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갈 곳이 없어요”…막막한 재건축 지역 세입자들

입력 2019.10.31 (08:28) 수정 2019.10.31 (09: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기자]

주변에 재개발이나 재건축한 뒤에 화려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곳들 요즘 많이들 보셨죠?

그런데 이같은 정비 사업 뒤엔 원주민 이주를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이 늘 함께합니다.

특히 재건축 지역 세입자들의 경우 쫓기듯 이주해야하는 경우도 많다는데요.

오늘은 겨울이 오는 게 두렵다는 재건축 지역 세입자들을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리포트]

서울 강서구의 한 재건축 지구입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집집마다 대문에 출입금지 표시가 눈에 띕니다.

곳곳엔 이주민들이 버리고 간 가구와 살림살이들이 쌓여 있습니다.

[재건축 지역 세입자/음성변조 : "이주들을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저기 지금 줄로 해놓은 곳들은 다 이사를 간 집이에요."]

650여 세대가 살던 이 정비구역은 계획대로라면 지난 9월 모두 이주가 끝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이 골목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5년 전, 이 동네에서 터를 잡았던 빵집 주인 장석호 씨도 그 중 한명입니다.

[장석호/재건축 지역 세입자 : "어디다 알아볼 엄두도 못 내요. 엄두도 못 내고 알아볼 생각도 없어요. 지금 현 시점에서는. 5년 동안 이렇게 잘 자리를 잡고 영업을 했는데 하루아침에 그냥 나가는 거예요. 몸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번 돈을 모두 쏟아 부어 시작했던 가게.

하지만 올 봄, 이곳 주택단지가 재건축 구역이 되면서 가게를 비우고 떠나달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장석호/재건축 지역 세입자 : "상가 월세 계약서인데 2020년 6월 16일까지 계약이에요. 내년 6월이면 지금 8개월 남았잖아요."]

이렇게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 기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장석호/재건축 지역 세입자 : "11월 20일이 착공 일자니까 거기 맞춰서 나가라는 거죠. 그냥. 말 그대로 인도예요. 소규모 사업장은 자기 모든 경력이나 기술 이런 걸 통해서 퇴직금을 해서 모든 걸 다 (걸고) 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상태인데 여기서 아무 보상금도 없이 나가라고 하면 가게도 못 구하는 거죠. 모든 물건을 다 들고 어디로 갑니까, 지금."]

남아있는 인근 상가 세입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10년 전, 이곳에 미용실을 차린 신 모 씨 역시 사정은 마찬가집니다.

[신○○/재건축 지역 세입자/음성변조 : "저희는 권리금도 주고 들어왔고요. 시설도 했고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서 기본적인 생활이 되는 상태인데 전혀 보상이 없고. 대출도 알아봤거든요. 그런데 소상공인, 간이 영세사업자라서 대출조차도 안 되더라고요."]

10년 넘게 한 곳에서 장사하면서 단골 손님들을 확보했는데 어디서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보통 정비구역으로 개발이 되면 이주비 등은 모두 보상받는 것 아닌가 하고 알고 계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현행법상 재개발 지역은 공익사업적 측면을 인정받아 이사비와 영업손실비용 등을 세입자에게 보상하지만 재건축 세입자는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상황인 겁니다.

[재건축 조합 관계자/음성변조 : "(재건축) 그런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4~5년 전부터 계속 공지를 해왔었고 (임대차 계약 시) 특약사항에 반드시 기재를 해라, 그렇게 해서 다 지금 그렇게 해왔어요."]

주민 75%이상이 찬성하면 합법으로 진행되는 재건축 사업. 때문에 반대하는 소수와 세입자는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장석호/재건축 지역 세입자 : "재건축 자체를 아예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 동네가 더 좋아지고 주거 환경을 개선해서 살기 좋은 동네 만들면 누가 반대할 이유는 없잖아요. 무조건 소통도 안 하고 말도 안 하고 나가라는 식으로 걷어차는 식으로만 대하시는데 그러면 안 돼요.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게 저희 희망입니다.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어요."]

서울의 또 다른 재건축지역입니다.

이곳은 지난 8월 15일부로 석달에 걸쳐 진행됐던 원주민 이주 기간이 끝났습니다.

이주 종료 시점으로부터 두 달이 지난 건데요.

하지만 이곳 역시 여전히 20여 가구가 떠나지 못한 채 남아있습니다.

[김정희/재건축 지역 세입자 : "집주인은 계속 재건축이 그리 쉽게 되진 않을 거다. 걱정하지 말고 해라 그러면서 작년까지도 또 계약서를 내밀면서 여기서 영업할 것을 종용했어요."]

