닐까 싶어서."]

대원들은 45일간 故 윤치원 대원을 찾았지만 흔적 조차 찾지 못했고, 대신 소박한 제사상을 마련했습니다.

기약없는 인사를 건넸던 강 대원도 이제 고인이 됐습니다.

들어보시죠.

[故 강연룡 대원/2010년 마나슬루 원정대원 : "이제 그만 혼자 좋은데 있지 말고 내려갑시다."]

실종 1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직지원정대.

故 윤치원 대원 가족, 동료들은 기적이 또 한번 찾아오기를 기대합니다.

[윤종진/故 윤치원 대원 형 : "등반대든 셰르파든 주위에 이렇게 지나가다가 (동생을) 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죠. 마지막 모습 그 배낭, 유품이라도 꼭 봤으면 좋겠다. 그게 (동생의) 마지막 모습 아니겠나 싶어서…."]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빌리는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죠.

산악인들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히말라야를 찾고 있습니다.

히말라야에서 잠든 우리 산악인들이 언젠가는 고국, 가족,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모두들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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