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실향 아픔을 영화로…단절된 세대 연결

입력 2020.07.18 (08:18) 수정 2020.07.1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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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70년이 되면서 가족과 생이별을 한 1세대 실향민은 대부분 세상을 뜨고 이제 남은 분도 백여 명 정도라고 합니다.

통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를 1년처럼 보내는 실향민들은 더 늦기 전에 고향 땅을 밟는 게 소원일 텐데요.

‘분단과 경계’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던 한 영화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이자 실향민 1세대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영화는 실향민 1세대의 애환과 동시에 실향민 2세대와 3세대의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고 하는데, 채유나 리포터가 소개합니다.

북한의 천연기념물 금송을 마지막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리포트]

영화는 만남의 통로이자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는 바다에서 시작됩니다.

["아버지의 고향은 함경남도 단천군 여해진. 바닷가 마을이다. 한국전쟁 이후 아버지는 바다의 도시 부산에 살고 계신다."]

["내가 인민군에 안 가고 18살에 한국군에 입대했다고 피란 나온 게 아니고 현지 입대해서 나왔다 아니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아버지가 간직하고 있는 긴 아픔의 시간을 우리는 잘 모른다."]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온 시간을 마치 어제 일처럼 되뇌입니다.

지치지도 않고 반복되는 아버지의 고향 타령.

가족들은 이런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원망하는 모습입니다.

[김기형/감독의 친오빠/실향민 2세/부산 거주 : "좋은 모습은 나는 어릴 때 기억이 별로 없지 왜?"]

["다 산다고 힘들어서 트러블 있는 모습만 보고 컸으니까."]

가장 가까운 가족들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리움.

카메라를 든 감독은 실향민뿐 아니라 2세대, 3세대까지 사로잡고 있는 분단 후유증을 담담한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지극히 사적이고,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한반도의 분단 트라우마.

외면하거나 무관심해 보이는 2, 3세대 역시 자유롭지 않습니다.

[김기형/감독의 친오빠/실향민 2세/부산 거주 : "(우리들(이산가족)만의 문제로 치부되었고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였다는 거지?) 우리는 몰랐던 문제지. 알고 싶지도 않았던 문제고 이제 알게 된 거야. 내가 태어나서 살 때는 그 전쟁에 대한 아픔 이산에 대한 아픔보다는 삶에 대한 고통이 더 많았던 거지."]

[김태균/감독의 친조카/실향민 3세/부산 거주 : "외상 후 스트레스, 이런 것도 있듯이 전쟁을 경험했다는 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실향민들이 겪은 그리움의 시간을 다큐멘터리 속에 녹여낸 영화 ‘바다로 가자’ 새로운 접근법과 솔직담백한 인터뷰들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지 모습이 떠오릅니다."]

["통일이 왜 되어야 하고 이산의 문제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걸 좀 공감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실향민들의 슬픔과 애환이 서려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진 부산 영도다리.

김량 감독이 만남의 장소로 꼽은 곳이기도 합니다.

[김량/영화감독 : "(제가 부산 영도는 처음 오거든요. 이곳은 어떤 다리예요?) 실향민들의 만남의 다리였었어요. (영도다리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여기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었어요. 요즘 열쇠 붙이고 그런 것처럼 그때도 헝겊으로 붙여놓고 이름 적어놓고. 다리를 에워쌀 정도로 많은 피란민이 여기서 가족들을 찾기 위해서…."]

영도다리 아래로 내려가면 실향민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또 하나의 장소가 있습니다.

[김량/영화감독 : "그때 당시 부산 시민의 인구가 거의 38만 명 정도 됐는데 87만 명, 90만 명 정도의 피란민들이 왔었어요. 그중에서도 이북에서 오신 분들이 거의 3분의 2. 틈만 나면 영도다리에 오셨는데 못 만나신 분들은 가슴이 답답하고 하다 보니까 여기 처음에 한두 군데 있던 점집들이 성행하게 된 거죠. 하소연하셨던 곳들이라고 보시면 돼요. 일종의 심리상담소."]

김 감독은 철원과 아르메니아 등 분단과 분쟁에 놓여진 사람들을 다큐멘터리로 그려왔습니다.

이번 영화 제작을 위해 서울과 부산 등 전국각지를 돌며 3년간이나 자료를 수집해왔다는데요.

