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내가 신인왕!] 경남FC 서상민 ①

입력 2008.05.0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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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 첫 발을 디딘 신인이 데뷔전에서 두 골을 넣었다. 데뷔전이라는 부담감을 떨쳐 내며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서상민. 서상민이라는 다소 낯선 이름을 접한 사람들은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갈 또 한 명의 인재가 나타났다며 기뻐했다. 비록 그는 청소년 대표와 올림픽 대표 등 엘리트 코스를 밟지는 않았지만 그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기회를 기다려 왔던 흙 속의 숨은 진주와도 같은 존재다.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 3라운드 수원과의 원정길에 나선 경남과 함께 한 그는 핸드폰이 고장이 나는 바람에 연락이 안 되어 조금 늦었다며 죄송하다는 공손한 인사와 함께 등장했다. 데뷔전 2골과 함께 언론의 주목을 받고, 대표 팀까지 승선한 선수의 여유로움보다는 신인 선수 특유의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던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순수하게 느껴졌다.

이제 프로에서의 첫 발을 내딛은 그는 누구보다도 첫 걸음을 크게 내딛었다. 그를 3월 28일 저녁 8시 수원에 있는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나보았다.

축구와 가족, 나의 두 가지 버팀목

그저 축구가 좋았던 아이. 공 그리고 그 공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만 있다면 세상 모든 게 부럽지 않았던 아이. 그 아이는 학교 축구부 선생님의 눈에 띄어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가 바로 서상민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축구를 하고 있었어요. 그 때 제 첫 은사님이신 성내초등학교 이현호 선생님께서 축구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하셨어요. 그 때 이제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됐죠.”

“부모님께서도 처음에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자식 이기는 부모님 없다고들 하잖아요. 처음에 부모님께서 반대하셔서 방 안에서 꼼짝도 안하고 있었어요.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말도 안하고 인상만 푹푹 쓰면서 계속 제가 버티니까 어느 날 아버지가 저를 부르셨어요.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도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후에는 이제 부모님께서 힘이 많이 되 주셨어요. 참 감사 하죠(웃음).”

반대했던 부모님은 지금의 그에게 있어 가장 힘이 되어주는 서포터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축구는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 꿈과 현실은 다르다는 걸, 그 어린 나이에 서상민은 미처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지루했어요. 어린 마음에 텔레비전에서 보는 축구경기가 다인 줄로만 알았어요, 11대 11로 경기만 하는 그런 것 있잖아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그게 아닌 거였죠. 훈련도 생각보다 고되고, 선후배 관계도 엄격하게 지켜야 되고, 적응하기가 힘들었죠.

그런데 생활을 하다 보니까 재미있었어요. 그 때 당시에는 몰랐었는데 그냥 하루하루 생활 했던 것 자체가 저한테는 기억이고 추억이고 그래요. 애들이랑 몰래 모여서 선배들 욕도 하고, 그러다가 들켜서 꾸지람도 듣고(웃음), 청소하는 것 밥 먹는 것 하나하나가 아련한 추억이죠.”

그렇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학창시절. 지금은 웃으면서 추억하지만 그 때의 서상민은 즐겁고 행복하게 공을 찬다는 기분을 알지 못했다. 집안의 어려움은 어린 그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은 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합숙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을 간 적이 있어요. 저는 힘들긴 했는데 도망치고 그럴 정도는 아니라서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나중에 걸려서 축구를 그만 두고 그런 친구들도 있었어요. 친구들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죠. 사실 저도 축구를 재미삼아 하고 그랬으면 도망도 치고 그랬을 텐데. 그런데 집안 사정도 좋은 편이 아니고, 여태까지 해온 것은 축구고 축구로 돈을 벌어서 빨리 집안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버텨 온 것 같아요. 가족 생각도 많이 났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철이 좀 들었던 것 같아요. 애늙은이 같죠?(웃음)”

부모님한테 듬직한 아들이겠다고 넌지시 칭찬을 던졌지만 여전히 떼 많이 쓰는 아들이라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듬직함과 함께 어린 마음에 마음고생이 심했을 그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시큰했다.

평범함을 이겨낸 꾸준한 노력

그의 선수 이력은 큰 굴곡이 없다. 큰 부상이나 슬럼프도, 그렇다고 이렇다 할 대회 수상 이력도 없다. 하지만 화려한 선수 이력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꾸준히 노력했고 그런 꾸준함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침체기가 찾아올라 치면 그는 그 침체기를 운동으로서 극복해 냈다.

