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서해 ‘격렬비열도’ 21년 만에 사람이 사는 이유

입력 2015.07.0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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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렬비열도를 아십니까?

‘격렬비열도’라고 들어보셨나요? 아마 대부분은 생소하실 겁니다. 서해의 영해기점, 그러니까 서해의 독도인 셈인데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포털에서 격렬비열도를 타이핑하다 보면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말이 먼저 검색될 만큼 덜 알려진 곳입니다.

■ 영해기점까지 3시간, 배멀미로 벌써 녹초

충남 태안 신진항에서 오전 8시 반 배를 탔습니다. 낚싯배 선장은 바다가 잔잔해 평소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바다 경치나 구경하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 배가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멈추질 않았습니다. 속이 울렁거려 도저히 참을 수 없겠다 싶을 때쯤 옅은 안개에 쌓인 바위 섬이 보였습니다. 격렬비열도였습니다.

이때가 오전 11시 반쯤. 3시간을 출렁이는 뱃속에서 사투(?)를 벌이다 보니 취재를 시작하기도 전에 녹초가 됐습니다. 그 땐 정말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습니다.

■ 풍부한 어장, 기상관측의 전초기지

취재진인 내린 곳은 북격렬비도.

북·동·서 3개의 열도로 구성된 격렬비열도 가운데 등대 등 유일하게 사람이 만든 시설이 있는 곳입니다. 시설이 있는 섬 정상까지 15분 정도 산을 타고 올라야 했습니다.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정상에 오르는 동안 족히 수만 마리는 돼 보이는 갈매기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취재에 동행한 대산지방해양수산청 직원은 주변에 어장이 풍부해 갈매기가 많다고 설명하더군요.

또 이곳에서 황사가 관측되면 3시간 뒤에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황사가 시작된다는 설명도 이어졌습니다. 매 봄마다 황사 기사를 쓰면서도 격렬비열도가 기상관측의 전초기지 역할도 한다는 사실은 이 때 처음 알았습니다.

서해 ‘격렬비열도’ 21년 만에 사람이 사는 이유서해 ‘격렬비열도’ 21년 만에 사람이 사는 이유


■ 잊혀진 서해의 '독도', 중국 측 불법 조업의 천국

격렬비열도는 중국 산둥반도와 260여km, 중국 공해와는 불과 22km 떨어진 우리나라 서쪽 영해기점입니다. 인천과 대산항 등 서해안을 오가는 선박의 90% 이상이 거쳐 가는 항로의 거점이기도 합니다.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지만 무려 21년이나 무인도로 방치됐습니다. 1909년부터 1994년까지는 등대관리원 3명이 상주했습니다. 하지만 격오지 근무의 어려움과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명분 아래 무인도로 전환됐습니다.

풍부한 어장을 지키는 건 오직 갈매기뿐. 인근 해역은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 천국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2012년을 기준으로 우리 영해를 침범한 중국어선 2천4백여 척 가운데 천 6백60여 척, 70%가 격렬비열도 인근에서 불법으로 조업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불법 어업뿐이 아닙니다. 지난해에는 현재 민간인이 소유하고 있는 서격렬비도를 중국인이 매입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말 서격렬비도 소유주를 직접 만나 취재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는 중국인 사업가 등이 16억 원, 20억 원 등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하며 섬을 사겠다는 제안을 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서해 ‘격렬비열도’ 21년 만에 사람이 사는 이유서해 ‘격렬비열도’ 21년 만에 사람이 사는 이유


■ 이달부터 사람이 사는 유인도로

무인도로 방치됐던 격렬비열도가 2015년 7월 1일 자로 유인도가 됐습니다. 앞으로 북격렬비도에는 대산지방해양수산청 직원 4명이 2명씩 짝을 지어 15일씩 교대근무를 하게 됩니다.

지난 2013년 지정학적 중요성을 고려해 해양수산부와 충청남도, 태안군, 기상청, 해경 등이 유인화 협약을 체결한 지 2년 만에 공무원이 상주하게 된 겁니다.

