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바겐세일…문화유산까지

입력 2020.01.18 (21:46) 수정 2020.01.18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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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유럽에서 중국과의 밀월을 강화하는 두 나라가 있죠.

그리스와 이탈리안데요.

미국에 맞설 우군이 필요한 중국과, 재정난에 허덕여 중국의 투자가 절실한 두 나라의 이해가 맞어떨어진 결괍니다.

하지만, 두 나라는 국가 부채도 워낙 많아서 수백 년된 문화유산까지 헐값에 팔아 넘기고 있는데요.

송영석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중해로 열린 그리스의 최대 항구.

국가 부도 위기로 존립 기반이 흔들렸던 피레우스항에 생명을 불어넣은 건 중국이었습니다.

중국 국영기업 '코스코'가 운영권을 거머쥐면서, 일자리 수천 개가 살아났고 시설은 첨단화됐습니다.

[바겔리스 레파라나/피레우스항 엔지니어/40년 경력 : "크레인도 많아졌고요. 지난 10년 동안 항구가 더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항구 정문에는 군데군데 녹이 슨 낡은 크레인이 서있습니다.

그리스가 조선업 강자였던 1970년대와 80년대를 기념하기 위해서 남겨둔 거라고 하는데요.

지금은 바로 맞은편 본사 건물에 중국어 간판이 내걸려 있습니다.

세계적인 해운업체로 성장한 코스코는 지난해, 항구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계획도 내놨지만, 그리스 당국은 인근 유적지가 훼손될 수 있다며 불허했습니다.

2016년, 코스코는 약 4천 7백억 원에 피레우스항 컨테이너 터미널 지분 100%를 사들였습니다.

헐값 매각 논란 속에 관광지 개발 불허가 중국 자본 잠식을 우려한 그리스 관료들의 저항이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습니다.

코스코 측은 억울해 합니다.

[네크타리오스 데메노풀로스/코스코 대변인 : "(코스코의 투자는) 피레우스항 뿐 아니라 지역 경제 전체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그림자는 아테네의 관문부터 드리워져있습니다.

25만 유로, 3억 2천만원 정도의 부동산만 구입하면 그리스와 26개 국가의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는 중국어 광고가 곳곳에 붙었습니다.

아테네 공항도 지분 일부를 중국이 차지했습니다.

2013년, 그리스 정부가 이른바 '황금비자'를 도입한 이후 중국인 소유가 된 아테네 부동산은 4천 건이 넘습니다.

[아테네 거주 중국인 이민자 : "지금은 최소 2만 명 정도는 (아테네에) 살고 있을걸요. 이곳은 싸죠. 확실히 싸죠. 200만 위안이면요.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중국 대도시에서는 허름한 집 한칸도 200만 위안 넘게 팔려요."]

하지만, 아테네 도심에는 국가 부도 위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듯 빈 건물, 짓다 만 건물이 즐비합니다.

아테네 거리를 걷다 보면 팔거나 세를 주려고 내놨지만 오랫동안 거래가 돼지 않아서 이처럼 흉물이 된 건물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국영철도까지 외국에 넘긴 정부의 자산 매각 바람은 문화 유산으로도 닥칠 기셉니다.

2014년 이후 유적지 일부가 매물로 나올 거라는 보도가 끊이질 않았던 아크로 폴리스.

2018년엔 매각설이 구체화되자 문화부 공무원들이 파업 시위를 벌였고, '아크로 폴리스는 매각 대상이 아니'라는 정부의 공식 발표를 이끌어 냈습니다.

이탈리아의 관광명소 베네치아.

12세기 교황 지시로 지어져 수백 년 간 베네치아인들의 성지로 사랑받아온 산살바도로 성당.

이탈리아 정부가 최근 경매 매물로 내놓은 뒤,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입니다.

최저 입찰가는 370억여 원으로 책정됐는데, 중국계 자본이 호텔로 개조하고 싶다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베네치아 부동산 중개업자 : "지금까지는 중국인들이 주로 상업시설을 샀는데 최근에는 호텔 숙박 시설에 투자도 많이 하고 있어요."]

