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금융회사에 속고 있다? 내 돈 지키는 설명서

입력 2015.06.01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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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28]

저금리 시대, 당신의 돈을 지키는 금융회사 사용 설명서


1%대 저금리 시대가 본격화되자 돈을 굴릴 곳을 찾지 못하겠다며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비상이 걸린 것은 금융회사도 마찬가지다. 금융회사들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데다 고객이 돈을 맡겨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금융회사들은 고성장의 과실을 마음껏 누리며 막대한 이윤을 챙겨왔다. 하지만 고령화에 의한 성장률 둔화가 본격화되면 장기적으로 저수익·저금리 기조가 고착화되면 금융회사들의 이윤도 함께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수익성 악화로 경영 위기에 내몰리면 아무리 신뢰할 수 있었던 금융회사들이라고 하더라도 고객에게 불리한 마케팅 전략을 내세우거나 허황된 약속으로 고객을 현혹하려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80년대 생명보험사들이 팔았던 백수(白壽) 보험이다. 보험사들은 한 달에 3~4만 원을 내면 한 해 연금 100만원 외에 수억 원대의 확정배당금을 추가로 준다며 가입자들을 끌어 모았다. 당시 직장인 월급이 10만 원대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보험료였지만 백수보험 가입자들은 풍족한 노후를 꿈꾸며 생활비를 아끼면서 꼬박꼬박 보험료를 냈다. 하지만 20여년이 흘러 보험금을 지급할 때가 되자 보험사들은 시중금리가 떨어졌다는 것을 이유로 확정배당금을 거의 지급하지 않았다. 가입자들은 보험사들이 ‘확정배당금’이라고 명시해놓고도 이를 주지 않는다며 소송까지 냈지만, 법원은 보험사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금리가 치솟아 오르자, 보험사들은 고객들을 잃지 않기 위해 예정이율이 연 10%에 육박하는 고금리 저축성 보험 상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나중에 금리가 급락하자, 많은 보험사들은 더 좋은 상품을 출시한 것처럼 고객들을 현혹해 예정이율이 훨씬 더 낮거나 변동금리 상품으로 갈아타도록 유도하였다. 보험사를 믿고 보험 상품을 갈아탄 고객들은 예정이율이 반토막까지 떨어져 큰 손해를 보았다.

이처럼 갑자기 금융환경이 바뀌었을 때 금융회사들의 태도가 돌변한 경우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그 동안 믿고 거래해 왔던 ‘단골’ 금융회사라고 하더라도 결코 과신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금융사들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법과 원칙을 잘 지키는 나라 중에 하나인 오스트리아조차 자신들이 누리던 호황이 끝나는 순간 와인에 ‘자동차 부동액’을 넣는 황당한 사기극까지 벌였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왜 그들은 와인에 부동액을 넣었을까?

197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귀부병(貴腐病; Noble rot)이라는 병충해가 오스트리아 포도농장을 휩쓸었기 때문이었다. 귀부병이란 귀하게 부패했다는 뜻으로 이 병은 포도에 있던 수분을 빨아들여 포도알이 쪼그라들지만 대신 당도가 크게 올라간다. 이 때문에 눈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썩은 포도처럼 보이지만, 와인을 만들면 달콤하고 점도가 높아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귀부와인’이 된다. 이 귀부병 덕분에 와인 수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유럽 3대 와인 수출국이 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무슨 일인지 귀부병이 덜 유행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 와인은 특유의 맛을 잃고 큰 위기를 겪게 되었다. 하지만 호황을 누렸던 오스트리아 농가들은 과거의 영광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와인에 다른 첨가물을 넣는 것 자체가 불법이지만, 오스트리아 와인 업계는 귀부와인과 같은 달콤하고 진득한 맛을 내기 위해 온갖 실험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동차 부동액’을 와인에 넣었더니 귀부와인과 같은 맛을 내는 것을 발견하고 와인에 화학물질을 섞기 시작하였다.

이 ‘부동액 와인’ 덕에 오스트리아의 와인은 명성을 되찾고 다시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웃 나라들은 기후와 풍토가 비슷한데도 왜 오스트리아에서만 맛있는 와인이 나오는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트리아의 한 와인 업체가 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부동액 성분의 화학물질 구입비용 영수증을 국세청에 제출하는 바람에 와인에 부동액을 섞은 사실이 만천하에 들통 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1985년 유럽을 발칵 뒤집었던 ‘오스트리아 와인 스캔들’이었다. 이로 인해 와인 수출이 아예 중단되다시피 하면서 경제 전체가 휘청거릴 만큼 큰 타격을 받았다. 와인 스캔들이 한창 화제가 되었던 당시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 반바지만 입고 돌아다니는데, 그 이유는 와인에 부동액을 섞어 마시기 때문이다’와 같은 유머가 유행할 정도였다.



