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재난’

입력 2014.08.26 (22:02) 수정 2014.08.26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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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획의도

탐사제작부 박순서 기자

목숨을 위협받는 갑작스런 위험 상황에서 인간은 일반의 상식과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인다.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왜 단원고 학생들이 너무 늦을 때까지 탈출하지 않았는지, 왜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만 되풀이 했는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왜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승객들을 버려둔 채 자신들만 탈출할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세월호 사고는 이처럼 예기치 않은 인간 행동들이 한꺼번에 결합되면서 순식간에 만들어낸 대형 참사였다. 그렇다면 이 같은 불운은 세월호 참사에서만 나타났던 것일까?

사고 초기 단순 사고로만 여겨졌던 세계적인 대형 참사들이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고 비극으로 막을 내린 데는 이들 세 가지 요인들이 모두 숨어있다. 지난 150년 동안 일어났던 세계적인 대형 여객선 참사들은 선장과 승무원들의 생존율이 승객들의 생존율보다 언제나 높았다는 뜻밖의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죽음의 위협 앞에 놓인 상황에서 승객들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윤리 의식보다 생존본능이 앞서는 경우가 훨씬 많음을 의미한다. 여성과 아이들을 먼저 구하고 선장은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회적 통념과 규범은 여객선 침몰이라는 대형 참사 앞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우리는 왜 시시각각 엄습해 오는 죽음의 공포 속 상황에서도 끝까지 탈출을 주저하는가?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도망가는 선장과 승무원들은 왜 마지막 순간까지 침착하게 기다리라는 안내 방송을 수없이 반복하며 스스로 탈출을 결심할 수도 있었던 수많은 학생들의 마지막 기회마저 송두리째 앗아갔는가?

재난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재난에서 배우는 것이다. 온 국민들을 비탄에 빠뜨리고 울부짖게 만들었던 세월호 참사라는 대형 비극의 근본 원인과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의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제2의 세월호 참사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대형 참사는 언제나 인간이 만들어내는 작은 실수들이 한순간에 반응하면서 일어났다. 갑작스런 위기 앞에서 인간이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행동과 심리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그동안의 수많은 재난 대책이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목격했듯 대형 재난이나 위기 앞에서 인간의 탈출을 돕지 못하는 대피 및 구조 매뉴얼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대응 매뉴얼은 이처럼 위험 속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인지 과정과 의사 결정, 행동들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와 접근을 바탕으로 재정비 돼야 한다.

인간의 행동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동안 일어났던 대형 참사들과 그 속에서 나타났던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한 다양한 연구와 실험들은 참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모든 노력의 출발점이 인간행동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돼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대형 인명 피해를 낸 국내외 대형 참사와 생존자 연구, 위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뜻밖의 인간 행동과 피난 심리, 탈출 실험 사례 등을 통해 대형 참사를 막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2. 주요 내용

○ 탈출을 주저하는 사람들 위기 속에서 탈출을 주저하는 인간 행동 고찰. 도로 및 고층 빌딩, 지하철 화재 및 세월호, 각종 피난 행동 실험 통해 발견된 뜻밖의 인간 행동 소개. 위험 인지와 평가, 탈출 실행 과정에서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신뢰하는 인간 심리 소개. 위험에 반응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상황이 괜찮기 때문’이라고 착각해 탈출하지 않고 있다가 탈출 시기를 놓쳐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 도망가는 선장과 승무원 사고 발생 시 선장이나 승무원, 기관사 등이 승객 구조 등을 책임질 것이라고 믿지만 오히려 가장 먼저 탈출해 참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 150년 동안 일어났던 대형 여객선 침몰 사고의 생존율 분석 결과 승무원과 선장의 생존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 확인. 사고 초기 리더(Leader)의 부재는 인명 피해를 키우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 선장과 승무원의 직업 윤리와 책임감이 실제 위기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한 위기 대응 및 구조 시나리오, 훈련 등이 새로 마련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 준다.

