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눈Noon] ‘만삭의 위안부’ 영상 첫 발굴

입력 2020.06.01 (12:18) 수정 2020.06.0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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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요즘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겪으면서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가 송두리째 왜곡되는 게 아닌가, 우려가 큰데요.

KBS가 위안부 역사의 실체를 보여주는 대단히 의미있는 영상을 직접 발굴해 보도했습니다.

그 유명한 '만삭의 위안부' 사진의 주인공들이 구출되는 영상입니다.

오늘 기자의 눈에선 이 영상의 발굴 과정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김경진 기자 나와있습니다.

대단히 희귀한 영상을 발굴해서 보도를 했는데 우선 시청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격려들이 많았죠?

[기자]

격려가 아주 많았고 특히 그 영상 자체가 충격적이다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정의기억연대 사태 때문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정말 이렇다 저렇다 말들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이 영상을 딱 보는 순간 이 사태의 본질을 보는 것 같다고 격려해 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앵커]

이미 보신 분들이 많겠지만 일단 이번에 발굴된 영상을 다시 한번 보죠.

김 기자가 영상을 보면서 설명해 주세요.

[기자]

'만삭의 위안부' 사진이 상당히 유명하지 않습니까?

1980년대 이후에 미군이 공개해서 이미 알려졌던 사진인데, 그 사진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이번에 저희가 발굴한 영상에 나옵니다.

4분의 사진 속 인물이 거의 일치하는 걸 보실 수 있고요.

심지어 중국군까지도 같은 사람이라는 걸 저희가 확인했습니다.

보는 순간 사실 알 수가 있는데요.

그러니까 그동안 사진으로 멈춰있던 저분들의 상황, 분위기, 탈출 과정을 저희가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던 영상이라고 할 수 있고요.

특히 주목할 분이 바로 가장 끝에 있는 박영심 할머니. 저분이 바로 만삭의 위안부 사진의 주인공이세요.

1921년생이신데 17살 때 일본에서 잡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갔다가 위안부로 끌려가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저 사진이 찍힐 당시는 22살이었고요.

영상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는 모습인데, 입 모양을 봐도 만세라고 하고 계시고 배가 지금 정면에서 보여서 그러는데 여전히 만삭인 상태, 그러니까 사진이 찍혔던 시기와 굉장히 비슷한 시기라고 볼 수 있는 분이에요.

처음으로 공개된 박영심 할머니 영상이고요.

소리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입 모양을 보고 알 수 있고 할머니는 2000년도에 저 영상, 사진 속에 모습이 바로 나다라고 말씀하셨고. 그 이후에 일본군 위안부 실태를 알리는데 앞장 서시다가 2006년도에 북한에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할머니 이외에도 또 다른, 할머니 뒤에 보이는 여성분들, 다른 위안부들도 나오는데 당시 역사 기록에 따르면 쑹산에 위안부가 총 24명이 있었고 그중에 전쟁을 겪으며 10분이 생존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대부분이 조선인으로 추정이 되는데 그분들의 모습이고 굉장히 보면 지쳐 있고 또 많이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느껴지고 다친 모습도 있고요,

전쟁을 겪으면서. 저희가 모자이크를 하지 않으면 방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심하게 다친 분도 있었는데, 저분들이 전쟁을 겪을 때 일본에서는 일본군들이 막판에 패색이 짙어지니까 자결을 요구했다고 해요.

그래서 목숨을 건 탈출을 했고, 그러다가 미국과 중국 연합군을 맞닥뜨렸을 때의 그 당혹감, 이런 것이 저 영상 속에 굉장히 생생하게 잘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앵커]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구출이 되는 영상입니다.

그런데 만삭의 위안부 사진이 있잖아요.

유명한 사진인데 그 사진하고 영상하고 거의 비슷한 걸 보면 비슷한 시기에, 같은 시기에 찍힌 것 같아요.

가장 궁금한 게 이겁니다.

이 영상은 어디에서 어떻게 발견한 겁니까?

[기자]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저희 KBS '다큐 인사이트'라는 팀이 있는데요.

조금 있으면 6월 25일, 6.25가 한국 전쟁 70주년이거든요.

그래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미국의 NARA라는 곳이 있습니다.

국립기록관리청인데 이곳에 가서 자료를 수집한 겁니다.

