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이라도 더 보면…” 납북 어선 ‘수원 33호’ 최영철 씨 사연

입력 2014.02.20 (15:08) 수정 2014.02.2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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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피랍된 수원 33호 최영철씨 가족 사연 특수 이산가족 상봉 “할 말은 많은데,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는 전후 납북자 가족 등 이른바 ‘특수 이산가족’5명도 포함돼 있다. 1974년 서해에서 고기잡이 도중 북한 함정에 피랍된 수원 33호 최영철씨와 1972년 피랍된 오대양 61호 박양수씨가 그들이다. 이 가운데 최영철씨의 형님인 최선득씨를 지난 18일 만나봤다.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할 말은 많은데..”

-충남 청양군 정산면에 사는 71살 최선득씨는 상봉을 앞두고 이런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최씨는 이른바 특수 이산가족이다. 이번 상봉에서 40년 넘게 헤어져 얼굴도 희미한 동생 62살 최영철씨를 만날 예정이다. 영철씨는 전후 납북자이다.

-지난 1974년 2월 15일,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최영철씨가 탄 고기잡이배가 북한 함정에 의해 피랍됐다. 당시 국방부 발표를 보면, 2월 15일 오전 10시쯤 서해 백령도 서쪽 48km 공해상에서 어로작업 중이던 수원 32호와 33호에 대해 북한 함정이 함포 사격을 가했다. 포격으로 11명이 탄 수원 32호는 침몰됐고, 14명이 탄 수원 33호는 납치돼 끌려가고 있다는 무전보고를 날린 뒤 소식이 끊겼다. 최영철씨는 이 수원33호에 타고 있었다. 당시 해군 구조함정이 출동해 심한 비바람과 높은 파도를 무릅쓰고 수색을 벌였으나, 실종된 선원은 한명도 찾지 못했고 수원33호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동생 영철씨 사진 보는 최선득씨

-최영철 가족은 4남 3녀의 7남매로, 영철씨가 셋째 아들이고, 선득씨는 장남이다. 영철씨가 납북됐을 당시 큰아들 선득씨는 동생이 납치된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납북된 선원들 가족들이 모임을 만들고, 이런 사실을 알려줘서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영철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과 부산 등 객지를 돌면서 다방 주방일과 목수일 등을 했다. 장차 외항선의 주방장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요리학원을 다녔으며, 피랍 당시에도 돈을 모으기 위해 고기잡이 배를 탄 것이라고 한다.


 최영철씨 과거 흑백 사진

-동생 영철씨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정부도 인정해 전후 납북자로 분류했고, 영철씨가 북한에서 농기계를 수리하고 있다는 소식을 어렴풋이 들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88년에, 아버지는 98년에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평소 별 말씀이 없으셨지만, 어머니는 수시로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영철씨가 하루 속히 돌아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고 한다. 선득씨는 이번 상봉 행사장에 부모님 환갑 때 찍은 사진을 갖고 간다고 했다. 40년 만에 만나는 동생 영철씨가 가장 먼저 물어볼 말은 당연히 부모님 소식일 것이기 때문에 생전에 찍은 사진이라도 보여줄 작정이라고 말했다. 선득씨는 막상 동생 영철씨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걱정이란다. “내가 충청도 사람이라 말주변이 없슈. 반갑다는 인사 정도는 허것쥬.. 하고 싶은 말은 무척 많은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우리는 언론의 자유가 있지만 북쪽은 그게 아니잖유. 할 말 안할 말을 가려서 혀야 될턴디...“

-최선득씨는 19일 속초 한화콘도로 가기 하루 앞서 서울에 왔다. 동생 영수(50살)씨와 함께, 40년 만에 만나는 영철씨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선득씨는 40년 동안 동생 영철씨가 얼마나 변했는지 몰라 답답했다. “생필품이랑 점퍼, 내의 등을 살려고 하는데,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지 몰라 답답혀유. 덩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어디 사는지 그런 정보를 사전에 알려주면 좋것는디... 강원도에 눈이 많이 왔다는디 함경북도나 어디 원거리에서 온다면 눈이 쌓여서 제대로 올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유“

-최선득씨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이렇게 동생을 만날 수 있도록 당국이 협조해줘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런디 나이가 70살 넘으면 언제 죽을지 몰라유. 내가 죽기 전에 한두번이라도 더 만났으면 좋것슈. 상봉 행사가 더 자주 있었으면 좋것슈.“

▶이번 상봉에는 지난 1972년 12월 서해상에서 오대양 61호를 타고 홍어잡이를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피랍됐던 박양수씨도 남측 가족들을 만날 예정이다. 그러나, 부산에 사는 박씨의 가족들은 한사코 언론 접촉을 꺼려, 인터뷰는 성사되지 못했다.

-현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전시 납북자는 8만여 명, 전후 납북자는 510명 정도, 그리고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는 5백여 명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국군포로 20명, 전시 납북자 10명, 전후 납북자 20명 등 모두 50명의 명단을 북측에 통보하고 생사확인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북측은 2명은 생존해 있고, 17명은 숨졌으며 31명은 확인 불능이라고 통보해왔다.

