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하는 걸까?

입력 2014.10.1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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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순간이더라구요, 정신을 차려보니까. 아, 내가 왜 여기있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길 위에서의 삶, 노숙자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언제나 편치 않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정된 주거지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 ‘주거권’이 있는데, 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빼앗긴 분들이니까요. ‘하다못해’ 쪽방이나 고시원에도 들어갈 수 없었던 그 분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숙자분들은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그런 그 분들의 노력에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김기준씨가 말했습니다. ‘노숙은 한 순간이더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길 위에 있는 내 모습을 만났다.’ 한 사람이 긴 인생의 여정에서 빈곤이라는 덫에 걸려 넘어지기까지, 그 과정이 때로는 스스로도 제대로 인지하기 어려울 만큼 갑작스러운 과정이라는 사실을, 저는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 길 위에서

권오성씨는 길 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노숙을 한 지 5년이 넘었고, 건강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식사는 대부분 무료 급식소에서 해결하고, 잠자리는 광화문 지하철 역사에서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장애가 있어 기초수급연금을 받고는 있지만, 월세를 내고 집을 얻어 들어가는 것은 ‘아직 고민 중’이라고 했습니다. 40여 만원 남짓한 수급비에서 20여만원 넘는 돈을 집세에 내고 나면 도저히 쓸 돈이 없으니, 고시원이나 쪽방이라도 얻어서 들어갈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 분의 생활을 함께 따라가 봤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고단해 보였습니다. 권씨는 중간 중간 노숙인 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야학에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자활센터 활동가들과 함께 종로 인근 노숙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스스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와의 지루한 싸움이었습니다. 시간 맞춰 급식소로, 시간 맞춰 다시 지하철역으로.. 긴긴 시간을 계속 길 위에서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 했습니다. 달라진 내일을 기대하기 어려운 삶. 그 삶이 주는 고단함의 무게가 꽤나 무겁고, 그 고통이 깊은 것 같았습니다.

권씨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울산에서 부산으로, 그리고 서울로.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잘 살아보려 노력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간 중간 사기도 당하고, 병도 얻은 채 시간을 보내다보니, 결국 가난을 벗어날 수 없게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집이 없이 거리에서 자는 그에게, 왜 당신은 지금 그렇게 밖에 못 사느냐고 물을 수 없었습니다.

벌써 깊어진 가을. 아침과 밤 나절, 광화문 역사는 많이 추웠습니다. 얇은 돗자리 하나를 깔고 그 위에 담요를 하나 깔고, 그렇게 잠을 청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권오성씨가 역사에서 주무시는 장면을 촬영하고 온 날 밤. 편안한 제 침대 위에서, 쉽사리 잠을 청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집,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

노숙자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물론, 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갈 비용을 지불하게 해 줄 일자리도 필요합니다. 주거권과 노동권. 인간이 누려야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누리며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노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주거에 대한 대안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쪽방과 고시원. 혹은 임대주택. 쪽방과 고시원 모두 평균 25만원 정도의 비용이 듭니다. 대부분 일용직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숙자 분들에게 이 돈은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닙니다. 노숙자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주거 형태는 정부가 제공하는 매입임대주택입니다. 이런 임대 주택은 평균적으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여만원 내외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노숙자들 대부분은 ‘임대주택이라는 것이 있는지 사실 잘 몰랐었다. 그리고 이제 들어가려고 해보니 임대주택 들어가기가 참 많이 어렵다’ 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국토부가 정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에는 노숙자나 주거취약계층에게 전체 매입임대주택의 15%를 공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공급 목표량을 별도로 관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목표량이 지켜지지 않는다 해도 제재를 받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일까요.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주거 취약계층에게 공급된 임대주택은 전체의 2.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노숙자나 쪽방촌 주민 등 정말 이런 집이 필요한 사람에게 임대주택의 벽은 꽤나 높습니다. 임대주택에 들어가려면 지자체가 운영하는 입주자선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하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정되어 입주하기까지는 평균적으로 5, 6개월 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기도 하고, 자활의 의지를 잃기도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 극빈층에 속하는 분들의 상당수는 이런 임대주택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신청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일자리,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사다리


일자리는 어떨까요. 배움도 짧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분들이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껍니다. ‘도대체 왜 스스로 노력하지 않느냐? 누가 당신들더러 배우지 말라고 했느냐? 누가 당신더러 가난하라고 하더냐?’

취재 과정에서 많은 노숙자분들을 만났습니다. 아주 많은 사연들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배움의 기회를 갖기가 어려웠고, 지치도록 열심히 노력했지만 도저히 번번이 다가오는 불운의 덫을 피해갈 수 없었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실업, 사업부도, 갑작스러운 병마와의 싸움. 이렇게 한번씩 넘어질 때마다 그 분들은 분명히 다시 일어서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이 다시 일어서기에는 우리 사회가 참 냉정했습니다. 병에 걸리면 집을 팔아야 했고, 부도가 나면 일단 이혼을 하지 않고서는 그 어려움을 피해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고 보니 일용직 밖에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샌가 노숙을 하고 있더라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노숙자들 상당수는 공공근로라도 하고 싶어 하지만, 이런 일자리들은 6개월에서 9개월 정도 일할 수 있는 단기적인 근로가 대부분입니다. 민간 일자리들은 취직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일용직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니 고용은 늘 불안한 상태입니다. 기초수급대상이 된 노숙자들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집니다. 정부가 지급하는 40여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는데, 기초수급비를 받으면 다른 노동을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기에 생활이 늘 곤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노숙자들이 자포자기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습니다.



