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① “이걸 안 쓰면 엄마도 아냐”…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시작

입력 2020.02.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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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신랑이랑 마트에 갔어요. 판매원이 홍보를 엄청 하더라고요. '애경 가습기 제품은요, 아기 엄마들이 먼저 알아요. 친환경 제품이라 아이들 감기도 예방되고 정말 좋습니다.' 딸아이가 감기에 걸린 터라 그 말이 귀에 쏙 들어왔어요. 당시에는 감기 걸리면 무조건 가습기를 쓰라고 병원에서 권했거든요. 판매원이 요즘 이거 안 쓰면 '엄마도 아니다'라고 하더라고요." - 김선미 씨

"첫 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이 되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어요. 병원이 건조해서 가습기를 썼는데 TV 광고를 보니 세균을 잡아준다길래 살균제를 샀죠. 가습기 세기를 강으로 틀어놓으니 물이 빨리 증발하잖아요. 물을 다시 채우면서 살균제를 또 넣고, 또 넣고... 하루 사용량이 많았어요. 아이는 결국 폐가 손상돼 사망했어요." - 윤미애 씨

"제 나이 서른여덟에 하늘이를 낳았어요. 늦은 나이에 낳으니까 굉장히 귀했죠. 남의 집 방 두 칸짜리 작은 집에 살았는데, 방에 곰팡이도 피고 그랬어요. 그래서 청소에 굉장히 신경을 썼어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습기도 사놓고, 옥시 살균제 사서 가습기 돌려놓고... 하늘이 방이 작으니 아이한테 바로 흡입이 됐죠. 아이한테 좋으라고 자는 애 코 밑에 대고 계속 틀어줬어요. 그래서 애가 너무 아팠는데 그 고통을 생각하면..." - 신난희 씨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쓰게 된 계기는 대부분 가족의 건강,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염려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이 가습기 살균제를 쓰게 된 시작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이처럼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9년간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을 담은 기록집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처음으로 발간했습니다. 피해자 12명이 참여한 이 기록집은 개인뿐 아니라 가정을 붕괴시킨 그 일련의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 때문에' '내가 무지해서'...'자책'으로 점철된 9년

부모의 선의는 결국 천식, 폐렴, 기관지염, 신장 질환, 아토피 피부염, 폐암, 간 질환, 폐결핵 등의 질병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아파하는 가족을 보며,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날을 견뎌야 했습니다. 특히, 그들을 괴롭힌 건 '자책'이었습니다.

"저는 건강한 애를 출산한 경험도 있고, 평이한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임신 28주에 밤톨이가 사망하고, 그 이후 낳은 동영이도 생후 4개월에 기형 증상으로 연달아 죽은 거에요. 두 아이를 잃고 상처가 너무 깊으니까 부부 사이가 극으로 치달았어요. 그리고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사회에 알려졌어요. '내가 쓴 건데,,,' 그때부터 조마조마하면서 설마, 설마 했어요. 그게 맞으면 분노를 어디다 휘둘러야 할지 모르겠고... 시간이 많이 흐르고 지금 일상을 살면서 웃고 즐기곤 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뒤통수를 때리듯 '애 둘 잃은 엄마가 잘도 웃는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이닥치죠." - 권민정 씨

"어르신들 보기에 제가 호들갑을 떨어서 아이가 더 많이 아프게 됐다고 생각하신 거에요. 네가 잘못해서 애가 아픈 거다, 그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근데 뭐라고 반박을 못 했어요. '진짜 내가 죄인인가보다', 딸아이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게 드러나자 저 스스로도 용서가 안 되는 거에요. '정말 나 때문에 아팠구나, 내가 무지해서, 내 새끼가 아팠구나..." -김선미 씨

"결혼 무렵 증상이 심해졌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뛰지도 못하고, 친정엄마는 제 기관지가 약한 줄 알고 보약을 해주셨어요. 저랑 엄마는 시댁 식구들한테 항상 죄인이었죠. 내가 약해서... 또, 약한 딸을 시집보내서..." -김미선 씨

 지난해 8월 열린 2019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방청을 온 가습기 피해 어린이가 부모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지난해 8월 열린 2019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방청을 온 가습기 피해 어린이가 부모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지난 9년간 피해자들의 삶은 '자책'으로 쌓였습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는 피해자들의 상태를 '울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지난 2018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정 실태조사'연구를 보면, 가습기 살균자 피해자들의 중증도 이상의 울분은 일반인보다 2.2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약 66%의 성인 피해자가 만성적 울분 상태를 보였습니다. 10명 중 7명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수준의 울분 속에 놓여있는 겁니다.

유 교수는 "울분은 정신적인 위험, 정신적인 불건강의 굉장히 중요한 신호"이라며 "높은 울분이 자살 시도, 자살 생각, 우울감, 낮은 삶의 질에 통계적으로 굉장히 유의한 영향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죄책감과 자책이 이들의 울분을 더욱 키웠다고 지적합니다. 유 교수는 "사회적 주목을 받은 게 2011년부터고 일이 벌어진 건 더 오래됐다"며 "해결의 기미가 보일 때 사람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데 피해는 현재진행형이고, 누적되고 있고, 해결은 지연되니 희망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지난 2011년 정부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가능성을 언급하며 세상에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지난 9년간 피해 신고자는 6,684명, 이 중 1,517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이 기록집에 담긴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곁에서일어나고있는일] 2편에서는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건 발발 이후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야 했는지 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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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① “이걸 안 쓰면 엄마도 아냐”…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시작
    • 입력 2020-02-09 08:00:29
    취재K
"2008년 신랑이랑 마트에 갔어요. 판매원이 홍보를 엄청 하더라고요. '애경 가습기 제품은요, 아기 엄마들이 먼저 알아요. 친환경 제품이라 아이들 감기도 예방되고 정말 좋습니다.' 딸아이가 감기에 걸린 터라 그 말이 귀에 쏙 들어왔어요. 당시에는 감기 걸리면 무조건 가습기를 쓰라고 병원에서 권했거든요. 판매원이 요즘 이거 안 쓰면 '엄마도 아니다'라고 하더라고요." - 김선미 씨

