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탈북 미혼모의 ‘달콤한 나눔’

입력 2020.12.26 (08:20) 수정 2020.12.2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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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번 주부터 저희 남북의 창 '통일로 미래로' 코너에 새로운 가족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남북 화해와 통일을 지향하는 현장 곳곳을 찾아갈 최효은 리포터 나와 있는데요.

[답변]

안녕하세요, 최효은 리포터입니다.

남북 평화가 움트는 곳엔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서 통일을 준비하는 관찰자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겠습니다.

[앵커]

네, 앞으로 생생한 현장 소식 기대하겠습니다.

최효은 리포터, 오늘은 어떤 소식 준비하셨나요?

[답변]

탈북 후 남한에 정착하기까지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미혼모가 있습니다.

본인의 재능을 살려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데요.

연말을 맞이해 소박한 계획을 실천하고 있는 '량진희' 씨를 만나 봤습니다.

[리포트]

2020년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요.

이렇게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특별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어떤 계획일까요?

지금 저와 함께 만나 보시죠.

소문을 듣고 찾아온 곳은 향긋한 커피향이 반기는 작은 카페.

["사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지난 4월 카페 문을 연 초보 사장 량진희 씨는 15살 때 혼자 두만강을 건넌 탈북민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면서 '가게를 접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량진희/탈북민 : "힘든 점이라 생각하면 아무래도 경제적인 거겠죠. 아무래도 여기선 수입이 안 나오고... 가게를 2월에 계약하고 인테리어를 시작해서 3월에 오픈하려 했어요. 근데 그때 코로나가 터져서..."]

금방 괜찮아지겠지 생각했지만, 코로나19 상황은 점점 악화됐습니다.

진희 씨는 모두가 겪는 위기라 생각하며 배달 상품을 늘려 가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량진희/탈북민 : "내가 왜 살지, 열심히 살아야 하나, 그런 질문들이 엄청 많았는데. (생각해 보면) 아기가 있어서 더 열심히 살았고, 아기가 있어서 항상 밤이나 낮이나 항상 저한테 큰 힘이 되는 그런 존재인 거 같아요."]

7년 전 혼자 한국으로 올 당시 21살이던 진희 씨의 뱃속엔 4개월 된 딸이 있었습니다.

아빠는 중국인이었습니다.

아이는 한국에서 건강하게 태어났고, 지금은 훌쩍 자라 초등학생이 됐는데요.

정착 초기엔 도움의 손길을 의심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량진희/탈북민 : "처음부터 잘해 주다가 앞으로 나를 이용하겠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 그분들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자원봉사더라고요. 그게 점점 받은 게 많아지니까 감사함이 쌓여서 그분들한테 뭔가 저도 돌려주고 싶은 거예요."]

자신도 넉넉하지 않지만, 올해부턴 그동안 받았던 도움을 돌려주고 싶다는데요.

이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내 보려 합니다.

["(사장님 지금 뭐하고 계신 거예요?) 지금 양갱 만들려고... (양갱은 왜 만들고 계신 거예요?) 제가 예전에도 많이 받은 게 있어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해 드리고 싶어서..."]

뜻깊은 일에 제가 빠질 순 없겠죠.

두 팔을 걷어붙이고 양갱 만들기에 도전했습니다.

["그래도 이거 잘 젓는 거 같아요. (저 잘하는 편인가요?) 네, 잘하고 있어요. 초보는 아닌 거 같아요. (제가 초본데 잘 감췄나 보다.)"]

반죽을 굳게 하는 한천 가루를 녹이고, 녹차와 커피, 도라지 같은 각각의 재료를 섞고 으깨기를 반복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팔이 아파져 왔는데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요?

배합된 반죽을 틀에 붓고 냉장고에 넣어 식혀 주니, 드디어 양갱이 완성됐습니다.

진희 씨가 정성스럽게 만든 양갱을 갖고 인천의 한 봉사단체로 향합니다.

진희 씨 같은 탈북 미혼모를 도와주는 곳인데요.

["여유가 생기면 언젠가 도움을 다른 사람한테 주고 싶어서 제가 아침부터 백 상자 준비했어요."]

나눔에 앞서 첫선을 보이는 순간입니다.

["일반 양갱보단 부드럽고 맛있네. 일반 양갱은 달아서 쫀득쫀득한데 (이건) 부드러워서 노인분들이 드시면 좋을 거 같아요. 하나 더 먹어도 되죠? (다 드세요.)"]

반응이 좋은 걸 보니 괜히 제가 으쓱한 기분인데요.