■배움, 내일을 꿈꾸게 해주는 디딤돌

취재과정에서 제게 가장 큰 울림을 준 분은 김기준님이였습니다. 김기준님은 수년 동안 노숙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결핵에 걸린 노숙인들을 위한 쉼터에서 요양보호사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본인도 노숙을 한 경험이 있고, 결핵에 걸린 적도 있었습니다.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니, 남의 아픔을 볼 수 있는 시야도 더 넓은 듯 했습니다.

쉼터에 있는 다른 노숙자분들을 대하는 그 분의 자세는 진지했고, 참 성의 있었습니다. 한 때는 포크레인 기사로 일했었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좋은 시절은 잠시였습니다. 사업 부도와 함께 집도 가정도 송두리째 날아갔습니다. 상황을 잊기 위해 게임을 했다고 했습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세월이 가는 사이, 모든 것이 더 망가졌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미래를 계획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김기준님은 주변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아마 계속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노숙인 인문학 강좌를 듣고 있는 그 분의 눈빛이 얼마나 진지한 지, 맘속으로 참 놀랐습니다. 배움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좋은 친구들과 소통하는 일상은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김기준씨가 지금 행복한 이유는 그런 일상을 현실로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도저히 노숙을 했던 분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진중하고 성실했던 김기준씨를 보면서 가난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가난은 개인의 탓일까요, 아니면 사회의 탓일까요. 물론 둘 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난을 보는 우리의 시선, 극빈층을 보는 우리 사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노숙자분들을 만나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누구나 가난에, 누구나 절박한 삶의 나락으로 빠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넘어지면 끝장이라는 절박함만이 감도는 사회, 넘어져도 나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줄 안전망이 있다는 확신이 있는 사회. 이 두 사회는 질적으로 다를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자일까요. 후자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다르게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자,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족한 기자에게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선뜻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자신의 주거 공간까지 열어 보여준 분들에게 많이 고마웠습니다. 그사 분들의 재기가 끝까지 성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마음 속 깊이 응원합니다. 

