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이순신 장군 창피하게 만든 ‘거북선’

입력 2015.05.0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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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충무공 이순신이 탄생한 지 4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의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로 매번 1,2위를 차지하는 이순신 장군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영화 '명량' 등을 거치며 한국사회에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관광자원에 목 마른 자치단체들은 이 같은 '이순신 신드롬'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충무공 탄신일과 한산대첩 기념일이 되면, 경남 통영과 남해 등 자치단체들이 대규모의 이순신 축제를 엽니다. 전국 곳곳에 이순신 기념공원과 건축물, 생가 터도 조성돼 있습니다. 이러한 이순신의 관광 효과를 일찌감치 눈여겨 본 경상남도는 김태호 전 도지사 시절이던 지난 2007년 '이순신 프로젝트'를 추진합니다. 12개 사업에 총 예산만 1700여 억원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특히 40억 원을 투입한 '거북선과 판옥선 복원 사업'은 이순신 프로젝트의 핵심이었습니다.

■ 짝퉁 논란에 부실건조 논란까지

하지만 막상 건조된 거북선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진수식을 마친 뒤 한 달도 안 돼 '짝퉁' 논란이 일었습니다. 애초 거북선을 국산 금강송으로 제작했다던 홍보와 달리 수입산 목재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시공업체 대표는 구속됐고, 당시 도지사가 도민 앞에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짝퉁 논란이 잠잠해질 때쯤 이번에는 '부실 건조' 논란이 일었습니다. 항구에 정박해 놓은 거북선의 선체 내부에 물이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고인 물로 선체가 기울어질 정도였습니다. 결국 2013년 2월, 거북선은 뭍으로 올라와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거제의 조선해양문화관에 육상 전시를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용의 머리가 썩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전시 2년도 안 돼, 2,200만 원을 들여 용의 머리를 교체해야 했습니다.

같은 시기 거제시도 7억 4천 만 원을 들여 거북선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북선 역시, 시작부터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2013년 1월, 입항 과정에서 선박이 바다에 침수된 겁니다. 복원력, 즉 선박이 외부의 힘에 평형을 이루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계획된 날짜에 해상 전시를 하지 못한 채 천 만 원을 들여 다시 긴급 보수 작업을 벌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보수 뒤 해상 전시가 시작된 뒤에도 수차례 안전성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배가 좌우로 흔들림이 심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승선할 경우 안전이 우려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한 해 5천 만원이 넘는 관리비도 논란이었습니다. 결국 거북선을 위탁 관리하는 주민들이, 육상 전시를 요구하는 실정에 이르렀습니다. 해상 전시용으로 설계된 거북선을 육상 전시로 바꾸려면 최소 1억 원이 넘는 예산을 또 투입해야 한다니, 이쯤되면 거북선이 돈 먹는 '애물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거북선 복원 등에 쓰인 예산 300억…대부분 적자

지난 2005년부터 경남과 전남 등 남해안의 자치단체들이 앞다퉈 복원한 거북선과 거북선 모양의 유람선은 모두 11척에 이르는데, 투입된 예산만 300억 원이 훌쩍 넘습니다. 그런데 복원된 거북선 대부분은 애초 계획과 달리 육상 전시에 그치고 있습니다. 거북선 모양 유람선들 역시 대부분 이용객이 적어 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예견됐던 일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라진 거북선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려면, 그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고증과 연구 작업을 거쳤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된 경남도 복원 거북선의 경우 사업 추진부터 최종 건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년.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의혹을 피해가기 힘듭니다. 또, 설계 과정에서 역사학자와 이순신 연구가, 한선 제작업체, 조선소 관계자들이 두루 참여해 보다 정밀한 복원 설계도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이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자치단체들보다 더 빨리, 크고 화려한 거북선을 만들어 관광 효과를 선점하겠다는 조급함이, 결과적으로는 부실 거북선만 낳은 꼴이 되었습니다.

