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스페셜] 쫓겨난 원주민 ‘아이누’…홋카이도 현장을 가다

입력 2019.09.28 (22:02) 수정 2019.09.2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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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 홋카이도에는 원주민 '아이누족'이 살고 있지만, 지금은 인구가 만 3천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본이 침략해 탄압하면서 인구도 크게 줄고 언어까지 말살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아베 정부가 갑자기 아이누족을 일본의 원주민으로 인정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민영 특파원이 홋카이도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북쪽의 거대한 땅 홋카이도.

우리나라 면적의 85%에 이르며 울창한 산림과 호수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합니다.

이 땅의 원래 주인은 인간을 의미하는 아이누족.

짙은 눈썹과 선 굵은 얼굴이 특징인데 남자들은 콧수염과 구레나룻을 길렀고 여성들은 문신 등으로 치장을 했습니다.

일본인들은 1400년대 중반부터 평화롭게 살던 이들을 본격적으로 탄압하고 홋카이도 땅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이후 '동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강요하며 아이누 말과 문화는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홋카이도 전체 인구는 530만 명이 넘는데요. 이 가운데 아이누족은 만3천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10년 전에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스스로를 아이누족이라고 밝히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겁니다.

홋카이도 니부타니 마을에 자리잡은 아이누 문화 박물관.

지난 1991년에 개관했습니다.

아이누인들의 생활과 관련된 천여 점 이상의 물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지금은 아이누 문화를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지만 당초에는 아이누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세키네 켄지/아이누 박물관 학예연구사 : "아이누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도 없고 아이누 전통 지키고 사는 사람도 없어요."]

홋카이도에서 가장 큰 삿포로 대학.

리듬에 맞춰 한바탕 춤사위가 펼쳐집니다.

대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입니다.

동아리 이름은 우레시파.

'함께 성장한다'라는 뜻의 아이누말입니다.

전체 회원 중 3분의 1 가량은 아이누족이 아닙니다.

[카나자와 마나오/1학년/비아이누족 : "인간과 자연, 동물 등 주변 것들이 대등한 관계라는 아이누의 세계관에 감명받아서..."]

아이누족의 역사와 생활에 대해서도 배우고 선배와 토론도 합니다.

이어진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아이누어 학습 시간.

["이랑까랍떼(사랑합니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시간입니다.

문화의 뿌리가 언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쿠즈노 다이키/삿포로대 4학년/아이누족 : "대학에 들어온 뒤부터 아이누어를 배웠습니다. 전에는 오른쪽 왼쪽도 몰랐지만 아이누어를 쓰고 싶어서..."]

이 대학 혼다 교수.

세계에 몇명밖에 없는 아이누어 전문가입니다.

자신들의 말을 빼앗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아이누 마을에서 10년 넘게 숙식을 하며 아이누어를 직접 익혔습니다.

[혼다 유우코/삿포로대 교수 : "아이누 언어는 본인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메이지 정부 동화정책 때문에 언어가 박탈됐습니다."]

아이누어는 말은 있지만 글은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어와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사전도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혼다 유우코/삿포로대 교수 : "아이누어는 받침이 있는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어로는 표기가 힘들어서 영문 표기가 더 편리합니다."]

아이누 자료관.

이 자료관 초대관장인 카야노 시게루 씨.

1994년에 아이누족 최초로 일본 참의원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국회에서 아이누어로 첫 연설도 했습니다.

그가 아이누어 사전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아이누족 노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700시간 넘게 녹음한 뒤 이를 정리해 사전을 만들었습니다.

[카야노 시로/아들/아이누 자료관장 : "(아버지는 평소에) 언어는 민족을 증명하는 것이고 언어만 남아 있으면 아이누 민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니 언어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동화정책을 펴며 아이누 흔적 지우기에 치중했던 일본 정부의 태도가 올해 갑자기 돌변했습니다.

아이누 문화를 활용해 지역을 진흥시키겠다며 아이누 지원법까지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아이누족은 올해야 비로소 일본 정부로부터 원주민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지 600년 만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속셈은 따로 있어 보입니다.

러시아와의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북방영토 문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의도로 읽힙니다.

아이누족이 일본의 원주민인데 북방영토에도 아이누족이 살고 있으니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려는 겁니다.

아이누족은 이 법안에 전혀 찬성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카야노 시로/아들/아이누 자료관장 : "(강제로) 동화정책을 취한 것에 대한 반성도 없고 사죄도 없고 단지 아이누는 일본의 원주민이다라고 문서로만 말하는 겁니다."]

일본을 돌변하게 만든 건 러시아의 한 발 빠른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푸틴 대통령은 쿠릴열도 즉 북방영토를 방문해 아이누족을 러시아 원주민으로 인정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에 놀란 일본이 올해 초 허겁지겁 아이누 지원 법안을 발의하고 아이누족과 논의도 없이 서둘러 국회에서 통과시킨 겁니다.