“저는 슬럼프라고 딱히 칭할 시기도 없었어요. 이 대답만 딱 듣고 보면 건방지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슬럼프라기보다는 그냥 다른 선수들보다 부족한 게 많았다고 생각을 해요. 지금도 물론 부족하지만. 그냥 경기가 조금 안 풀리고 생각대로 되지 않고 그러면 연습을 많이 했어요. 개인훈련을 많이 하면서 부족한 점을 많이 보완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슬럼프라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봐요.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강했으니까. 안되면 될 때까지 훈련하는 스타일 이였어요. 좀 모범생 이였다고나 할까(웃음). 결과적으로는 이런 모습이 지금의 저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만족해요. 대만족이죠.”



“슬럼프라는 게 없어서 그런지 축구를 그만둘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요. 그냥 오로지 축구만 바라봤어요. 솔직하게 한번이라도 그런 생각 안 해봤겠느냐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이 기사 보시면 나오실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정말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어요. 이게 제 길이라고 생각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요. 그런데 또 저희 집이 아주 잘 살고 부자이고 이랬으면 지금 여기에 서 있기까지의 노력을 아마 안 했을 지도 몰라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으니까 정말 열심히 했죠. 집안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좀 성숙했던 것 같아요. 나이에 맞지 않게요.”

조용조용히 말을 이어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그의 나이보다 훨씬 더 성숙한 그의 내면을 알 수 있었다. 남들보다 튀지 못하고 수줍음도 많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면서 힘든 학창시절을 이겨낸 겉은 여리지만 속은 강한 그런 남자였다.

경험이라는 자산을 쌓게 해준 대학생활

그는 프로 데뷔 전 연고전에서 경기가 끝나기 몇 초 전 동점골을 넣으면서 학교의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영웅이라는 칭호보다는 경기를 뛰면서 얻는 내적, 외적 경험이 더욱 값졌다고 말한다.

“1:0으로 지고 있었어요. 거의 끝나기 전이었어요. 골이 계속 안 들어가니까 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볼이 갑자기 제 앞으로 뚝 떨어졌어요. 그 때 어디로 차야지 뭐 이런 생각을 하겠어요? 그냥 냅다 찼죠. 근데 그게 들어갔어요, 끝나기 몇 초전에.

골 넣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골 넣고 막 미친 듯이 뛰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감독님 품에 안겨 있더라고요. 그 때 기분이 정말 너무 좋았어요. 연고전이란 게 연세대나 고려대 학생들에게는 무슨 대회 결승전보다 더 중요한 경기거든요. 그런 경기에서 극적인 골을 넣었으니 정말 기분이 요샛말로 짱이었죠, 짱!(웃음)”



연고전을 떠올리면 K-리그 못지않은 연대만의 서포터스가 플레이 다음으로 떠오른다는 그. 그 순간의 그 열정, 그 응원을 떠오르면 아직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함이 묻어난다고 했다.

“그리고 연고전 할 때에는 응원이 정말 엄청나요.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했는데, 그렇게 많은 관중들 앞에서 공을 차본 건 연고전 때가 처음이었어요. 제가 1학년 때 연고전을 처음으로 뛰었어요.

20분 동안. 그런데 경기를 어떻게 했는지 생각이 안나요. 너무 긴장해서 아무 소리도 안 들렸고(웃음). 하지만 그게 또 좋은 경험이 돼서 2학년 때 골을 넣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K-리그는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오시잖아요. 그런데 저는 대학교에서 이미 많은 관중 앞에서 뛰어 본 경험이 있으니까.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더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제 경기장에 딱 들어가면, 관중들이 저희들을 보잖아요. 그러면 긴장도 되면서 뭐랄까 골 넣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관중들이 저에게 골을 넣어라 골 넣을 수 있다 이런 의욕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좋은 모습 보여줘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경기를 하죠.”

여느 아마추어 선수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응원 속에서의 경기를 하며 관중 속에서의 경기 감각을 익혔고, 그렇게 한층 더 성장한 그는 대학 2학년을 마친 후 드래프트 1순위로 경남FC에 입단하게 된다.

