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북 우상화의 상징 ‘초상휘장’이 뭐길래

입력 2015.07.04 (08:07) 수정 2015.07.04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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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북한에서 최고 권력층부터 일반 주민들까지누구나 왼쪽 가슴에 달고 다니는 게 있죠.

바로 김일성, 김정일의 얼굴이 들어간 배지, 이른바 ‘초상휘장’인데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의 표시이자, 북한의 세습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 상징물로 통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 배지를 달지 않은 모습이 자주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이 배지 외에 북한의 우상화 상징물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또 그 실태는 어떤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5일, 준공을 마친 평양 순안공항 신청사에 김정은 제 1위원장이 등장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전문 식당가와 면세점 등 공항 내부 시설을 두루 둘러본 김정은은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녹취> 지난달 25일 조선중앙TV : "민족성을 철저히 구현하면서도 국제적 기준에 부합되게 항공역사를 잘 건설했다고..."

하지만 눈길을 더 끈 것은 김정은의 왼쪽 가슴.

북한 사람이면 누구나 달아야한다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배지, 이른바 ‘초상휘장’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김정은의 공개 활동 중 초상휘장을 달지 않은 모습이 부쩍 자주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6월 공개 활동 14번 가운데 초상휘장을 달지 않은 횟수는 절반이 넘는 여덟 번에 이른다.

이는 부인인 리설주도 마찬가지다.

순안공항 시찰에 김정은과 동행한 리설주의 가슴엔, 초상휘장 대신 화려한 브로치가 자리했다.

김정은의 팔짱을 낀 파격적인 모습으로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2012년.

김정일 2주기 등 주요 공식 석상에서도 리설주의 왼쪽 가슴엔 초상휘장이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아요. 일단은 자신의 위상을 좀 과시하려는 측면이 있다고 보여 지고 있고요. 그래서 이제 앞의 지도자들의 전통성을 이어 받지만 자신의 어떤 자유스러움이라든가 달라졌다고 하는 변화를 인민들에게 바로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휘장을 통해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북한 지도부의 초상휘장 착용 여부가 눈길을 끄는 건 북한에서 초상휘장이 가지는 의미 때문이다.

초상휘장이 북한 사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

‘김일성 주석의 영상을 모신 초상휘장을 만들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있은 후 간부는 물론 북한 주민 전체에 초상휘장 착용이 의무화된 것이다.

북한 당국이 최고 지도자의 우상화를 위한 상징물로 초상휘장을 선택한 데엔, 당시 사회주의 혈맹이던 중국의 영향이 컸다.

<인터뷰> 안찬일(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1966년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발발함과 동시에 모택동 우상화가 말하자면 극렬하게 진행되면서 그때 모택동 배지가 등장해서 중국의 홍위병들부터 모택동 배지를 달고 그 다음에 군인, 학생들까지 달도록 강요했는데 북한은 이것을 벤치마킹해서 김일성 단독으로 넣은 배지를 만들어서 그것을 ‘당기상’이라고 불렀습니다."

1980년대 들어 김정일 후계 세습이 공고화되면서 북한의 초상휘장도 변화를 맞이한다.

초반 김일성 단독 배지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모습이 함께 들어간 이른바 ‘쌍상’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쌍상’에 이어 1992년엔 김정일의 쉰 번째 생일을 계기로 김정일 단독 배지가 제작됐다.

외신이 촬영한 평양 거리 모습. 예전의 북한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주민들의 옷차림은 한층 세련되고 자유분방해졌다.

하지만 남녀노소를 막론한 공통점도 있다.

바로 왼쪽 가슴에 단 초상휘장이다.

초상휘장을 달지 않으면 당장에 큰 불이익이 주어지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초상휘장 달기’는 생활화 돼 있다는 전언이다.

<인터뷰> 최정훈(탈북자/2011년 탈북) : "길가에 요소요소에 이 사람들이 지키는 거죠. 지키는 목적은 초상휘장을 달지 않은 사람들을 적발해 가지고 잡아내기 위한 겁니다. 그래서 달지 않은 사람은 따로 길가에서 세워두고 창피를 주고 그리고 한데 모아다가 때로는 어디 끌고 가서 농장이든 어디 노동 현장에 가서 노동시키기도 합니다. "

초상휘장을 왼쪽 가슴에 다는 데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인터뷰> 최정훈(탈북자/2011년 탈북) : "심장에 항상 김일성이나 김정일 같은 영도자들을 항상 모시고 다님으로써 자기 생명처럼 붉은 심장에 우리가 모시고 다닌다. 그만큼 우리가 충성심이 붉은 심장과 같이 그렇게 뜨겁고 붉다 그런 거죠."

