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가 만난 사람] 이용수 할머니 “증언이 곧 생명입니다”

입력 2007.03.28 (09:31) 수정 2007.03.2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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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네, 방금전에 보신 것처럼 미 국무부가 강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얼마전 호주 총리도 비판의 목소리를 낸 적 있는데요.

오늘 수요일이죠, 매주 수요일이면 눈이 오나,비가 오나 일본 대사관 앞에선 피해자 할머니들의 항의 집회가 열립니다.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에 서방 국가들도 이렇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할머니가 계신데요.

양영은 앵커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지난 2월 15일 미국 땅에서 그것도 수도 워싱턴 의사당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통한의 증언을 했습니다.

<녹취> 이용수 할머니(79살); "(일본군들이) 막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위협하고 그랬어요."

세계가 미처 몰랐던 일본의 만행.

이용수 할머니는 그 만행을 온몸으로 알리는 한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인터뷰> 이용수 할머니: "저는 결혼도 안 하고 이렇게 있습니다."

식사 때면 피해자 할머니들은 물론, 수요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챙길 만큼 할머니는 씩씩합니다.

쉼터로 돌아와서야 미 의회 증언 당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이용수 할머니: "증언할 때는 상당히 괴로워요. 보통 자기 입으로 자기 겪은 일 이야기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아주 어려워요. 상처가 참 심해요."

할머니는 그림을 그려 가며 일본군에 끌려가던 날 밤을 회상했습니다.

서툴지만 자세한 그림엔 할머니의 말 못한 고통이 고스란히 묻어났는데요, 할머니의 몸 곳곳엔 반항하다 생긴 흉터가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인터뷰> 이용수 할머니: "(내가) 담요를 뒤집어 쓰고 "언니야, 물어라, 물어 뜯어라." 장난인 줄로만 알았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아무 것도 몰랐어요. 그런데 일본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배에 (군인) 300명이 타고, 여자 애 다섯을 태웠어요."

열 다섯 살에 끌려가 이팔청춘 삼 년을 희생당했건만, 자신이 위안부였는 줄도 모른 채 수십 년을 살다 지난 92년에야 신고했습니다.

직후엔 부끄러움과 후회도 많았지만 국경을 초월한 사람들의 꾸준한 격려가 큰 힘이 됐습니다.

<인터뷰> 이용수 할머니: "(한 일본 사람이)"용수 할머니! 죽지 마세요, 죽을 힘 다해서 그 힘 가지고 사세요! 살아가면서 역사를 만드세요!" 했습니다."

그 때부터 명예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해 국제법과 일본어를 공부하고 자신의 경험을 떳떳이 알리기 시작했는데요.

<인터뷰> 이용수 할머니: "(위안부로)강제로 붙들려간 역사의 산 증인이 있잖나. 이것 때문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나는 내 증언을 하고 싶어요."

인터뷰 중에도 이용수 할머니는 몇 번을 울었습니다.

그런 할머니께 다시 태어난 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 조심스럽게 여쭤봤습니다.

<인터뷰> 이용수 할머니: "난 군인이 되고 싶어요. 군인. 내가 여성 구실 못 했으니까 나는 여자라도 군인이 돼서 장성급이 돼가지고 우리나라를 버젓하게 여성으로 세웠다는 소리가 듣고 싶어요. 그런 생각밖에 없어요. 여성으로서 장하게 우리나라를 지켰다. 나는 그 소리가 듣고 싶어."

일본의 공식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건강하게 살 것이라는 이용수 할머니 자신에게는 '증언'이 곧 '생명' 이라고 했습니다.

<인터뷰> 이용수 할머니: "만약에 하늘이 내게 천 년을 빌려준다면 할머니들한테 5년씩 주고 나눠서 아낌없이 쓰겠어요."
일본군 강제 위안부 결의안은 그동안도 수차례 미 의회에 상정됐지만 일본의 방해로 번번이 저지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용수 할머니 등의 용기 있는 증언에 힘입어 통과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하는데요.

