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똑똑] 산성비 맞으면 정말 머리가 빠질까?

입력 2015.06.23 (05:59) 수정 2015.08.0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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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호수는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중동에서 들어온 신종 역병이 전국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메마른 산하의 목마름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북한 지역은 10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랍니다. 며칠 전 단비가 대지를 적셨지만, 해갈에는 충분치 않습니다. 장마라도 빨리 와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두둑, 두둑, 비가 듣는 소리, 탁, 탁, 탁, 비닐 슬레이트를 치는 소리, 안개가 피어오르며 시야가 뿌우연 회색빛으로 물들고 정다운 언니나 이모의 기척 같이 이슬비가 내리고.. 비 오는 날이면 그녀는 감미로운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

이청해의 소설 <빗소리>의 한 구절입니다.

비 오는 날이면 테라스에 앉아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봅니다. 탁, 탁, 탁, 빗방울이 듣는 소리가 가슴을 울립니다. 물방울이 기억의 파편 사이로 피어오릅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들, 잠시 상념에 젖어듭니다. 문득 ‘비를 맞고 싶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창 사춘기였던 중학교 3학년 시절, 소나기가 오면 무작정 뛰쳐나갔습니다. 온몸이 생쥐 모양으로 젖어 이빨이 딱딱 부딪히고, 세찬 빗줄기가 얼굴을 때려도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무언지 모를 자신감, 폭우에 맞서도 기죽지 않는다는 사춘기 시절의 객기 같은 것 아니었을까요? 성인이 된 이후엔 좀처럼 비를 맞지 않습니다. 주위 시선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성비라는데 괜찮을까? 옛날에는 맞아도 됐지만, 괜히 머리 빠지는 것 아냐?’ 이런 생각도 한몫을 합니다.

산도가 pH 5.6 이하의 비를 산성비라고 정의합니다. 자동차 배기가스의 질소산화물과 공장 등에서 화석연료를 연소시켜 나오는 황산화물이 수증기와 만나면 질산과 황산이 됩니다. 질산과 황산은 강산이기 때문에 빗속에 녹으면 빗물의 pH를 낮춥니다. 산성비는 육지와 물을 산성화시키고, 삼림을 말라 죽게 하는 등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스칸디나비아의 최대 현안은 산성비였습니다. 침엽수림 사이에 보석처럼 박힌 호수가 산성을 띠면서 수천 곳에서 물고기가 떼죽음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질소산화물 같은 오염물질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보다 영국과 독일 등에서 오는 게 훨씬 많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중국 발 오염물질의 피해를 입고 있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산성비의 피해가 심하진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산성비가 내립니다. pH는 용액의 산도를 나타내는 단위입니다. 0에서 14까지 숫자로 표현합니다. 7이 중성입니다. 0에 가까울수록 강한 산성입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자료를 보면 전국 비의 연평균 pH는 4.3-5.8 사이입니다. 대도시 지역은 pH 4.4-4.8 정도입니다. 도시 지역에서 내리는 비는 모두 산성비라고 봐도 됩니다. 그럼, 산성비가 정말 머리카락을 빠지게 할까요? 빗물의 산도를 우리가 매일 쓰는 샴푸와 비교해보겠습니다. 일반 샴푸는 pH가 3점대로 빗물에 비해 1이 낮습니다. pH 1은 산도로 10배 차이입니다. 샴푸가 빗물보다 산도가 10배나 높다는 얘깁니다. 산성비를 맞아 머리가 빠진다면 산도가 10배나 높은 샴푸로 매일 머리를 감는 사람은 모두 대머리가 된다는 얘기가 됩니다.