중국어선의 불법어업 감시와 인근 해역을 오가는 배들에 불을 비추는 일이 상주 인력의 주요 임무입니다. 섬 정상에는 직원들이 살 수 있도록 투룸 형식의 숙소 4채가 지어졌고, 섬에 전기를 공급할 태양광 발전시설, 그리고 헬기장도 조성됐습니다. 기상 관측 장비도 대폭 확대돼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 등에 대한 관측기지 역할도 맡게 됩니다.

정부는 최서단 격렬비열도가 유인화됨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중국과의 배타적 경제수역 협상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 민간인이 소유하고 있는 서격렬비도와 동격렬비도도 국유화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섬 소유주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부족한 물과 접안 시설은 옥에 티

일단 유인도가 됐지만, 사람이 쾌적하게 살기에는 부족한 게 많습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물. 섬에 '샘'이 없다 보니 생활용수를 빗물에 의존하고 있는데 가뭄으로 물 구경이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북격렬비도 유인화 공사에 투입됐던 인부들은 샤워는커녕 제대로 세수도 못 하고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변기를 내릴 물도 부족해 소변은 인근 숲에, 큰 볼일은 꾹 참았다가 봤다는 게 인부들의 전언입니다.

접안시설이 없어 대형 선박을 댈 수 없다는 점도 풀어야 할 과젭니다. 현재 격렬비열도에 접근할 수 있는 배는 소형 낚싯배 정도. 뭍에서 격렬비열도에 들어가는데 2~3시간이나 걸리는 이유입니다. 한 시간에 주파할 수 있는 해경 쾌속정을 타고 접근해도 섬에 들어가려면 소형 보트를 갈아타고 들어가야 해 기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격렬비열도가 서해의 '파수꾼'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담수시설 확보와 접안시설 개선은 꼭 필요해 보입니다.

[연관기사]

