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폐기물 재활용 계란’은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15.02.16 (10:03) 수정 2015.02.1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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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0년 전입니다. 2004년 6월 6일. 방송사들은 저녁 뉴스로 일제히 불량 재료로 만두를 만든 식품업자들이 검거됐다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경찰은 "쓰레기로 버려지는 중국산 단무지 자투리를 수거해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세척, 가공하여 납품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쓰레기 만두'라는 표현을 모든 언론이 사용했습니다. 이른바 '쓰레기 만두' 파동의 시작입니다.

언론 보도의 후폭풍은 거셌습니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만두 판매량은 급감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해당 업체 명단을 공개하면서 만두 시장은 붕괴되다시피 했습니다. 중소업체의 줄도산이 이어졌고, 한 식품업체 사장은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단무지의 자투리는 정말 쓰레기였을까요?

전문가들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단무지를 제조하고 남은 무의 자투리는 얼마든지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단무지의 모양이 나오지 않아 단무지 공장에서는 쓸 수 없지만 다른 식품으로 사용하는 건 문제될 리 없다는 거죠. 무 껍질이나 잔뿌리가 인체에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요컨대 일부 업체의 위생 상태엔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쓰레기 만두'로 매도하며 전 국민적 분노를 쏟아낼 사건은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경찰은 비위생적인 부분을 확대하려고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했고, 언론은 이를 비판 없이 받아들여 혼란을 자초했습니다. 그래서 ‘쓰레기 만두’ 파동은 우리나라 언론사(史)에 오명으로 남았습니다.

■ ‘쓰레기 만두’…선정적 언론 보도가 빚은 참사

한국양계농협 계란가공공장에 대한 제보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동영상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 다시보기<취재파일K> ‘폐기물 계란’이 과자에 빵에…

이 공장에서는 한 해에 1억 개가 넘는 계란을 가공합니다.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껍데기의 양은 어마어마하겠죠. 이 껍데기를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계가 '난각처리기'입니다. 이 난각처리기에 계란 껍데기를 넣으면 기계는 껍질을 으깨면서 껍데기 내부에 남아있던 액체 내용물을 밖으로 배출합니다. 껍데기의 부피와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죠.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공장 직원들은 이 난각처리기를 폐기물 처리기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할란기(계란을 깨는 기계)를 통해 흰자와 노른자를 빼낸 계란 껍데기 외에도 운반 과정에서 실수로 떨어뜨려 깨진 계란이나 상한 계란까지 넣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난각처리기에서 배출된 액체는, 정상적이라면 폐수로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공장은 이 액체를 통에 담은 뒤 펌프를 이용해 다시 공장 내부로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정상 제품에 섞었던 겁니다. 이 정도면 '쓰레기 계란'이 아니라 '폐기물 계란'으로 불러야할 듯 싶습니다.

■ 계란도 만두처럼 억울할까?

전문가들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답은 한결같았습니다. 겉보기에 깨끗한 계란이라도 껍데기엔 다양한 세균이 묻어있기 때문에 껍데기와 내용물을 섞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설명입니다. 정승헌 건국대학교 동물자원학과 교수는 "이거야 말로 산업폐기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산업폐기물은 폐기물 관리법의 규정에 의해서 처리를 해야 합니다. 그것을 임의로 가져다가 원료로 사용하는 건 식품업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처음 공장을 찾았을 때 공장 관계자는 이런 사실을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난각처리기에서 나온 액체는 전량 폐수 처리장으로 보낸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며칠 뒤 동영상을 보여주자 슬그머니 말을 바꿉니다. 상상도 못했던 '폐기물 재활용 계란'이 확인되던 순간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식품으로 가공할 수 없는 파란(깨진 계란)을 사용하거나, 반품된 제품을 재활용하거나, 제조일자를 조작하는 등 다양한 문제가 동영상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모두 법 위반은 물론이고 도덕적으로도 비난받을 일입니다.



방송이 나간 뒤 한국양계농협은 재빨리 움직였습니다. 해당 공장을 잠정폐쇄하고, 경찰과 식약처 등의 조사에도 적극 협조한다고 밝혔습니다. 농협중앙회도 한국양계농협에 대한 지원을 끊겠다고 했습니다. 경찰 수사는 조합장을 소환하는 단계까지 나갔습니다. 이제 남은 건 한 가지 질문 뿐 입니다.