그냥 무작정 '한국, 코리아, 코리안', 그리고 '한국 전쟁, 코리안 워', 그리고 '조선', 이런 키워드를 입력해서 나오는 모든 자료를 일단 다 가지고 한국으로 온 거예요.

그 자료가, 파일이 9천 개가 넘고요.

시간으로는 만5천 시간 분량이라고 합니다.

이걸 가지고 와서 찬찬히 보고 있는데 시기로 치면 파일명이 1947년부터의 군사 활동이라고 돼있는 건데, 여기 보니까 여성이 등장하는 겁니다.

그리고 얼핏 보니까 위안부 같은데 파일명하고 좀 다르잖아요.

해방 이후의 영상이라는 거니까.

이상하다 싶어서 다큐팀에서 저희 KBS 취재진에게 이 영상을 넘겼습니다.

그래서 취재를 통해서 고증과 확인 작업을 해달라. 이 영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해서 저희 취재진이 국내의 최고 권위 있는 연구자들과 함께 고증 작업, 취재 과정을 거쳐서 저희가 보도를 하게 된 겁니다.

[앵커]

그렇게 검증을 해보니까 이 영상이 누가, 언제, 어디서 찍은 건지 확인이 되던가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일단 1994년 9월 7일에 촬영된 걸로 보이고 장소는 중국 윈난성 쑹산입니다.

미군의 기록에도 다 나와 있는 부분이어서 확인이 된 건데요.

미국의 통신병이었던 에드워드 페이 병장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그 근거가 지금 보시는 바로 저 영상 때문입니다.

저게 2017년에 서울대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조선인 위안부 영상을 발굴했다 해서 공개한 건데, 저 영상을 촬영한 게 에드워드 페이 병장이었거든요.

그런데 보시면 촬영된 인물들, 상황, 분위기가 전부 일치하기 때문에 아, 이번에 공개된 영상도 에드워드 페이가 촬영한 게 아니냐, 이렇게 합리적인 추론을 해볼 수 있는 부분인 겁니다.

[앵커]

그러니까 영상이 같은 시기에 찍혔고 이게 좀 나눠져 있었던 거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는 게 그렇다면 이 영상 속에 나와 있는 여성들이 '위안부'다 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는 겁니까?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요?

[기자]

저희가 일단 국내 최고 권위의 연구팀 세 팀과 함께 작업을 했고요.

특히 2017년 최초의 영상을 발굴했던 서울대 연구팀이 함께 참여를 해서 일단 사진의 정확한 대조 작업, 외모나 만삭의 상태, 그리고 배경 등을 전부 다 대조를 했고요.

그리고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술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도 확인을 했는데, 지형이나 이런 부분들이 거의 일치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일이 아까 보신 것처럼 연속적인 흐름, 그리고 이 파일에 기록된 내용들을 보면 저희가 이게 위안부는 확실하다고 이야기를 했고, 파일 제목이 1947년부터라고 돼있었잖아요.

그런데 그게 오류다. 그래서 이 위안부 1944년 영상이 다른 영상에 잘못 끼워 들어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앵커]

그런 역사적 근거들이 전부 확인이 됐다면 당연히 사료적 가치가 굉장히 높다, 이렇게 볼 수 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실제 위안부 사진이나 문서는 많은데 영상이 정말 희귀해요.

그래서 2017년에 발견된 게 첫 번째,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거고 이번에 KBS가 발굴한 게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발견한 거니까 그동안 얼마나 영상이 없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인데요.

사실 일본은 늘 학계에서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거다라고 주장을 하잖아요.

그런데 사진만 봐서는 그런 분위기나 이런 걸 알 수가 없는데 영상을 보면 그 두려움, 할머니들의 반응이 굉장히 생생하게 드러나있기 때문에 일본의 학계를 반박한 데 굉장히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앵커]

일본은 계속 부인하고 있습니다만, 그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영상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학계에서도 당연히 관심이 높겠네요.

학계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기자]

일단 이게 2017년에 발견된 영상보다 더 생생하고 길이도 훨씬 더 길다는 사실에 굉장히 고무적이고. 저는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의 첫 반응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보자마자 눈물을 쏟으시더라고요.