■ ‘공포 마케팅’이 당신의 돈을 노린다

제 아무리 신뢰할 수 있었던 금융회사라고 하더라도 수익률이 급속도로 악화돼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당신을 속이려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방법 중에 하나는 바로 ‘공포마케팅’이다. 일부 금융회사들은 노후에 대한 근심이 커진 것을 이용해 은퇴 이후 10억 원의 목돈이 필요하다는 허황된 수치를 제시하고, 당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하게 금융상품에 가입하도록 유도하는 수법을 쓰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은퇴 이후 한 달에 300만원씩 생활비로 쓰려면 30년 동안 10억 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10억 원을 만들려면 젊었을 때부터 저축성 보험 같은 장기 금융 상품에 몇 백만 원에 이르는 큰돈을 불입해야 한다고 겁을 준다. 물론 일찍부터 저축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하지만 노후를 대비하겠다고 무리하게 큰돈을 장기 금융상품에 넣었다가 정작 목돈이 필요하거나 생활비가 부족할 때 중도에 해지해 막대한 손해를 보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더구나 노후에 호화생활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면 10억 원이라는 엄청난 목돈을 준비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은퇴 이후 한 달에 생활비로 300만 원을 쓰는 가구는 대다수 중산층과 매우 거리가 멀다. 더구나 국민연금에 가입한 4,50대의 경우 젊었을 때 소득의 4분의 1정도를 국민연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 특히 부부가 모두 국민연금에 가입한 경우에는 그 비율이 훨씬 높아진다. 더구나 금융회사들은 노후에 근로소득이 전혀 없는 것을 가정하지만 우리나라에서 60대 초반의 고용율은 무려 57%로 30대보다도 고용율이 높기 때문에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더구나 은퇴 이후 나이가 들어갈수록 필요한 생활비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미국의 경우 80대 가구의 생활비는 60대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는 통계가 있다. 이 때문에 60대와 동일한 수준으로 80대 생활비를 추정하는 일부 금융회사의 계산방법은 고객들의 공포심을 유발해 자신의 금융상품을 팔기 위한 것일 뿐, 우리가 맞이하게 될 노후와는 거리가 멀다.

결국 정말 내 노후를 위협하는 것은 은퇴 시에 10억 원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금융회사의 공포마케팅에 속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리한 투자나 저축을 하는 것이다. 이 같은 공포마케팅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그들이 심어주는 막연한 두려움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노후를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노후를 준비할 시간도 그 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이를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 그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차분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 단골에서 ‘호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흔히 주거래 금융회사를 만들어 단골이 되면 많은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때문에 금융거래를 한 금융회사에 집중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단골 고객에 대한 혜택이라는 것이 종류만 요란할 뿐 실제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따져보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큰 돈을 대출 받는 등 결정적인 거래를 할 때는 ‘단골’ 금융회사를 믿는 것이 더 손해를 볼 수도 있다.

2000년 9월 미국의 인터넷 쇼핑 사이트인 아마존(Amazon)이 고객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아마존을 즐겨 사용하던 한 인터넷 사용자가 컴퓨터를 정리하기 위해 과거 접속기록을 모두 삭제하고 아마존에 접속해 평소에 눈여겨 봐뒀던 DVD 타이틀을 사려고 했다. 그랬더니 평소에는 26달러였던 DVD 가격이 22달러로 낮아져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마존은 고객의 접속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가 자주 찾아오는 단골 고객이면 비싼 가격을 노출시키고, 새로운 고객이면 더 싼 가격을 노출시키는 이중가격 정책을 썼다.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격차별’이라는 마케팅 전략을 사용한 것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기존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아마존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이 같은 가격차별 정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윤을 끌어올리기 위해 단골에게 더 비싼 가격을 매기는 마케팅 전략을 쓰는 것은 아마존만이 아니다. 과거 우리 이동통신사들도 기존 고객보다 신규 고객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처럼 아마존이나 이동통신사들의 가격차별은 고객들에게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은밀하면서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금융회사들의 가격차별정책이다. 금융회사들이 책정하는 대출 금리나 담보 조건 등은 사람마다 다른데다가 상담에서 대출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가격을 비교하기 위해 발품을 팔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은행이 신규 고객보다 오히려 단골에게 더 비싼 대출금리를 매기는 가격차별을 한다고 해도 이를 알아채기가 매우 어렵다.