북에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직접 찾아 나선 실향민의 생생한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김송순/실향민 1세/서울 거주 : "(처음에 브로커를 통해서 동생의 생사를 알게 됐잖아요. 그때가 언제며, 그때 심정이 어떠했는지?) 그때 심정 뭐로 말할까 표현을 하기 참 기가 막히잖아. 그리고 자꾸 눈물이 났지. 그런데 걔가 사진 속에다가 내가 (이북에) 있을 때 지가 자전거 타고 찍은 사진이 있었어 5살 때인가 그걸 넣어서 보냈더라고."]

이곳은 실향민들의 제2의 고향 영도 해돋이 마을이 보이는 곳입니다.

김량 감독은 아버지가 살아생전 그리워했던 고향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내기 위해 또 다른 영화 제작에 나선다고 하는데요.

이번엔 실향민 2세를 주제로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김량/영화감독 : "처음에는 여기 일대가 다 피란민 수용소였죠. 예전엔 수용소였지만 해돋이 마을로 이름을 바꿨어요. 좀 더 긍정적인 이름으로."]

맑은 날 해돋이 마을 정상에선 항구와 도심 등 부산의 전경이 훤히 보인다는데요.

[김량/영화감독 : "아버지 고향이 항구거든요. 단천이라고 해서항구와 항구끼리 이어주는 그런 컨셉을 계속 찾고 있습니다. 다음 작품엔 항구를 배경으로 해서 여기 역사를 좀 더 잘 보여주는 공간으로 표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산 도심에 위치한 김량 감독의 작업실을 찾아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남북정상회담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에 부풀었던 실향민 아버지는 결국, 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끝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놓지 않았던 아버지를 위해 대신 고향 땅을 밟는 꿈을 꾸고 있다는데요.

[김량/영화감독 : "아버지가 잃어버린 가족들에 대해 역추적을 하면서 (아버지) 고향에 가서 산천도 찍고 아버지가 뛰어놀던 해변도 찍고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이 벅찼던 김량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이해와 원망 사이에서 혼란의 시간을 보내는 세대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김량/영화감독 : "(제작을 위해서) 여러 세대를 만나요. 무관심한 세대들이 대부분이죠. 우리 분단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좀 더 가깝고 좀 더 친밀하게…."]

실향민 본인뿐 아니라 2세대, 3세대에게도 자리 잡은 분단 트라우마.

따뜻하고 색다른 시선으로 분단 트라우마를 담아내는 김 감독의 시도는 계속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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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실향 아픔을 영화로…단절된 세대 연결
    • 입력 2020-07-18 08:49:35
    • 수정2020-07-18 16: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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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70년이 되면서 가족과 생이별을 한 1세대 실향민은 대부분 세상을 뜨고 이제 남은 분도 백여 명 정도라고 합니다.

통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를 1년처럼 보내는 실향민들은 더 늦기 전에 고향 땅을 밟는 게 소원일 텐데요.

‘분단과 경계’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던 한 영화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이자 실향민 1세대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영화는 실향민 1세대의 애환과 동시에 실향민 2세대와 3세대의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고 하는데, 채유나 리포터가 소개합니다.

북한의 천연기념물 금송을 마지막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리포트]

영화는 만남의 통로이자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는 바다에서 시작됩니다.

["아버지의 고향은 함경남도 단천군 여해진. 바닷가 마을이다. 한국전쟁 이후 아버지는 바다의 도시 부산에 살고 계신다."]

["내가 인민군에 안 가고 18살에 한국군에 입대했다고 피란 나온 게 아니고 현지 입대해서 나왔다 아니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아버지가 간직하고 있는 긴 아픔의 시간을 우리는 잘 모른다."]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온 시간을 마치 어제 일처럼 되뇌입니다.

지치지도 않고 반복되는 아버지의 고향 타령.

가족들은 이런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원망하는 모습입니다.

[김기형/감독의 친오빠/실향민 2세/부산 거주 : "좋은 모습은 나는 어릴 때 기억이 별로 없지 왜?"]

["다 산다고 힘들어서 트러블 있는 모습만 보고 컸으니까."]

가장 가까운 가족들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리움.

카메라를 든 감독은 실향민뿐 아니라 2세대, 3세대까지 사로잡고 있는 분단 후유증을 담담한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지극히 사적이고,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한반도의 분단 트라우마.

외면하거나 무관심해 보이는 2, 3세대 역시 자유롭지 않습니다.

[김기형/감독의 친오빠/실향민 2세/부산 거주 : "(우리들(이산가족)만의 문제로 치부되었고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였다는 거지?) 우리는 몰랐던 문제지. 알고 싶지도 않았던 문제고 이제 알게 된 거야. 내가 태어나서 살 때는 그 전쟁에 대한 아픔 이산에 대한 아픔보다는 삶에 대한 고통이 더 많았던 거지."]

