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퍼] 차량 사고 당했는데 “당신 과실도 30%”…보험사들, 왜 그러나요?

입력 2015.06.30 (17:54) 수정 2015.07.0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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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다른 차가 무작정 다가와 부딪혔고,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사고를 낸 차가 책임을 지는 게 상식이겠죠?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고를 '당한' 차량이라도 최소 10% 이상은 같이 책임을 지는 게 관행처럼 돼 있습니다. "바퀴가 구른 이상 당신도 책임이 있다"는 보험사들의 이상한 논리 때문입니다.

■ 옆차에 들이받혔는데도 “20% 과실”

지난 1일, 경남 창원의 한 도로. 주부 이 모 씨가 모는 승용차가 3차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왼쪽의 2차로에는 트레일러가 한 대 있었습니다. 그런에 이 씨의 차량이 트레일러 옆을 거의 다 스쳐 지나갈 무렵, 갑자기 트레일러가 왼쪽으로 다가와선 이 씨의 차량 뒷부분을 들이받았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차량은 모두 같은 자동차 보험사에 가입돼 있었습니다. 보험사 직원은 이 씨에게 무작정 '20 대 80', 다시 말해 피해를 당한 이 씨도 20%의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이 있냐"며 이 씨가 강하게 항의했지만, 보험사 직원은 "도로 위에서는 무과실이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그냥 이 정도로 만족하는 게 어떻겠나. 제시한대로 하든지, 아니면 당신이 피곤해지고 돈도 들 거다"라며 사실상 '압박'까지 가했습니다.

한 달 내내 다투고 항의하다 금융감독원 민원까지 내자, 보험사 측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과실이 없는 것으로 해 줄 테니, 대신 렌터카 비용을 포기하고 차량 수리도 우리가 해 주는 수준으로만 받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과실 비율 산정이 '고무줄'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 “당신 같으면 피할 수 있나요?”

지난해 7월 서울 강동구의 한 도로에선 직진·좌회전이 모두 가능한 2차로에서 직진 신호에 따라 정상 주행하던 차량을, 1차로에 있던 차량이 갑자기 불법 우회전을 하다 앞부분을 들이받았습니다. 그런데 보험사는 들이받힌 차량에다 20%의 과실을 물렸습니다.

지난해 10월 전북 전주에선 1차로를 따라 정상 주행하던 차량을, 2차로에 있던 차량이 속도를 높여 앞서가는 듯하더니 갑자기 왼쪽으로 다가와 들이받았습니다. 역시나 사고를 당한 상황인데도, 피해 차량에는 30%에 달하는 과실 비율이 매겨졌습니다. 운전자들은 하나 같이 "보험사 관계자 같으면 피할 수 있었겠냐"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보험사 측에선 "당신도 달리던 중이었기 떄문에 어쩔 수 없다"며 마치 녹음 테이프라도 튼 듯한 똑같은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이러다 보니 과실 비율이 10%라 해도 상대방이 외제차를 비롯한 고가 차량인 경우엔 자기 차 수리비 보다 훨씬 많은 수리비를 부담하는 불합리한 상황도 속출합니다. "외제차가 옆에 오면 무조건 피하라"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 보험사 “판례를 따를 뿐”

보험사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보험사의 주장은 한결 같습니다. 법원의 과거 '판례'를 따르는 것일 뿐이란 겁니다. 즉, 예전에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있었고, 소송에서 '가해차:피해차' 과실 비율이 '80:20' '70:30'식으로 나왔기 떄문에 그와 같은 사고에 대해선 같은 비율을 적용한 것이란 설명입니다.

여기에다 '가해자 입장 배려'도 강조합니다. 사고를 당한 사람 입장에선 자신은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가해자 입장에서도 왜 자신이 책임을 100% 다 져야 하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 분쟁조정심의위도 ‘무용지물’

보험사가 책정한 과실 비율에 동의하지 못할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손해보험협회의 '구상금분쟁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치면 됩니다.

하지만 연간 2만5천 건에 달하는 분쟁심의 사례 가운데 '100 대 0'이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위원회 자체가 보험사들이 자율적인 협정을 통해 구성한 것이다 보니, 보험사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되려 블랙박스 영상이 명백해 피해 차량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80 대 20' 사고를 심의위에 넘겼더니, '75 대 25'로 오히려 피해자 측 과실 비율을 더 매기는 황당한 사례까지 벌어지는 실정입니다.