■ 한국양계농협, KBS 보도 직후 ‘공장 폐쇄’

이런 폐기물 재활용 계란은 어디로 얼마나 공급된 걸까요? 우선 양을 따져보겠습니다. 제보자는 난각처리기에서 나오는 폐수의 양이 하루 최대 1.5톤에 이른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공장 측은 500킬로그램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간 정도로 잡아 하루 배출량이 1톤이라고 치면 1년에 대략 300톤 정도가 됩니다. 이 공장의 1년 총 생산량이 약 5천800톤이니 전체 제품의 5% 정도는 폐기물로 채웠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건 최악의 상황에 대한 가정이고, 폐기물 계란을 얼마나 가공에 사용했는지는 수사가 진행돼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이 폐기물 계란이 어떤 제품으로 만들어져 어디로 공급됐는지 확인할 차례입니다. 제보자는 '상당수 제품에 사용된다'고 주장합니다. 공장 측은 '분말 제품에만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분말 제품도 식용으로 사용됩니다. 공장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분말 제품을 납품받은 업체를 찾아 유통경로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보자의 말이 맞다면 이 공장과 거래하는 다른 모든 업체로 파문이 확산됩니다.

취재진은 이 지점에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취재 초기 단계에 이 공장과 거래하는 기업들의 명단을 입수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제과업체와 제빵업체, 식품업체가 줄줄이 적혀있었습니다. 학교급식을 담당하는 업체 이름도 나왔습니다. 만약 이 명단을 공개한다면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13일 첫 보도가 나간 뒤 시청자 게시판에는 납품 받은 업체 명을 공개하라는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기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이대로는 불안하니 정확한 정보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 ‘폐기물 재활용 계란’은 어디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공개 보류입니다. 우선 취재진은 폐기물 계란이 어떤 형태의 제품으로 만들어지는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동영상에도 가공 중간 단계로 섞이는 모습만 나올 뿐, 최종적인 제품 형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품 형태를 알 수 없으니 어디로 갔는지 추적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이 공장과 거래했다는 이유로 업체 명을 공개한다면 억울한 피해 업체가 생길 게 뻔했습니다. 납품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몇몇 대형 식품업체에 문의했습니다. 이 가운데 A업체의 답은 의외였습니다. 한국양계농협에서 납품받은 계란의 품질이 매우 우수했다는 겁니다.

제보자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A업체가 요구하는 품질 수준이 너무 높아서 거래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좋은 계란을 가져다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어쩌면 이 공장은 품질 검사가 까다롭지 않은 중소업체만 골라 문제의 제품을 공급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형 업체라도 용도에 따라 품질 기준이 다르다는 점을 이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건 이 공장에서 폐기물 재활용 계란을 활용한 제품이 만들어졌다는 것 뿐입니다.

■ 확실한 건 ‘만들어졌다’는 것 뿐

기자들은 '팩트'(사실)를 좋아합니다. '단무지 공장에서 버려지는 무 자투리로 만두소를 만들었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쓰레기 만두'라 명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로 진실을 감추는 일'이었습니다. 진실은 무 자투리는 인체에 무해해 식품으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동안 터져 나온 수많은 식품 파동에서 이런 예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계란가공공장에서 버려지는 껍질을 으깨 내용물을 뽑아내고, 이를 정상 제품과 섞었다'는 건 사실입니다. 또 이런 행태가 법적 판단을 떠나 비도덕적이며, 위생상으로도 매우 위험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더해 '문제의 공장에서 만드는 모든 제품에 폐기물 재활용 계란이 들어간 것은 아니다'라는 것도 취재진이 확인한 사실입니다.

물론 식품업체는 100% 완벽한 위생을 갖춰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공장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KBS <뉴스9>에, <취재파일K>에 이 사건을 보도한 이유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이 공장으로부터 납품받은 업체의 명단을 구했고, 이 업체들이 한국양계농협과 거래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취재진은 폐기물 재활용 계란이 어디로 공급됐는지에 대한 사실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업체 명단은 제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두겠습니다. 향후 경찰조사에서 유통 과정이 새롭게 드러나면 다시 꺼내 진실을 보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 다시보기 <취재파일K> ‘폐기물 계란’ 우리 아이가 먹는 과자나 빵에?