역사의 진실은 살아있는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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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가 만난 사람] 이용수 할머니 “증언이 곧 생명입니다”
    • 입력 2007-03-28 08:17:09
    • 수정2007-03-28 1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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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네, 방금전에 보신 것처럼 미 국무부가 강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얼마전 호주 총리도 비판의 목소리를 낸 적 있는데요. 오늘 수요일이죠, 매주 수요일이면 눈이 오나,비가 오나 일본 대사관 앞에선 피해자 할머니들의 항의 집회가 열립니다.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에 서방 국가들도 이렇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할머니가 계신데요. 양영은 앵커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지난 2월 15일 미국 땅에서 그것도 수도 워싱턴 의사당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통한의 증언을 했습니다. <녹취> 이용수 할머니(79살); "(일본군들이) 막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위협하고 그랬어요." 세계가 미처 몰랐던 일본의 만행. 이용수 할머니는 그 만행을 온몸으로 알리는 한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인터뷰> 이용수 할머니: "저는 결혼도 안 하고 이렇게 있습니다." 식사 때면 피해자 할머니들은 물론, 수요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챙길 만큼 할머니는 씩씩합니다. 쉼터로 돌아와서야 미 의회 증언 당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이용수 할머니: "증언할 때는 상당히 괴로워요. 보통 자기 입으로 자기 겪은 일 이야기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아주 어려워요. 상처가 참 심해요." 할머니는 그림을 그려 가며 일본군에 끌려가던 날 밤을 회상했습니다. 서툴지만 자세한 그림엔 할머니의 말 못한 고통이 고스란히 묻어났는데요, 할머니의 몸 곳곳엔 반항하다 생긴 흉터가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인터뷰> 이용수 할머니: "(내가) 담요를 뒤집어 쓰고 "언니야, 물어라, 물어 뜯어라." 장난인 줄로만 알았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아무 것도 몰랐어요. 그런데 일본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배에 (군인) 300명이 타고, 여자 애 다섯을 태웠어요." 열 다섯 살에 끌려가 이팔청춘 삼 년을 희생당했건만, 자신이 위안부였는 줄도 모른 채 수십 년을 살다 지난 92년에야 신고했습니다. 직후엔 부끄러움과 후회도 많았지만 국경을 초월한 사람들의 꾸준한 격려가 큰 힘이 됐습니다. <인터뷰> 이용수 할머니: "(한 일본 사람이)"용수 할머니! 죽지 마세요, 죽을 힘 다해서 그 힘 가지고 사세요! 살아가면서 역사를 만드세요!" 했습니다." 그 때부터 명예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해 국제법과 일본어를 공부하고 자신의 경험을 떳떳이 알리기 시작했는데요. <인터뷰> 이용수 할머니: "(위안부로)강제로 붙들려간 역사의 산 증인이 있잖나. 이것 때문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나는 내 증언을 하고 싶어요." 인터뷰 중에도 이용수 할머니는 몇 번을 울었습니다. 그런 할머니께 다시 태어난 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 조심스럽게 여쭤봤습니다. <인터뷰> 이용수 할머니: "난 군인이 되고 싶어요. 군인. 내가 여성 구실 못 했으니까 나는 여자라도 군인이 돼서 장성급이 돼가지고 우리나라를 버젓하게 여성으로 세웠다는 소리가 듣고 싶어요. 그런 생각밖에 없어요. 여성으로서 장하게 우리나라를 지켰다. 나는 그 소리가 듣고 싶어." 일본의 공식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건강하게 살 것이라는 이용수 할머니 자신에게는 '증언'이 곧 '생명' 이라고 했습니다. <인터뷰> 이용수 할머니: "만약에 하늘이 내게 천 년을 빌려준다면 할머니들한테 5년씩 주고 나눠서 아낌없이 쓰겠어요." 일본군 강제 위안부 결의안은 그동안도 수차례 미 의회에 상정됐지만 일본의 방해로 번번이 저지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용수 할머니 등의 용기 있는 증언에 힘입어 통과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하는데요. 역사의 진실은 살아있는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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