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한 아파트서 7명이나 자살…무슨 일이

입력 2012.09.11 (09:11) 수정 2012.09.1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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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어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는 소식 전해 드렸는데요.

주민들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 넉 달 동안 무려 일곱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요.

김기흥 기자,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더 생길 수 있다는 점이죠?

<기자 멘트>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이 같은 비극적인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건데요.

문제의 아파트에선 넉 달 동안 20대 청년부터 90대 노인까지 모두 7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다양한 연령대가 살고 있는 아파트 하지만,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요.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었던 어제 취재진이 아파트를 찾아가봤습니다.

<리포트>

서울에 위치한 한 아파트

지난달 3일 새벽 5시 쯤, 이 아파트 13층에 사는 94살 이 모 할머니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녹취> 유가족(음성변조) : “(아들이) ‘할머니, 할머니’ 하면서 (저를) 깨우더라고요. 그래서 내려다보니까 저 아래 떨어져 있는 거예요.”

그로부터 나흘 뒤, 98살 차모 할머니가 6층 복도에서 뛰어내렸는데요.

이 모 할머니와 오랜 친구 사이였다고 합니다.

<녹취>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그 할머니가 떨어진 거 보고 ‘아, 나도 저렇게 하면 죽겠다.’고 그 얘기를 많이 했대요. 나이가 많으니까….”

두 할머니의 잇따른 자살, 그런데 최근 이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녹취>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우리 000동에서 네 사람 죽었어요. 3개월 사이에. 우리 옆집 0호 아저씨가 목 매 죽었지, 방 안에서, 한 3~4개월 전에. 2개월 사이에 젊은 남자 한 명 죽었지.”

지난 5월 1일, 35살 김모 씨가 집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데 이어, 같은 달, 63살 손모 씨와 71살 이모 씨도 집안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은 노인들 뿐만이 아니었는데요.

지난 7월, 22살 김모 씨가 15층까지 올라가 투신했고, 지난달엔 21살 이 모씨가 13층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5월부터 4개월 동안, 아파트 주민 가운데 무려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이웃의 자살 소식에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는데요.

<녹취>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난리가 났어요. 이 동네가 지금.”

<녹취>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떨어져서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요. 무서워요.”

끊이지 않는 자살 행렬,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녹취>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어려운 환경에서 모든 게 폭삭 망한 다음에 오는 곳이 마지막 여기거든요. 갈 곳 없는 막다른 골목이 여기이고 그러다 보니까 죽음을 선택하지 않나….”

이 아파트는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제공한 영구임대아파트입니다.

현재 1천 7백여 가구 4천 2백여 명이 살고 있는데요.

주민 가운데 절반이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으로, 별다른 소득 없이 정부 지원금만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은 생활고와 질병의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녹취>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지난달에) 총각 하나가 또 떨어져 죽었어요. 빚이 많아서 자살했다고 하더라고요”

<녹취>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이 모 할머니가) 아팠어요. 그래서 도우미가 와서 많이 도와주고, 당신 몸이 아프니까 그런(자살할) 마음을 먹었어요.”

빈곤은 떠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24살 김모 씨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큰 언니를 돌보며 살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최근 기초수급 대상자에서 제외돼 월 50만원의 수급비를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녹취> 김OO(임대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둘째) 언니가 구청에서 잠깐 아르바이트 식으로 3개월인가 일하게 됐는데 그것 때문에 (수급 대상이) 안 된다고 해요.”

김 씨도 2년 전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 생계활동이 어려운 상황, 정부 지원 없이 아픈 언니를 돌 볼 생각에 앞날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녹취> 김00 (임대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그냥 언니 의료비, 기저귀랑 죽값만이라도 어느 정도 지원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3년 전 아내와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윤모 씨의 사정도 마찬가지,

<녹취> 윤OO(임대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보통 한달에 통장 보면 (수급비가) 50만 원 되었는데 이번에 깎여서 22만 5천 원이더라고요”

월세에 관리비까지 합해 20만원 가량을 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다고 합니다.

<녹취> 윤OO(임대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생활비가 모자라지 않아요?") "모자라지. 관리비도 밀려요. 나도 사실 15층까지 올라간 적이 있어요. 한번 떨어져볼까 하고,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주민들은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는 셈인데요.

한 주민은 서울 시청 홈페이지에 더 이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연이는 자살 사건이 불거지자 관할 구청은 뒤늦게 주민들의 생활 실태 조사에 나섰는데요.

