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했던 ‘국가대표’ 박주호의 1년

입력 2015.06.30 (13:44) 수정 2015.06.3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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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2일 축구 선수 박주호(28·마인츠)는 구단 페이스북을 통해 득녀 사실을 알렸다.

그로부터 약 1년 전인 2014년 5월 8일 박주호는 그토록 나가고 싶던 2014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최종명단에서 탈락했다.

이 1년간 박주호의 축구인생은 롤러코스터처럼 흘러갔다.

부상을 입은 김진수(호펜하임)의 대체 선수로 극적으로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했으나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이광종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팀의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어 병역 특례 대상이 됐다.

이어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27년만의 준우승에 일조했다.

이제 딸도 생겼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도 있다.

연합뉴스는 30일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사회인'으로 복귀한 박주호를 만나 알차디알찬 1년을 보낸 소감을 들어봤다.

그는 "(좌절을 겪어도) 그냥 내 탓으로 돌리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다음은 박주호와의 일문일답.

-- 마인츠 동료 곤살로 하라(칠레)는 잘 있다던가. (하라는 최근 2015 코파 아메리카 8강전에서 우루과이 공격수 에딘손 카바니(파리 생제르맹)의 엉덩이를 손가락으로 찌르는 도발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 하라 그 친구가 그런 애가 아닌데…. 참 젠틀하고 성실한 친구다. 상대를 자극하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 있지 않나. 계속 거칠게 나가거나 심리전으로 짜증나게 만드는 선수들 말이다. 그런데 하라는 훈련할 때도, 경기에서도 독일에서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원래 그런 친구였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겠는데 전혀 안 그랬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세 번째라고 들었다. 깜짝 놀랐다.

-- 단장이 인터뷰에서 방출을 시사했던데.

▲ 그것은 정말 이례적인 거다. 마인츠라는 구단은 매우 보수적이다. 단장도 평소에 선수 개인에 대해 언급을 잘 안 한다. 대화도 잘 안 한다. 못하는 선수든 잘하는 선수든 똑같이 대한다. 그렇게 인터뷰한 것은 정말 화가 많이 났다는 뜻이다.

한국만 선수 인성을 보는 게 아니다. 유럽은 더하다. 그래서 우리 구단이 아시아 선수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꽤 재미를 보기도 했고. 아마 계속 아시아 선수를 영입할 것으로 본다.

-- 지난 5월 11일 딸이 생겼다. 처음 안았을 때 기분 어땠나.

▲ (한동안 말을 못 하다가) 어느 순간… 이게 어른들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같이 있었는데 딸을 처음 보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기분이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눈이 작아서 '제발 눈만은 나를 닮지 마라' 하고 빌었는데 다행히 눈은 크더라. 혼혈이라서 그런가 보다.

-- 그로부터 1년 전 5월 8일 브라질 월드컵 최종명단 발표가 있었는데 빠졌다. 오른쪽 새끼발가락 부위 염증(봉와직염) 때문이었는데.

▲ 어버이날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부상 여파로 (발탁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긴 했다. 반면에 희망도 품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 많이 좌절했겠다.

▲ 그래도 술 마시거나 의지를 놓지는 않았다. 게을러질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최종명단 발표 이틀 뒤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하루에 세 번 운동했다. 오전과 오후에는 재활을 하고 저녁에는 필라테스를 했다.

-- 결국 부상 회복이 늦은 김진수(호펜하임)가 빠지고 대표팀에 합류했다.

▲ 그렇게 몸을 만들고 있었기에 합류가 가능했던 것 같다.

-- 그리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와일드카드로 발탁돼 팀을 금메달까지 이끌었다. '맏형'으로서 역할을 잘했다는 평가가 많다.

▲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갔더니 다 같은 또래다 보니까 장난이 너무 심하고 긴장감도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무게를 좀 잡았다. 태국과 준결승전 전반전 때 정신력이 해이해진 후배들이 몇 명 보였다. 그래서 하프타임 때 라커룸에서 물건 걷어차고 막 소리 지르고 그랬다. 감독님도 놀라셨다더라.(웃음)

-- 북한전 때는 어땠나. 북한 공격수 박광룡(파두츠)과는 바젤에서 한솥밥 먹은 사이 아닌가.

▲ 동생들이 전반전에 북한 선수들한테 거친 파울을 많이 당해 기가 죽어있었다. 하프타임 때 '너희들도 까라(거칠게 파울 해라). 깐 다음에 바로 미안하다고 하고 그다음에 또 까라. 계속 까면 두려움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후반전에 후배들 기가 살아나니까 북한 친구들이 나한테 와서 '뭐 하는 거냐. 네가 제일 나이 많으니 동생들한테 뭐라고 말 좀 해줘라'라고 부탁하더라. 그래서 나는 동생들한테 '잘했다. 또 까라' 그랬다.

