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유도의 예는 어디로 갔는가?

입력 2015.06.30 (11:20) 수정 2015.06.3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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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도의 예는 어디로?

“유도는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난다”

유도인들이 수련을 하며 마음에 새기는 경구입니다. 지난 24일, 유도계의 비리가 무더기로 적발됐습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대한유도회 심판위원장 등 쟁쟁한 인사들을 포함해 입건된 사람이 40명에 달했습니다. 그들이 받고 있는 혐의는 '예절'을 강조하는 유도의 정신과는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자기가 지도하는 학생에게 경기에서 고의로 져 주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승리를 눈앞에 둔 선수에게 '지도' 벌칙을 선언해 결국 반칙패를 시키기도 했다는 것이 경찰의 수사 결과입니다.

승부조작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안 모 교수는 선수들의 입상을 독려하기 위해 매달 몇십만 원씩 나오는 '훈련비'를 1억여 원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안 교수가 훈련비를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130여 명에 달하는 선수들은 자기 앞으로 훈련비가 나왔다는 것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안씨와 같은 대학의 유도 교수인 조 모 씨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조씨는 2012년 학과장으로 재임하면서 학교 공금 80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는데, 경찰의 수사망이 조여오자 기상천외한 변명을 생각해 냈다고 합니다. 그 돈으로 산삼을 10뿌리 구매해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먹였다는 겁니다. 그는 이 변명을 위해 심마니까지 동원했다 발각됐습니다.

승부를 조작하고, 돈을 가로채는 등의 비리가 이렇게 방치될 수 있었던 건, 학연과 친분으로 끈끈하게 얽힌 유도계에서 인맥의 핵심에 있는 이들의 권력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허술한 시스템이 이러한 상황을 부채질했습니다. 가령 이번에 밝혀진 전국체전 부정출전 비리를 볼까요? 전국체전에 지역 대표로 출전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 연고가 있어야 합니다. 가령 제주 대표로 출전하려면 제주에서 태어났거나, 제주에서 학교를 나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조건은 실제 거의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전국체전의 허술한 참가 등록 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자격이 안 되는 선수가 참가 신청서를 내도 그대로 승인됐습니다. 참가자들끼리 '상호 감시'를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 “대부님, 잘 좀 부탁합니다”

안 교수를 비롯한 유도계의 관계자들은 이 허술함을 노렸습니다. '상호 감시'를 하라는 말은 결국 '상호 묵인'을 해도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유도회나 체육회의 관계자들은 대회에서 좋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유도계의 대부로 불리는 안 교수에게 너도나도 청탁을 넣었습니다. 참가 자격이 안 되는 선수가 무더기로 출전했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피의자들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부정 출전시킨 선수가 100명이 넘었다고 경찰은 전합니다. 대가로 금품도 오갔습니다.



유도계의 몇몇 '대부'들을 중심으로 선수들을 부정 출전시켜 실적을 올리는 것은 어느새 유도계의 관행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수들에게 이들은 경기 출전 여부와 승패를 좌우하는 존재였고, 체육계 관계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실적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비리에 대한 고발하는 목소리는 잦아들 수밖에요.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못 할 거 같아요.”

교수의 명령으로 전국체전에 부정 출전을 했던 전직 선수가 인터뷰를 고사하면서 보낸 문자입니다. 학교도 졸업하고, 유도계에서 떠나 다른 일을 하는 분이었지만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된 뒤에도 여전히 인터뷰가 부담스러울 만큼, 유도계 몇몇 인사들의 위압감은 컸습니다. 인터뷰를 취소하며 죄송하다고 연거푸 사과하는 그 분을 보고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 상황에서 죄송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될 사람이 누구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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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9] 승부조작에 부정 출전까지…유도 비리 ‘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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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유도의 예는 어디로 갔는가?
    • 입력 2015-06-30 11:20:50
    • 수정2015-06-30 16:34:51
    취재후·사건후
■ 유도의 예는 어디로?

“유도는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난다”

유도인들이 수련을 하며 마음에 새기는 경구입니다. 지난 24일, 유도계의 비리가 무더기로 적발됐습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대한유도회 심판위원장 등 쟁쟁한 인사들을 포함해 입건된 사람이 40명에 달했습니다. 그들이 받고 있는 혐의는 '예절'을 강조하는 유도의 정신과는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자기가 지도하는 학생에게 경기에서 고의로 져 주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승리를 눈앞에 둔 선수에게 '지도' 벌칙을 선언해 결국 반칙패를 시키기도 했다는 것이 경찰의 수사 결과입니다.

승부조작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안 모 교수는 선수들의 입상을 독려하기 위해 매달 몇십만 원씩 나오는 '훈련비'를 1억여 원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안 교수가 훈련비를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130여 명에 달하는 선수들은 자기 앞으로 훈련비가 나왔다는 것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안씨와 같은 대학의 유도 교수인 조 모 씨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조씨는 2012년 학과장으로 재임하면서 학교 공금 80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는데, 경찰의 수사망이 조여오자 기상천외한 변명을 생각해 냈다고 합니다. 그 돈으로 산삼을 10뿌리 구매해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먹였다는 겁니다. 그는 이 변명을 위해 심마니까지 동원했다 발각됐습니다.

승부를 조작하고, 돈을 가로채는 등의 비리가 이렇게 방치될 수 있었던 건, 학연과 친분으로 끈끈하게 얽힌 유도계에서 인맥의 핵심에 있는 이들의 권력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허술한 시스템이 이러한 상황을 부채질했습니다. 가령 이번에 밝혀진 전국체전 부정출전 비리를 볼까요? 전국체전에 지역 대표로 출전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 연고가 있어야 합니다. 가령 제주 대표로 출전하려면 제주에서 태어났거나, 제주에서 학교를 나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조건은 실제 거의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전국체전의 허술한 참가 등록 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자격이 안 되는 선수가 참가 신청서를 내도 그대로 승인됐습니다. 참가자들끼리 '상호 감시'를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 “대부님, 잘 좀 부탁합니다”

안 교수를 비롯한 유도계의 관계자들은 이 허술함을 노렸습니다. '상호 감시'를 하라는 말은 결국 '상호 묵인'을 해도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유도회나 체육회의 관계자들은 대회에서 좋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유도계의 대부로 불리는 안 교수에게 너도나도 청탁을 넣었습니다. 참가 자격이 안 되는 선수가 무더기로 출전했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피의자들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부정 출전시킨 선수가 100명이 넘었다고 경찰은 전합니다. 대가로 금품도 오갔습니다.



유도계의 몇몇 '대부'들을 중심으로 선수들을 부정 출전시켜 실적을 올리는 것은 어느새 유도계의 관행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수들에게 이들은 경기 출전 여부와 승패를 좌우하는 존재였고, 체육계 관계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실적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비리에 대한 고발하는 목소리는 잦아들 수밖에요.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못 할 거 같아요.”

교수의 명령으로 전국체전에 부정 출전을 했던 전직 선수가 인터뷰를 고사하면서 보낸 문자입니다. 학교도 졸업하고, 유도계에서 떠나 다른 일을 하는 분이었지만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된 뒤에도 여전히 인터뷰가 부담스러울 만큼, 유도계 몇몇 인사들의 위압감은 컸습니다. 인터뷰를 취소하며 죄송하다고 연거푸 사과하는 그 분을 보고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 상황에서 죄송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될 사람이 누구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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