이런 분위기 속에 베네치아에도 중국인 관광객은 물론, 중국인이 경영하는 음식점이 부쩍 늘었고 기념품 가게까지 베네치아산을 판다고 써붙여야 할 만큼 중국산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베네치아 상인 : "중국인들이 습격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최근, 공공건물 경매를 통해 3년 동안 120억 유로, 약 16조 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로마 근교, 중세에 지어진 치비텔라 체시성.

대문은 잠겨진 지 오래고 잡초만 무성합니다.

[인근 주민 : "우리 어렸을 때 맞아! 맞아! 성 안에서 파티 같은 걸 하곤 했었죠."]

주민들의 추억이 깃든 체시성도 정부의 매각 리스트에 올라 최저 입찰가 4억 4천만 원에 매물로 나왔습니다.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오르시니 오데스칼키성.

웅장함에 구석구석 중세 예술 양식이 녹아있어 은은한 자태까지 뽐냅니다.

최근 이 성도 매각됐다는 보도가 잇따랐지만, 오보였습니다.

[관리사무소 직원 : "(이 성은) 항상 사유지였습니다. 소유자가 바뀐 적이 없습니다. 마리아 빠쉐 여사 소유입니다."]

스타들의 결혼식장으로 유명세를 떨치다보니 뜬소문에 휩싸인 겁니다.

이탈리아 정부가 경매에 붙인 건물은 420여개.

정부 청사도 포함됐습니다.

관공서들이 모여있는 로마 중심가입니다.

제뒤로 보이는 건물은 이탈리아 국방부인데요.

이 국방부가 소유한 부동산 41건도 매물로 나왔습니다.

국적 항공사와 국영통신사도 외국에 팔렸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노숙자는 5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고, 그리스에서는 정부의 긴축재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1분기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각각 182%와 134%.

유럽연합 권고치 60%보다 훨씬 높습니다.

[알렉산드로 페트레토/피렌체대 경영학과 교수 : "(이탈리아) 정부가 최근 몇년 동안 국가 소유 자산을 팔아 줄인 부채비율은 0.1%를 넘지 못합니다."]

과도한 복지와 낮은 노동 생산성, 비대한 공공부문 등 근본적인 원인들이 그대로인 이상 유서 깊은 건물까지 헐값에 팔아야 하는 현실은 예고된 비극이었는지 모릅니다.

아테네, 로마에서 송영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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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8 22:04:52
    • 수정2020-01-18 22: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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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유럽에서 중국과의 밀월을 강화하는 두 나라가 있죠.

그리스와 이탈리안데요.

미국에 맞설 우군이 필요한 중국과, 재정난에 허덕여 중국의 투자가 절실한 두 나라의 이해가 맞어떨어진 결괍니다.

하지만, 두 나라는 국가 부채도 워낙 많아서 수백 년된 문화유산까지 헐값에 팔아 넘기고 있는데요.

송영석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중해로 열린 그리스의 최대 항구.

국가 부도 위기로 존립 기반이 흔들렸던 피레우스항에 생명을 불어넣은 건 중국이었습니다.

중국 국영기업 '코스코'가 운영권을 거머쥐면서, 일자리 수천 개가 살아났고 시설은 첨단화됐습니다.

[바겔리스 레파라나/피레우스항 엔지니어/40년 경력 : "크레인도 많아졌고요. 지난 10년 동안 항구가 더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항구 정문에는 군데군데 녹이 슨 낡은 크레인이 서있습니다.

그리스가 조선업 강자였던 1970년대와 80년대를 기념하기 위해서 남겨둔 거라고 하는데요.

지금은 바로 맞은편 본사 건물에 중국어 간판이 내걸려 있습니다.

세계적인 해운업체로 성장한 코스코는 지난해, 항구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계획도 내놨지만, 그리스 당국은 인근 유적지가 훼손될 수 있다며 불허했습니다.

2016년, 코스코는 약 4천 7백억 원에 피레우스항 컨테이너 터미널 지분 100%를 사들였습니다.

헐값 매각 논란 속에 관광지 개발 불허가 중국 자본 잠식을 우려한 그리스 관료들의 저항이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습니다.

코스코 측은 억울해 합니다.

[네크타리오스 데메노풀로스/코스코 대변인 : "(코스코의 투자는) 피레우스항 뿐 아니라 지역 경제 전체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그림자는 아테네의 관문부터 드리워져있습니다.

25만 유로, 3억 2천만원 정도의 부동산만 구입하면 그리스와 26개 국가의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는 중국어 광고가 곳곳에 붙었습니다.