-- 김신욱과 김승규(이상 울산 현대)도 '형님' 역할을 잘했다고 들었다.

▲ (김)승규는 애들과 친하게 지내는 역할이었고 (김)신욱이는 상담하는 역할을 했다. 신욱이가 말을 엄청나게 잘 한다. 소집 첫날에 우리 팀에 기독교 신자가 서너 명이었는데 금메달 딴 뒤에 보니까 10명이나 늘었더라.(김신욱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 종교 때문에 팀 내 위화감이 조성될 수도 있지 않나.

▲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신욱이가 처음에는 상담할 때 말끝마다 '주님'을 붙였는데 좀 있다가 안 믿겠다 싶은 후배들한테는 '주님' 빼고 얘기하더라. 아무튼 신욱이가 후배들 타이르는 일을 정말 잘한다. 애들이 완전히 설득당하더라. 한 친구는 '신욱이 형이랑 얘기하고 치유 받았어요' 이런 말까지 했다.

-- 2015 호주 아시안컵에 출전해 슈틸리케호가 27년만의 준우승을 일구는 데 일조했다. 딸도 낳았다.

▲ 브라질 월드컵 최종명단 발표일부터 1년간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다. 정말 많은 것을 느낀 1년이었다.

-- 이제 2018 러시아 월드컵이다. 기초군사훈련 받았으니 이제 슈틸리케 감독이 부르지 않겠나.

▲ 당연하게 날 부르실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지난 1년을 보내면서 대표팀 유니폼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팬들이 '이 선수는 소속팀에서는 열심히 하는데 대표팀에 오면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할 때가 있지 않나. 1년 전에 내가 딱 그랬다. 나부터가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불안감이 있었다.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욕 먹겠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면 그라운드에서 안 좋은 쪽으로 안정적인 플레이를 추구하게 된다. 실수 할 수 있는 상황을 줄이는 식으로 플레이를 하게 되더라. '그냥 욕 안 먹고 묻어만 가자'는 식으로 경기에 임하게 된다.

그런데 지난 1년간 마음고생을 하면서 대표팀이 정말 간절해졌다. 경기장에 들어가면 실수고 뭐고 그냥 죽어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뛴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욕 먹어도 신경을 안 쓰게 되더라.

--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플레이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나.