■ 전문가들 “돌려막기 꼼수 의혹”

더 큰 문제는 이런 관행이 보험업계의 이해 관계에 따른 것이란 점입니다. 한 보험 업계 관계자는 일종의 '돌려막기'임을 시인했습니다. 즉, 한 개 보험사가 100% 져야 할 보험금 지급 부담을 다른 보험사와 나눠가져 부담을 분산시키는 일종의 '품앗이'라는 겁니다.

보험사가 누리는 또다른 이익도 있습니다. 보험료 할증 내지 할인 유예 효과입니다. 자차 보험을 통한 사고 처리 비용이 클 경우 보험료가 할증됩니다. 또 비용이 크지 않아도 일단 사고에 따른 과실이 조금이라도 있어 자차 보험 처리를 할 경우엔 보험료 할인이 유예됩니다. 보험사들이 피해 차량에 단 1%라도 책임을 물리고자 하는 데는 또다른 유인이 있는 셈입니다.

■ “가해 차량이 책임지게 해야”

전문가들은 보험사의 '피해 차량도 책임 물리기' 관행의 개선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과거엔 양측 운전자의 말밖에 없어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복원과 책임 소재 규명이 쉽지 않았지만, 이젠 생생한 블랙박스 영상이 있습니다. 따라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도저히 피할 수 없었던 것이 영상으로 입증된다면 당연히 '100 대 0'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사고를 일으킨 가해 차량이 100%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 같은 '100 대 0' 문화가 자리 잡을 경우, 교통 사고의 예방 효과도 기대됩니다. 사고를 낸 쪽이 무조건 100% 책임 지게 된다는 인식이 뿌리 내리면, 그만큼 사고를 내지 않는 안전 운전 의식 역시 강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피해 차량을 두 번 세 번 괴롭히는 우리 보험사들의 이해하기 힘든 과실 비율 산정 관행의 개선을 촉구해 봅니다.

[연관 기사]

☞ [집중진단] ① 100% 상대 과실에도 30% 책임…피해 車 ‘분통’

☞ [집중진단] ② 분쟁심의위도 유명무실…"잘못한 쪽이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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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퍼] 차량 사고 당했는데 “당신 과실도 30%”…보험사들, 왜 그러나요?
    • 입력 2015-06-30 17:54:14
    • 수정2015-07-09 11:39:46
    디지털퍼스트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다른 차가 무작정 다가와 부딪혔고,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사고를 낸 차가 책임을 지는 게 상식이겠죠?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고를 '당한' 차량이라도 최소 10% 이상은 같이 책임을 지는 게 관행처럼 돼 있습니다. "바퀴가 구른 이상 당신도 책임이 있다"는 보험사들의 이상한 논리 때문입니다.

■ 옆차에 들이받혔는데도 “20% 과실”

지난 1일, 경남 창원의 한 도로. 주부 이 모 씨가 모는 승용차가 3차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왼쪽의 2차로에는 트레일러가 한 대 있었습니다. 그런에 이 씨의 차량이 트레일러 옆을 거의 다 스쳐 지나갈 무렵, 갑자기 트레일러가 왼쪽으로 다가와선 이 씨의 차량 뒷부분을 들이받았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차량은 모두 같은 자동차 보험사에 가입돼 있었습니다. 보험사 직원은 이 씨에게 무작정 '20 대 80', 다시 말해 피해를 당한 이 씨도 20%의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이 있냐"며 이 씨가 강하게 항의했지만, 보험사 직원은 "도로 위에서는 무과실이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그냥 이 정도로 만족하는 게 어떻겠나. 제시한대로 하든지, 아니면 당신이 피곤해지고 돈도 들 거다"라며 사실상 '압박'까지 가했습니다.

한 달 내내 다투고 항의하다 금융감독원 민원까지 내자, 보험사 측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과실이 없는 것으로 해 줄 테니, 대신 렌터카 비용을 포기하고 차량 수리도 우리가 해 주는 수준으로만 받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과실 비율 산정이 '고무줄'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 “당신 같으면 피할 수 있나요?”

