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미래 30년] 이준 열사, 그 멀고 외로운 여정

입력 2015.02.27 (21:21) 수정 2015.02.2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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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3.1절이 모레로 다가왔는데요, 선조들의 치열했던 항일 독립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됩니다.

20세기 초 이역만리를 낯선 땅을 찾아 항일운동을 펼치다 숨진 이준 열사의 멀고도 고독했던 여정, 그 자취를 홍혜림 기자가 찾아봤습니다.

<리포트>

두 차례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네덜란드 헤이그입니다.

태극기가 걸린 낡은 3층 건물이 눈길을 끕니다.

1907년 고종황제 특사로 방문했던 이준 열사 일행 묵었던 호텔입니다.

침대와 책상, 옷가지 등이 그대로 남아있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인터뷰> 이기항(네덜란드 이준 열사 기념관장) : "독립운동사가 연해주나 만주나 중국에 국한된게 아니에요. 유럽에까지 연장이 돼 있어요."

이준 열사는 회의에 참석해 일제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무산됐습니다.

대신 회의장 바깥에서 각국 대표들에게 항의문을 배포했는데, 현지 언론들은 활약상을 비중있게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준 열사는 온지 20일도 안돼 통한을 안고 숨을 거두고맙니다.

<인터뷰> 강혜경(숙명여자대학교/역사문화학과 교수) : "이준열사의 죽음은 그 이후에 여러가지 반일운동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살아도 살지 아니함이 있고 죽어도 죽지 아니함이 있으니 살아도 그릇 살면 죽음만 같지 않고 잘 죽으면 오히려 영생한다"

열사의 유언은 광복 70년을 앞두고 애국의 참뜻을 생각하게 합니다.

네덜란드에서 KBS 뉴스 홍혜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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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70년, 미래 30년] 이준 열사, 그 멀고 외로운 여정
    • 입력 2015-02-27 21:23:14
    • 수정2015-02-27 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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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3.1절이 모레로 다가왔는데요, 선조들의 치열했던 항일 독립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됩니다.

20세기 초 이역만리를 낯선 땅을 찾아 항일운동을 펼치다 숨진 이준 열사의 멀고도 고독했던 여정, 그 자취를 홍혜림 기자가 찾아봤습니다.

<리포트>

두 차례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네덜란드 헤이그입니다.

태극기가 걸린 낡은 3층 건물이 눈길을 끕니다.

1907년 고종황제 특사로 방문했던 이준 열사 일행 묵었던 호텔입니다.

침대와 책상, 옷가지 등이 그대로 남아있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인터뷰> 이기항(네덜란드 이준 열사 기념관장) : "독립운동사가 연해주나 만주나 중국에 국한된게 아니에요. 유럽에까지 연장이 돼 있어요."

이준 열사는 회의에 참석해 일제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무산됐습니다.

대신 회의장 바깥에서 각국 대표들에게 항의문을 배포했는데, 현지 언론들은 활약상을 비중있게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준 열사는 온지 20일도 안돼 통한을 안고 숨을 거두고맙니다.

<인터뷰> 강혜경(숙명여자대학교/역사문화학과 교수) : "이준열사의 죽음은 그 이후에 여러가지 반일운동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살아도 살지 아니함이 있고 죽어도 죽지 아니함이 있으니 살아도 그릇 살면 죽음만 같지 않고 잘 죽으면 오히려 영생한다"

열사의 유언은 광복 70년을 앞두고 애국의 참뜻을 생각하게 합니다.

네덜란드에서 KBS 뉴스 홍혜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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