사진 : 정성래, 정선녀
K-리그 명예기자 정성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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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내가 신인왕!] 경남FC 서상민 ①
    • 입력 2008-05-08 14:04:53
    축구
K-리그에 첫 발을 디딘 신인이 데뷔전에서 두 골을 넣었다. 데뷔전이라는 부담감을 떨쳐 내며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서상민. 서상민이라는 다소 낯선 이름을 접한 사람들은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갈 또 한 명의 인재가 나타났다며 기뻐했다. 비록 그는 청소년 대표와 올림픽 대표 등 엘리트 코스를 밟지는 않았지만 그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기회를 기다려 왔던 흙 속의 숨은 진주와도 같은 존재다.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 3라운드 수원과의 원정길에 나선 경남과 함께 한 그는 핸드폰이 고장이 나는 바람에 연락이 안 되어 조금 늦었다며 죄송하다는 공손한 인사와 함께 등장했다. 데뷔전 2골과 함께 언론의 주목을 받고, 대표 팀까지 승선한 선수의 여유로움보다는 신인 선수 특유의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던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순수하게 느껴졌다. 이제 프로에서의 첫 발을 내딛은 그는 누구보다도 첫 걸음을 크게 내딛었다. 그를 3월 28일 저녁 8시 수원에 있는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나보았다. 축구와 가족, 나의 두 가지 버팀목 그저 축구가 좋았던 아이. 공 그리고 그 공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만 있다면 세상 모든 게 부럽지 않았던 아이. 그 아이는 학교 축구부 선생님의 눈에 띄어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가 바로 서상민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축구를 하고 있었어요. 그 때 제 첫 은사님이신 성내초등학교 이현호 선생님께서 축구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하셨어요. 그 때 이제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됐죠.” “부모님께서도 처음에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자식 이기는 부모님 없다고들 하잖아요. 처음에 부모님께서 반대하셔서 방 안에서 꼼짝도 안하고 있었어요.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말도 안하고 인상만 푹푹 쓰면서 계속 제가 버티니까 어느 날 아버지가 저를 부르셨어요.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도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후에는 이제 부모님께서 힘이 많이 되 주셨어요. 참 감사 하죠(웃음).” 반대했던 부모님은 지금의 그에게 있어 가장 힘이 되어주는 서포터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축구는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 꿈과 현실은 다르다는 걸, 그 어린 나이에 서상민은 미처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지루했어요. 어린 마음에 텔레비전에서 보는 축구경기가 다인 줄로만 알았어요, 11대 11로 경기만 하는 그런 것 있잖아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그게 아닌 거였죠. 훈련도 생각보다 고되고, 선후배 관계도 엄격하게 지켜야 되고, 적응하기가 힘들었죠. 그런데 생활을 하다 보니까 재미있었어요. 그 때 당시에는 몰랐었는데 그냥 하루하루 생활 했던 것 자체가 저한테는 기억이고 추억이고 그래요. 애들이랑 몰래 모여서 선배들 욕도 하고, 그러다가 들켜서 꾸지람도 듣고(웃음), 청소하는 것 밥 먹는 것 하나하나가 아련한 추억이죠.” 그렇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학창시절. 지금은 웃으면서 추억하지만 그 때의 서상민은 즐겁고 행복하게 공을 찬다는 기분을 알지 못했다. 집안의 어려움은 어린 그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은 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합숙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을 간 적이 있어요. 저는 힘들긴 했는데 도망치고 그럴 정도는 아니라서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나중에 걸려서 축구를 그만 두고 그런 친구들도 있었어요. 친구들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죠. 사실 저도 축구를 재미삼아 하고 그랬으면 도망도 치고 그랬을 텐데. 그런데 집안 사정도 좋은 편이 아니고, 여태까지 해온 것은 축구고 축구로 돈을 벌어서 빨리 집안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버텨 온 것 같아요. 가족 생각도 많이 났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철이 좀 들었던 것 같아요. 애늙은이 같죠?(웃음)” 부모님한테 듬직한 아들이겠다고 넌지시 칭찬을 던졌지만 여전히 떼 많이 쓰는 아들이라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듬직함과 함께 어린 마음에 마음고생이 심했을 그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시큰했다. 평범함을 이겨낸 꾸준한 노력 그의 선수 이력은 큰 굴곡이 없다. 