때문에 충성심을 대내외에 선전할 수 있는 각종 국제행사에서 초상휘장은 빠질 수 없는 선전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해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우리나라를 찾은 87명 북한 선수단이 일제히 붉은색 초상휘장을 달고 나타난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폐막식을 찾은 북한 실세 3인방이 단 ‘쌍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초상휘장의 신분에 따른 가치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인터뷰> 안찬일(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이런 쌍상 정도 달려면 군에서 사단장 이상 사회에서 군당 비서 군수급 이상들만 이걸 달게 되어있습니다. 이게 일종의 신분을 의미하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좋은걸 달면 신분상승이 되니까, 한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장마당에서 암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배지가 신분을 나타내다 보니 주민들이 자기 과시를 위해 장마당에서 초상휘장을 사고파는 것은 물론 이른바 ‘짝퉁 배지’까지 나돌고 있다.

지난 해 말 KBS가 단독 입수한 북한군 내부 문서.

김정은이 직접 나서 가짜 초상휘장의 밀거래 현상을 없애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권위의 상징이자 우상화의 수단인 초상휘장이 신분을 드러내는 장신구 역할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권력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이 집권이후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선대에 대한 우상화다.

집권 직후인 2012년, 김일성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기념궁전을 새 단장하고 명칭까지 금수산 태양궁전으로 바꿨다.

<녹취> 2012년 2월 조선중앙TV :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과 어버이 장군님께서 생전의 모습 그대로 계시는 금수산기념궁전을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명명하도록 하시었습니다."

8억 달러, 우리 돈 약 8천 8백억 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 공사였다.

이와 함께 김정은은 북한 전역에 김일성 김정일의 대형 동상을 건립하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압도적 크기의 동상을 세워, 권력 세습의 정당성을 알리고 주민을 결집하는 상징으로 활용하고있는 것이다.

<녹취>2011년 12월 평양 주민 :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철썩 같은 신념을 깊이 간직하고…."

2013년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행동 강령도 발표했다.

과거 김일성이 자신의 독재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유일영도 10대 원칙’을 39년 만에 개정한 것이다.

여기엔 초상휘장을 비롯한 초상화, 초상화를 모신 출판물 등을 정중히 모시고 다루며 철저히 보위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특히 북한 당국이 초상화, 초상휘장 등을 통해 우상화를 시도하는 데엔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다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인터뷰>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생활 모든 부분, 24시간 동안 같이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부분들이 있고요. 또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 최고 지도자에 대한 존경이나 충성이라고 하는 것이 일상적으로 녹아져 있는 그러니까 생활화, 습관화 시키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생각에 집에 걸린 초상화가 영향을 미친다고 탈북자는 전한다.

<인터뷰> 최정훈(탈북자/2011년 탈북) : "매일 아침 일어나서는 초상화 청소를, 초상화 청소함이 따로 있어요. 따로 있어서 그거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청소를 하는 겁니다. 가정에서 항상 모시고, 항상 김일성하고 대화하면서, 속으로 대화하든 항상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지난 1일, 노동신문에서는 함경남도 단천시의 군인과 경찰들이 화재 현장에서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구해냈다는 기사를 지면 전체를 할애해 보도했다.

<녹취> 2012년 7월 조선중앙 TV : "쏟아지는 폭우와 밀려 내려오는 산사태 속에서 절세위인들의 초상화를 안전하게 모시고 생을 마쳤습니다."

수해로 떠내려가는 초상화를 건지려다 익사한다든지, 선원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초상화를 젖지 않게 감싸 ‘노력영웅’이 됐다는 일화는 북한 매체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이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선 목숨을 바쳐서라도 초상화 등 상징물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남북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국방장관 회담.

회담장에 걸린 김일성의 초상화를 놓고 치우라는 우리 측과 못한다는 북측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앞선 1997년, 북한 신포 대북경수로 건설 현장에서 김정일 사진이 실린 노동신문이 찢어진 채 발견되자 북측 노동자들이 작업을 중단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김정은 집권 4년차, 북한은 아직 김정은의 모습이 담긴 초상휘장이나 초상화는 제작하지 않았다.