☞바로가기 [취재파일K] 노숙자, 다시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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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하는 걸까?
    • 입력 2014-10-13 11:41:27
    취재후·사건후
“정말 한순간이더라구요, 정신을 차려보니까. 아, 내가 왜 여기있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길 위에서의 삶, 노숙자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언제나 편치 않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정된 주거지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 ‘주거권’이 있는데, 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빼앗긴 분들이니까요. ‘하다못해’ 쪽방이나 고시원에도 들어갈 수 없었던 그 분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숙자분들은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그런 그 분들의 노력에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김기준씨가 말했습니다. ‘노숙은 한 순간이더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길 위에 있는 내 모습을 만났다.’ 한 사람이 긴 인생의 여정에서 빈곤이라는 덫에 걸려 넘어지기까지, 그 과정이 때로는 스스로도 제대로 인지하기 어려울 만큼 갑작스러운 과정이라는 사실을, 저는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 길 위에서 권오성씨는 길 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노숙을 한 지 5년이 넘었고, 건강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식사는 대부분 무료 급식소에서 해결하고, 잠자리는 광화문 지하철 역사에서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장애가 있어 기초수급연금을 받고는 있지만, 월세를 내고 집을 얻어 들어가는 것은 ‘아직 고민 중’이라고 했습니다. 40여 만원 남짓한 수급비에서 20여만원 넘는 돈을 집세에 내고 나면 도저히 쓸 돈이 없으니, 고시원이나 쪽방이라도 얻어서 들어갈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 분의 생활을 함께 따라가 봤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고단해 보였습니다. 권씨는 중간 중간 노숙인 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야학에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자활센터 활동가들과 함께 종로 인근 노숙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스스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와의 지루한 싸움이었습니다. 시간 맞춰 급식소로, 시간 맞춰 다시 지하철역으로.. 긴긴 시간을 계속 길 위에서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 했습니다. 달라진 내일을 기대하기 어려운 삶. 그 삶이 주는 고단함의 무게가 꽤나 무겁고, 그 고통이 깊은 것 같았습니다. 권씨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울산에서 부산으로, 그리고 서울로.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잘 살아보려 노력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간 중간 사기도 당하고, 병도 얻은 채 시간을 보내다보니, 결국 가난을 벗어날 수 없게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집이 없이 거리에서 자는 그에게, 왜 당신은 지금 그렇게 밖에 못 사느냐고 물을 수 없었습니다. 벌써 깊어진 가을. 아침과 밤 나절, 광화문 역사는 많이 추웠습니다. 얇은 돗자리 하나를 깔고 그 위에 담요를 하나 깔고, 그렇게 잠을 청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권오성씨가 역사에서 주무시는 장면을 촬영하고 온 날 밤. 편안한 제 침대 위에서, 쉽사리 잠을 청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집,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 노숙자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물론, 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갈 비용을 지불하게 해 줄 일자리도 필요합니다. 주거권과 노동권. 인간이 누려야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누리며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노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주거에 대한 대안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쪽방과 고시원. 혹은 임대주택. 쪽방과 고시원 모두 평균 25만원 정도의 비용이 듭니다. 대부분 일용직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숙자 분들에게 이 돈은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닙니다. 노숙자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주거 형태는 정부가 제공하는 매입임대주택입니다. 이런 임대 주택은 평균적으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여만원 내외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노숙자들 대부분은 ‘임대주택이라는 것이 있는지 사실 잘 몰랐었다. 그리고 이제 들어가려고 해보니 임대주택 들어가기가 참 많이 어렵다’ 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국토부가 정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에는 노숙자나 주거취약계층에게 전체 매입임대주택의 15%를 공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공급 목표량을 별도로 관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목표량이 지켜지지 않는다 해도 제재를 받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일까요.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주거 취약계층에게 공급된 임대주택은 전체의 2.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노숙자나 쪽방촌 주민 등 정말 이런 집이 필요한 사람에게 임대주택의 벽은 꽤나 높습니다. 임대주택에 들어가려면 지자체가 운영하는 입주자선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하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정되어 입주하기까지는 평균적으로 5, 6개월 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기도 하고, 자활의 의지를 잃기도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 극빈층에 속하는 분들의 상당수는 이런 임대주택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신청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일자리,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사다리 일자리는 어떨까요. 배움도 짧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분들이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껍니다. ‘도대체 왜 스스로 노력하지 않느냐? 누가 당신들더러 배우지 말라고 했느냐? 누가 당신더러 가난하라고 하더냐?’ 취재 과정에서 많은 노숙자분들을 만났습니다. 아주 많은 사연들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배움의 기회를 갖기가 어려웠고, 지치도록 열심히 노력했지만 도저히 번번이 다가오는 불운의 덫을 피해갈 수 없었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실업, 사업부도, 갑작스러운 병마와의 싸움. 이렇게 한번씩 넘어질 때마다 그 분들은 분명히 다시 일어서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이 다시 일어서기에는 우리 사회가 참 냉정했습니다. 병에 걸리면 집을 팔아야 했고, 부도가 나면 일단 이혼을 하지 않고서는 그 어려움을 피해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고 보니 일용직 밖에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샌가 노숙을 하고 있더라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노숙자들 상당수는 공공근로라도 하고 싶어 하지만, 이런 일자리들은 6개월에서 9개월 정도 일할 수 있는 단기적인 근로가 대부분입니다. 민간 일자리들은 취직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일용직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니 고용은 늘 불안한 상태입니다. 기초수급대상이 된 노숙자들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집니다. 정부가 지급하는 40여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는데, 기초수급비를 받으면 다른 노동을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기에 생활이 늘 곤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노숙자들이 자포자기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습니다. ■배움, 내일을 꿈꾸게 해주는 디딤돌 취재과정에서 제게 가장 큰 울림을 준 분은 김기준님이였습니다. 김기준님은 수년 동안 노숙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결핵에 걸린 노숙인들을 위한 쉼터에서 요양보호사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본인도 노숙을 한 경험이 있고, 결핵에 걸린 적도 있었습니다.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니, 남의 아픔을 볼 수 있는 시야도 더 넓은 듯 했습니다. 쉼터에 있는 다른 노숙자분들을 대하는 그 분의 자세는 진지했고, 참 성의 있었습니다. 한 때는 포크레인 기사로 일했었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좋은 시절은 잠시였습니다. 사업 부도와 함께 집도 가정도 송두리째 날아갔습니다. 상황을 잊기 위해 게임을 했다고 했습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세월이 가는 사이, 모든 것이 더 망가졌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미래를 계획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김기준님은 주변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아마 계속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노숙인 인문학 강좌를 듣고 있는 그 분의 눈빛이 얼마나 진지한 지, 맘속으로 참 놀랐습니다. 배움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좋은 친구들과 소통하는 일상은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김기준씨가 지금 행복한 이유는 그런 일상을 현실로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도저히 노숙을 했던 분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진중하고 성실했던 김기준씨를 보면서 가난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가난은 개인의 탓일까요, 아니면 사회의 탓일까요. 물론 둘 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난을 보는 우리의 시선, 극빈층을 보는 우리 사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노숙자분들을 만나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누구나 가난에, 누구나 절박한 삶의 나락으로 빠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넘어지면 끝장이라는 절박함만이 감도는 사회, 넘어져도 나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줄 안전망이 있다는 확신이 있는 사회. 이 두 사회는 질적으로 다를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자일까요. 후자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다르게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자,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족한 기자에게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선뜻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자신의 주거 공간까지 열어 보여준 분들에게 많이 고마웠습니다. 그사 분들의 재기가 끝까지 성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마음 속 깊이 응원합니다.  ☞바로가기 [취재파일K] 노숙자, 다시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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