☞ 다시보기 <뉴스9> ‘폐기물 계란’ 가공공장, 정부 보증 해썹 인증받아

☞ 다시보기 <뉴스9> ‘폐기물 계란’ 유명 제과·식품업체로 공급

☞ 다시보기 <뉴스9> [단독] 농협 계란 공장, ‘폐기물 계란’ 모아 식품 원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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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폐기물 재활용 계란’은 어디로 갔을까?
    • 입력 2015-02-16 10:03:21
    • 수정2015-02-16 10:08:29
    취재후·사건후
대략 10년 전입니다. 2004년 6월 6일. 방송사들은 저녁 뉴스로 일제히 불량 재료로 만두를 만든 식품업자들이 검거됐다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경찰은 "쓰레기로 버려지는 중국산 단무지 자투리를 수거해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세척, 가공하여 납품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쓰레기 만두'라는 표현을 모든 언론이 사용했습니다. 이른바 '쓰레기 만두' 파동의 시작입니다. 언론 보도의 후폭풍은 거셌습니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만두 판매량은 급감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해당 업체 명단을 공개하면서 만두 시장은 붕괴되다시피 했습니다. 중소업체의 줄도산이 이어졌고, 한 식품업체 사장은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단무지의 자투리는 정말 쓰레기였을까요? 전문가들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단무지를 제조하고 남은 무의 자투리는 얼마든지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단무지의 모양이 나오지 않아 단무지 공장에서는 쓸 수 없지만 다른 식품으로 사용하는 건 문제될 리 없다는 거죠. 무 껍질이나 잔뿌리가 인체에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요컨대 일부 업체의 위생 상태엔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쓰레기 만두'로 매도하며 전 국민적 분노를 쏟아낼 사건은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경찰은 비위생적인 부분을 확대하려고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했고, 언론은 이를 비판 없이 받아들여 혼란을 자초했습니다. 그래서 ‘쓰레기 만두’ 파동은 우리나라 언론사(史)에 오명으로 남았습니다. ■ ‘쓰레기 만두’…선정적 언론 보도가 빚은 참사 한국양계농협 계란가공공장에 대한 제보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동영상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 다시보기<취재파일K> ‘폐기물 계란’이 과자에 빵에… 이 공장에서는 한 해에 1억 개가 넘는 계란을 가공합니다.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껍데기의 양은 어마어마하겠죠. 이 껍데기를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계가 '난각처리기'입니다. 이 난각처리기에 계란 껍데기를 넣으면 기계는 껍질을 으깨면서 껍데기 내부에 남아있던 액체 내용물을 밖으로 배출합니다. 껍데기의 부피와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죠.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공장 직원들은 이 난각처리기를 폐기물 처리기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할란기(계란을 깨는 기계)를 통해 흰자와 노른자를 빼낸 계란 껍데기 외에도 운반 과정에서 실수로 떨어뜨려 깨진 계란이나 상한 계란까지 넣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난각처리기에서 배출된 액체는, 정상적이라면 폐수로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공장은 이 액체를 통에 담은 뒤 펌프를 이용해 다시 공장 내부로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정상 제품에 섞었던 겁니다. 이 정도면 '쓰레기 계란'이 아니라 '폐기물 계란'으로 불러야할 듯 싶습니다. ■ 계란도 만두처럼 억울할까? 전문가들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답은 한결같았습니다. 겉보기에 깨끗한 계란이라도 껍데기엔 다양한 세균이 묻어있기 때문에 껍데기와 내용물을 섞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설명입니다. 정승헌 건국대학교 동물자원학과 교수는 "이거야 말로 산업폐기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산업폐기물은 폐기물 관리법의 규정에 의해서 처리를 해야 합니다. 그것을 임의로 가져다가 원료로 사용하는 건 식품업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처음 공장을 찾았을 때 공장 관계자는 이런 사실을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난각처리기에서 나온 액체는 전량 폐수 처리장으로 보낸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며칠 뒤 동영상을 보여주자 슬그머니 말을 바꿉니다. 상상도 못했던 '폐기물 재활용 계란'이 확인되던 순간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식품으로 가공할 수 없는 파란(깨진 계란)을 사용하거나, 반품된 제품을 재활용하거나, 제조일자를 조작하는 등 다양한 문제가 동영상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모두 법 위반은 물론이고 도덕적으로도 비난받을 일입니다. 방송이 나간 뒤 한국양계농협은 재빨리 움직였습니다. 해당 공장을 잠정폐쇄하고, 경찰과 식약처 등의 조사에도 적극 협조한다고 밝혔습니다. 농협중앙회도 한국양계농협에 대한 지원을 끊겠다고 했습니다. 경찰 수사는 조합장을 소환하는 단계까지 나갔습니다. 이제 남은 건 한 가지 질문 뿐 입니다. ■ 한국양계농협, KBS 보도 직후 ‘공장 폐쇄’ 이런 폐기물 재활용 계란은 어디로 얼마나 공급된 걸까요? 우선 양을 따져보겠습니다. 