하지만 지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녹취> 관할 구청 관계자(음성변조) : “(수급자) 이외의 사람들까지 다 관리하기는 인력이나 예산 자체가 돈이 없어서 임대 아파트 전체를 다 관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인터뷰> 남기철(교수/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 “특히 최근 몇 년 들어서는 빈곤층들에게 주어지는 복지 급여를 도덕적 해이를 막는다는 측면에서 지나치게 규제하고 행정적인 장벽 같은 것이 높아졌습니다. 사회가 조금 더 복지 노력이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조금 더 안타까운 그런 특징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영구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은 전국에 20만 가구,

사회의 무관심 속에 삶의 벼랑끝으로까지 내몰린 사람들에게 더 늦기 전에 희망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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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한 아파트서 7명이나 자살…무슨 일이
    • 입력 2012-09-11 09:11:28
    • 수정2012-09-11 09: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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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어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는 소식 전해 드렸는데요. 주민들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 넉 달 동안 무려 일곱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요. 김기흥 기자,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더 생길 수 있다는 점이죠? <기자 멘트>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이 같은 비극적인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건데요. 문제의 아파트에선 넉 달 동안 20대 청년부터 90대 노인까지 모두 7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다양한 연령대가 살고 있는 아파트 하지만,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요.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었던 어제 취재진이 아파트를 찾아가봤습니다. <리포트> 서울에 위치한 한 아파트 지난달 3일 새벽 5시 쯤, 이 아파트 13층에 사는 94살 이 모 할머니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녹취> 유가족(음성변조) : “(아들이) ‘할머니, 할머니’ 하면서 (저를) 깨우더라고요. 그래서 내려다보니까 저 아래 떨어져 있는 거예요.” 그로부터 나흘 뒤, 98살 차모 할머니가 6층 복도에서 뛰어내렸는데요. 이 모 할머니와 오랜 친구 사이였다고 합니다. <녹취>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그 할머니가 떨어진 거 보고 ‘아, 나도 저렇게 하면 죽겠다.’고 그 얘기를 많이 했대요. 나이가 많으니까….” 두 할머니의 잇따른 자살, 그런데 최근 이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녹취>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우리 000동에서 네 사람 죽었어요. 3개월 사이에. 우리 옆집 0호 아저씨가 목 매 죽었지, 방 안에서, 한 3~4개월 전에. 2개월 사이에 젊은 남자 한 명 죽었지.” 지난 5월 1일, 35살 김모 씨가 집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데 이어, 같은 달, 63살 손모 씨와 71살 이모 씨도 집안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은 노인들 뿐만이 아니었는데요. 지난 7월, 22살 김모 씨가 15층까지 올라가 투신했고, 지난달엔 21살 이 모씨가 13층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5월부터 4개월 동안, 아파트 주민 가운데 무려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이웃의 자살 소식에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는데요. <녹취>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난리가 났어요. 이 동네가 지금.” <녹취>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떨어져서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요. 무서워요.” 끊이지 않는 자살 행렬,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녹취>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어려운 환경에서 모든 게 폭삭 망한 다음에 오는 곳이 마지막 여기거든요. 갈 곳 없는 막다른 골목이 여기이고 그러다 보니까 죽음을 선택하지 않나….” 이 아파트는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제공한 영구임대아파트입니다. 현재 1천 7백여 가구 4천 2백여 명이 살고 있는데요. 주민 가운데 절반이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으로, 별다른 소득 없이 정부 지원금만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은 생활고와 질병의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녹취>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지난달에) 총각 하나가 또 떨어져 죽었어요. 빚이 많아서 자살했다고 하더라고요” <녹취> 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이 모 할머니가) 아팠어요. 그래서 도우미가 와서 많이 도와주고, 당신 몸이 아프니까 그런(자살할) 마음을 먹었어요.” 빈곤은 떠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24살 김모 씨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큰 언니를 돌보며 살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최근 기초수급 대상자에서 제외돼 월 50만원의 수급비를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녹취> 김OO(임대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둘째) 언니가 구청에서 잠깐 아르바이트 식으로 3개월인가 일하게 됐는데 그것 때문에 (수급 대상이) 안 된다고 해요.” 김 씨도 2년 전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 생계활동이 어려운 상황, 정부 지원 없이 아픈 언니를 돌 볼 생각에 앞날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녹취> 김00 (임대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그냥 언니 의료비, 기저귀랑 죽값만이라도 어느 정도 지원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3년 전 아내와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윤모 씨의 사정도 마찬가지, <녹취> 윤OO(임대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보통 한달에 통장 보면 (수급비가) 50만 원 되었는데 이번에 깎여서 22만 5천 원이더라고요” 월세에 관리비까지 합해 20만원 가량을 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다고 합니다. <녹취> 윤OO(임대아파트 주민/음성변조) : ("생활비가 모자라지 않아요?") "모자라지. 관리비도 밀려요. 나도 사실 15층까지 올라간 적이 있어요. 한번 떨어져볼까 하고,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주민들은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는 셈인데요. 한 주민은 서울 시청 홈페이지에 더 이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연이는 자살 사건이 불거지자 관할 구청은 뒤늦게 주민들의 생활 실태 조사에 나섰는데요. 하지만 지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녹취> 관할 구청 관계자(음성변조) : “(수급자) 이외의 사람들까지 다 관리하기는 인력이나 예산 자체가 돈이 없어서 임대 아파트 전체를 다 관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인터뷰> 남기철(교수/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 “특히 최근 몇 년 들어서는 빈곤층들에게 주어지는 복지 급여를 도덕적 해이를 막는다는 측면에서 지나치게 규제하고 행정적인 장벽 같은 것이 높아졌습니다. 사회가 조금 더 복지 노력이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조금 더 안타까운 그런 특징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영구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은 전국에 20만 가구, 사회의 무관심 속에 삶의 벼랑끝으로까지 내몰린 사람들에게 더 늦기 전에 희망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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