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유해발굴]③ 초토화됐던 가시리서 4·3 추정 유해 3구 발견

입력 2021.03.31 (21:36) 수정 2021.03.3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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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 당시 행방불명인 4천여 명 가운데 지금까지 제주에서 발굴된 유해는 4백여 구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해가 대부분인데, 표선면 가시리에서 4·3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 3구가 나왔습니다.

나종훈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과수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정체불명의 돌무더기.

강군섭 할아버지는 자신이 제사를 모시는 친척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70여 년 전 4·3의 광풍에 희생된 강 씨 일가가 움막을 짓고 살던 곳이 바로 이 일대 일명 '우구리동산'이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을 받들어 45년 전부터 동네 주민을 수소문해 어렵사리 유해가 묻혔을 만한 곳은 찾았지만 혼자 힘으로 수습하기엔 역부족.

오랫동안 제사만 모시며 유해를 찾지 못한 죄스런 마음을 삭여왔습니다.

[강군섭/유해발굴지 제보자 : "한 사람만 있으면 파면되는데, 남의 시신이 있으면 (해당 유족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팔 수가 없잖아요."]

15년 전 이 밭을 사들인 토지주 역시 비슷한 증언을 합니다.

[김순생/유해발굴지 토지주 : "여기 바로 밑에 묘소가 있었는데 제주도 말로 천리. 이장한 큰 묘소가 있었어요. 그걸 밀어낼 때 굴착기로 전부 밀려고 했는데 그때 그 분(원토지주)이 여기는 밀면 안 된다. 여기 유해가 있다."]

이러한 증언들을 바탕으로 도내 7곳에서 4·3 유해발굴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개토제를 시작으로 시굴하고 유해가 발견되면 유전자 감식을 통해 유족을 찾는, 족히 수개월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오임종/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 "유세차 신축년 3월 22일 저희들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유해발굴에 앞서 정성을 모아."]

유해발굴 시작 불과 일주일 만에 4·3 희생자로 추정되는 머리뼈 3구가 나왔습니다.

40대 남성과 30대 여성, 10대 소년의 유해로 추정됩니다.

강군섭 할아버지의 증언이 있던 바로 그곳입니다.

4·3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된 건 2018년 진행된 유해발굴 사업 이후 3년만입니다.

유해가 발견된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는 숟가락이 나오는 등 1948년 가시리 초토화 작전 당시 도피하다 희생된 주민의 유해로 추정됩니다.

[박근태/일영문화유산연구원장/4·3 유해발굴 기관 : "토굴을 파고 숨어서 지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내다가 초토화 작전 때 이분들이 다 희생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2006년부터 찾아낸 4·3 행방불명인 유해는 405구.

전체 4·3 행불인이 4천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은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나종훈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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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3유해발굴]③ 초토화됐던 가시리서 4·3 추정 유해 3구 발견
    • 입력 2021-03-31 21:36:03
    • 수정2021-03-31 22:00:04
    뉴스9(제주)
[앵커]

4·3 당시 행방불명인 4천여 명 가운데 지금까지 제주에서 발굴된 유해는 4백여 구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해가 대부분인데, 표선면 가시리에서 4·3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 3구가 나왔습니다.

나종훈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과수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정체불명의 돌무더기.

강군섭 할아버지는 자신이 제사를 모시는 친척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70여 년 전 4·3의 광풍에 희생된 강 씨 일가가 움막을 짓고 살던 곳이 바로 이 일대 일명 '우구리동산'이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을 받들어 45년 전부터 동네 주민을 수소문해 어렵사리 유해가 묻혔을 만한 곳은 찾았지만 혼자 힘으로 수습하기엔 역부족.

오랫동안 제사만 모시며 유해를 찾지 못한 죄스런 마음을 삭여왔습니다.

[강군섭/유해발굴지 제보자 : "한 사람만 있으면 파면되는데, 남의 시신이 있으면 (해당 유족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팔 수가 없잖아요."]

15년 전 이 밭을 사들인 토지주 역시 비슷한 증언을 합니다.

[김순생/유해발굴지 토지주 : "여기 바로 밑에 묘소가 있었는데 제주도 말로 천리. 이장한 큰 묘소가 있었어요. 그걸 밀어낼 때 굴착기로 전부 밀려고 했는데 그때 그 분(원토지주)이 여기는 밀면 안 된다. 여기 유해가 있다."]

이러한 증언들을 바탕으로 도내 7곳에서 4·3 유해발굴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개토제를 시작으로 시굴하고 유해가 발견되면 유전자 감식을 통해 유족을 찾는, 족히 수개월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오임종/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 "유세차 신축년 3월 22일 저희들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유해발굴에 앞서 정성을 모아."]

유해발굴 시작 불과 일주일 만에 4·3 희생자로 추정되는 머리뼈 3구가 나왔습니다.

40대 남성과 30대 여성, 10대 소년의 유해로 추정됩니다.

강군섭 할아버지의 증언이 있던 바로 그곳입니다.

4·3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된 건 2018년 진행된 유해발굴 사업 이후 3년만입니다.

유해가 발견된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는 숟가락이 나오는 등 1948년 가시리 초토화 작전 당시 도피하다 희생된 주민의 유해로 추정됩니다.

[박근태/일영문화유산연구원장/4·3 유해발굴 기관 : "토굴을 파고 숨어서 지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내다가 초토화 작전 때 이분들이 다 희생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2006년부터 찾아낸 4·3 행방불명인 유해는 405구.

전체 4·3 행불인이 4천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은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나종훈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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