○ 왜 기다리라고 하는가?(Expert’s Error) 자신들은 먼저 도망가면서 승객들에게 기다리라는 안내방송을 끝까지 고집해 결정적으로 인명 피해를 키운 선장과 승무원의 행동에 대한 고찰. 패닉에 대한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되는 안전 책임자들이 흔하게 저지르고 있는 잘못된 판단과 행동에 대한 원인 분석. 여객선 침몰 및 항공기 사고, 건물 화재, 자연 재해, 테러 등이 발생한 상황에서 선장과 승무원, 경찰, 소방관 등이 혼란과 심리적 동요를 막기 위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침착해라” “선실에서 대기하라” “구조대가 오고 있으니 안심하라” 등의 말이나 안내 방송은 승객 탈출을 지연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음. 위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이 오히려 안전하고 신속한 대피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피난 행동 연구 등을 통해 확인됐다.

○ 잘못된 믿음, 패닉(Panic) 대형 사고나 재난 발생 시 엄청난 혼란이 생겨 대피나 구조를 방해할 것이라는 오해가 있지만 실제로 패닉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대형 참사 생존자 및 피난 행동 연구를 통해 확인 됨. 패닉에 대한 고찰이 중요한 이유는 탈출 시뮬레이션 분석과 이에 기초한 위기 대응 시나리오 등이 패닉 상황을 전제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패닉 상황에서는 옆 사람이 자신의 탈출을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장애물로 인식되지만 실제 사고에서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대피시키거나 구조하려는 이타적인 행동이 더 많이 나타나고 강한 유대감이 형성돼 서로의 탈출을 도우려 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 무엇을 해야 하나? 여객선 침몰과 항공기 사고, 테러, 지하철과 도로 터널 및 건물 화재로 발생하는 대형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각국 노력 소개.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대규모 인원이 참가하는 피난 행동 실험들이 실제 사고와 거의 유사한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음. 대형 여객선에서 승객과 승무원을 대상으로 불시에 대피 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항공기 불시착이나 화재를 가정한 탈출 실험을 통해 승객 행동과 탈출 방해 요인, 승무원 대처 등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 결과를 얻어 인간 행동에 기반한 피난 설계나 위기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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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제작부 박순서 기자

목숨을 위협받는 갑작스런 위험 상황에서 인간은 일반의 상식과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인다.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왜 단원고 학생들이 너무 늦을 때까지 탈출하지 않았는지, 왜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만 되풀이 했는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왜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승객들을 버려둔 채 자신들만 탈출할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세월호 사고는 이처럼 예기치 않은 인간 행동들이 한꺼번에 결합되면서 순식간에 만들어낸 대형 참사였다. 그렇다면 이 같은 불운은 세월호 참사에서만 나타났던 것일까?

사고 초기 단순 사고로만 여겨졌던 세계적인 대형 참사들이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고 비극으로 막을 내린 데는 이들 세 가지 요인들이 모두 숨어있다. 지난 150년 동안 일어났던 세계적인 대형 여객선 참사들은 선장과 승무원들의 생존율이 승객들의 생존율보다 언제나 높았다는 뜻밖의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죽음의 위협 앞에 놓인 상황에서 승객들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윤리 의식보다 생존본능이 앞서는 경우가 훨씬 많음을 의미한다. 여성과 아이들을 먼저 구하고 선장은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회적 통념과 규범은 여객선 침몰이라는 대형 참사 앞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우리는 왜 시시각각 엄습해 오는 죽음의 공포 속 상황에서도 끝까지 탈출을 주저하는가?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도망가는 선장과 승무원들은 왜 마지막 순간까지 침착하게 기다리라는 안내 방송을 수없이 반복하며 스스로 탈출을 결심할 수도 있었던 수많은 학생들의 마지막 기회마저 송두리째 앗아갔는가?

