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꽃의 전쟁…벚꽃의 원산지는?

입력 2014.04.11 (13:54) 수정 2014.04.1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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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인 도쿄 우에노 공원에는 벚꽃을 구경하려는 일본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꽃구경과는 풍경이 조금 다릅니다. 일본어로 ‘꽃놀이’를 뜻하는 ‘하나미(花見, はなみ)’ 문화가 일본인들의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은 것 같아보였습니다. 벚나무 아래에 앉아 담소도 나누며 벚꽃을 즐기는 모습이 풍경과 어우러집니다. 일본인들은 벚꽃을 일본의 정신과 결부시키기도 합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벚꽃 자체에 대한 애정은 없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나라에서 벚꽃은 일본 꽃이라는 인식 때문에 일제 강점기 이후 외면을 받아왔습니다. 실제로 지난 1980년에는 일본이 일제 강점기 때 창경궁에 심은 일본 벚나무 2천여 그루를 궁궐의 품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창경궁 복원 과정에서 제거하기도 했습니다.

네, 우리나라에 심어진 벚나무는 대부분이 일본인들이 심은 벚나무가 맞습니다. 그런데 벚꽃의 원산지를 따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한국의 여러 식물학자들은 과거 일본인이 제주도에 있는 왕벚나무를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 일본 벚나무의 시초라고 주장합니다. 학계에서는 이미 벚꽃의 원산지에 대해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식물학자들이 주축이 됐고, 미국 농림부도 관심을 가지고 벚나무의 원산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은 일본의 벚꽃 식물학자인 일본 산림과학원 소속 도시오 가츠키 박사를 만났습니다. 가츠키 박사는 일본 벚꽃 품종은 ‘소메이 요시노’로 제주의 왕벚나무와는 다른 종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본에 ‘에도히간’과 ‘오오시마 자쿠라’를 인위적으로 교배해 가장 예쁜 품종인 지금의 벚꽃 ‘요시노’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가츠키 박사는 상당히 친절하게 취재에 응했지만 핵심적인 질문은 영리하게 피해갔습니다. 벚나무의 자생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여전히 찾고 있다’며 에둘러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식물학자들의 입장은 다릅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소속 김찬수 박사는 일본 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라고 주장하며 다음의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첫번째는 제주도에는 자생지가 있다는 겁니다. 제주 왕벚나무 자생지는 1908년 제주도를 방문한 프랑스인 신부 '타케'가 한라산 해발 500~600m에서 발견해 학계에 보고됐고,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원산지를 판단하는 데는 자생 여부가 중요합니다. 자연적으로 자랐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다른 곳에서 가져와 심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도에는 200년 이상된 벚나무부터 어린 벚나무까지 다양한 왕벚나무 200여 그루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반면, 일본에서는 자생지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일제 강점기 때 발간된 문헌에는 일본의 식물학자들이 일본 벚나무의 원산지를 제주도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1939년 조선총독부에서도 우리나라 전역을 직접 답사해 연구 결과를 발표한 ‘조선삼림식물편’에서도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라고 밝히는 등 이같은 내용은 여러 일본 문헌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1989년, 일본 쓰쿠바대에서 나온 농림연보에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뱃사람들이 벚나무를 제주도로부터 가져와 일본인이 숭배하던 곤겐이라는 신에게 헌상했다'는 내용의 추측도 있습니다. 또, 일각에서는 백제시대 승려들이 일본에 불교문화를 전파하면서 벚나무도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삼국유사에 ‘벚나무로 만든 통’이라는 뜻의 ‘앵통(櫻桶)’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팔만대장경의 목판 역시 벚나무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무리한 추측도 아닙니다.

다음으로는 변이의 폭도 중요합니다. 제주 왕벚나무는 인위적인 교배가 아니라 야생에서 수대에 걸쳐 번식을 해왔기 때문에 변이의 폭이 큽니다. 한 부모 밑에 태어난 형제들이 생김새가 다양하듯이 말이죠. 반면 일본 벚나무는 변이도 다양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의 벚나무를 만든 뒤 복제했기 때문에 생김새가 똑같고 왕벚나무의 변이 폭 안에 일본 벚나무가 포함된다고 합니다.