평생을 기다려 왔고, 평생을 찾아왔던 그 영상을 딱 눈으로 보는 순간에 감격이 느껴졌었고 저희가 정식으로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계속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리고 그 서울대 연구팀, 2017년에 처음으로 발굴했던 서울대 연구팀에 속해있었던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도 보자마자 '연구자들이 하기 힘든 일을 해냈다.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큰 역할을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그 밖의 다른 여러 학자들이 사실 그 정의기억연대 사태가 터지고 나서 굉장히 상심들을 많이 하고 희망을 이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 영상을 보는 순간 이제 우리가 가야 할 빛을 찾은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런 영상이 왜 지금에서야 나왔는지, 지금까지 왜 이런 영상이 세상에 나오지 않고 숨어 있었는지. 그것도 참 안타깝습니다.

발굴한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어려운 겁니까?

[기자]

저희가 사실 이번에 발굴을 했지만 저희도 모래알 속에서 우연히 바늘을 찾은 격이라고 저희가 스스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찾기가 어려워요.

NARA와 같은 경우도 직접 미국에 가야 하고 일단, 가서도 인제스트가 돼있는, 그러니까 파일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이 돼 있는 게 많지가 않습니다.

필름은 얼마나 더 많은 자료가 있는지 알 수가 없고, 그리고 인제스트가 된다 하더라도 저희가 인덱스라고 하는데 그 분류나 제목이나 내용의 개입이 굉장히 엉망이에요.

사실 이번에 저희가 발굴한 영상도 1947년이라고 돼있고, 그리고 위안부라는 내용이 전혀 없었는데 찾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아계신 분이 17분밖에 안 계시고 위안부역사연구 같은 경우는 할머니들의 증언 뿐만 아니라 사진, 문서, 그리고 저희가 이번에 발굴한 동영상, 이런 것들의 조각조각이 합쳐져서 하나가 완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연구가 지속적으로 될 필요가 있는데 한 가지 맹점이 2015년에 위안부 합의가 있었잖아요,

한일 간의. 그때 이후에 정부의 지원이 정말 확 줄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사실상 중단되다시피 하다가 이번에 저희가 이걸 찾은 것이고요.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학계에서도 더 활발한 연구, 그리고 정부의 지원,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취재였습니다.

[앵커]

우리 학계나 정부가 좀 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요즘 정의연 사태가 있다고 해서 위안부의 역사, 또 위안부 운동의 의미가 퇴색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김경진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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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눈Noon] ‘만삭의 위안부’ 영상 첫 발굴
    • 입력 2020-06-01 12:23:42
    • 수정2020-06-02 17:48:23
    뉴스 12
[앵커]

요즘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겪으면서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가 송두리째 왜곡되는 게 아닌가, 우려가 큰데요.

KBS가 위안부 역사의 실체를 보여주는 대단히 의미있는 영상을 직접 발굴해 보도했습니다.

그 유명한 '만삭의 위안부' 사진의 주인공들이 구출되는 영상입니다.

오늘 기자의 눈에선 이 영상의 발굴 과정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김경진 기자 나와있습니다.

대단히 희귀한 영상을 발굴해서 보도를 했는데 우선 시청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격려들이 많았죠?

[기자]

격려가 아주 많았고 특히 그 영상 자체가 충격적이다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정의기억연대 사태 때문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정말 이렇다 저렇다 말들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이 영상을 딱 보는 순간 이 사태의 본질을 보는 것 같다고 격려해 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앵커]

이미 보신 분들이 많겠지만 일단 이번에 발굴된 영상을 다시 한번 보죠.

김 기자가 영상을 보면서 설명해 주세요.

[기자]

'만삭의 위안부' 사진이 상당히 유명하지 않습니까?

1980년대 이후에 미군이 공개해서 이미 알려졌던 사진인데, 그 사진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이번에 저희가 발굴한 영상에 나옵니다.

4분의 사진 속 인물이 거의 일치하는 걸 보실 수 있고요.

심지어 중국군까지도 같은 사람이라는 걸 저희가 확인했습니다.

보는 순간 사실 알 수가 있는데요.

그러니까 그동안 사진으로 멈춰있던 저분들의 상황, 분위기, 탈출 과정을 저희가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던 영상이라고 할 수 있고요.

특히 주목할 분이 바로 가장 끝에 있는 박영심 할머니. 저분이 바로 만삭의 위안부 사진의 주인공이세요.

1921년생이신데 17살 때 일본에서 잡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갔다가 위안부로 끌려가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저 사진이 찍힐 당시는 22살이었고요.

