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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퍼] [단독] “바지를 내리고”…‘야구 명문고’ 전지훈련서 생긴 일
입력 2015.03.25 (17:55) 디지털퍼스트
[디·퍼] [단독] “바지를 내리고”…‘야구 명문고’ 전지훈련서 생긴 일


■ "아빠, 저 키 3cm 더 커서 돌아올게요."

바로 위 사진에 나온 학교는 '우리나라 야구 역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말 그대로 '야구 명문고'입니다. 최근 좀 부진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곧 홈런을 칠 거라는 기대를 하는 분이 많습니다. 수십 년 야구 역사를 통해 축적된 내공, 이름만 들어도 '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내로라하는 선배들이 든든히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1월 초 이 학교가 해외 전지훈련을 떠났을 때도 학생들은 '제2의 000'이 되겠다는 기대를 품고 비행기에 탔을 겁니다. 이 학교 선수 중 한 명인 김 군. 김 군의 꿈은 훈련을 잘 받고, 키도 3cm 더 크는 거였습니다. 부모님이 지어준 보약까지 미리 먹어뒀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고 김 군은 말했습니다.



■ "참으면 될 줄 알았어요."

김 군의 꿈은 전지 훈련 일주일 뒤부터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고된 훈련 뒤 먹는 점심밥은 차라리 고문이었습니다. 선배들은 못 먹는 나뭇잎에 밥을 싸서 줬습니다. 못 먹어서 뱉으면, 주워서 다시 먹으라고 했습니다. 눈에서 눈물이 나고 신물이 올라와도 억지로 삼켰다고 김 군은 말했습니다. 참으면 '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 됐'습니다. 참을수록 선배들의 지시는 더 가혹해져만 갔습니다. 많게는 하루 20대까지 뺨을 연이어 때렸다고 김 군은 학교에 제출한 진술서에 적었습니다.



■ "왜 참았냐고요?"

폭력은 성추행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전지훈련 호텔에서 방송되는 성인 영화를 틀어놓고 그대로 따라하라고 했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한 선배가 시키는 음란행위. 선배들과 카드 게임을 하다가 걸 돈이 바닥나자, 선배들은 돈 대신이라며 김 군에게 음란행위를 시켰다는 겁니다. 선배들의 강압에, 결국 김 군은 바지를 내렸습니다. 동시에, 자존심도 내려놔야 했습니다. 선배는 마지막엔 김 군의 엉덩이에 자신의 이름을 썼습니다. 20일 넘게 이 같은 일이 밤낮으로 반복됐고, 김 군은 계속 참았고, 참아야 했던 일은 이보다 더 많았다고 김 군의 진술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 김군의 대답은 "부모님"... 맞벌이하며 김 군 뒷바라지

지난 23일 밤 10시 반 서울의 한 고등학교 앞. 학교에서 돌아온 김 군을 어렵게 만났습니다.

"20일 동안 도대체 왜 참았니?"
망설이던 김 군이 어렵게 꺼낸 첫 단어는, "부모님".



위 사진은 김 군 아버지의 손입니다. 김 군의 부모님은 아들이 야구에 소질을 보이자 억척스럽게 맞벌이를 해가며 김 군을 뒷바라지 해왔습니다.

'만약 내 일이 알려져 학교에서 전학이라도 가라고 한다면 부모님은 더 힘들어질 거야'

이 생각으로 김 군은 참았다고 합니다. 나쁜 소식은 금방 퍼지고 그만큼 피해도 크게 돌아오는, 좁디좁은 야구계, 학교나 코치의 말이 곧 '법'인 고교 운동부의 현실을 김 군은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 "그런데 왜 저 형은 벌을 받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군과 김 군 부모님을 더 참지 못하게 했던 것은 '학교의 대응'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측은 전지훈련을 열흘 남겨두고 김 군이 입을 열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알게 됐습니다. 가해 학생 조사를 통해 김 군의 말이 대부분 사실이라는 것도 파악했습니다. 코치진은 뒤늦게 가해 학생을 한국으로 먼저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생활을 함께하는 코치진과 교사들이 왜, 무려 20일 동안 김 군의 피해 사실을 몰랐을까요?

'학교폭력대책위원회'.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아무리 늦어도 3주 안에 학폭위를 열어야 합니다. 있었던 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가해학생에게 어떤 처벌을 내릴지도 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폭행이 있고 나서 50일이 지난 오늘(25일)까지도 학폭위는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 해당 학교 "조사할 사항이 더 있어서..."

해당 학교는 폭력을 확인했다면서도 조사할 게 더 있기 때문에 학폭위 개최가 늦어지고 있다는 대답을 내놨습니다. 학교가 미적거리는 사이, 김 군은 병원 치료와 최면 치료를 받았습니다. 부모님한테 다 하지 못한 말들까지 털어놓고, 이제 다시 야구 글러브를 꼈습니다. 엉덩이에 적혀있던 선배 이름도 이제 지워졌습니다.

김 군에게는 새 꿈이 생겼습니다. 이 학교에서, 바로 이 학교에서 보란듯이 잘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 학교 대응이 자꾸 늦어지자 전학도 잠깐 생각했지만 바로 이 꿈이 김 군의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김 군의 부모님은 그런 아들이 대견하게 느껴지다가도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을 참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미 다 조사했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 아들이 입은 상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죠?"

김 군 엉덩이에 적혔다 지워진 그 선배의 이름이 김 군 마음에서도 정말 지워졌을까요? 