[김수천/자원봉사단체 상임이사 : "탈북민들의 정착 과정이 힘들잖아요. 남한테 베푸는 게 덜하거든. 맘 씀씀이가 기특하신 거죠. 진짜 맛있어요."]

자신감을 충전하고 이제 본격적인 나눔을 하러 나섭니다.

[김영림/탈북민 : "추운 날에 와서 고생이 많아서 어떻게 왔어. 손녀 같아 고맙소."]

자리에 앉은 진희 씨가 손수 만든 양갱을 꺼내는데요.

["(난 주는 게 없는데 자꾸 이런 걸 가져와.) 맛있게 드시는 게 저한테 기쁨이에요. 도라지 맛인데 드셔 보세요. (이거 도라지야? 흐물흐물 내 이가 나쁘니 흐물흐물 딱 좋구나. 딱 커피 맛이 옳다.)"]

양갱 한 가락에 담긴 진희 씨의 진심을 느껴서일까요?

흥이 오른 할머니가 한 곡조 뽑습니다.

["녹두밭에 앉지 마라~ 그런 노래 있지. 녹두 냄새 나는 거 같아."]

그렇게 할머니와 진희 씨의 대화는 깊어 갔는데요.

알고 보니 두 사람 모두 같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이었습니다.

["전 학교를 못 다녀서... (너는 더 불쌍하게 살았구나.) 먹고살기 힘들어서 8살 때부터 미나리 캐고, 석탄 훔치고, 이삭 주우러 다니고... (너는 어디서 살았길래?) 저도 청진에서 살았는데... (나도 청진인데.)"]

고향에서 겪은 힘든 기억을 떠올리자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지는데요.

누구보다 그 어려움을 잘 아는 진희 씨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립니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나눔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진희 씨의 마음은 어떨까요?

[량진희/탈북민 : "예전엔 항상 받는 사람 입장이었잖아요. 오늘은 많은 분들한테 제가 뭔가를 해서 그분들한테 전달함으로써 이런 날도 오는구나. 그런 날인 거 같아요. 항상 받기만 했었는데 오늘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그런 날이 온 거 같아서 너무 좋아요."]

미혼모의 몸으로 찾아온 한국 땅.

어려운 처지에도 나눔을 실천하는 진희 씨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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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탈북 미혼모의 ‘달콤한 나눔’
    • 입력 2020-12-26 08:20:10
    • 수정2020-12-26 08: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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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번 주부터 저희 남북의 창 '통일로 미래로' 코너에 새로운 가족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남북 화해와 통일을 지향하는 현장 곳곳을 찾아갈 최효은 리포터 나와 있는데요.

[답변]

안녕하세요, 최효은 리포터입니다.

남북 평화가 움트는 곳엔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서 통일을 준비하는 관찰자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겠습니다.

[앵커]

네, 앞으로 생생한 현장 소식 기대하겠습니다.

최효은 리포터, 오늘은 어떤 소식 준비하셨나요?

[답변]

탈북 후 남한에 정착하기까지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미혼모가 있습니다.

본인의 재능을 살려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데요.

연말을 맞이해 소박한 계획을 실천하고 있는 '량진희' 씨를 만나 봤습니다.

[리포트]

2020년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요.

이렇게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특별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어떤 계획일까요?

지금 저와 함께 만나 보시죠.

소문을 듣고 찾아온 곳은 향긋한 커피향이 반기는 작은 카페.

["사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지난 4월 카페 문을 연 초보 사장 량진희 씨는 15살 때 혼자 두만강을 건넌 탈북민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면서 '가게를 접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량진희/탈북민 : "힘든 점이라 생각하면 아무래도 경제적인 거겠죠. 아무래도 여기선 수입이 안 나오고... 가게를 2월에 계약하고 인테리어를 시작해서 3월에 오픈하려 했어요. 근데 그때 코로나가 터져서..."]

금방 괜찮아지겠지 생각했지만, 코로나19 상황은 점점 악화됐습니다.

진희 씨는 모두가 겪는 위기라 생각하며 배달 상품을 늘려 가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량진희/탈북민 : "내가 왜 살지, 열심히 살아야 하나, 그런 질문들이 엄청 많았는데. (생각해 보면) 아기가 있어서 더 열심히 살았고, 아기가 있어서 항상 밤이나 낮이나 항상 저한테 큰 힘이 되는 그런 존재인 거 같아요."]

7년 전 혼자 한국으로 올 당시 21살이던 진희 씨의 뱃속엔 4개월 된 딸이 있었습니다.