아테네 공항도 지분 일부를 중국이 차지했습니다.

2013년, 그리스 정부가 이른바 '황금비자'를 도입한 이후 중국인 소유가 된 아테네 부동산은 4천 건이 넘습니다.

[아테네 거주 중국인 이민자 : "지금은 최소 2만 명 정도는 (아테네에) 살고 있을걸요. 이곳은 싸죠. 확실히 싸죠. 200만 위안이면요.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중국 대도시에서는 허름한 집 한칸도 200만 위안 넘게 팔려요."]

하지만, 아테네 도심에는 국가 부도 위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듯 빈 건물, 짓다 만 건물이 즐비합니다.

아테네 거리를 걷다 보면 팔거나 세를 주려고 내놨지만 오랫동안 거래가 돼지 않아서 이처럼 흉물이 된 건물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국영철도까지 외국에 넘긴 정부의 자산 매각 바람은 문화 유산으로도 닥칠 기셉니다.

2014년 이후 유적지 일부가 매물로 나올 거라는 보도가 끊이질 않았던 아크로 폴리스.

2018년엔 매각설이 구체화되자 문화부 공무원들이 파업 시위를 벌였고, '아크로 폴리스는 매각 대상이 아니'라는 정부의 공식 발표를 이끌어 냈습니다.

이탈리아의 관광명소 베네치아.

12세기 교황 지시로 지어져 수백 년 간 베네치아인들의 성지로 사랑받아온 산살바도로 성당.

이탈리아 정부가 최근 경매 매물로 내놓은 뒤,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입니다.

최저 입찰가는 370억여 원으로 책정됐는데, 중국계 자본이 호텔로 개조하고 싶다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베네치아 부동산 중개업자 : "지금까지는 중국인들이 주로 상업시설을 샀는데 최근에는 호텔 숙박 시설에 투자도 많이 하고 있어요."]

이런 분위기 속에 베네치아에도 중국인 관광객은 물론, 중국인이 경영하는 음식점이 부쩍 늘었고 기념품 가게까지 베네치아산을 판다고 써붙여야 할 만큼 중국산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베네치아 상인 : "중국인들이 습격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최근, 공공건물 경매를 통해 3년 동안 120억 유로, 약 16조 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로마 근교, 중세에 지어진 치비텔라 체시성.

대문은 잠겨진 지 오래고 잡초만 무성합니다.

[인근 주민 : "우리 어렸을 때 맞아! 맞아! 성 안에서 파티 같은 걸 하곤 했었죠."]

주민들의 추억이 깃든 체시성도 정부의 매각 리스트에 올라 최저 입찰가 4억 4천만 원에 매물로 나왔습니다.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오르시니 오데스칼키성.

웅장함에 구석구석 중세 예술 양식이 녹아있어 은은한 자태까지 뽐냅니다.

최근 이 성도 매각됐다는 보도가 잇따랐지만, 오보였습니다.

[관리사무소 직원 : "(이 성은) 항상 사유지였습니다. 소유자가 바뀐 적이 없습니다. 마리아 빠쉐 여사 소유입니다."]

스타들의 결혼식장으로 유명세를 떨치다보니 뜬소문에 휩싸인 겁니다.

이탈리아 정부가 경매에 붙인 건물은 420여개.

정부 청사도 포함됐습니다.

관공서들이 모여있는 로마 중심가입니다.

제뒤로 보이는 건물은 이탈리아 국방부인데요.

이 국방부가 소유한 부동산 41건도 매물로 나왔습니다.

국적 항공사와 국영통신사도 외국에 팔렸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노숙자는 5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고, 그리스에서는 정부의 긴축재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1분기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각각 182%와 134%.

유럽연합 권고치 60%보다 훨씬 높습니다.

[알렉산드로 페트레토/피렌체대 경영학과 교수 : "(이탈리아) 정부가 최근 몇년 동안 국가 소유 자산을 팔아 줄인 부채비율은 0.1%를 넘지 못합니다."]

과도한 복지와 낮은 노동 생산성, 비대한 공공부문 등 근본적인 원인들이 그대로인 이상 유서 깊은 건물까지 헐값에 팔아야 하는 현실은 예고된 비극이었는지 모릅니다.

아테네, 로마에서 송영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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