"첫 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이 되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어요. 병원이 건조해서 가습기를 썼는데 TV 광고를 보니 세균을 잡아준다길래 살균제를 샀죠. 가습기 세기를 강으로 틀어놓으니 물이 빨리 증발하잖아요. 물을 다시 채우면서 살균제를 또 넣고, 또 넣고... 하루 사용량이 많았어요. 아이는 결국 폐가 손상돼 사망했어요." - 윤미애 씨

"제 나이 서른여덟에 하늘이를 낳았어요. 늦은 나이에 낳으니까 굉장히 귀했죠. 남의 집 방 두 칸짜리 작은 집에 살았는데, 방에 곰팡이도 피고 그랬어요. 그래서 청소에 굉장히 신경을 썼어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습기도 사놓고, 옥시 살균제 사서 가습기 돌려놓고... 하늘이 방이 작으니 아이한테 바로 흡입이 됐죠. 아이한테 좋으라고 자는 애 코 밑에 대고 계속 틀어줬어요. 그래서 애가 너무 아팠는데 그 고통을 생각하면..." - 신난희 씨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쓰게 된 계기는 대부분 가족의 건강,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염려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이 가습기 살균제를 쓰게 된 시작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이처럼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9년간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을 담은 기록집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처음으로 발간했습니다. 피해자 12명이 참여한 이 기록집은 개인뿐 아니라 가정을 붕괴시킨 그 일련의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 때문에' '내가 무지해서'...'자책'으로 점철된 9년

부모의 선의는 결국 천식, 폐렴, 기관지염, 신장 질환, 아토피 피부염, 폐암, 간 질환, 폐결핵 등의 질병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아파하는 가족을 보며,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날을 견뎌야 했습니다. 특히, 그들을 괴롭힌 건 '자책'이었습니다.

"저는 건강한 애를 출산한 경험도 있고, 평이한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임신 28주에 밤톨이가 사망하고, 그 이후 낳은 동영이도 생후 4개월에 기형 증상으로 연달아 죽은 거에요. 두 아이를 잃고 상처가 너무 깊으니까 부부 사이가 극으로 치달았어요. 그리고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사회에 알려졌어요. '내가 쓴 건데,,,' 그때부터 조마조마하면서 설마, 설마 했어요. 그게 맞으면 분노를 어디다 휘둘러야 할지 모르겠고... 시간이 많이 흐르고 지금 일상을 살면서 웃고 즐기곤 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뒤통수를 때리듯 '애 둘 잃은 엄마가 잘도 웃는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이닥치죠." - 권민정 씨

"어르신들 보기에 제가 호들갑을 떨어서 아이가 더 많이 아프게 됐다고 생각하신 거에요. 네가 잘못해서 애가 아픈 거다, 그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근데 뭐라고 반박을 못 했어요. '진짜 내가 죄인인가보다', 딸아이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게 드러나자 저 스스로도 용서가 안 되는 거에요. '정말 나 때문에 아팠구나, 내가 무지해서, 내 새끼가 아팠구나..." -김선미 씨

"결혼 무렵 증상이 심해졌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뛰지도 못하고, 친정엄마는 제 기관지가 약한 줄 알고 보약을 해주셨어요. 저랑 엄마는 시댁 식구들한테 항상 죄인이었죠. 내가 약해서... 또, 약한 딸을 시집보내서..." -김미선 씨

 지난해 8월 열린 2019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방청을 온 가습기 피해 어린이가 부모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지난 9년간 피해자들의 삶은 '자책'으로 쌓였습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는 피해자들의 상태를 '울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지난 2018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정 실태조사'연구를 보면, 가습기 살균자 피해자들의 중증도 이상의 울분은 일반인보다 2.2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약 66%의 성인 피해자가 만성적 울분 상태를 보였습니다. 10명 중 7명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수준의 울분 속에 놓여있는 겁니다.

유 교수는 "울분은 정신적인 위험, 정신적인 불건강의 굉장히 중요한 신호"이라며 "높은 울분이 자살 시도, 자살 생각, 우울감, 낮은 삶의 질에 통계적으로 굉장히 유의한 영향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죄책감과 자책이 이들의 울분을 더욱 키웠다고 지적합니다. 유 교수는 "사회적 주목을 받은 게 2011년부터고 일이 벌어진 건 더 오래됐다"며 "해결의 기미가 보일 때 사람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데 피해는 현재진행형이고, 누적되고 있고, 해결은 지연되니 희망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지난 2011년 정부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가능성을 언급하며 세상에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지난 9년간 피해 신고자는 6,684명, 이 중 1,517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이 기록집에 담긴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곁에서일어나고있는일] 2편에서는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건 발발 이후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야 했는지 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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