이곳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해온 세입자들 대부분 손에 쥔 보증금으로는 생업을 이어가기 힘든 처지에 놓였습니다.

[김정희/재건축 지역 세입자 : "어떤 분은 폐업을 하고 지방으로 가신 분도 계시고 여기 재건축 때문에 주변 상가들이 너무 가격이 올라서 지금 이 가격으로는 어디 터전을 잡을 수가 없어요. 저희 삶의 터전이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어요."]

막막한 상황에 놓인 건 주거 세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빌라 인적이 느껴지지 않으시죠?

하지만, 이 건물에 마지막 세입자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재건축 지역 세입자/음성변조 : "아이가 있는데 여자 아이다 보니까 무서워서 맨날 전화해서 '엄마, 나 들어가고 있어. 이렇게 하고 있어.' 계속 그러고 (집에) 와요."]

30년 넘게 살아온 삶의 터전.

이웃들마저 하나 둘 떠났지만 시세보다 적은 돈으로는 이사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입니다.

[재건축 지역 세입자/음성변조 : "저 혼자 지금 있는 거예요. 방을 보러 다녔지만 제가 이제 가지고 있는 거로는 갈만한 데가 없었어요. 30년을 넘게 살았는데 이런 거 다 포기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가라는 거잖아요."]

서울에 추진중인 재건축 지역만 40여곳.

이런 상황속에서 재건축 세입자의 이주보상을 둘러싼 대책 마련에 대한 목소리도 꾸준히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이원호/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 "공익사업이든 민간사업이든 비자발적으로 이주해야 된다는 게 똑같은 거잖아요. 사실상 재건축 사업에서의 세입자 대책도 최소한 재개발 사업과 동일하게 수립해야 된다는 것이 기본적으로 필요한 거고요. 관련된 법안들이 발의돼있는 상태입니다."]

지난 2월 재건축 세입자 이주보상 규정을 담은 개정안이 발의됐고, 최근엔 세입자 보호대책을 담은 도시,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언제 논의될까요?

철거 위기에 놓인 세입자들이 견뎌야 할 추운 겨울은 오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뉴스 따라잡기] “갈 곳이 없어요”…막막한 재건축 지역 세입자들
    • 입력 2019-10-31 08:29:06
    • 수정2019-10-31 09:00:43
    아침뉴스타임
[기자]

주변에 재개발이나 재건축한 뒤에 화려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곳들 요즘 많이들 보셨죠?

그런데 이같은 정비 사업 뒤엔 원주민 이주를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이 늘 함께합니다.

특히 재건축 지역 세입자들의 경우 쫓기듯 이주해야하는 경우도 많다는데요.

오늘은 겨울이 오는 게 두렵다는 재건축 지역 세입자들을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리포트]

서울 강서구의 한 재건축 지구입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집집마다 대문에 출입금지 표시가 눈에 띕니다.

곳곳엔 이주민들이 버리고 간 가구와 살림살이들이 쌓여 있습니다.

[재건축 지역 세입자/음성변조 : "이주들을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저기 지금 줄로 해놓은 곳들은 다 이사를 간 집이에요."]

650여 세대가 살던 이 정비구역은 계획대로라면 지난 9월 모두 이주가 끝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이 골목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5년 전, 이 동네에서 터를 잡았던 빵집 주인 장석호 씨도 그 중 한명입니다.

[장석호/재건축 지역 세입자 : "어디다 알아볼 엄두도 못 내요. 엄두도 못 내고 알아볼 생각도 없어요. 지금 현 시점에서는. 5년 동안 이렇게 잘 자리를 잡고 영업을 했는데 하루아침에 그냥 나가는 거예요. 몸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번 돈을 모두 쏟아 부어 시작했던 가게.

하지만 올 봄, 이곳 주택단지가 재건축 구역이 되면서 가게를 비우고 떠나달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장석호/재건축 지역 세입자 : "상가 월세 계약서인데 2020년 6월 16일까지 계약이에요. 내년 6월이면 지금 8개월 남았잖아요."]

이렇게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 기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장석호/재건축 지역 세입자 : "11월 20일이 착공 일자니까 거기 맞춰서 나가라는 거죠. 그냥. 말 그대로 인도예요. 소규모 사업장은 자기 모든 경력이나 기술 이런 걸 통해서 퇴직금을 해서 모든 걸 다 (걸고) 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상태인데 여기서 아무 보상금도 없이 나가라고 하면 가게도 못 구하는 거죠. 모든 물건을 다 들고 어디로 갑니까, 지금."]