☞ [뉴스광장] 서해의 독도 ‘격렬비열도’, 다음 달부터 공무원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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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서해 ‘격렬비열도’ 21년 만에 사람이 사는 이유
    • 입력 2015-07-06 14:30:25
    취재후·사건후
■ 격렬비열도를 아십니까? ‘격렬비열도’라고 들어보셨나요? 아마 대부분은 생소하실 겁니다. 서해의 영해기점, 그러니까 서해의 독도인 셈인데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포털에서 격렬비열도를 타이핑하다 보면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말이 먼저 검색될 만큼 덜 알려진 곳입니다. ■ 영해기점까지 3시간, 배멀미로 벌써 녹초 충남 태안 신진항에서 오전 8시 반 배를 탔습니다. 낚싯배 선장은 바다가 잔잔해 평소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바다 경치나 구경하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 배가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멈추질 않았습니다. 속이 울렁거려 도저히 참을 수 없겠다 싶을 때쯤 옅은 안개에 쌓인 바위 섬이 보였습니다. 격렬비열도였습니다. 이때가 오전 11시 반쯤. 3시간을 출렁이는 뱃속에서 사투(?)를 벌이다 보니 취재를 시작하기도 전에 녹초가 됐습니다. 그 땐 정말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습니다. ■ 풍부한 어장, 기상관측의 전초기지 취재진인 내린 곳은 북격렬비도. 북·동·서 3개의 열도로 구성된 격렬비열도 가운데 등대 등 유일하게 사람이 만든 시설이 있는 곳입니다. 시설이 있는 섬 정상까지 15분 정도 산을 타고 올라야 했습니다.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정상에 오르는 동안 족히 수만 마리는 돼 보이는 갈매기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취재에 동행한 대산지방해양수산청 직원은 주변에 어장이 풍부해 갈매기가 많다고 설명하더군요. 또 이곳에서 황사가 관측되면 3시간 뒤에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황사가 시작된다는 설명도 이어졌습니다. 매 봄마다 황사 기사를 쓰면서도 격렬비열도가 기상관측의 전초기지 역할도 한다는 사실은 이 때 처음 알았습니다.
서해 ‘격렬비열도’ 21년 만에 사람이 사는 이유
■ 잊혀진 서해의 '독도', 중국 측 불법 조업의 천국 격렬비열도는 중국 산둥반도와 260여km, 중국 공해와는 불과 22km 떨어진 우리나라 서쪽 영해기점입니다. 인천과 대산항 등 서해안을 오가는 선박의 90% 이상이 거쳐 가는 항로의 거점이기도 합니다.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지만 무려 21년이나 무인도로 방치됐습니다. 1909년부터 1994년까지는 등대관리원 3명이 상주했습니다. 하지만 격오지 근무의 어려움과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명분 아래 무인도로 전환됐습니다. 풍부한 어장을 지키는 건 오직 갈매기뿐. 인근 해역은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 천국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2012년을 기준으로 우리 영해를 침범한 중국어선 2천4백여 척 가운데 천 6백60여 척, 70%가 격렬비열도 인근에서 불법으로 조업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불법 어업뿐이 아닙니다. 지난해에는 현재 민간인이 소유하고 있는 서격렬비도를 중국인이 매입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말 서격렬비도 소유주를 직접 만나 취재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는 중국인 사업가 등이 16억 원, 20억 원 등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하며 섬을 사겠다는 제안을 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서해 ‘격렬비열도’ 21년 만에 사람이 사는 이유
■ 이달부터 사람이 사는 유인도로 무인도로 방치됐던 격렬비열도가 2015년 7월 1일 자로 유인도가 됐습니다. 앞으로 북격렬비도에는 대산지방해양수산청 직원 4명이 2명씩 짝을 지어 15일씩 교대근무를 하게 됩니다. 지난 2013년 지정학적 중요성을 고려해 해양수산부와 충청남도, 태안군, 기상청, 해경 등이 유인화 협약을 체결한 지 2년 만에 공무원이 상주하게 된 겁니다. 중국어선의 불법어업 감시와 인근 해역을 오가는 배들에 불을 비추는 일이 상주 인력의 주요 임무입니다. 섬 정상에는 직원들이 살 수 있도록 투룸 형식의 숙소 4채가 지어졌고, 섬에 전기를 공급할 태양광 발전시설, 그리고 헬기장도 조성됐습니다. 기상 관측 장비도 대폭 확대돼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 등에 대한 관측기지 역할도 맡게 됩니다. 정부는 최서단 격렬비열도가 유인화됨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중국과의 배타적 경제수역 협상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 민간인이 소유하고 있는 서격렬비도와 동격렬비도도 국유화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섬 소유주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부족한 물과 접안 시설은 옥에 티 일단 유인도가 됐지만, 사람이 쾌적하게 살기에는 부족한 게 많습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물. 섬에 '샘'이 없다 보니 생활용수를 빗물에 의존하고 있는데 가뭄으로 물 구경이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북격렬비도 유인화 공사에 투입됐던 인부들은 샤워는커녕 제대로 세수도 못 하고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변기를 내릴 물도 부족해 소변은 인근 숲에, 큰 볼일은 꾹 참았다가 봤다는 게 인부들의 전언입니다. 접안시설이 없어 대형 선박을 댈 수 없다는 점도 풀어야 할 과젭니다. 현재 격렬비열도에 접근할 수 있는 배는 소형 낚싯배 정도. 뭍에서 격렬비열도에 들어가는데 2~3시간이나 걸리는 이유입니다. 한 시간에 주파할 수 있는 해경 쾌속정을 타고 접근해도 섬에 들어가려면 소형 보트를 갈아타고 들어가야 해 기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격렬비열도가 서해의 '파수꾼'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담수시설 확보와 접안시설 개선은 꼭 필요해 보입니다. [연관기사] ☞ [뉴스광장] 서해의 독도 ‘격렬비열도’, 다음 달부터 공무원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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