대신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작업은 집권 이전부터 다방면에서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녹취> ‘발걸음’ : "척척 척척척 발걸음 우리 김 대장 발걸음"

최초의 ‘김정은 찬양 노래’인 이 ‘발걸음’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2009년 이미 제작돼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2010년 9월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직후엔 김정은을 우상화하는 새로운 선전구호도 등장했다.

김일성을 의미하는 ‘수령복’과 김정일의 ‘장군복’에 이어 후계자 김정은을 지칭하는 ‘대장복’ 구호가 등장한 것이다.

최근 들어 김정은 우상화 작업은 한층 속도를 내고 있다.

김정은의 얼굴이 들어간 별도의 기념우표와 소년단 대표증이 발행되고, 과거 선대 우상화 때 사용하던 ‘태양’을 김정은 찬양에 사용한 구호판도 등장했다.

지난해 중고등학교에 ‘김정은 혁명활동’ 과목이 처음 개설된 데 이어 올해 4월부터는 초등학교에서도 ‘김정은 어린시절’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2012년 한 해 동안만 북한은 초상화, 초상휘장, 동상 제작 등의 우상화 작업에 무려 3억 3천만 달러를 투입했다고 국정원은 추산했다.

이는 옥수수 110만 톤을 살 수 있는 거액으로 북한 전체 주민이 4개월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기도 하다.

<인터뷰>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정치적 우상화에 상당히 많은 인원들이 투입되고 있고 그런 부분들이 북한 체제가 가지고 있는 한계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북한 내에서 선전선동부라고 하는 위치가 잇는 한 공식적인 작업들은 계속 해나갈 겁니다. 자신의 모습을 또 드러내는, 그러니까 그림자를 지워나가면서 교집합에서 공통된 부분 요소에서 조금 더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쪽으로 나갈 것으로 판단이 되고 있고…."

다양한 상징물을 통해 체제 결속과 우상화에 골몰해 온 북한!

하지만 철옹성같던 북한에도 시장화가 도입되는 등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 없는 맹목적인 우상화는 더 이상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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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북 우상화의 상징 ‘초상휘장’이 뭐길래
    • 입력 2015-07-04 08:31:52
    • 수정2015-07-04 22:35:46
    남북의 창
<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북한에서 최고 권력층부터 일반 주민들까지누구나 왼쪽 가슴에 달고 다니는 게 있죠.

바로 김일성, 김정일의 얼굴이 들어간 배지, 이른바 ‘초상휘장’인데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의 표시이자, 북한의 세습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 상징물로 통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 배지를 달지 않은 모습이 자주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이 배지 외에 북한의 우상화 상징물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또 그 실태는 어떤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5일, 준공을 마친 평양 순안공항 신청사에 김정은 제 1위원장이 등장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전문 식당가와 면세점 등 공항 내부 시설을 두루 둘러본 김정은은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녹취> 지난달 25일 조선중앙TV : "민족성을 철저히 구현하면서도 국제적 기준에 부합되게 항공역사를 잘 건설했다고..."

하지만 눈길을 더 끈 것은 김정은의 왼쪽 가슴.

북한 사람이면 누구나 달아야한다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배지, 이른바 ‘초상휘장’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김정은의 공개 활동 중 초상휘장을 달지 않은 모습이 부쩍 자주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6월 공개 활동 14번 가운데 초상휘장을 달지 않은 횟수는 절반이 넘는 여덟 번에 이른다.

이는 부인인 리설주도 마찬가지다.

순안공항 시찰에 김정은과 동행한 리설주의 가슴엔, 초상휘장 대신 화려한 브로치가 자리했다.

김정은의 팔짱을 낀 파격적인 모습으로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2012년.

김정일 2주기 등 주요 공식 석상에서도 리설주의 왼쪽 가슴엔 초상휘장이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아요. 일단은 자신의 위상을 좀 과시하려는 측면이 있다고 보여 지고 있고요. 그래서 이제 앞의 지도자들의 전통성을 이어 받지만 자신의 어떤 자유스러움이라든가 달라졌다고 하는 변화를 인민들에게 바로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휘장을 통해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북한 지도부의 초상휘장 착용 여부가 눈길을 끄는 건 북한에서 초상휘장이 가지는 의미 때문이다.