남아있는 인근 상가 세입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10년 전, 이곳에 미용실을 차린 신 모 씨 역시 사정은 마찬가집니다.

[신○○/재건축 지역 세입자/음성변조 : "저희는 권리금도 주고 들어왔고요. 시설도 했고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서 기본적인 생활이 되는 상태인데 전혀 보상이 없고. 대출도 알아봤거든요. 그런데 소상공인, 간이 영세사업자라서 대출조차도 안 되더라고요."]

10년 넘게 한 곳에서 장사하면서 단골 손님들을 확보했는데 어디서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보통 정비구역으로 개발이 되면 이주비 등은 모두 보상받는 것 아닌가 하고 알고 계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현행법상 재개발 지역은 공익사업적 측면을 인정받아 이사비와 영업손실비용 등을 세입자에게 보상하지만 재건축 세입자는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상황인 겁니다.

[재건축 조합 관계자/음성변조 : "(재건축) 그런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4~5년 전부터 계속 공지를 해왔었고 (임대차 계약 시) 특약사항에 반드시 기재를 해라, 그렇게 해서 다 지금 그렇게 해왔어요."]

주민 75%이상이 찬성하면 합법으로 진행되는 재건축 사업. 때문에 반대하는 소수와 세입자는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장석호/재건축 지역 세입자 : "재건축 자체를 아예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 동네가 더 좋아지고 주거 환경을 개선해서 살기 좋은 동네 만들면 누가 반대할 이유는 없잖아요. 무조건 소통도 안 하고 말도 안 하고 나가라는 식으로 걷어차는 식으로만 대하시는데 그러면 안 돼요.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게 저희 희망입니다.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어요."]

서울의 또 다른 재건축지역입니다.

이곳은 지난 8월 15일부로 석달에 걸쳐 진행됐던 원주민 이주 기간이 끝났습니다.

이주 종료 시점으로부터 두 달이 지난 건데요.

하지만 이곳 역시 여전히 20여 가구가 떠나지 못한 채 남아있습니다.

[김정희/재건축 지역 세입자 : "집주인은 계속 재건축이 그리 쉽게 되진 않을 거다. 걱정하지 말고 해라 그러면서 작년까지도 또 계약서를 내밀면서 여기서 영업할 것을 종용했어요."]

이곳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해온 세입자들 대부분 손에 쥔 보증금으로는 생업을 이어가기 힘든 처지에 놓였습니다.

[김정희/재건축 지역 세입자 : "어떤 분은 폐업을 하고 지방으로 가신 분도 계시고 여기 재건축 때문에 주변 상가들이 너무 가격이 올라서 지금 이 가격으로는 어디 터전을 잡을 수가 없어요. 저희 삶의 터전이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어요."]

막막한 상황에 놓인 건 주거 세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빌라 인적이 느껴지지 않으시죠?

하지만, 이 건물에 마지막 세입자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재건축 지역 세입자/음성변조 : "아이가 있는데 여자 아이다 보니까 무서워서 맨날 전화해서 '엄마, 나 들어가고 있어. 이렇게 하고 있어.' 계속 그러고 (집에) 와요."]

30년 넘게 살아온 삶의 터전.

이웃들마저 하나 둘 떠났지만 시세보다 적은 돈으로는 이사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입니다.

[재건축 지역 세입자/음성변조 : "저 혼자 지금 있는 거예요. 방을 보러 다녔지만 제가 이제 가지고 있는 거로는 갈만한 데가 없었어요. 30년을 넘게 살았는데 이런 거 다 포기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가라는 거잖아요."]

서울에 추진중인 재건축 지역만 40여곳.

이런 상황속에서 재건축 세입자의 이주보상을 둘러싼 대책 마련에 대한 목소리도 꾸준히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이원호/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 "공익사업이든 민간사업이든 비자발적으로 이주해야 된다는 게 똑같은 거잖아요. 사실상 재건축 사업에서의 세입자 대책도 최소한 재개발 사업과 동일하게 수립해야 된다는 것이 기본적으로 필요한 거고요. 관련된 법안들이 발의돼있는 상태입니다."]

지난 2월 재건축 세입자 이주보상 규정을 담은 개정안이 발의됐고, 최근엔 세입자 보호대책을 담은 도시,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언제 논의될까요?

철거 위기에 놓인 세입자들이 견뎌야 할 추운 겨울은 오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