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장벽 경비대원 “폭력 없이 만들어진 역사적 사건”

입력 2019.11.08 (06:44) 수정 2019.11.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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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는 9일은 독일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KBS는 당시 그 누구보다 상징적인 위치에서 베를린장벽 붕괴를 직접 경험한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장벽 붕괴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한반도 통일에 대한 시사점을 얻고자 합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그날 저녁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기쁨을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문' 상황을 지켜본 경비대원의 이야기입니다.

베를린 유광석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앵커]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 행사 준비로 분주한 브란덴부르크문.

30년 전 카렝케 씨는 이곳 경비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원래 튀링엔주의 장교학교 2학년 학생이었지만, 동독의 민주화 시위가 거세지면서 10월 말 베를린으로 차출됐습니다.

11월 9일 저녁 있었던 동독 정부의 TV 기자회견.

공산당 정치국 대변인 샤보브스키가 여행자유화 조치의 내용을 숙지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지금 당장' 서독 방문이 가능하다고 말하자마자 시민들이 장벽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카렝케 씨와 동급생들은 잠을 자다말고 비상 출동했습니다.

[마이크 카렝케/당시 장벽 경비대원 : "밤에 갑자기 경보가 내려졌고, 트럭에 탑승해야 했습니다. 총은 두고 갔습니다."]

전혀 상상 못 한 풍경, 수많은 시민이 장벽 위로 올라가 환호했고, 일부는 망치로 장벽을 부수기도 했습니다.

[마이크 카렝케 : "브란덴부르크문은 봉쇄된 공간이었습니다. 이것이 언젠가 변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동독이 영원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력진압 지시는 없었습니다.

[마이크 카렝케 : "저희는 처음에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명령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벽 붕괴는 동서독 간 자유로운 왕래로 이어졌고, 결국, 독일은 이듬해 통일을 달성했습니다.

[마이크 카렝케 : "30년이 지났지만 저는 이곳에 오는 걸 좋아합니다. 이것은 폭력 없이 만들어진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베를린에서 KBS 뉴스 유광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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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를린장벽 경비대원 “폭력 없이 만들어진 역사적 사건”
    • 입력 2019-11-08 06:50:51
    • 수정2019-11-08 08:00:17
    뉴스광장 1부
[앵커]

오는 9일은 독일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KBS는 당시 그 누구보다 상징적인 위치에서 베를린장벽 붕괴를 직접 경험한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장벽 붕괴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한반도 통일에 대한 시사점을 얻고자 합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그날 저녁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기쁨을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문' 상황을 지켜본 경비대원의 이야기입니다.

베를린 유광석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앵커]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 행사 준비로 분주한 브란덴부르크문.

30년 전 카렝케 씨는 이곳 경비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원래 튀링엔주의 장교학교 2학년 학생이었지만, 동독의 민주화 시위가 거세지면서 10월 말 베를린으로 차출됐습니다.

11월 9일 저녁 있었던 동독 정부의 TV 기자회견.

공산당 정치국 대변인 샤보브스키가 여행자유화 조치의 내용을 숙지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지금 당장' 서독 방문이 가능하다고 말하자마자 시민들이 장벽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카렝케 씨와 동급생들은 잠을 자다말고 비상 출동했습니다.

[마이크 카렝케/당시 장벽 경비대원 : "밤에 갑자기 경보가 내려졌고, 트럭에 탑승해야 했습니다. 총은 두고 갔습니다."]

전혀 상상 못 한 풍경, 수많은 시민이 장벽 위로 올라가 환호했고, 일부는 망치로 장벽을 부수기도 했습니다.

[마이크 카렝케 : "브란덴부르크문은 봉쇄된 공간이었습니다. 이것이 언젠가 변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동독이 영원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력진압 지시는 없었습니다.

[마이크 카렝케 : "저희는 처음에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명령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벽 붕괴는 동서독 간 자유로운 왕래로 이어졌고, 결국, 독일은 이듬해 통일을 달성했습니다.

[마이크 카렝케 : "30년이 지났지만 저는 이곳에 오는 걸 좋아합니다. 이것은 폭력 없이 만들어진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베를린에서 KBS 뉴스 유광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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