초상휘장이 북한 사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

‘김일성 주석의 영상을 모신 초상휘장을 만들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있은 후 간부는 물론 북한 주민 전체에 초상휘장 착용이 의무화된 것이다.

북한 당국이 최고 지도자의 우상화를 위한 상징물로 초상휘장을 선택한 데엔, 당시 사회주의 혈맹이던 중국의 영향이 컸다.

<인터뷰> 안찬일(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1966년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발발함과 동시에 모택동 우상화가 말하자면 극렬하게 진행되면서 그때 모택동 배지가 등장해서 중국의 홍위병들부터 모택동 배지를 달고 그 다음에 군인, 학생들까지 달도록 강요했는데 북한은 이것을 벤치마킹해서 김일성 단독으로 넣은 배지를 만들어서 그것을 ‘당기상’이라고 불렀습니다."

1980년대 들어 김정일 후계 세습이 공고화되면서 북한의 초상휘장도 변화를 맞이한다.

초반 김일성 단독 배지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모습이 함께 들어간 이른바 ‘쌍상’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쌍상’에 이어 1992년엔 김정일의 쉰 번째 생일을 계기로 김정일 단독 배지가 제작됐다.

외신이 촬영한 평양 거리 모습. 예전의 북한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주민들의 옷차림은 한층 세련되고 자유분방해졌다.

하지만 남녀노소를 막론한 공통점도 있다.

바로 왼쪽 가슴에 단 초상휘장이다.

초상휘장을 달지 않으면 당장에 큰 불이익이 주어지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초상휘장 달기’는 생활화 돼 있다는 전언이다.

<인터뷰> 최정훈(탈북자/2011년 탈북) : "길가에 요소요소에 이 사람들이 지키는 거죠. 지키는 목적은 초상휘장을 달지 않은 사람들을 적발해 가지고 잡아내기 위한 겁니다. 그래서 달지 않은 사람은 따로 길가에서 세워두고 창피를 주고 그리고 한데 모아다가 때로는 어디 끌고 가서 농장이든 어디 노동 현장에 가서 노동시키기도 합니다. "

초상휘장을 왼쪽 가슴에 다는 데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인터뷰> 최정훈(탈북자/2011년 탈북) : "심장에 항상 김일성이나 김정일 같은 영도자들을 항상 모시고 다님으로써 자기 생명처럼 붉은 심장에 우리가 모시고 다닌다. 그만큼 우리가 충성심이 붉은 심장과 같이 그렇게 뜨겁고 붉다 그런 거죠."

때문에 충성심을 대내외에 선전할 수 있는 각종 국제행사에서 초상휘장은 빠질 수 없는 선전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해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우리나라를 찾은 87명 북한 선수단이 일제히 붉은색 초상휘장을 달고 나타난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폐막식을 찾은 북한 실세 3인방이 단 ‘쌍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초상휘장의 신분에 따른 가치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인터뷰> 안찬일(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이런 쌍상 정도 달려면 군에서 사단장 이상 사회에서 군당 비서 군수급 이상들만 이걸 달게 되어있습니다. 이게 일종의 신분을 의미하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좋은걸 달면 신분상승이 되니까, 한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장마당에서 암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배지가 신분을 나타내다 보니 주민들이 자기 과시를 위해 장마당에서 초상휘장을 사고파는 것은 물론 이른바 ‘짝퉁 배지’까지 나돌고 있다.

지난 해 말 KBS가 단독 입수한 북한군 내부 문서.

김정은이 직접 나서 가짜 초상휘장의 밀거래 현상을 없애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권위의 상징이자 우상화의 수단인 초상휘장이 신분을 드러내는 장신구 역할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권력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이 집권이후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선대에 대한 우상화다.

집권 직후인 2012년, 김일성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기념궁전을 새 단장하고 명칭까지 금수산 태양궁전으로 바꿨다.

<녹취> 2012년 2월 조선중앙TV :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과 어버이 장군님께서 생전의 모습 그대로 계시는 금수산기념궁전을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명명하도록 하시었습니다."

8억 달러, 우리 돈 약 8천 8백억 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 공사였다.

이와 함께 김정은은 북한 전역에 김일성 김정일의 대형 동상을 건립하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압도적 크기의 동상을 세워, 권력 세습의 정당성을 알리고 주민을 결집하는 상징으로 활용하고있는 것이다.