아베 총리는 쿠릴 열도 즉 북방영토 문제를 해결해 자신의 최대 성과로 과시하려 하지만 절대 불가 방침을 고수하는 러시아에 번번히 뒤통수를 맞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이민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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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스페셜] 쫓겨난 원주민 ‘아이누’…홋카이도 현장을 가다
    • 입력 2019-09-28 22:11:37
    • 수정2019-09-28 22: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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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 홋카이도에는 원주민 '아이누족'이 살고 있지만, 지금은 인구가 만 3천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본이 침략해 탄압하면서 인구도 크게 줄고 언어까지 말살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아베 정부가 갑자기 아이누족을 일본의 원주민으로 인정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민영 특파원이 홋카이도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북쪽의 거대한 땅 홋카이도.

우리나라 면적의 85%에 이르며 울창한 산림과 호수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합니다.

이 땅의 원래 주인은 인간을 의미하는 아이누족.

짙은 눈썹과 선 굵은 얼굴이 특징인데 남자들은 콧수염과 구레나룻을 길렀고 여성들은 문신 등으로 치장을 했습니다.

일본인들은 1400년대 중반부터 평화롭게 살던 이들을 본격적으로 탄압하고 홋카이도 땅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이후 '동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강요하며 아이누 말과 문화는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홋카이도 전체 인구는 530만 명이 넘는데요. 이 가운데 아이누족은 만3천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10년 전에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스스로를 아이누족이라고 밝히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겁니다.

홋카이도 니부타니 마을에 자리잡은 아이누 문화 박물관.

지난 1991년에 개관했습니다.

아이누인들의 생활과 관련된 천여 점 이상의 물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지금은 아이누 문화를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지만 당초에는 아이누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세키네 켄지/아이누 박물관 학예연구사 : "아이누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도 없고 아이누 전통 지키고 사는 사람도 없어요."]

홋카이도에서 가장 큰 삿포로 대학.

리듬에 맞춰 한바탕 춤사위가 펼쳐집니다.

대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입니다.

동아리 이름은 우레시파.

'함께 성장한다'라는 뜻의 아이누말입니다.

전체 회원 중 3분의 1 가량은 아이누족이 아닙니다.

[카나자와 마나오/1학년/비아이누족 : "인간과 자연, 동물 등 주변 것들이 대등한 관계라는 아이누의 세계관에 감명받아서..."]

아이누족의 역사와 생활에 대해서도 배우고 선배와 토론도 합니다.

이어진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아이누어 학습 시간.

["이랑까랍떼(사랑합니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시간입니다.

문화의 뿌리가 언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쿠즈노 다이키/삿포로대 4학년/아이누족 : "대학에 들어온 뒤부터 아이누어를 배웠습니다. 전에는 오른쪽 왼쪽도 몰랐지만 아이누어를 쓰고 싶어서..."]

이 대학 혼다 교수.

세계에 몇명밖에 없는 아이누어 전문가입니다.

자신들의 말을 빼앗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아이누 마을에서 10년 넘게 숙식을 하며 아이누어를 직접 익혔습니다.

[혼다 유우코/삿포로대 교수 : "아이누 언어는 본인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메이지 정부 동화정책 때문에 언어가 박탈됐습니다."]

아이누어는 말은 있지만 글은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어와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사전도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혼다 유우코/삿포로대 교수 : "아이누어는 받침이 있는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어로는 표기가 힘들어서 영문 표기가 더 편리합니다."]

아이누 자료관.

이 자료관 초대관장인 카야노 시게루 씨.

1994년에 아이누족 최초로 일본 참의원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국회에서 아이누어로 첫 연설도 했습니다.

그가 아이누어 사전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아이누족 노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700시간 넘게 녹음한 뒤 이를 정리해 사전을 만들었습니다.

[카야노 시로/아들/아이누 자료관장 : "(아버지는 평소에) 언어는 민족을 증명하는 것이고 언어만 남아 있으면 아이누 민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니 언어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동화정책을 펴며 아이누 흔적 지우기에 치중했던 일본 정부의 태도가 올해 갑자기 돌변했습니다.

아이누 문화를 활용해 지역을 진흥시키겠다며 아이누 지원법까지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아이누족은 올해야 비로소 일본 정부로부터 원주민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지 600년 만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속셈은 따로 있어 보입니다.

러시아와의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북방영토 문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의도로 읽힙니다.

아이누족이 일본의 원주민인데 북방영토에도 아이누족이 살고 있으니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려는 겁니다.

아이누족은 이 법안에 전혀 찬성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카야노 시로/아들/아이누 자료관장 : "(강제로) 동화정책을 취한 것에 대한 반성도 없고 사죄도 없고 단지 아이누는 일본의 원주민이다라고 문서로만 말하는 겁니다."]

일본을 돌변하게 만든 건 러시아의 한 발 빠른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푸틴 대통령은 쿠릴열도 즉 북방영토를 방문해 아이누족을 러시아 원주민으로 인정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에 놀란 일본이 올해 초 허겁지겁 아이누 지원 법안을 발의하고 아이누족과 논의도 없이 서둘러 국회에서 통과시킨 겁니다.

아베 총리는 쿠릴 열도 즉 북방영토 문제를 해결해 자신의 최대 성과로 과시하려 하지만 절대 불가 방침을 고수하는 러시아에 번번히 뒤통수를 맞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이민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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