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시간이 없어요”

입력 2011.11.0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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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1월 5일 토요일, 남북의 창 이현주입니다.

먼저 남북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보는 <이슈 앤 한반도>입니다.

통일부 장관이 교체된 이후 남북관계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에 대한 5.24 제재조치가 완화된데 이어 인도적인 사업도 실마리가 풀려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강해보입니다.

상봉행사 재개를 기다리고 있는 이산가족, 특히 고령의 1세대들에게는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다현 리포터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6.25전쟁은 무려 삼백만 명이 죽거나 다친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습니다.

생이별을 한 이산가족도 천만 명이나 됐는데요.

전쟁이 끝난 지 60년 가까이 흐르면서 이산가족 대부분은 가슴에 한을 품은 채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의지만 있다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남아있는 이산가족들의 마지막 희망, 가족과의 재회입니다.

6.25 전쟁 때 고향인 황해도 연백을 떠난 세 친구.

까까머리 중학생들은 그사이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됐습니다.

<인터뷰> 이정육(77살/황해도 연백 출신) : "여기 세 친구들이 전부다 중학교 동창이고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다 넘어온 사람이에요. 가족이 집단적으로 넘어온 게 아니고 그냥 다 혼자들 넘어온 거예요."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잠시 몸을 피한다는 게 그만 가족과의 생이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 없는 남쪽 생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외롭고 고달팠습니다.

<인터뷰> 이정육(77살/황해도 연백 출신) : "단신으로 나온 사람들 중에는 제일 나이 어린 세대거든요 지금 77살 먹은 사람이 제일 어린사람들이에요. 76만 돼도 부모하고 같이 나왔어요. 우리가. 참 부모 생각도 많이 나고 고생도 참 많이 했죠."

어렵사리 가족을 꾸려 60년 세월을 살아왔지만 고향을 향한 그리움은 갈수록 커져갑니다.

인생 황혼에 접어든 이들의 마지막 소원은 북측의 가족을 한번이라도 만나보는 것입니다.

<녹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전부다 말할 수 없는 거에요."

본격적인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처음 열린 건 지난 2000년 8월입니다.

남북 각각 100가족 씩, 총 969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헤어진 가족을 분단 반세기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지금까지 총 18차례 열렸습니다.

한 번에 천명씩 만 8천여 명의 이산가족이 직접 헤어진 가족을 만났습니다.

정부별로는 김대중 정부 시절 6번, 노무현 정부 시절 10번이 열렸습니다.

한해에 두벌 꼴이던 상봉행사는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4년 간 두 차례 밖에 열리지 못했습니다.

2005년에 시작된 화상상봉으로 3년간 총 8천여 명이 화면으로나마 재회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현 정부 들어서는 화상상봉 역시 중단됐습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 정례화를 목표로 지난 2008년 문을 연 금강산 면회소에선 두 차례 상봉행사가 열렸을 뿐입니다.

지금은 남북관계 악화에 따른 금강산 관광중단으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산가족 행사가 열리지 못하면서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애가 타들어갑니다.

<인터뷰> 이정육(77살/황해도 연백 출신) : "매일 날짜를 줘서 오늘은 누구 만나고 내일은 누구 만나고 하는 식으로 해도 차례가 올지 안 올지 모르죠. 죽기 전에 그렇게 해도 차례가 올지 안 올지 모른다는 얘기에요. 급하다는 얘기에요."

1988년부터 지금까지 정부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12만 8천명에 이릅니다.

2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신청을 해놓은 사람 가운데서도 1/3인 4만 8천여 명은 마지막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지금은 8만 명 정도가 남아 재회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남아있는 신청자 역시 대부분 일흔을 넘긴 고령이라는 겁니다.

90살 이상 6.5%, 80살 이상 37%, 70살 이상이 34%입니다.

상봉 신청을 해놓고 숨진 사람은 지난 2004년, 2만 3천여 명에 7년 만에 4만 8천 명으로 2배 넘게 늘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10명꼴로 숨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심형기(77살/황해도 연백 출신) : "형님이 돌아가셨어요. 5년 전에, 그런데 그것도 순번 기다리려면 언제될지 모르고 기다리다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니까."