DNA 분석 결과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9년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한국에 있는 벚나무가 일본에서 가져와 심은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염기서열 분석 과정에서 일본의 벚나무가 제주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의 일종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주 왕벚나무의 DNA와 일치한다는 겁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농림부 소속 박사들이 일본과 한국, 미국에 있는 벚나무 시료 82개를 채취해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일본 벚나무가 한국 제주 왕벚나무의 변이종 가운데 하나로 밝혀졌습니다. 바로 ‘Characterization of wild Prunus yedoensis analyzed by inter-simple sequence repeat and chloroplast DNA’라는 제목의 논문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에는 한 가지 비밀이 더 있습니다.<<<<논문 발표 직전에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벚나무는 다른 종이라고 결론이 뒤바뀐 겁니다. “한국에 자생하고 있는 왕벚나무는 일본에서 잡종교배한 요시노 벚꽃과는 다르다. (P.yedoensis native to Korea can be considered different from yoshino cherry of hybrid origin from Japan.)”라고요. 함께 연구를 진행해왔던 연구원들조차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연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정은주 박사는 결론이 바뀌기 전 원본을 제시하며, 잘못된 결론 때문에 부끄럽게도 이 논문이 일본쪽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도 이 논문을 인용해 ‘일본과 한국의 벚나무는 뚜렷이 다른 종으로 분류된다. (Prunus yedoensis concluded that the trees native to these two places can be categorized as distinct species.)’라는 일본측에 유리한 설명이 적혀있고요. 정 박사는 그 사실을 뒤집기 위해 연구 내용을 보충해 새 논문 발표를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지금도 벚나무를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우호의 상징으로 팬더를 선물하듯 일본은 벚나무를 선물하고 있죠. 일본이 벚나무와 함께 벚꽃놀이 문화를 전파하면서 얻는 부가가치는 어마어마합니다. 한편, 혹자는 벚꽃의 원산지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민족적이고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벚꽃을 제대로 알면 제대로 즐길 수 있고, 애정도 커집니다. 그러다보면 수년째 평행선을 긋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입장 차를 조금씩 좁힐 수 있지 않을까요. 작은 갈등들을 하나씩 해결하다보면 나아가 한일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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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4-11 13:54:12
    • 수정2014-04-11 22:13:13
    취재후·사건후
일본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인 도쿄 우에노 공원에는 벚꽃을 구경하려는 일본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꽃구경과는 풍경이 조금 다릅니다. 일본어로 ‘꽃놀이’를 뜻하는 ‘하나미(花見, はなみ)’ 문화가 일본인들의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은 것 같아보였습니다. 벚나무 아래에 앉아 담소도 나누며 벚꽃을 즐기는 모습이 풍경과 어우러집니다. 일본인들은 벚꽃을 일본의 정신과 결부시키기도 합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벚꽃 자체에 대한 애정은 없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나라에서 벚꽃은 일본 꽃이라는 인식 때문에 일제 강점기 이후 외면을 받아왔습니다. 실제로 지난 1980년에는 일본이 일제 강점기 때 창경궁에 심은 일본 벚나무 2천여 그루를 궁궐의 품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창경궁 복원 과정에서 제거하기도 했습니다.

