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김정일 3주기’가 특별했던 이유

입력 2014.12.1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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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3주기가 지났다. 유교적 전통에 따라 삼년상을 마치고 상복을 벗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아버지 김정일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를 출범시켰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북한도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추모행사로 하루를 보냈다.

(참고: 전통에 따르면 ‘탈상’은 초상 이후 만 2년이 지난 뒤 마지막 제례를 지낸 다음 상복을 벗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절차를 말한다. 북한은 최고지도자를 일반인과 다른 위대한 영도자로 보기 때문에 만 3년이 지난 뒤 탈상을 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도 북한은 1997년 3주기까지 해마다 중앙추모대회를 개최했다.)



◆밤샘 특별방송


12월 17일 새벽 0시부터 특별방송이 시작됐다. 북한의 간판 앵커 리춘희가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라디오)에 나와 추모사를 낭독했다. 리춘희는 3년 전 애절한 목소리로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전했던 바로 그 아나운서다. 리춘희는 목소리에 간절함을 가득 담아 “피눈물의 17일이 왔다”며 “어버이 장군님 정말 보고 싶다” “태양의 그 미소가 못 견디게 그립다”고 호소했다. 북한은 1주기와 2주기 때에는 오전 8시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그만큼 삼년상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음을 보여준다.

전날 방송 종료 없이 추모방송이 계속 이어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조선중앙TV는 통상 밤 10시에 정규방송을 끝내고 다음날 오후 3시(평일)나 오전 9시(휴일)에 다시 방송을 시작한다. 17일 추모 특별방송은 온종일 계속됐다. 물론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 정오 묵념 생중계


2주기인 지난해 북한 방송은 오전 11시부터 1시간여 동안 중앙추모대회를 생중계했다. 하지만 올해엔 11시가 지났는데도 추모영화와 노래만 나올 뿐이었다. 낮 12시, 갑자기 평양시내에 경적이 울리면서 모든 주민과 군인들이 멈춰 서서 묵념하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김일성 광장, 만수대언덕 등 시내 곳곳에서 주민들은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차량과 기차, 선박 등도 모두 운행을 멈추고 경적을 울렸다. 묵념은 3분 동안 계속됐다. 조선중앙TV는 이후 보도를 통해 평양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묵념을 올리는 주민들의 모습을 방영했다.

◆ 혹한 속 광장 추모대회

묵념이 끝났지만 중앙추모대회는 바로 방영되지 않았다. 오후 4시가 되자 조선중앙TV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부인 리설주와 당.정.군의 간부들이 동행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리설주의 복장이었다. 지난해 검은색 정장을 입었던 리설주는 올해는 검은색 상복(저고리와 치마)을 입었다. 평소에는 착용하지 않던 초상휘장(김일성.김정일 얼굴이 담긴 배지)도 가슴에 달았다.

참배 보도가 끝나고 4시 10분부터 드디어 추모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중앙추모대회가 방영됐다. 생중계로 진행했던 지난해와 달리 녹화중계였다. 가장 큰 변화는 개최 장소였다. 1주기와 2주기 모두 평양체육관 안에서 열렸지만, 올해는 금수산태양궁전 앞 광장이었다. 3년 전 김정일 영결식이 열렸던 바로 그곳이다.

그런데 문제는 날씨였다. 영하 10도 이하인데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주석단의 김정은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이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할 정도였다. 군인과 주민 등 행사 참석자들은 강추위에 가만히 서있지 못하고 수시로 몸을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주석단의 간부들은 1, 2주기 때와 달리 모두 왼쪽 팔에 검은색 완장을 찼다.

북한은 왜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야외 행사를 고집했을까? 전문가들은 삼년상을 군중 수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최대 규모로 치러 ‘탈상’의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김정은을 충과 효의 이미지로 포장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석한다. 이 같은 해석은 곧 김정은이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독자 권력을 펼쳐나간다는 선언을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노동신문 전면 추모 보도


3주기 당일인 17일 노동신문은 6면 모두를 김정일을 추모하는 글과 사진으로 도배했다. 1면에는 김정일의 대형 사진과 함께 ‘위대한 김정일 동지는 백두산대국의 태양으로 천만년 영생하실 것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노동신문은 다음날인 18일에는 10면을 발행했다. 노동신문은 통상 6면을 발행한다. 통일부는 2011년 이후 노동신문이 6면 이상 발행한 날이 없다고 확인했다. 1~2면은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3~6면은 중앙추모대회, 5~6면은 김영남, 최룡해, 황병서 등의 결의 연설, 7~10면은 각 지역별 추모대회와 묵념사진, 담화 등이 실렸다.