영상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는 모습인데, 입 모양을 봐도 만세라고 하고 계시고 배가 지금 정면에서 보여서 그러는데 여전히 만삭인 상태, 그러니까 사진이 찍혔던 시기와 굉장히 비슷한 시기라고 볼 수 있는 분이에요.

처음으로 공개된 박영심 할머니 영상이고요.

소리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입 모양을 보고 알 수 있고 할머니는 2000년도에 저 영상, 사진 속에 모습이 바로 나다라고 말씀하셨고. 그 이후에 일본군 위안부 실태를 알리는데 앞장 서시다가 2006년도에 북한에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할머니 이외에도 또 다른, 할머니 뒤에 보이는 여성분들, 다른 위안부들도 나오는데 당시 역사 기록에 따르면 쑹산에 위안부가 총 24명이 있었고 그중에 전쟁을 겪으며 10분이 생존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대부분이 조선인으로 추정이 되는데 그분들의 모습이고 굉장히 보면 지쳐 있고 또 많이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느껴지고 다친 모습도 있고요,

전쟁을 겪으면서. 저희가 모자이크를 하지 않으면 방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심하게 다친 분도 있었는데, 저분들이 전쟁을 겪을 때 일본에서는 일본군들이 막판에 패색이 짙어지니까 자결을 요구했다고 해요.

그래서 목숨을 건 탈출을 했고, 그러다가 미국과 중국 연합군을 맞닥뜨렸을 때의 그 당혹감, 이런 것이 저 영상 속에 굉장히 생생하게 잘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앵커]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구출이 되는 영상입니다.

그런데 만삭의 위안부 사진이 있잖아요.

유명한 사진인데 그 사진하고 영상하고 거의 비슷한 걸 보면 비슷한 시기에, 같은 시기에 찍힌 것 같아요.

가장 궁금한 게 이겁니다.

이 영상은 어디에서 어떻게 발견한 겁니까?

[기자]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저희 KBS '다큐 인사이트'라는 팀이 있는데요.

조금 있으면 6월 25일, 6.25가 한국 전쟁 70주년이거든요.

그래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미국의 NARA라는 곳이 있습니다.

국립기록관리청인데 이곳에 가서 자료를 수집한 겁니다.

그냥 무작정 '한국, 코리아, 코리안', 그리고 '한국 전쟁, 코리안 워', 그리고 '조선', 이런 키워드를 입력해서 나오는 모든 자료를 일단 다 가지고 한국으로 온 거예요.

그 자료가, 파일이 9천 개가 넘고요.

시간으로는 만5천 시간 분량이라고 합니다.

이걸 가지고 와서 찬찬히 보고 있는데 시기로 치면 파일명이 1947년부터의 군사 활동이라고 돼있는 건데, 여기 보니까 여성이 등장하는 겁니다.

그리고 얼핏 보니까 위안부 같은데 파일명하고 좀 다르잖아요.

해방 이후의 영상이라는 거니까.

이상하다 싶어서 다큐팀에서 저희 KBS 취재진에게 이 영상을 넘겼습니다.

그래서 취재를 통해서 고증과 확인 작업을 해달라. 이 영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해서 저희 취재진이 국내의 최고 권위 있는 연구자들과 함께 고증 작업, 취재 과정을 거쳐서 저희가 보도를 하게 된 겁니다.

[앵커]

그렇게 검증을 해보니까 이 영상이 누가, 언제, 어디서 찍은 건지 확인이 되던가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일단 1994년 9월 7일에 촬영된 걸로 보이고 장소는 중국 윈난성 쑹산입니다.

미군의 기록에도 다 나와 있는 부분이어서 확인이 된 건데요.

미국의 통신병이었던 에드워드 페이 병장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그 근거가 지금 보시는 바로 저 영상 때문입니다.

저게 2017년에 서울대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조선인 위안부 영상을 발굴했다 해서 공개한 건데, 저 영상을 촬영한 게 에드워드 페이 병장이었거든요.

그런데 보시면 촬영된 인물들, 상황, 분위기가 전부 일치하기 때문에 아, 이번에 공개된 영상도 에드워드 페이가 촬영한 게 아니냐, 이렇게 합리적인 추론을 해볼 수 있는 부분인 겁니다.

[앵커]

그러니까 영상이 같은 시기에 찍혔고 이게 좀 나눠져 있었던 거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는 게 그렇다면 이 영상 속에 나와 있는 여성들이 '위안부'다 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는 겁니까?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요?