<녹취>2011년 12월 평양 주민 :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철썩 같은 신념을 깊이 간직하고…."

2013년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행동 강령도 발표했다.

과거 김일성이 자신의 독재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유일영도 10대 원칙’을 39년 만에 개정한 것이다.

여기엔 초상휘장을 비롯한 초상화, 초상화를 모신 출판물 등을 정중히 모시고 다루며 철저히 보위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특히 북한 당국이 초상화, 초상휘장 등을 통해 우상화를 시도하는 데엔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다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인터뷰>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생활 모든 부분, 24시간 동안 같이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부분들이 있고요. 또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 최고 지도자에 대한 존경이나 충성이라고 하는 것이 일상적으로 녹아져 있는 그러니까 생활화, 습관화 시키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생각에 집에 걸린 초상화가 영향을 미친다고 탈북자는 전한다.

<인터뷰> 최정훈(탈북자/2011년 탈북) : "매일 아침 일어나서는 초상화 청소를, 초상화 청소함이 따로 있어요. 따로 있어서 그거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청소를 하는 겁니다. 가정에서 항상 모시고, 항상 김일성하고 대화하면서, 속으로 대화하든 항상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지난 1일, 노동신문에서는 함경남도 단천시의 군인과 경찰들이 화재 현장에서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구해냈다는 기사를 지면 전체를 할애해 보도했다.

<녹취> 2012년 7월 조선중앙 TV : "쏟아지는 폭우와 밀려 내려오는 산사태 속에서 절세위인들의 초상화를 안전하게 모시고 생을 마쳤습니다."

수해로 떠내려가는 초상화를 건지려다 익사한다든지, 선원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초상화를 젖지 않게 감싸 ‘노력영웅’이 됐다는 일화는 북한 매체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이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선 목숨을 바쳐서라도 초상화 등 상징물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남북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국방장관 회담.

회담장에 걸린 김일성의 초상화를 놓고 치우라는 우리 측과 못한다는 북측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앞선 1997년, 북한 신포 대북경수로 건설 현장에서 김정일 사진이 실린 노동신문이 찢어진 채 발견되자 북측 노동자들이 작업을 중단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김정은 집권 4년차, 북한은 아직 김정은의 모습이 담긴 초상휘장이나 초상화는 제작하지 않았다.

대신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작업은 집권 이전부터 다방면에서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녹취> ‘발걸음’ : "척척 척척척 발걸음 우리 김 대장 발걸음"

최초의 ‘김정은 찬양 노래’인 이 ‘발걸음’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2009년 이미 제작돼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2010년 9월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직후엔 김정은을 우상화하는 새로운 선전구호도 등장했다.

김일성을 의미하는 ‘수령복’과 김정일의 ‘장군복’에 이어 후계자 김정은을 지칭하는 ‘대장복’ 구호가 등장한 것이다.

최근 들어 김정은 우상화 작업은 한층 속도를 내고 있다.

김정은의 얼굴이 들어간 별도의 기념우표와 소년단 대표증이 발행되고, 과거 선대 우상화 때 사용하던 ‘태양’을 김정은 찬양에 사용한 구호판도 등장했다.

지난해 중고등학교에 ‘김정은 혁명활동’ 과목이 처음 개설된 데 이어 올해 4월부터는 초등학교에서도 ‘김정은 어린시절’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2012년 한 해 동안만 북한은 초상화, 초상휘장, 동상 제작 등의 우상화 작업에 무려 3억 3천만 달러를 투입했다고 국정원은 추산했다.

이는 옥수수 110만 톤을 살 수 있는 거액으로 북한 전체 주민이 4개월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기도 하다.

<인터뷰> 전영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정치적 우상화에 상당히 많은 인원들이 투입되고 있고 그런 부분들이 북한 체제가 가지고 있는 한계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북한 내에서 선전선동부라고 하는 위치가 잇는 한 공식적인 작업들은 계속 해나갈 겁니다. 자신의 모습을 또 드러내는, 그러니까 그림자를 지워나가면서 교집합에서 공통된 부분 요소에서 조금 더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쪽으로 나갈 것으로 판단이 되고 있고…."

다양한 상징물을 통해 체제 결속과 우상화에 골몰해 온 북한!

하지만 철옹성같던 북한에도 시장화가 도입되는 등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 없는 맹목적인 우상화는 더 이상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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