제보자는 난각처리기에서 나오는 폐수의 양이 하루 최대 1.5톤에 이른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공장 측은 500킬로그램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간 정도로 잡아 하루 배출량이 1톤이라고 치면 1년에 대략 300톤 정도가 됩니다. 이 공장의 1년 총 생산량이 약 5천800톤이니 전체 제품의 5% 정도는 폐기물로 채웠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건 최악의 상황에 대한 가정이고, 폐기물 계란을 얼마나 가공에 사용했는지는 수사가 진행돼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이 폐기물 계란이 어떤 제품으로 만들어져 어디로 공급됐는지 확인할 차례입니다. 제보자는 '상당수 제품에 사용된다'고 주장합니다. 공장 측은 '분말 제품에만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분말 제품도 식용으로 사용됩니다. 공장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분말 제품을 납품받은 업체를 찾아 유통경로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보자의 말이 맞다면 이 공장과 거래하는 다른 모든 업체로 파문이 확산됩니다. 취재진은 이 지점에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취재 초기 단계에 이 공장과 거래하는 기업들의 명단을 입수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제과업체와 제빵업체, 식품업체가 줄줄이 적혀있었습니다. 학교급식을 담당하는 업체 이름도 나왔습니다. 만약 이 명단을 공개한다면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13일 첫 보도가 나간 뒤 시청자 게시판에는 납품 받은 업체 명을 공개하라는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기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이대로는 불안하니 정확한 정보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 ‘폐기물 재활용 계란’은 어디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공개 보류입니다. 우선 취재진은 폐기물 계란이 어떤 형태의 제품으로 만들어지는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동영상에도 가공 중간 단계로 섞이는 모습만 나올 뿐, 최종적인 제품 형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품 형태를 알 수 없으니 어디로 갔는지 추적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이 공장과 거래했다는 이유로 업체 명을 공개한다면 억울한 피해 업체가 생길 게 뻔했습니다. 납품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몇몇 대형 식품업체에 문의했습니다. 이 가운데 A업체의 답은 의외였습니다. 한국양계농협에서 납품받은 계란의 품질이 매우 우수했다는 겁니다. 제보자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A업체가 요구하는 품질 수준이 너무 높아서 거래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좋은 계란을 가져다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어쩌면 이 공장은 품질 검사가 까다롭지 않은 중소업체만 골라 문제의 제품을 공급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형 업체라도 용도에 따라 품질 기준이 다르다는 점을 이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건 이 공장에서 폐기물 재활용 계란을 활용한 제품이 만들어졌다는 것 뿐입니다. ■ 확실한 건 ‘만들어졌다’는 것 뿐 기자들은 '팩트'(사실)를 좋아합니다. '단무지 공장에서 버려지는 무 자투리로 만두소를 만들었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쓰레기 만두'라 명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로 진실을 감추는 일'이었습니다. 진실은 무 자투리는 인체에 무해해 식품으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동안 터져 나온 수많은 식품 파동에서 이런 예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계란가공공장에서 버려지는 껍질을 으깨 내용물을 뽑아내고, 이를 정상 제품과 섞었다'는 건 사실입니다. 또 이런 행태가 법적 판단을 떠나 비도덕적이며, 위생상으로도 매우 위험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더해 '문제의 공장에서 만드는 모든 제품에 폐기물 재활용 계란이 들어간 것은 아니다'라는 것도 취재진이 확인한 사실입니다. 물론 식품업체는 100% 완벽한 위생을 갖춰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공장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KBS <뉴스9>에, <취재파일K>에 이 사건을 보도한 이유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이 공장으로부터 납품받은 업체의 명단을 구했고, 이 업체들이 한국양계농협과 거래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취재진은 폐기물 재활용 계란이 어디로 공급됐는지에 대한 사실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업체 명단은 제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두겠습니다. 향후 경찰조사에서 유통 과정이 새롭게 드러나면 다시 꺼내 진실을 보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 다시보기 <취재파일K> ‘폐기물 계란’ 우리 아이가 먹는 과자나 빵에? ☞ 다시보기 <뉴스9> ‘폐기물 계란’ 가공공장, 정부 보증 해썹 인증받아 ☞ 다시보기 <뉴스9> ‘폐기물 계란’ 유명 제과·식품업체로 공급 ☞ 다시보기 <뉴스9> [단독] 농협 계란 공장, ‘폐기물 계란’ 모아 식품 원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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