산성비가 머리카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합니다. 굳이 비를 맞을 이유는 없지만, 비를 맞았다고 걱정할 까닭도 없습니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심한 날에만 비를 피하면 됩니다. 먼지나 대기오염물질은 비가 내리는 처음 10분간 많이 섞여 있습니다. 이후 내리는 비는 굳이 피하지 않아도 됩니다. 산성비를 맞았다고 신경 쓸 필요도 없습니다. 탈모를 유발하거나 피부에 나쁜 영향을 미칠 정도의 산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마음의 부담을 벗고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맞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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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똑똑] 산성비 맞으면 정말 머리가 빠질까?
    • 입력 2015-06-23 05:59:40
    • 수정2015-08-04 09:52:58
    건강똑똑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호수는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중동에서 들어온 신종 역병이 전국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메마른 산하의 목마름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북한 지역은 10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랍니다. 며칠 전 단비가 대지를 적셨지만, 해갈에는 충분치 않습니다. 장마라도 빨리 와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두둑, 두둑, 비가 듣는 소리, 탁, 탁, 탁, 비닐 슬레이트를 치는 소리, 안개가 피어오르며 시야가 뿌우연 회색빛으로 물들고 정다운 언니나 이모의 기척 같이 이슬비가 내리고.. 비 오는 날이면 그녀는 감미로운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 이청해의 소설 <빗소리>의 한 구절입니다. 비 오는 날이면 테라스에 앉아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봅니다. 탁, 탁, 탁, 빗방울이 듣는 소리가 가슴을 울립니다. 물방울이 기억의 파편 사이로 피어오릅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들, 잠시 상념에 젖어듭니다. 문득 ‘비를 맞고 싶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창 사춘기였던 중학교 3학년 시절, 소나기가 오면 무작정 뛰쳐나갔습니다. 온몸이 생쥐 모양으로 젖어 이빨이 딱딱 부딪히고, 세찬 빗줄기가 얼굴을 때려도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무언지 모를 자신감, 폭우에 맞서도 기죽지 않는다는 사춘기 시절의 객기 같은 것 아니었을까요? 성인이 된 이후엔 좀처럼 비를 맞지 않습니다. 주위 시선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성비라는데 괜찮을까? 옛날에는 맞아도 됐지만, 괜히 머리 빠지는 것 아냐?’ 이런 생각도 한몫을 합니다. 산도가 pH 5.6 이하의 비를 산성비라고 정의합니다. 자동차 배기가스의 질소산화물과 공장 등에서 화석연료를 연소시켜 나오는 황산화물이 수증기와 만나면 질산과 황산이 됩니다. 질산과 황산은 강산이기 때문에 빗속에 녹으면 빗물의 pH를 낮춥니다. 산성비는 육지와 물을 산성화시키고, 삼림을 말라 죽게 하는 등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스칸디나비아의 최대 현안은 산성비였습니다. 침엽수림 사이에 보석처럼 박힌 호수가 산성을 띠면서 수천 곳에서 물고기가 떼죽음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질소산화물 같은 오염물질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보다 영국과 독일 등에서 오는 게 훨씬 많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중국 발 오염물질의 피해를 입고 있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산성비의 피해가 심하진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산성비가 내립니다. pH는 용액의 산도를 나타내는 단위입니다. 0에서 14까지 숫자로 표현합니다. 7이 중성입니다. 0에 가까울수록 강한 산성입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자료를 보면 전국 비의 연평균 pH는 4.3-5.8 사이입니다. 대도시 지역은 pH 4.4-4.8 정도입니다. 도시 지역에서 내리는 비는 모두 산성비라고 봐도 됩니다. 그럼, 산성비가 정말 머리카락을 빠지게 할까요? 빗물의 산도를 우리가 매일 쓰는 샴푸와 비교해보겠습니다. 일반 샴푸는 pH가 3점대로 빗물에 비해 1이 낮습니다. pH 1은 산도로 10배 차이입니다. 샴푸가 빗물보다 산도가 10배나 높다는 얘깁니다. 산성비를 맞아 머리가 빠진다면 산도가 10배나 높은 샴푸로 매일 머리를 감는 사람은 모두 대머리가 된다는 얘기가 됩니다. 산성비가 머리카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합니다. 굳이 비를 맞을 이유는 없지만, 비를 맞았다고 걱정할 까닭도 없습니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심한 날에만 비를 피하면 됩니다. 먼지나 대기오염물질은 비가 내리는 처음 10분간 많이 섞여 있습니다. 이후 내리는 비는 굳이 피하지 않아도 됩니다. 산성비를 맞았다고 신경 쓸 필요도 없습니다. 탈모를 유발하거나 피부에 나쁜 영향을 미칠 정도의 산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마음의 부담을 벗고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맞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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