[기자]

저희가 일단 국내 최고 권위의 연구팀 세 팀과 함께 작업을 했고요.

특히 2017년 최초의 영상을 발굴했던 서울대 연구팀이 함께 참여를 해서 일단 사진의 정확한 대조 작업, 외모나 만삭의 상태, 그리고 배경 등을 전부 다 대조를 했고요.

그리고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술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도 확인을 했는데, 지형이나 이런 부분들이 거의 일치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일이 아까 보신 것처럼 연속적인 흐름, 그리고 이 파일에 기록된 내용들을 보면 저희가 이게 위안부는 확실하다고 이야기를 했고, 파일 제목이 1947년부터라고 돼있었잖아요.

그런데 그게 오류다. 그래서 이 위안부 1944년 영상이 다른 영상에 잘못 끼워 들어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앵커]

그런 역사적 근거들이 전부 확인이 됐다면 당연히 사료적 가치가 굉장히 높다, 이렇게 볼 수 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실제 위안부 사진이나 문서는 많은데 영상이 정말 희귀해요.

그래서 2017년에 발견된 게 첫 번째,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거고 이번에 KBS가 발굴한 게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발견한 거니까 그동안 얼마나 영상이 없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인데요.

사실 일본은 늘 학계에서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거다라고 주장을 하잖아요.

그런데 사진만 봐서는 그런 분위기나 이런 걸 알 수가 없는데 영상을 보면 그 두려움, 할머니들의 반응이 굉장히 생생하게 드러나있기 때문에 일본의 학계를 반박한 데 굉장히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앵커]

일본은 계속 부인하고 있습니다만, 그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영상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학계에서도 당연히 관심이 높겠네요.

학계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기자]

일단 이게 2017년에 발견된 영상보다 더 생생하고 길이도 훨씬 더 길다는 사실에 굉장히 고무적이고. 저는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의 첫 반응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보자마자 눈물을 쏟으시더라고요.

평생을 기다려 왔고, 평생을 찾아왔던 그 영상을 딱 눈으로 보는 순간에 감격이 느껴졌었고 저희가 정식으로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계속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리고 그 서울대 연구팀, 2017년에 처음으로 발굴했던 서울대 연구팀에 속해있었던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도 보자마자 '연구자들이 하기 힘든 일을 해냈다.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큰 역할을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그 밖의 다른 여러 학자들이 사실 그 정의기억연대 사태가 터지고 나서 굉장히 상심들을 많이 하고 희망을 이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 영상을 보는 순간 이제 우리가 가야 할 빛을 찾은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런 영상이 왜 지금에서야 나왔는지, 지금까지 왜 이런 영상이 세상에 나오지 않고 숨어 있었는지. 그것도 참 안타깝습니다.

발굴한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어려운 겁니까?

[기자]

저희가 사실 이번에 발굴을 했지만 저희도 모래알 속에서 우연히 바늘을 찾은 격이라고 저희가 스스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찾기가 어려워요.

NARA와 같은 경우도 직접 미국에 가야 하고 일단, 가서도 인제스트가 돼있는, 그러니까 파일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이 돼 있는 게 많지가 않습니다.

필름은 얼마나 더 많은 자료가 있는지 알 수가 없고, 그리고 인제스트가 된다 하더라도 저희가 인덱스라고 하는데 그 분류나 제목이나 내용의 개입이 굉장히 엉망이에요.

사실 이번에 저희가 발굴한 영상도 1947년이라고 돼있고, 그리고 위안부라는 내용이 전혀 없었는데 찾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아계신 분이 17분밖에 안 계시고 위안부역사연구 같은 경우는 할머니들의 증언 뿐만 아니라 사진, 문서, 그리고 저희가 이번에 발굴한 동영상, 이런 것들의 조각조각이 합쳐져서 하나가 완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연구가 지속적으로 될 필요가 있는데 한 가지 맹점이 2015년에 위안부 합의가 있었잖아요,

한일 간의. 그때 이후에 정부의 지원이 정말 확 줄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사실상 중단되다시피 하다가 이번에 저희가 이걸 찾은 것이고요.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학계에서도 더 활발한 연구, 그리고 정부의 지원,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취재였습니다.

[앵커]

우리 학계나 정부가 좀 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요즘 정의연 사태가 있다고 해서 위안부의 역사, 또 위안부 운동의 의미가 퇴색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김경진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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