지난달 31일,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찾았습니다.

통일부 장관이 이산가족 상봉행사 창구인 대한적십자사를 직접 찾은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날의 대화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녹취> 류우익(통일부 장관) : "이산가족 상봉이 금년에 안 이뤄진 거에 대해서 굉장히 섭섭해 하고 계신 거 같아요. 같이 노력해서 이뤄질 수 있도록 그렇게 노력을 함께 했으면 합니다."

이에 앞서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다면 대북 인도적 지원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인터뷰> 천영우(청와대 외교안보수석) :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대북 인도적 지원에서 진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바라보는 남북의 시각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우리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상봉인원 확대와 상봉 정례화를 줄기차게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쌀과 비료 지원을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활용해왔습니다.

이러다보니 이산가족 상봉행사 역시 남북관계와 정치상황에 연계돼왔습니다.

남북관계가 출렁일 때마다 이산가족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습니다.

특히 지난해에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로 남북관계가 6.25 전쟁 이후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이산가족 상봉 성사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습니다.

따라서 정부의 이번 상봉행사 추진은 이산가족들의 인도주의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물론 악화일로로 치달았던 남북관계를 풀어낼 실마리도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남북관계가 어려웠을 때 돌파구 역할을 하는 이런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대단히 의미가 있다 이렇게 봐야 될 것이고. 실질적으로 현재 남북관계가 천안함 연평도 사태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풀어낼 수 있는 어떤 우회적 수단으로써 이산가족 상봉문제가 매우 중요한 소재로써 대두될 수 있다, 그 부분은 앞으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판단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올 가을 늦었지만 이산가족 상봉이 한번 이뤄지고 내년에 좀 더 정례화된 이산가족 상봉의 어떤 틀들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또 그렇게 되는 것으로 남북 당국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 부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부의 이산가족 상봉 추진은 무척 반가운 소식입니다.