◆ 한달 전부터 추모 열기

북한 매체는 이미 한 달여 전부터 추모 열기를 이어왔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12일 “위대한 장군님과 피눈물 속에 영결한 때로부터 3년이 되어온다”며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이달 들어서는 10번에 걸쳐 모두 110장의 김 위원장 화보 사진을 게재했다. 기사는 물론 사설과 정론, 각 부문별 맹세모임 등이 지면을 채웠다.



◆ ‘김정은 시대’의 앞날은?


이제 관심사는 탈상을 한 김정은 시대의 앞날이다. 특히 내년은 분단 70년이자 북한으로선 노동당 창건 70주년이기도 하다. 내부적으로 체제를 안정시키고, 남북관계나 대외관계에서 뭔가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우선 김정은은 최룡해와 김여정 등 새롭게 구축한 친정체제를 바탕으로 경제 살리기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장마당 증가와 외국인 관광 확대, 경제특구 등으로 경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마식령 스키장과 같은 치적 과시용 대규모 전시성 사업이 잇따르면서 재정 상황이 크게 악화됐다. 외자 유치 또한 별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인권문제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도 점점 강화되고 있다. 핵.경제 병진정책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북한은 국제관계 개선을 통해 출구 찾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와 내년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가운데, 때마침 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에 합의해 북미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을 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대외관계에 진척이 없을 경우 대남 협력을 지렛대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우리 정부도 광복 70년인 내년 남북 경색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방안 마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깊어가는 겨울에 언 땅을 뚫고 나올 새싹을 준비할 수 있을지 광복 70년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