이처럼 단골 금융회사만 믿고 거래했다가 손해를 본 것을 깨닫고 언론사에 제보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일단 금융상품을 계약하고 난 뒤에는 이 같은 피해를 구제받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중요한 거래를 할 때는 단골 은행만 믿지 말고 조금만 더 발품을 팔아 경쟁은행의 조건을 확인하는 편이 보다 현명하게 금융회사를 이용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최근 금융회사들이 이윤을 더욱 높이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공포마케팅’과 ‘가격차별’이라는 두 가지 마케팅 전략을 파헤쳐보았다. 물론 금융회사 중에는 신뢰할 수 있는 곳도 많이 있다. 또 더 나은 노후를 위해서는 금융회사들을 기피하기보다 현명하게 잘 활용하는 편이 유리하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언제나 내 편이라고 과신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꼼꼼히 살펴보고 주의하는 편이 좋다. 과거 고성장 시대에는 큰 손실을 봐도 얼마든지 이를 메울 기회가 찾아왔지만, 앞으로 저성장 시대가 고착되면 한 번만 손실을 보면 이를 회복할 기회가 좀처럼 찾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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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01 0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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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귀부병(貴腐病; Noble rot)이라는 병충해가 오스트리아 포도농장을 휩쓸었기 때문이었다. 귀부병이란 귀하게 부패했다는 뜻으로 이 병은 포도에 있던 수분을 빨아들여 포도알이 쪼그라들지만 대신 당도가 크게 올라간다. 이 때문에 눈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썩은 포도처럼 보이지만, 와인을 만들면 달콤하고 점도가 높아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귀부와인’이 된다. 이 귀부병 덕분에 와인 수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유럽 3대 와인 수출국이 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무슨 일인지 귀부병이 덜 유행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 와인은 특유의 맛을 잃고 큰 위기를 겪게 되었다. 하지만 호황을 누렸던 오스트리아 농가들은 과거의 영광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와인에 다른 첨가물을 넣는 것 자체가 불법이지만, 오스트리아 와인 업계는 귀부와인과 같은 달콤하고 진득한 맛을 내기 위해 온갖 실험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동차 부동액’을 와인에 넣었더니 귀부와인과 같은 맛을 내는 것을 발견하고 와인에 화학물질을 섞기 시작하였다. 이 ‘부동액 와인’ 덕에 오스트리아의 와인은 명성을 되찾고 다시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웃 나라들은 기후와 풍토가 비슷한데도 왜 오스트리아에서만 맛있는 와인이 나오는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트리아의 한 와인 업체가 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부동액 성분의 화학물질 구입비용 영수증을 국세청에 제출하는 바람에 와인에 부동액을 섞은 사실이 만천하에 들통 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1985년 유럽을 발칵 뒤집었던 ‘오스트리아 와인 스캔들’이었다. 이로 인해 와인 수출이 아예 중단되다시피 하면서 경제 전체가 휘청거릴 만큼 큰 타격을 받았다. 와인 스캔들이 한창 화제가 되었던 당시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 반바지만 입고 돌아다니는데, 그 이유는 와인에 부동액을 섞어 마시기 때문이다’와 같은 유머가 유행할 정도였다. ■ ‘공포 마케팅’이 당신의 돈을 노린다 제 아무리 신뢰할 수 있었던 금융회사라고 하더라도 수익률이 급속도로 악화돼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당신을 속이려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방법 중에 하나는 바로 ‘공포마케팅’이다. 일부 금융회사들은 노후에 대한 근심이 커진 것을 이용해 은퇴 이후 10억 원의 목돈이 필요하다는 허황된 수치를 제시하고, 당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하게 금융상품에 가입하도록 유도하는 수법을 쓰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은퇴 이후 한 달에 300만원씩 생활비로 쓰려면 30년 동안 10억 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10억 원을 만들려면 젊었을 때부터 저축성 보험 같은 장기 금융 상품에 몇 백만 원에 이르는 큰돈을 불입해야 한다고 겁을 준다. 물론 일찍부터 저축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하지만 노후를 대비하겠다고 무리하게 큰돈을 장기 금융상품에 넣었다가 정작 목돈이 필요하거나 생활비가 부족할 때 중도에 해지해 막대한 손해를 보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더구나 노후에 호화생활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면 10억 원이라는 엄청난 목돈을 준비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은퇴 이후 한 달에 생활비로 300만 원을 쓰는 가구는 대다수 중산층과 매우 거리가 멀다. 더구나 국민연금에 가입한 4,50대의 경우 젊었을 때 소득의 4분의 1정도를 국민연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 특히 부부가 모두 국민연금에 가입한 경우에는 그 비율이 훨씬 높아진다. 