아빠는 중국인이었습니다.

아이는 한국에서 건강하게 태어났고, 지금은 훌쩍 자라 초등학생이 됐는데요.

정착 초기엔 도움의 손길을 의심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량진희/탈북민 : "처음부터 잘해 주다가 앞으로 나를 이용하겠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 그분들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자원봉사더라고요. 그게 점점 받은 게 많아지니까 감사함이 쌓여서 그분들한테 뭔가 저도 돌려주고 싶은 거예요."]

자신도 넉넉하지 않지만, 올해부턴 그동안 받았던 도움을 돌려주고 싶다는데요.

이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내 보려 합니다.

["(사장님 지금 뭐하고 계신 거예요?) 지금 양갱 만들려고... (양갱은 왜 만들고 계신 거예요?) 제가 예전에도 많이 받은 게 있어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해 드리고 싶어서..."]

뜻깊은 일에 제가 빠질 순 없겠죠.

두 팔을 걷어붙이고 양갱 만들기에 도전했습니다.

["그래도 이거 잘 젓는 거 같아요. (저 잘하는 편인가요?) 네, 잘하고 있어요. 초보는 아닌 거 같아요. (제가 초본데 잘 감췄나 보다.)"]

반죽을 굳게 하는 한천 가루를 녹이고, 녹차와 커피, 도라지 같은 각각의 재료를 섞고 으깨기를 반복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팔이 아파져 왔는데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요?

배합된 반죽을 틀에 붓고 냉장고에 넣어 식혀 주니, 드디어 양갱이 완성됐습니다.

진희 씨가 정성스럽게 만든 양갱을 갖고 인천의 한 봉사단체로 향합니다.

진희 씨 같은 탈북 미혼모를 도와주는 곳인데요.

["여유가 생기면 언젠가 도움을 다른 사람한테 주고 싶어서 제가 아침부터 백 상자 준비했어요."]

나눔에 앞서 첫선을 보이는 순간입니다.

["일반 양갱보단 부드럽고 맛있네. 일반 양갱은 달아서 쫀득쫀득한데 (이건) 부드러워서 노인분들이 드시면 좋을 거 같아요. 하나 더 먹어도 되죠? (다 드세요.)"]

반응이 좋은 걸 보니 괜히 제가 으쓱한 기분인데요.

[김수천/자원봉사단체 상임이사 : "탈북민들의 정착 과정이 힘들잖아요. 남한테 베푸는 게 덜하거든. 맘 씀씀이가 기특하신 거죠. 진짜 맛있어요."]

자신감을 충전하고 이제 본격적인 나눔을 하러 나섭니다.

[김영림/탈북민 : "추운 날에 와서 고생이 많아서 어떻게 왔어. 손녀 같아 고맙소."]

자리에 앉은 진희 씨가 손수 만든 양갱을 꺼내는데요.

["(난 주는 게 없는데 자꾸 이런 걸 가져와.) 맛있게 드시는 게 저한테 기쁨이에요. 도라지 맛인데 드셔 보세요. (이거 도라지야? 흐물흐물 내 이가 나쁘니 흐물흐물 딱 좋구나. 딱 커피 맛이 옳다.)"]

양갱 한 가락에 담긴 진희 씨의 진심을 느껴서일까요?

흥이 오른 할머니가 한 곡조 뽑습니다.

["녹두밭에 앉지 마라~ 그런 노래 있지. 녹두 냄새 나는 거 같아."]

그렇게 할머니와 진희 씨의 대화는 깊어 갔는데요.

알고 보니 두 사람 모두 같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이었습니다.

["전 학교를 못 다녀서... (너는 더 불쌍하게 살았구나.) 먹고살기 힘들어서 8살 때부터 미나리 캐고, 석탄 훔치고, 이삭 주우러 다니고... (너는 어디서 살았길래?) 저도 청진에서 살았는데... (나도 청진인데.)"]

고향에서 겪은 힘든 기억을 떠올리자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지는데요.

누구보다 그 어려움을 잘 아는 진희 씨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립니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나눔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진희 씨의 마음은 어떨까요?

[량진희/탈북민 : "예전엔 항상 받는 사람 입장이었잖아요. 오늘은 많은 분들한테 제가 뭔가를 해서 그분들한테 전달함으로써 이런 날도 오는구나. 그런 날인 거 같아요. 항상 받기만 했었는데 오늘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그런 날이 온 거 같아서 너무 좋아요."]

미혼모의 몸으로 찾아온 한국 땅.

어려운 처지에도 나눔을 실천하는 진희 씨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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