13척의 배를 끌고 330여 척에 달하는 일본 수군과 맞섰던 이순신 장군. 평범한 '사람' 이순신을, 전설의 '지도자'로 만든 힘은 이순신의 리더십에 있다고 말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았던 원칙주의자, 위기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진정성. 존경 받는 지도자가 사라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이순신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순신을 기리겠다며 수십 억 원을 들이고도 엉터리로 복원된 거북선은, 우리가 진짜 기념하고 싶었던 이순신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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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9] 44억 원 들여 ‘물 새는 거북선’?…지자체 엉터리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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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이순신 장군 창피하게 만든 ‘거북선’
    • 입력 2015-05-02 08:56:44
    취재후·사건후
올해는 충무공 이순신이 탄생한 지 4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의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로 매번 1,2위를 차지하는 이순신 장군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영화 '명량' 등을 거치며 한국사회에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관광자원에 목 마른 자치단체들은 이 같은 '이순신 신드롬'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충무공 탄신일과 한산대첩 기념일이 되면, 경남 통영과 남해 등 자치단체들이 대규모의 이순신 축제를 엽니다. 전국 곳곳에 이순신 기념공원과 건축물, 생가 터도 조성돼 있습니다. 이러한 이순신의 관광 효과를 일찌감치 눈여겨 본 경상남도는 김태호 전 도지사 시절이던 지난 2007년 '이순신 프로젝트'를 추진합니다. 12개 사업에 총 예산만 1700여 억원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특히 40억 원을 투입한 '거북선과 판옥선 복원 사업'은 이순신 프로젝트의 핵심이었습니다. ■ 짝퉁 논란에 부실건조 논란까지 하지만 막상 건조된 거북선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진수식을 마친 뒤 한 달도 안 돼 '짝퉁' 논란이 일었습니다. 애초 거북선을 국산 금강송으로 제작했다던 홍보와 달리 수입산 목재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시공업체 대표는 구속됐고, 당시 도지사가 도민 앞에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짝퉁 논란이 잠잠해질 때쯤 이번에는 '부실 건조' 논란이 일었습니다. 항구에 정박해 놓은 거북선의 선체 내부에 물이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고인 물로 선체가 기울어질 정도였습니다. 결국 2013년 2월, 거북선은 뭍으로 올라와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거제의 조선해양문화관에 육상 전시를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용의 머리가 썩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전시 2년도 안 돼, 2,200만 원을 들여 용의 머리를 교체해야 했습니다. 같은 시기 거제시도 7억 4천 만 원을 들여 거북선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북선 역시, 시작부터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2013년 1월, 입항 과정에서 선박이 바다에 침수된 겁니다. 복원력, 즉 선박이 외부의 힘에 평형을 이루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계획된 날짜에 해상 전시를 하지 못한 채 천 만 원을 들여 다시 긴급 보수 작업을 벌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보수 뒤 해상 전시가 시작된 뒤에도 수차례 안전성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배가 좌우로 흔들림이 심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승선할 경우 안전이 우려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한 해 5천 만원이 넘는 관리비도 논란이었습니다. 결국 거북선을 위탁 관리하는 주민들이, 육상 전시를 요구하는 실정에 이르렀습니다. 해상 전시용으로 설계된 거북선을 육상 전시로 바꾸려면 최소 1억 원이 넘는 예산을 또 투입해야 한다니, 이쯤되면 거북선이 돈 먹는 '애물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거북선 복원 등에 쓰인 예산 300억…대부분 적자 지난 2005년부터 경남과 전남 등 남해안의 자치단체들이 앞다퉈 복원한 거북선과 거북선 모양의 유람선은 모두 11척에 이르는데, 투입된 예산만 300억 원이 훌쩍 넘습니다. 그런데 복원된 거북선 대부분은 애초 계획과 달리 육상 전시에 그치고 있습니다. 거북선 모양 유람선들 역시 대부분 이용객이 적어 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예견됐던 일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라진 거북선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려면, 그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고증과 연구 작업을 거쳤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된 경남도 복원 거북선의 경우 사업 추진부터 최종 건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년.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의혹을 피해가기 힘듭니다. 또, 설계 과정에서 역사학자와 이순신 연구가, 한선 제작업체, 조선소 관계자들이 두루 참여해 보다 정밀한 복원 설계도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이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자치단체들보다 더 빨리, 크고 화려한 거북선을 만들어 관광 효과를 선점하겠다는 조급함이, 결과적으로는 부실 거북선만 낳은 꼴이 되었습니다. 13척의 배를 끌고 330여 척에 달하는 일본 수군과 맞섰던 이순신 장군. 평범한 '사람' 이순신을, 전설의 '지도자'로 만든 힘은 이순신의 리더십에 있다고 말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았던 원칙주의자, 위기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진정성. 존경 받는 지도자가 사라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이순신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순신을 기리겠다며 수십 억 원을 들이고도 엉터리로 복원된 거북선은, 우리가 진짜 기념하고 싶었던 이순신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묻고 있습니다. [연관기사] ☞ [뉴스9] 44억 원 들여 ‘물 새는 거북선’?…지자체 엉터리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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