더구나 금융회사들은 노후에 근로소득이 전혀 없는 것을 가정하지만 우리나라에서 60대 초반의 고용율은 무려 57%로 30대보다도 고용율이 높기 때문에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더구나 은퇴 이후 나이가 들어갈수록 필요한 생활비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미국의 경우 80대 가구의 생활비는 60대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는 통계가 있다. 이 때문에 60대와 동일한 수준으로 80대 생활비를 추정하는 일부 금융회사의 계산방법은 고객들의 공포심을 유발해 자신의 금융상품을 팔기 위한 것일 뿐, 우리가 맞이하게 될 노후와는 거리가 멀다. 결국 정말 내 노후를 위협하는 것은 은퇴 시에 10억 원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금융회사의 공포마케팅에 속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리한 투자나 저축을 하는 것이다. 이 같은 공포마케팅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그들이 심어주는 막연한 두려움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노후를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노후를 준비할 시간도 그 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이를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 그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차분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 단골에서 ‘호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흔히 주거래 금융회사를 만들어 단골이 되면 많은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때문에 금융거래를 한 금융회사에 집중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단골 고객에 대한 혜택이라는 것이 종류만 요란할 뿐 실제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따져보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큰 돈을 대출 받는 등 결정적인 거래를 할 때는 ‘단골’ 금융회사를 믿는 것이 더 손해를 볼 수도 있다. 2000년 9월 미국의 인터넷 쇼핑 사이트인 아마존(Amazon)이 고객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아마존을 즐겨 사용하던 한 인터넷 사용자가 컴퓨터를 정리하기 위해 과거 접속기록을 모두 삭제하고 아마존에 접속해 평소에 눈여겨 봐뒀던 DVD 타이틀을 사려고 했다. 그랬더니 평소에는 26달러였던 DVD 가격이 22달러로 낮아져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마존은 고객의 접속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가 자주 찾아오는 단골 고객이면 비싼 가격을 노출시키고, 새로운 고객이면 더 싼 가격을 노출시키는 이중가격 정책을 썼다.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격차별’이라는 마케팅 전략을 사용한 것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기존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아마존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이 같은 가격차별 정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윤을 끌어올리기 위해 단골에게 더 비싼 가격을 매기는 마케팅 전략을 쓰는 것은 아마존만이 아니다. 과거 우리 이동통신사들도 기존 고객보다 신규 고객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처럼 아마존이나 이동통신사들의 가격차별은 고객들에게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은밀하면서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금융회사들의 가격차별정책이다. 금융회사들이 책정하는 대출 금리나 담보 조건 등은 사람마다 다른데다가 상담에서 대출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가격을 비교하기 위해 발품을 팔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은행이 신규 고객보다 오히려 단골에게 더 비싼 대출금리를 매기는 가격차별을 한다고 해도 이를 알아채기가 매우 어렵다. 이처럼 단골 금융회사만 믿고 거래했다가 손해를 본 것을 깨닫고 언론사에 제보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일단 금융상품을 계약하고 난 뒤에는 이 같은 피해를 구제받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중요한 거래를 할 때는 단골 은행만 믿지 말고 조금만 더 발품을 팔아 경쟁은행의 조건을 확인하는 편이 보다 현명하게 금융회사를 이용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최근 금융회사들이 이윤을 더욱 높이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공포마케팅’과 ‘가격차별’이라는 두 가지 마케팅 전략을 파헤쳐보았다. 물론 금융회사 중에는 신뢰할 수 있는 곳도 많이 있다. 또 더 나은 노후를 위해서는 금융회사들을 기피하기보다 현명하게 잘 활용하는 편이 유리하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언제나 내 편이라고 과신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꼼꼼히 살펴보고 주의하는 편이 좋다. 과거 고성장 시대에는 큰 손실을 봐도 얼마든지 이를 메울 기회가 찾아왔지만, 앞으로 저성장 시대가 고착되면 한 번만 손실을 보면 이를 회복할 기회가 좀처럼 찾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대담한 경제] 인구절벽! 당신의 노후가 위험하다 ☞ [대담한 경제] 가계부채, 세계의 경고 속 태평 대한민국 ☞ [대담한 경제] 세계는 임금 인상 열풍…거꾸로 가는 한국 ☞ [대담한 경제] 부동산 황제의 교훈…집 살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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