※ 이 기사는 3월 25일 KBS 뉴스9에서 방송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디·퍼(디지털 퍼스트)는 KBS가 깊이있게 분석한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더 빨리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디지털 공간입니다.
  • [디·퍼] [단독] “바지를 내리고”…‘야구 명문고’ 전지훈련서 생긴 일
    • 입력 2015.03.25 (17:55)
    디지털퍼스트
[디·퍼] [단독] “바지를 내리고”…‘야구 명문고’ 전지훈련서 생긴 일


■ "아빠, 저 키 3cm 더 커서 돌아올게요."

바로 위 사진에 나온 학교는 '우리나라 야구 역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말 그대로 '야구 명문고'입니다. 최근 좀 부진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곧 홈런을 칠 거라는 기대를 하는 분이 많습니다. 수십 년 야구 역사를 통해 축적된 내공, 이름만 들어도 '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내로라하는 선배들이 든든히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1월 초 이 학교가 해외 전지훈련을 떠났을 때도 학생들은 '제2의 000'이 되겠다는 기대를 품고 비행기에 탔을 겁니다. 이 학교 선수 중 한 명인 김 군. 김 군의 꿈은 훈련을 잘 받고, 키도 3cm 더 크는 거였습니다. 부모님이 지어준 보약까지 미리 먹어뒀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고 김 군은 말했습니다.



■ "참으면 될 줄 알았어요."

김 군의 꿈은 전지 훈련 일주일 뒤부터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고된 훈련 뒤 먹는 점심밥은 차라리 고문이었습니다. 선배들은 못 먹는 나뭇잎에 밥을 싸서 줬습니다. 못 먹어서 뱉으면, 주워서 다시 먹으라고 했습니다. 눈에서 눈물이 나고 신물이 올라와도 억지로 삼켰다고 김 군은 말했습니다. 참으면 '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 됐'습니다. 참을수록 선배들의 지시는 더 가혹해져만 갔습니다. 많게는 하루 20대까지 뺨을 연이어 때렸다고 김 군은 학교에 제출한 진술서에 적었습니다.



■ "왜 참았냐고요?"

폭력은 성추행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전지훈련 호텔에서 방송되는 성인 영화를 틀어놓고 그대로 따라하라고 했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한 선배가 시키는 음란행위. 선배들과 카드 게임을 하다가 걸 돈이 바닥나자, 선배들은 돈 대신이라며 김 군에게 음란행위를 시켰다는 겁니다. 선배들의 강압에, 결국 김 군은 바지를 내렸습니다. 동시에, 자존심도 내려놔야 했습니다. 선배는 마지막엔 김 군의 엉덩이에 자신의 이름을 썼습니다. 20일 넘게 이 같은 일이 밤낮으로 반복됐고, 김 군은 계속 참았고, 참아야 했던 일은 이보다 더 많았다고 김 군의 진술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 김군의 대답은 "부모님"... 맞벌이하며 김 군 뒷바라지

지난 23일 밤 10시 반 서울의 한 고등학교 앞. 학교에서 돌아온 김 군을 어렵게 만났습니다.

"20일 동안 도대체 왜 참았니?"
망설이던 김 군이 어렵게 꺼낸 첫 단어는, "부모님".



위 사진은 김 군 아버지의 손입니다. 김 군의 부모님은 아들이 야구에 소질을 보이자 억척스럽게 맞벌이를 해가며 김 군을 뒷바라지 해왔습니다.

'만약 내 일이 알려져 학교에서 전학이라도 가라고 한다면 부모님은 더 힘들어질 거야'

이 생각으로 김 군은 참았다고 합니다. 나쁜 소식은 금방 퍼지고 그만큼 피해도 크게 돌아오는, 좁디좁은 야구계, 학교나 코치의 말이 곧 '법'인 고교 운동부의 현실을 김 군은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 "그런데 왜 저 형은 벌을 받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군과 김 군 부모님을 더 참지 못하게 했던 것은 '학교의 대응'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측은 전지훈련을 열흘 남겨두고 김 군이 입을 열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알게 됐습니다. 가해 학생 조사를 통해 김 군의 말이 대부분 사실이라는 것도 파악했습니다. 코치진은 뒤늦게 가해 학생을 한국으로 먼저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생활을 함께하는 코치진과 교사들이 왜, 무려 20일 동안 김 군의 피해 사실을 몰랐을까요?

'학교폭력대책위원회'.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아무리 늦어도 3주 안에 학폭위를 열어야 합니다. 있었던 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가해학생에게 어떤 처벌을 내릴지도 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폭행이 있고 나서 50일이 지난 오늘(25일)까지도 학폭위는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 해당 학교 "조사할 사항이 더 있어서..."

해당 학교는 폭력을 확인했다면서도 조사할 게 더 있기 때문에 학폭위 개최가 늦어지고 있다는 대답을 내놨습니다. 학교가 미적거리는 사이, 김 군은 병원 치료와 최면 치료를 받았습니다. 부모님한테 다 하지 못한 말들까지 털어놓고, 이제 다시 야구 글러브를 꼈습니다. 엉덩이에 적혀있던 선배 이름도 이제 지워졌습니다.

김 군에게는 새 꿈이 생겼습니다. 이 학교에서, 바로 이 학교에서 보란듯이 잘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 학교 대응이 자꾸 늦어지자 전학도 잠깐 생각했지만 바로 이 꿈이 김 군의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김 군의 부모님은 그런 아들이 대견하게 느껴지다가도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을 참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미 다 조사했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 아들이 입은 상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죠?"

김 군 엉덩이에 적혔다 지워진 그 선배의 이름이 김 군 마음에서도 정말 지워졌을까요? 


※ 이 기사는 3월 25일 KBS 뉴스9에서 방송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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