하루 빨리 상봉행사가 성사되고, 더 나아가 상봉 정례화까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8만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들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산가족들이 마지막 한을 풀 수 있도록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고, 더불어 북한도 이런 노력에 화답해 주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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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한반도] “시간이 없어요”
    • 입력 2011-11-05 10:56:05
    남북의 창
<앵커 멘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1월 5일 토요일, 남북의 창 이현주입니다. 먼저 남북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보는 <이슈 앤 한반도>입니다. 통일부 장관이 교체된 이후 남북관계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에 대한 5.24 제재조치가 완화된데 이어 인도적인 사업도 실마리가 풀려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강해보입니다. 상봉행사 재개를 기다리고 있는 이산가족, 특히 고령의 1세대들에게는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다현 리포터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6.25전쟁은 무려 삼백만 명이 죽거나 다친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습니다. 생이별을 한 이산가족도 천만 명이나 됐는데요. 전쟁이 끝난 지 60년 가까이 흐르면서 이산가족 대부분은 가슴에 한을 품은 채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의지만 있다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남아있는 이산가족들의 마지막 희망, 가족과의 재회입니다. 6.25 전쟁 때 고향인 황해도 연백을 떠난 세 친구. 까까머리 중학생들은 그사이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됐습니다. <인터뷰> 이정육(77살/황해도 연백 출신) : "여기 세 친구들이 전부다 중학교 동창이고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다 넘어온 사람이에요. 가족이 집단적으로 넘어온 게 아니고 그냥 다 혼자들 넘어온 거예요."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잠시 몸을 피한다는 게 그만 가족과의 생이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 없는 남쪽 생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외롭고 고달팠습니다. <인터뷰> 이정육(77살/황해도 연백 출신) : "단신으로 나온 사람들 중에는 제일 나이 어린 세대거든요 지금 77살 먹은 사람이 제일 어린사람들이에요. 76만 돼도 부모하고 같이 나왔어요. 우리가. 참 부모 생각도 많이 나고 고생도 참 많이 했죠." 어렵사리 가족을 꾸려 60년 세월을 살아왔지만 고향을 향한 그리움은 갈수록 커져갑니다. 인생 황혼에 접어든 이들의 마지막 소원은 북측의 가족을 한번이라도 만나보는 것입니다. <녹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전부다 말할 수 없는 거에요." 본격적인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처음 열린 건 지난 2000년 8월입니다. 남북 각각 100가족 씩, 총 969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헤어진 가족을 분단 반세기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지금까지 총 18차례 열렸습니다. 한 번에 천명씩 만 8천여 명의 이산가족이 직접 헤어진 가족을 만났습니다. 정부별로는 김대중 정부 시절 6번, 노무현 정부 시절 10번이 열렸습니다. 한해에 두벌 꼴이던 상봉행사는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4년 간 두 차례 밖에 열리지 못했습니다. 2005년에 시작된 화상상봉으로 3년간 총 8천여 명이 화면으로나마 재회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현 정부 들어서는 화상상봉 역시 중단됐습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 정례화를 목표로 지난 2008년 문을 연 금강산 면회소에선 두 차례 상봉행사가 열렸을 뿐입니다. 지금은 남북관계 악화에 따른 금강산 관광중단으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산가족 행사가 열리지 못하면서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애가 타들어갑니다. <인터뷰> 이정육(77살/황해도 연백 출신) : "매일 날짜를 줘서 오늘은 누구 만나고 내일은 누구 만나고 하는 식으로 해도 차례가 올지 안 올지 모르죠. 죽기 전에 그렇게 해도 차례가 올지 안 올지 모른다는 얘기에요. 급하다는 얘기에요." 1988년부터 지금까지 정부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12만 8천명에 이릅니다. 2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신청을 해놓은 사람 가운데서도 1/3인 4만 8천여 명은 마지막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지금은 8만 명 정도가 남아 재회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남아있는 신청자 역시 대부분 일흔을 넘긴 고령이라는 겁니다. 90살 이상 6.5%, 80살 이상 37%, 70살 이상이 34%입니다. 상봉 신청을 해놓고 숨진 사람은 지난 2004년, 2만 3천여 명에 7년 만에 4만 8천 명으로 2배 넘게 늘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10명꼴로 숨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심형기(77살/황해도 연백 출신) : "형님이 돌아가셨어요. 5년 전에, 그런데 그것도 순번 기다리려면 언제될지 모르고 기다리다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니까." 지난달 31일,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찾았습니다. 통일부 장관이 이산가족 상봉행사 창구인 대한적십자사를 직접 찾은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날의 대화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녹취> 류우익(통일부 장관) : "이산가족 상봉이 금년에 안 이뤄진 거에 대해서 굉장히 섭섭해 하고 계신 거 같아요. 같이 노력해서 이뤄질 수 있도록 그렇게 노력을 함께 했으면 합니다." 이에 앞서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다면 대북 인도적 지원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인터뷰> 천영우(청와대 외교안보수석) :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대북 인도적 지원에서 진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바라보는 남북의 시각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우리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상봉인원 확대와 상봉 정례화를 줄기차게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쌀과 비료 지원을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활용해왔습니다. 이러다보니 이산가족 상봉행사 역시 남북관계와 정치상황에 연계돼왔습니다. 남북관계가 출렁일 때마다 이산가족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습니다. 특히 지난해에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로 남북관계가 6.25 전쟁 이후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이산가족 상봉 성사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습니다. 따라서 정부의 이번 상봉행사 추진은 이산가족들의 인도주의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물론 악화일로로 치달았던 남북관계를 풀어낼 실마리도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남북관계가 어려웠을 때 돌파구 역할을 하는 이런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대단히 의미가 있다 이렇게 봐야 될 것이고. 실질적으로 현재 남북관계가 천안함 연평도 사태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풀어낼 수 있는 어떤 우회적 수단으로써 이산가족 상봉문제가 매우 중요한 소재로써 대두될 수 있다, 그 부분은 앞으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판단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올 가을 늦었지만 이산가족 상봉이 한번 이뤄지고 내년에 좀 더 정례화된 이산가족 상봉의 어떤 틀들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또 그렇게 되는 것으로 남북 당국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 부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부의 이산가족 상봉 추진은 무척 반가운 소식입니다. 하루 빨리 상봉행사가 성사되고, 더 나아가 상봉 정례화까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8만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들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산가족들이 마지막 한을 풀 수 있도록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고, 더불어 북한도 이런 노력에 화답해 주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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