큰 부상이나 슬럼프도, 그렇다고 이렇다 할 대회 수상 이력도 없다. 하지만 화려한 선수 이력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꾸준히 노력했고 그런 꾸준함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침체기가 찾아올라 치면 그는 그 침체기를 운동으로서 극복해 냈다. “저는 슬럼프라고 딱히 칭할 시기도 없었어요. 이 대답만 딱 듣고 보면 건방지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슬럼프라기보다는 그냥 다른 선수들보다 부족한 게 많았다고 생각을 해요. 지금도 물론 부족하지만. 그냥 경기가 조금 안 풀리고 생각대로 되지 않고 그러면 연습을 많이 했어요. 개인훈련을 많이 하면서 부족한 점을 많이 보완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슬럼프라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봐요.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강했으니까. 안되면 될 때까지 훈련하는 스타일 이였어요. 좀 모범생 이였다고나 할까(웃음). 결과적으로는 이런 모습이 지금의 저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만족해요. 대만족이죠.”
“슬럼프라는 게 없어서 그런지 축구를 그만둘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요. 그냥 오로지 축구만 바라봤어요. 솔직하게 한번이라도 그런 생각 안 해봤겠느냐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이 기사 보시면 나오실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정말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어요. 이게 제 길이라고 생각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요. 그런데 또 저희 집이 아주 잘 살고 부자이고 이랬으면 지금 여기에 서 있기까지의 노력을 아마 안 했을 지도 몰라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으니까 정말 열심히 했죠. 집안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좀 성숙했던 것 같아요. 나이에 맞지 않게요.” 조용조용히 말을 이어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그의 나이보다 훨씬 더 성숙한 그의 내면을 알 수 있었다. 남들보다 튀지 못하고 수줍음도 많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면서 힘든 학창시절을 이겨낸 겉은 여리지만 속은 강한 그런 남자였다. 경험이라는 자산을 쌓게 해준 대학생활 그는 프로 데뷔 전 연고전에서 경기가 끝나기 몇 초 전 동점골을 넣으면서 학교의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영웅이라는 칭호보다는 경기를 뛰면서 얻는 내적, 외적 경험이 더욱 값졌다고 말한다. “1:0으로 지고 있었어요. 거의 끝나기 전이었어요. 골이 계속 안 들어가니까 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볼이 갑자기 제 앞으로 뚝 떨어졌어요. 그 때 어디로 차야지 뭐 이런 생각을 하겠어요? 그냥 냅다 찼죠. 근데 그게 들어갔어요, 끝나기 몇 초전에. 골 넣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골 넣고 막 미친 듯이 뛰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감독님 품에 안겨 있더라고요. 그 때 기분이 정말 너무 좋았어요. 연고전이란 게 연세대나 고려대 학생들에게는 무슨 대회 결승전보다 더 중요한 경기거든요. 그런 경기에서 극적인 골을 넣었으니 정말 기분이 요샛말로 짱이었죠, 짱!(웃음)”
연고전을 떠올리면 K-리그 못지않은 연대만의 서포터스가 플레이 다음으로 떠오른다는 그. 그 순간의 그 열정, 그 응원을 떠오르면 아직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함이 묻어난다고 했다. “그리고 연고전 할 때에는 응원이 정말 엄청나요.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했는데, 그렇게 많은 관중들 앞에서 공을 차본 건 연고전 때가 처음이었어요. 제가 1학년 때 연고전을 처음으로 뛰었어요. 20분 동안. 그런데 경기를 어떻게 했는지 생각이 안나요. 너무 긴장해서 아무 소리도 안 들렸고(웃음). 하지만 그게 또 좋은 경험이 돼서 2학년 때 골을 넣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K-리그는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오시잖아요. 그런데 저는 대학교에서 이미 많은 관중 앞에서 뛰어 본 경험이 있으니까.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더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제 경기장에 딱 들어가면, 관중들이 저희들을 보잖아요. 그러면 긴장도 되면서 뭐랄까 골 넣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관중들이 저에게 골을 넣어라 골 넣을 수 있다 이런 의욕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좋은 모습 보여줘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경기를 하죠.” 여느 아마추어 선수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응원 속에서의 경기를 하며 관중 속에서의 경기 감각을 익혔고, 그렇게 한층 더 성장한 그는 대학 2학년을 마친 후 드래프트 1순위로 경남FC에 입단하게 된다. 사진 : 정성래, 정선녀
K-리그 명예기자 정성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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