지난해 7월 서울 강동구의 한 도로에선 직진·좌회전이 모두 가능한 2차로에서 직진 신호에 따라 정상 주행하던 차량을, 1차로에 있던 차량이 갑자기 불법 우회전을 하다 앞부분을 들이받았습니다. 그런데 보험사는 들이받힌 차량에다 20%의 과실을 물렸습니다.

지난해 10월 전북 전주에선 1차로를 따라 정상 주행하던 차량을, 2차로에 있던 차량이 속도를 높여 앞서가는 듯하더니 갑자기 왼쪽으로 다가와 들이받았습니다. 역시나 사고를 당한 상황인데도, 피해 차량에는 30%에 달하는 과실 비율이 매겨졌습니다. 운전자들은 하나 같이 "보험사 관계자 같으면 피할 수 있었겠냐"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보험사 측에선 "당신도 달리던 중이었기 떄문에 어쩔 수 없다"며 마치 녹음 테이프라도 튼 듯한 똑같은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이러다 보니 과실 비율이 10%라 해도 상대방이 외제차를 비롯한 고가 차량인 경우엔 자기 차 수리비 보다 훨씬 많은 수리비를 부담하는 불합리한 상황도 속출합니다. "외제차가 옆에 오면 무조건 피하라"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 보험사 “판례를 따를 뿐”

보험사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보험사의 주장은 한결 같습니다. 법원의 과거 '판례'를 따르는 것일 뿐이란 겁니다. 즉, 예전에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있었고, 소송에서 '가해차:피해차' 과실 비율이 '80:20' '70:30'식으로 나왔기 떄문에 그와 같은 사고에 대해선 같은 비율을 적용한 것이란 설명입니다.

여기에다 '가해자 입장 배려'도 강조합니다. 사고를 당한 사람 입장에선 자신은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가해자 입장에서도 왜 자신이 책임을 100% 다 져야 하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 분쟁조정심의위도 ‘무용지물’

보험사가 책정한 과실 비율에 동의하지 못할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손해보험협회의 '구상금분쟁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치면 됩니다.

하지만 연간 2만5천 건에 달하는 분쟁심의 사례 가운데 '100 대 0'이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위원회 자체가 보험사들이 자율적인 협정을 통해 구성한 것이다 보니, 보험사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되려 블랙박스 영상이 명백해 피해 차량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80 대 20' 사고를 심의위에 넘겼더니, '75 대 25'로 오히려 피해자 측 과실 비율을 더 매기는 황당한 사례까지 벌어지는 실정입니다.

■ 전문가들 “돌려막기 꼼수 의혹”

더 큰 문제는 이런 관행이 보험업계의 이해 관계에 따른 것이란 점입니다. 한 보험 업계 관계자는 일종의 '돌려막기'임을 시인했습니다. 즉, 한 개 보험사가 100% 져야 할 보험금 지급 부담을 다른 보험사와 나눠가져 부담을 분산시키는 일종의 '품앗이'라는 겁니다.

보험사가 누리는 또다른 이익도 있습니다. 보험료 할증 내지 할인 유예 효과입니다. 자차 보험을 통한 사고 처리 비용이 클 경우 보험료가 할증됩니다. 또 비용이 크지 않아도 일단 사고에 따른 과실이 조금이라도 있어 자차 보험 처리를 할 경우엔 보험료 할인이 유예됩니다. 보험사들이 피해 차량에 단 1%라도 책임을 물리고자 하는 데는 또다른 유인이 있는 셈입니다.

■ “가해 차량이 책임지게 해야”

전문가들은 보험사의 '피해 차량도 책임 물리기' 관행의 개선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과거엔 양측 운전자의 말밖에 없어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복원과 책임 소재 규명이 쉽지 않았지만, 이젠 생생한 블랙박스 영상이 있습니다. 따라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도저히 피할 수 없었던 것이 영상으로 입증된다면 당연히 '100 대 0'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사고를 일으킨 가해 차량이 100%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 같은 '100 대 0' 문화가 자리 잡을 경우, 교통 사고의 예방 효과도 기대됩니다. 사고를 낸 쪽이 무조건 100% 책임 지게 된다는 인식이 뿌리 내리면, 그만큼 사고를 내지 않는 안전 운전 의식 역시 강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피해 차량을 두 번 세 번 괴롭히는 우리 보험사들의 이해하기 힘든 과실 비율 산정 관행의 개선을 촉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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