재난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재난에서 배우는 것이다. 온 국민들을 비탄에 빠뜨리고 울부짖게 만들었던 세월호 참사라는 대형 비극의 근본 원인과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의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제2의 세월호 참사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대형 참사는 언제나 인간이 만들어내는 작은 실수들이 한순간에 반응하면서 일어났다. 갑작스런 위기 앞에서 인간이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행동과 심리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그동안의 수많은 재난 대책이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목격했듯 대형 재난이나 위기 앞에서 인간의 탈출을 돕지 못하는 대피 및 구조 매뉴얼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대응 매뉴얼은 이처럼 위험 속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인지 과정과 의사 결정, 행동들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와 접근을 바탕으로 재정비 돼야 한다.

인간의 행동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동안 일어났던 대형 참사들과 그 속에서 나타났던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한 다양한 연구와 실험들은 참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모든 노력의 출발점이 인간행동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돼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대형 인명 피해를 낸 국내외 대형 참사와 생존자 연구, 위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뜻밖의 인간 행동과 피난 심리, 탈출 실험 사례 등을 통해 대형 참사를 막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2. 주요 내용

○ 탈출을 주저하는 사람들 위기 속에서 탈출을 주저하는 인간 행동 고찰. 도로 및 고층 빌딩, 지하철 화재 및 세월호, 각종 피난 행동 실험 통해 발견된 뜻밖의 인간 행동 소개. 위험 인지와 평가, 탈출 실행 과정에서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신뢰하는 인간 심리 소개. 위험에 반응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상황이 괜찮기 때문’이라고 착각해 탈출하지 않고 있다가 탈출 시기를 놓쳐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 도망가는 선장과 승무원 사고 발생 시 선장이나 승무원, 기관사 등이 승객 구조 등을 책임질 것이라고 믿지만 오히려 가장 먼저 탈출해 참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 150년 동안 일어났던 대형 여객선 침몰 사고의 생존율 분석 결과 승무원과 선장의 생존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 확인. 사고 초기 리더(Leader)의 부재는 인명 피해를 키우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 선장과 승무원의 직업 윤리와 책임감이 실제 위기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한 위기 대응 및 구조 시나리오, 훈련 등이 새로 마련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 준다.

○ 왜 기다리라고 하는가?(Expert’s Error) 자신들은 먼저 도망가면서 승객들에게 기다리라는 안내방송을 끝까지 고집해 결정적으로 인명 피해를 키운 선장과 승무원의 행동에 대한 고찰. 패닉에 대한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되는 안전 책임자들이 흔하게 저지르고 있는 잘못된 판단과 행동에 대한 원인 분석. 여객선 침몰 및 항공기 사고, 건물 화재, 자연 재해, 테러 등이 발생한 상황에서 선장과 승무원, 경찰, 소방관 등이 혼란과 심리적 동요를 막기 위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침착해라” “선실에서 대기하라” “구조대가 오고 있으니 안심하라” 등의 말이나 안내 방송은 승객 탈출을 지연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음. 위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이 오히려 안전하고 신속한 대피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피난 행동 연구 등을 통해 확인됐다.

○ 잘못된 믿음, 패닉(Panic) 대형 사고나 재난 발생 시 엄청난 혼란이 생겨 대피나 구조를 방해할 것이라는 오해가 있지만 실제로 패닉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대형 참사 생존자 및 피난 행동 연구를 통해 확인 됨. 패닉에 대한 고찰이 중요한 이유는 탈출 시뮬레이션 분석과 이에 기초한 위기 대응 시나리오 등이 패닉 상황을 전제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패닉 상황에서는 옆 사람이 자신의 탈출을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장애물로 인식되지만 실제 사고에서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대피시키거나 구조하려는 이타적인 행동이 더 많이 나타나고 강한 유대감이 형성돼 서로의 탈출을 도우려 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 무엇을 해야 하나? 여객선 침몰과 항공기 사고, 테러, 지하철과 도로 터널 및 건물 화재로 발생하는 대형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각국 노력 소개.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대규모 인원이 참가하는 피난 행동 실험들이 실제 사고와 거의 유사한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음. 대형 여객선에서 승객과 승무원을 대상으로 불시에 대피 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항공기 불시착이나 화재를 가정한 탈출 실험을 통해 승객 행동과 탈출 방해 요인, 승무원 대처 등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 결과를 얻어 인간 행동에 기반한 피난 설계나 위기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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