☞바로가기 [뉴스9] 김정일 3주기 추모행사…“김정은 시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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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김정일 3주기’가 특별했던 이유
    • 입력 2014-12-19 10:15:31
    취재후·사건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3주기가 지났다. 유교적 전통에 따라 삼년상을 마치고 상복을 벗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아버지 김정일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를 출범시켰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북한도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추모행사로 하루를 보냈다. (참고: 전통에 따르면 ‘탈상’은 초상 이후 만 2년이 지난 뒤 마지막 제례를 지낸 다음 상복을 벗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절차를 말한다. 북한은 최고지도자를 일반인과 다른 위대한 영도자로 보기 때문에 만 3년이 지난 뒤 탈상을 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도 북한은 1997년 3주기까지 해마다 중앙추모대회를 개최했다.) ◆밤샘 특별방송 12월 17일 새벽 0시부터 특별방송이 시작됐다. 북한의 간판 앵커 리춘희가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라디오)에 나와 추모사를 낭독했다. 리춘희는 3년 전 애절한 목소리로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전했던 바로 그 아나운서다. 리춘희는 목소리에 간절함을 가득 담아 “피눈물의 17일이 왔다”며 “어버이 장군님 정말 보고 싶다” “태양의 그 미소가 못 견디게 그립다”고 호소했다. 북한은 1주기와 2주기 때에는 오전 8시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그만큼 삼년상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음을 보여준다. 전날 방송 종료 없이 추모방송이 계속 이어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조선중앙TV는 통상 밤 10시에 정규방송을 끝내고 다음날 오후 3시(평일)나 오전 9시(휴일)에 다시 방송을 시작한다. 17일 추모 특별방송은 온종일 계속됐다. 물론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 정오 묵념 생중계 2주기인 지난해 북한 방송은 오전 11시부터 1시간여 동안 중앙추모대회를 생중계했다. 하지만 올해엔 11시가 지났는데도 추모영화와 노래만 나올 뿐이었다. 낮 12시, 갑자기 평양시내에 경적이 울리면서 모든 주민과 군인들이 멈춰 서서 묵념하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김일성 광장, 만수대언덕 등 시내 곳곳에서 주민들은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차량과 기차, 선박 등도 모두 운행을 멈추고 경적을 울렸다. 묵념은 3분 동안 계속됐다. 조선중앙TV는 이후 보도를 통해 평양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묵념을 올리는 주민들의 모습을 방영했다. ◆ 혹한 속 광장 추모대회 묵념이 끝났지만 중앙추모대회는 바로 방영되지 않았다. 오후 4시가 되자 조선중앙TV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부인 리설주와 당.정.군의 간부들이 동행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리설주의 복장이었다. 지난해 검은색 정장을 입었던 리설주는 올해는 검은색 상복(저고리와 치마)을 입었다. 평소에는 착용하지 않던 초상휘장(김일성.김정일 얼굴이 담긴 배지)도 가슴에 달았다. 참배 보도가 끝나고 4시 10분부터 드디어 추모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중앙추모대회가 방영됐다. 생중계로 진행했던 지난해와 달리 녹화중계였다. 가장 큰 변화는 개최 장소였다. 1주기와 2주기 모두 평양체육관 안에서 열렸지만, 올해는 금수산태양궁전 앞 광장이었다. 3년 전 김정일 영결식이 열렸던 바로 그곳이다. 그런데 문제는 날씨였다. 영하 10도 이하인데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주석단의 김정은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이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할 정도였다. 군인과 주민 등 행사 참석자들은 강추위에 가만히 서있지 못하고 수시로 몸을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주석단의 간부들은 1, 2주기 때와 달리 모두 왼쪽 팔에 검은색 완장을 찼다. 북한은 왜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야외 행사를 고집했을까? 전문가들은 삼년상을 군중 수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최대 규모로 치러 ‘탈상’의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김정은을 충과 효의 이미지로 포장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석한다. 이 같은 해석은 곧 김정은이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독자 권력을 펼쳐나간다는 선언을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노동신문 전면 추모 보도 3주기 당일인 17일 노동신문은 6면 모두를 김정일을 추모하는 글과 사진으로 도배했다. 1면에는 김정일의 대형 사진과 함께 ‘위대한 김정일 동지는 백두산대국의 태양으로 천만년 영생하실 것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노동신문은 다음날인 18일에는 10면을 발행했다. 노동신문은 통상 6면을 발행한다. 통일부는 2011년 이후 노동신문이 6면 이상 발행한 날이 없다고 확인했다. 1~2면은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3~6면은 중앙추모대회, 5~6면은 김영남, 최룡해, 황병서 등의 결의 연설, 7~10면은 각 지역별 추모대회와 묵념사진, 담화 등이 실렸다. ◆ 한달 전부터 추모 열기 북한 매체는 이미 한 달여 전부터 추모 열기를 이어왔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12일 “위대한 장군님과 피눈물 속에 영결한 때로부터 3년이 되어온다”며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이달 들어서는 10번에 걸쳐 모두 110장의 김 위원장 화보 사진을 게재했다. 기사는 물론 사설과 정론, 각 부문별 맹세모임 등이 지면을 채웠다. ◆ ‘김정은 시대’의 앞날은? 이제 관심사는 탈상을 한 김정은 시대의 앞날이다. 특히 내년은 분단 70년이자 북한으로선 노동당 창건 70주년이기도 하다. 내부적으로 체제를 안정시키고, 남북관계나 대외관계에서 뭔가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우선 김정은은 최룡해와 김여정 등 새롭게 구축한 친정체제를 바탕으로 경제 살리기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장마당 증가와 외국인 관광 확대, 경제특구 등으로 경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마식령 스키장과 같은 치적 과시용 대규모 전시성 사업이 잇따르면서 재정 상황이 크게 악화됐다. 외자 유치 또한 별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인권문제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도 점점 강화되고 있다. 핵.경제 병진정책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북한은 국제관계 개선을 통해 출구 찾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와 내년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가운데, 때마침 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에 합의해 북미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을 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대외관계에 진척이 없을 경우 대남 협력을 지렛대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우리 정부도 광복 70년인 내년 남북 경색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방안 마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깊어가는 겨울에 언 땅을 뚫고 나올 새싹을 준비할 수 있을지 광복 70년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 ☞바로가기 [뉴스9] 김정일 3주기 추모행사…“김정은 시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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