▲ 그냥 내 탓으로 돌리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1년간 가장 크게 배운 게 그거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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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만장했던 ‘국가대표’ 박주호의 1년
    • 입력 2015-06-30 13:44:55
    • 수정2015-06-30 13:47:16
    연합뉴스
2015년 5월 12일 축구 선수 박주호(28·마인츠)는 구단 페이스북을 통해 득녀 사실을 알렸다. 그로부터 약 1년 전인 2014년 5월 8일 박주호는 그토록 나가고 싶던 2014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최종명단에서 탈락했다. 이 1년간 박주호의 축구인생은 롤러코스터처럼 흘러갔다. 부상을 입은 김진수(호펜하임)의 대체 선수로 극적으로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했으나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이광종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팀의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어 병역 특례 대상이 됐다. 이어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27년만의 준우승에 일조했다. 이제 딸도 생겼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도 있다. 연합뉴스는 30일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사회인'으로 복귀한 박주호를 만나 알차디알찬 1년을 보낸 소감을 들어봤다. 그는 "(좌절을 겪어도) 그냥 내 탓으로 돌리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다음은 박주호와의 일문일답. -- 마인츠 동료 곤살로 하라(칠레)는 잘 있다던가. (하라는 최근 2015 코파 아메리카 8강전에서 우루과이 공격수 에딘손 카바니(파리 생제르맹)의 엉덩이를 손가락으로 찌르는 도발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 하라 그 친구가 그런 애가 아닌데…. 참 젠틀하고 성실한 친구다. 상대를 자극하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 있지 않나. 계속 거칠게 나가거나 심리전으로 짜증나게 만드는 선수들 말이다. 그런데 하라는 훈련할 때도, 경기에서도 독일에서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원래 그런 친구였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겠는데 전혀 안 그랬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세 번째라고 들었다. 깜짝 놀랐다. -- 단장이 인터뷰에서 방출을 시사했던데. ▲ 그것은 정말 이례적인 거다. 마인츠라는 구단은 매우 보수적이다. 단장도 평소에 선수 개인에 대해 언급을 잘 안 한다. 대화도 잘 안 한다. 못하는 선수든 잘하는 선수든 똑같이 대한다. 그렇게 인터뷰한 것은 정말 화가 많이 났다는 뜻이다. 한국만 선수 인성을 보는 게 아니다. 유럽은 더하다. 그래서 우리 구단이 아시아 선수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꽤 재미를 보기도 했고. 아마 계속 아시아 선수를 영입할 것으로 본다. -- 지난 5월 11일 딸이 생겼다. 처음 안았을 때 기분 어땠나. ▲ (한동안 말을 못 하다가) 어느 순간… 이게 어른들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같이 있었는데 딸을 처음 보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기분이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눈이 작아서 '제발 눈만은 나를 닮지 마라' 하고 빌었는데 다행히 눈은 크더라. 혼혈이라서 그런가 보다. -- 그로부터 1년 전 5월 8일 브라질 월드컵 최종명단 발표가 있었는데 빠졌다. 오른쪽 새끼발가락 부위 염증(봉와직염) 때문이었는데. ▲ 어버이날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부상 여파로 (발탁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긴 했다. 반면에 희망도 품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 많이 좌절했겠다. ▲ 그래도 술 마시거나 의지를 놓지는 않았다. 게을러질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최종명단 발표 이틀 뒤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하루에 세 번 운동했다. 오전과 오후에는 재활을 하고 저녁에는 필라테스를 했다. -- 결국 부상 회복이 늦은 김진수(호펜하임)가 빠지고 대표팀에 합류했다. ▲ 그렇게 몸을 만들고 있었기에 합류가 가능했던 것 같다. -- 그리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와일드카드로 발탁돼 팀을 금메달까지 이끌었다. '맏형'으로서 역할을 잘했다는 평가가 많다. ▲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갔더니 다 같은 또래다 보니까 장난이 너무 심하고 긴장감도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무게를 좀 잡았다. 태국과 준결승전 전반전 때 정신력이 해이해진 후배들이 몇 명 보였다. 그래서 하프타임 때 라커룸에서 물건 걷어차고 막 소리 지르고 그랬다. 감독님도 놀라셨다더라.(웃음) -- 북한전 때는 어땠나. 북한 공격수 박광룡(파두츠)과는 바젤에서 한솥밥 먹은 사이 아닌가. ▲ 동생들이 전반전에 북한 선수들한테 거친 파울을 많이 당해 기가 죽어있었다. 하프타임 때 '너희들도 까라(거칠게 파울 해라). 깐 다음에 바로 미안하다고 하고 그다음에 또 까라. 계속 까면 두려움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후반전에 후배들 기가 살아나니까 북한 친구들이 나한테 와서 '뭐 하는 거냐. 네가 제일 나이 많으니 동생들한테 뭐라고 말 좀 해줘라'라고 부탁하더라. 그래서 나는 동생들한테 '잘했다. 또 까라' 그랬다. -- 김신욱과 김승규(이상 울산 현대)도 '형님' 역할을 잘했다고 들었다. ▲ (김)승규는 애들과 친하게 지내는 역할이었고 (김)신욱이는 상담하는 역할을 했다. 신욱이가 말을 엄청나게 잘 한다. 소집 첫날에 우리 팀에 기독교 신자가 서너 명이었는데 금메달 딴 뒤에 보니까 10명이나 늘었더라.(김신욱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 종교 때문에 팀 내 위화감이 조성될 수도 있지 않나. ▲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신욱이가 처음에는 상담할 때 말끝마다 '주님'을 붙였는데 좀 있다가 안 믿겠다 싶은 후배들한테는 '주님' 빼고 얘기하더라. 아무튼 신욱이가 후배들 타이르는 일을 정말 잘한다. 애들이 완전히 설득당하더라. 한 친구는 '신욱이 형이랑 얘기하고 치유 받았어요' 이런 말까지 했다. -- 2015 호주 아시안컵에 출전해 슈틸리케호가 27년만의 준우승을 일구는 데 일조했다. 딸도 낳았다. ▲ 브라질 월드컵 최종명단 발표일부터 1년간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다. 정말 많은 것을 느낀 1년이었다. -- 이제 2018 러시아 월드컵이다. 기초군사훈련 받았으니 이제 슈틸리케 감독이 부르지 않겠나. ▲ 당연하게 날 부르실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지난 1년을 보내면서 대표팀 유니폼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팬들이 '이 선수는 소속팀에서는 열심히 하는데 대표팀에 오면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할 때가 있지 않나. 1년 전에 내가 딱 그랬다. 나부터가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불안감이 있었다.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욕 먹겠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면 그라운드에서 안 좋은 쪽으로 안정적인 플레이를 추구하게 된다. 실수 할 수 있는 상황을 줄이는 식으로 플레이를 하게 되더라. '그냥 욕 안 먹고 묻어만 가자'는 식으로 경기에 임하게 된다. 그런데 지난 1년간 마음고생을 하면서 대표팀이 정말 간절해졌다. 경기장에 들어가면 실수고 뭐고 그냥 죽어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뛴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욕 먹어도 신경을 안 쓰게 되더라. --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플레이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나. ▲ 그냥 내 탓으로 돌리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1년간 가장 크게 배운 게 그거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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