[김태균/감독의 친조카/실향민 3세/부산 거주 : "외상 후 스트레스, 이런 것도 있듯이 전쟁을 경험했다는 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실향민들이 겪은 그리움의 시간을 다큐멘터리 속에 녹여낸 영화 ‘바다로 가자’ 새로운 접근법과 솔직담백한 인터뷰들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지 모습이 떠오릅니다."]

["통일이 왜 되어야 하고 이산의 문제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걸 좀 공감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실향민들의 슬픔과 애환이 서려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진 부산 영도다리.

김량 감독이 만남의 장소로 꼽은 곳이기도 합니다.

[김량/영화감독 : "(제가 부산 영도는 처음 오거든요. 이곳은 어떤 다리예요?) 실향민들의 만남의 다리였었어요. (영도다리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여기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었어요. 요즘 열쇠 붙이고 그런 것처럼 그때도 헝겊으로 붙여놓고 이름 적어놓고. 다리를 에워쌀 정도로 많은 피란민이 여기서 가족들을 찾기 위해서…."]

영도다리 아래로 내려가면 실향민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또 하나의 장소가 있습니다.

[김량/영화감독 : "그때 당시 부산 시민의 인구가 거의 38만 명 정도 됐는데 87만 명, 90만 명 정도의 피란민들이 왔었어요. 그중에서도 이북에서 오신 분들이 거의 3분의 2. 틈만 나면 영도다리에 오셨는데 못 만나신 분들은 가슴이 답답하고 하다 보니까 여기 처음에 한두 군데 있던 점집들이 성행하게 된 거죠. 하소연하셨던 곳들이라고 보시면 돼요. 일종의 심리상담소."]

김 감독은 철원과 아르메니아 등 분단과 분쟁에 놓여진 사람들을 다큐멘터리로 그려왔습니다.

이번 영화 제작을 위해 서울과 부산 등 전국각지를 돌며 3년간이나 자료를 수집해왔다는데요.

북에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직접 찾아 나선 실향민의 생생한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김송순/실향민 1세/서울 거주 : "(처음에 브로커를 통해서 동생의 생사를 알게 됐잖아요. 그때가 언제며, 그때 심정이 어떠했는지?) 그때 심정 뭐로 말할까 표현을 하기 참 기가 막히잖아. 그리고 자꾸 눈물이 났지. 그런데 걔가 사진 속에다가 내가 (이북에) 있을 때 지가 자전거 타고 찍은 사진이 있었어 5살 때인가 그걸 넣어서 보냈더라고."]

이곳은 실향민들의 제2의 고향 영도 해돋이 마을이 보이는 곳입니다.

김량 감독은 아버지가 살아생전 그리워했던 고향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내기 위해 또 다른 영화 제작에 나선다고 하는데요.

이번엔 실향민 2세를 주제로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김량/영화감독 : "처음에는 여기 일대가 다 피란민 수용소였죠. 예전엔 수용소였지만 해돋이 마을로 이름을 바꿨어요. 좀 더 긍정적인 이름으로."]

맑은 날 해돋이 마을 정상에선 항구와 도심 등 부산의 전경이 훤히 보인다는데요.

[김량/영화감독 : "아버지 고향이 항구거든요. 단천이라고 해서항구와 항구끼리 이어주는 그런 컨셉을 계속 찾고 있습니다. 다음 작품엔 항구를 배경으로 해서 여기 역사를 좀 더 잘 보여주는 공간으로 표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산 도심에 위치한 김량 감독의 작업실을 찾아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남북정상회담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에 부풀었던 실향민 아버지는 결국, 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끝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놓지 않았던 아버지를 위해 대신 고향 땅을 밟는 꿈을 꾸고 있다는데요.

[김량/영화감독 : "아버지가 잃어버린 가족들에 대해 역추적을 하면서 (아버지) 고향에 가서 산천도 찍고 아버지가 뛰어놀던 해변도 찍고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이 벅찼던 김량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이해와 원망 사이에서 혼란의 시간을 보내는 세대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김량/영화감독 : "(제작을 위해서) 여러 세대를 만나요. 무관심한 세대들이 대부분이죠. 우리 분단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좀 더 가깝고 좀 더 친밀하게…."]

실향민 본인뿐 아니라 2세대, 3세대에게도 자리 잡은 분단 트라우마.

따뜻하고 색다른 시선으로 분단 트라우마를 담아내는 김 감독의 시도는 계속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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