네, 우리나라에 심어진 벚나무는 대부분이 일본인들이 심은 벚나무가 맞습니다. 그런데 벚꽃의 원산지를 따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한국의 여러 식물학자들은 과거 일본인이 제주도에 있는 왕벚나무를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 일본 벚나무의 시초라고 주장합니다. 학계에서는 이미 벚꽃의 원산지에 대해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식물학자들이 주축이 됐고, 미국 농림부도 관심을 가지고 벚나무의 원산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은 일본의 벚꽃 식물학자인 일본 산림과학원 소속 도시오 가츠키 박사를 만났습니다. 가츠키 박사는 일본 벚꽃 품종은 ‘소메이 요시노’로 제주의 왕벚나무와는 다른 종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본에 ‘에도히간’과 ‘오오시마 자쿠라’를 인위적으로 교배해 가장 예쁜 품종인 지금의 벚꽃 ‘요시노’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가츠키 박사는 상당히 친절하게 취재에 응했지만 핵심적인 질문은 영리하게 피해갔습니다. 벚나무의 자생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여전히 찾고 있다’며 에둘러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식물학자들의 입장은 다릅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소속 김찬수 박사는 일본 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라고 주장하며 다음의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첫번째는 제주도에는 자생지가 있다는 겁니다. 제주 왕벚나무 자생지는 1908년 제주도를 방문한 프랑스인 신부 '타케'가 한라산 해발 500~600m에서 발견해 학계에 보고됐고,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원산지를 판단하는 데는 자생 여부가 중요합니다. 자연적으로 자랐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다른 곳에서 가져와 심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도에는 200년 이상된 벚나무부터 어린 벚나무까지 다양한 왕벚나무 200여 그루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반면, 일본에서는 자생지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일제 강점기 때 발간된 문헌에는 일본의 식물학자들이 일본 벚나무의 원산지를 제주도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1939년 조선총독부에서도 우리나라 전역을 직접 답사해 연구 결과를 발표한 ‘조선삼림식물편’에서도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라고 밝히는 등 이같은 내용은 여러 일본 문헌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1989년, 일본 쓰쿠바대에서 나온 농림연보에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뱃사람들이 벚나무를 제주도로부터 가져와 일본인이 숭배하던 곤겐이라는 신에게 헌상했다'는 내용의 추측도 있습니다. 또, 일각에서는 백제시대 승려들이 일본에 불교문화를 전파하면서 벚나무도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삼국유사에 ‘벚나무로 만든 통’이라는 뜻의 ‘앵통(櫻桶)’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팔만대장경의 목판 역시 벚나무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무리한 추측도 아닙니다.

다음으로는 변이의 폭도 중요합니다. 제주 왕벚나무는 인위적인 교배가 아니라 야생에서 수대에 걸쳐 번식을 해왔기 때문에 변이의 폭이 큽니다. 한 부모 밑에 태어난 형제들이 생김새가 다양하듯이 말이죠. 반면 일본 벚나무는 변이도 다양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의 벚나무를 만든 뒤 복제했기 때문에 생김새가 똑같고 왕벚나무의 변이 폭 안에 일본 벚나무가 포함된다고 합니다.



DNA 분석 결과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9년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한국에 있는 벚나무가 일본에서 가져와 심은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염기서열 분석 과정에서 일본의 벚나무가 제주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의 일종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주 왕벚나무의 DNA와 일치한다는 겁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농림부 소속 박사들이 일본과 한국, 미국에 있는 벚나무 시료 82개를 채취해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일본 벚나무가 한국 제주 왕벚나무의 변이종 가운데 하나로 밝혀졌습니다. 바로 ‘Characterization of wild Prunus yedoensis analyzed by inter-simple sequence repeat and chloroplast DNA’라는 제목의 논문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에는 한 가지 비밀이 더 있습니다.<<<<논문 발표 직전에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벚나무는 다른 종이라고 결론이 뒤바뀐 겁니다. “한국에 자생하고 있는 왕벚나무는 일본에서 잡종교배한 요시노 벚꽃과는 다르다. (P.yedoensis native to Korea can be considered different from yoshino cherry of hybrid origin from Japan.)”라고요. 함께 연구를 진행해왔던 연구원들조차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연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정은주 박사는 결론이 바뀌기 전 원본을 제시하며, 잘못된 결론 때문에 부끄럽게도 이 논문이 일본쪽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도 이 논문을 인용해 ‘일본과 한국의 벚나무는 뚜렷이 다른 종으로 분류된다. (Prunus yedoensis concluded that the trees native to these two places can be categorized as distinct species.)’라는 일본측에 유리한 설명이 적혀있고요. 정 박사는 그 사실을 뒤집기 위해 연구 내용을 보충해 새 논문 발표를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지금도 벚나무를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우호의 상징으로 팬더를 선물하듯 일본은 벚나무를 선물하고 있죠. 일본이 벚나무와 함께 벚꽃놀이 문화를 전파하면서 얻는 부가가치는 어마어마합니다. 한편, 혹자는 벚꽃의 원산지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민족적이고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벚꽃을 제대로 알면 제대로 즐길 수 있고, 애정도 커집니다. 그러다보면 수년째 평행선을 긋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입장 차를 조금씩 좁힐 수 있지 않을까요. 작은 갈등들을 하나씩 해결하다보면 나아가 한일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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