-국군포로 이기탁씨의 경우, 이씨 본인은 이미 사망했고, 형수와 조카 등 유가족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남측 가족들이 상봉을 원치 않아 무산됐다. -피랍됐던 수원 33호의 최영철씨와 오대양 61호의 박양수씨 외에도 전쟁 당시 북한군에 끌려간 대장장이 등 전시 납북자 3명의 가족들이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 그리운 가족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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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2-20 15:08:40
    • 수정2014-02-20 15:45:08
    사회
74년 피랍된 수원 33호 최영철씨 가족 사연 특수 이산가족 상봉 “할 말은 많은데,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는 전후 납북자 가족 등 이른바 ‘특수 이산가족’5명도 포함돼 있다. 1974년 서해에서 고기잡이 도중 북한 함정에 피랍된 수원 33호 최영철씨와 1972년 피랍된 오대양 61호 박양수씨가 그들이다. 이 가운데 최영철씨의 형님인 최선득씨를 지난 18일 만나봤다.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할 말은 많은데..” -충남 청양군 정산면에 사는 71살 최선득씨는 상봉을 앞두고 이런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최씨는 이른바 특수 이산가족이다. 이번 상봉에서 40년 넘게 헤어져 얼굴도 희미한 동생 62살 최영철씨를 만날 예정이다. 영철씨는 전후 납북자이다. -지난 1974년 2월 15일,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최영철씨가 탄 고기잡이배가 북한 함정에 의해 피랍됐다. 당시 국방부 발표를 보면, 2월 15일 오전 10시쯤 서해 백령도 서쪽 48km 공해상에서 어로작업 중이던 수원 32호와 33호에 대해 북한 함정이 함포 사격을 가했다. 포격으로 11명이 탄 수원 32호는 침몰됐고, 14명이 탄 수원 33호는 납치돼 끌려가고 있다는 무전보고를 날린 뒤 소식이 끊겼다. 최영철씨는 이 수원33호에 타고 있었다. 당시 해군 구조함정이 출동해 심한 비바람과 높은 파도를 무릅쓰고 수색을 벌였으나, 실종된 선원은 한명도 찾지 못했고 수원33호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동생 영철씨 사진 보는 최선득씨 -최영철 가족은 4남 3녀의 7남매로, 영철씨가 셋째 아들이고, 선득씨는 장남이다. 영철씨가 납북됐을 당시 큰아들 선득씨는 동생이 납치된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납북된 선원들 가족들이 모임을 만들고, 이런 사실을 알려줘서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영철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과 부산 등 객지를 돌면서 다방 주방일과 목수일 등을 했다. 장차 외항선의 주방장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요리학원을 다녔으며, 피랍 당시에도 돈을 모으기 위해 고기잡이 배를 탄 것이라고 한다.  최영철씨 과거 흑백 사진 -동생 영철씨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정부도 인정해 전후 납북자로 분류했고, 영철씨가 북한에서 농기계를 수리하고 있다는 소식을 어렴풋이 들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88년에, 아버지는 98년에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평소 별 말씀이 없으셨지만, 어머니는 수시로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영철씨가 하루 속히 돌아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고 한다. 선득씨는 이번 상봉 행사장에 부모님 환갑 때 찍은 사진을 갖고 간다고 했다. 40년 만에 만나는 동생 영철씨가 가장 먼저 물어볼 말은 당연히 부모님 소식일 것이기 때문에 생전에 찍은 사진이라도 보여줄 작정이라고 말했다. 선득씨는 막상 동생 영철씨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걱정이란다. “내가 충청도 사람이라 말주변이 없슈. 반갑다는 인사 정도는 허것쥬.. 하고 싶은 말은 무척 많은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우리는 언론의 자유가 있지만 북쪽은 그게 아니잖유. 할 말 안할 말을 가려서 혀야 될턴디...“ -최선득씨는 19일 속초 한화콘도로 가기 하루 앞서 서울에 왔다. 동생 영수(50살)씨와 함께, 40년 만에 만나는 영철씨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선득씨는 40년 동안 동생 영철씨가 얼마나 변했는지 몰라 답답했다. “생필품이랑 점퍼, 내의 등을 살려고 하는데,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지 몰라 답답혀유. 덩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어디 사는지 그런 정보를 사전에 알려주면 좋것는디... 강원도에 눈이 많이 왔다는디 함경북도나 어디 원거리에서 온다면 눈이 쌓여서 제대로 올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유“ -최선득씨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이렇게 동생을 만날 수 있도록 당국이 협조해줘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런디 나이가 70살 넘으면 언제 죽을지 몰라유. 내가 죽기 전에 한두번이라도 더 만났으면 좋것슈. 상봉 행사가 더 자주 있었으면 좋것슈.“ ▶이번 상봉에는 지난 1972년 12월 서해상에서 오대양 61호를 타고 홍어잡이를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피랍됐던 박양수씨도 남측 가족들을 만날 예정이다. 그러나, 부산에 사는 박씨의 가족들은 한사코 언론 접촉을 꺼려, 인터뷰는 성사되지 못했다. -현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전시 납북자는 8만여 명, 전후 납북자는 510명 정도, 그리고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는 5백여 명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국군포로 20명, 전시 납북자 10명, 전후 납북자 20명 등 모두 50명의 명단을 북측에 통보하고 생사확인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북측은 2명은 생존해 있고, 17명은 숨졌으며 31명은 확인 불능이라고 통보해왔다. -국군포로 이기탁씨의 경우, 이씨 본인은 이미 사망했고, 형수와 조카 등 유가족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남측 가족들이 상봉을 원치 않아 무산됐다. -피랍됐던 수원 33호의 최영철씨와 오대양 61호의 박양수씨 외에도 전쟁 당시 북한군에 끌려간 대장장이 등 전시 납북자 3명의 가족들이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 그리운 가족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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