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퍼] ‘하루 6시간 근무’ 꿈의 직장…“매출 더 늘어”

입력 2015.07.10 (18:38) 수정 2015.07.10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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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의 코끼리'란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문제인 것은 아는데 해법을 찾기 힘든 사안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덩치 큰 코끼리가 좁은 방 문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우리나라의 긴 노동시간은 정말이지 방 안의 코끼리입니다.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2070시간으로 OECD회원국 중 2번째로 많습니다. 노동시간 단축이 세계적 추세이지만 우리의 기업문화는 막연하게 "경쟁력이 떨어진다, 많이 일해야 좋은 성과가 나온다"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 매달려 긴 노동시간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 하루 6시간 일하는 회사의 매출은?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3년 전부터 '하루 6시간 노동제'를 시행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인 '보리출판사'입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것이죠. 이 회사의 연간 노동시간은 1417시간입니다. 세계에서 4번째로 노동시간이 적은 덴마크(1414시간)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취재를 하며 지켜보니, 실제로 시계가 4시를 가리키자 직원들이 하나 둘 짐을 싸 회사를 나섰습니다. 말단 직원부터 부장과 이사, 모두가 말입니다. 보통 밤 8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저로서는 대낮에 퇴근하는 모습이 참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일 안 하는 회사'의 매출 실적은 어떨까요? 지난해 전년 대비 매출이 3.9% 올랐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출판계에서 이 정도면 선전한 셈이죠.

시간적립제시간적립제


시간적립제 : 연장근무는 돈이 아닌 시간으로 보상

어떻게 6시간 일하고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요? 첫째는 줄어든 시간만큼 업무 집중력을 높인 겁니다. 오후 1시, 점심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직원들이 자리에 앉습니다. 다시 일에 몰입하는 것이죠. 점심시간이 늘어지는 여느 회사와 달랐습니다. 간식 등 휴식시간도 없앴습니다. 둘째는 의례적인 회의를 줄인 겁니다. 사회학에 '경로의존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한 번 굳어진 관습이나 제도는 비효율성이나 외부의 충격에도 잘 바뀌지 않는다는 건데요, 회의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던 거니까' 계속 해온 것 뿐이지 막상 회의를 줄여보니 업무엔 지장이 없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시간적립제'의 도입이었습니다. 불가피하게 연장근무를 하게 되면 그 시간만큼 적립해 휴가로 쓰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수당이 아닌 시간으로 보상해주는 시스템입니다. 연장근무를 돈으로 보상해줄 경우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불필요한 연장근무를 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시리얼 제조업체인 '켈로그'가 수년 전 6시간 노동제를 운영했다가 결국 다시 8시간으로 돌아선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수당 앞에서 6시간 노동이란 원칙이 무너진 것이죠. 켈로그를 교훈 삼아 보리출판사는 아예 연장근무수당을 없앴습니다. 대신 휴가를 마음껏 쓸 수 있습니다. 한 여성 직원은 지난해 190시간을 적립해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직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6시간 노동제 3주년을 맞아 올해 보고서를 냈습니다. 이 보고서는 6시간 노동을 실시한 뒤, "직원들이 생각과 감정을 생산하고 표출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났고, 이웃과 소통하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도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직원들이 평소 꿈꾸던 연극을 배우는 등 취미 생활을 시작했고 특히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한 남성 직원은 "2시간이 하루에는 적어 보이지만 한 달이면 꽤 많은 시간"이라며,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아이와 놀아주고 가사를 돕기 때문에 가족 전체로 보면 모두 6시간이 늘어난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총, 균, 쇠'의 한 구절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우리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노동시간이 줄어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깨우침을 줍니다.

"전세계에서 실제 식량 생산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농경민이나 목축민들은 수렵 채집민보다 잘 산다고 하기 어렵다. 시간의 효율성에 대한 연구들을 보더라도 하루 중 노동시간이 수렵 채집민들보다 오히려 길면 길었지 짧지는 않다."

[연관 기사]

☞ [뉴스9] ‘하루 6시간’ 꿈의 근무…회사도 직원도 ‘함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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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퍼] ‘하루 6시간 근무’ 꿈의 직장…“매출 더 늘어”
    • 입력 2015-07-10 18:38:39
    • 수정2015-07-10 21:5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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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의 코끼리'란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문제인 것은 아는데 해법을 찾기 힘든 사안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덩치 큰 코끼리가 좁은 방 문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우리나라의 긴 노동시간은 정말이지 방 안의 코끼리입니다.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2070시간으로 OECD회원국 중 2번째로 많습니다. 노동시간 단축이 세계적 추세이지만 우리의 기업문화는 막연하게 "경쟁력이 떨어진다, 많이 일해야 좋은 성과가 나온다"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 매달려 긴 노동시간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 하루 6시간 일하는 회사의 매출은?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3년 전부터 '하루 6시간 노동제'를 시행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인 '보리출판사'입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것이죠. 이 회사의 연간 노동시간은 1417시간입니다. 세계에서 4번째로 노동시간이 적은 덴마크(1414시간)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취재를 하며 지켜보니, 실제로 시계가 4시를 가리키자 직원들이 하나 둘 짐을 싸 회사를 나섰습니다. 말단 직원부터 부장과 이사, 모두가 말입니다. 보통 밤 8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저로서는 대낮에 퇴근하는 모습이 참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일 안 하는 회사'의 매출 실적은 어떨까요? 지난해 전년 대비 매출이 3.9% 올랐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출판계에서 이 정도면 선전한 셈이죠.

시간적립제


시간적립제 : 연장근무는 돈이 아닌 시간으로 보상

어떻게 6시간 일하고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요? 첫째는 줄어든 시간만큼 업무 집중력을 높인 겁니다. 오후 1시, 점심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직원들이 자리에 앉습니다. 다시 일에 몰입하는 것이죠. 점심시간이 늘어지는 여느 회사와 달랐습니다. 간식 등 휴식시간도 없앴습니다. 둘째는 의례적인 회의를 줄인 겁니다. 사회학에 '경로의존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한 번 굳어진 관습이나 제도는 비효율성이나 외부의 충격에도 잘 바뀌지 않는다는 건데요, 회의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던 거니까' 계속 해온 것 뿐이지 막상 회의를 줄여보니 업무엔 지장이 없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시간적립제'의 도입이었습니다. 불가피하게 연장근무를 하게 되면 그 시간만큼 적립해 휴가로 쓰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수당이 아닌 시간으로 보상해주는 시스템입니다. 연장근무를 돈으로 보상해줄 경우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불필요한 연장근무를 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시리얼 제조업체인 '켈로그'가 수년 전 6시간 노동제를 운영했다가 결국 다시 8시간으로 돌아선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수당 앞에서 6시간 노동이란 원칙이 무너진 것이죠. 켈로그를 교훈 삼아 보리출판사는 아예 연장근무수당을 없앴습니다. 대신 휴가를 마음껏 쓸 수 있습니다. 한 여성 직원은 지난해 190시간을 적립해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직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6시간 노동제 3주년을 맞아 올해 보고서를 냈습니다. 이 보고서는 6시간 노동을 실시한 뒤, "직원들이 생각과 감정을 생산하고 표출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났고, 이웃과 소통하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도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직원들이 평소 꿈꾸던 연극을 배우는 등 취미 생활을 시작했고 특히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한 남성 직원은 "2시간이 하루에는 적어 보이지만 한 달이면 꽤 많은 시간"이라며,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아이와 놀아주고 가사를 돕기 때문에 가족 전체로 보면 모두 6시간이 늘어난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총, 균, 쇠'의 한 구절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우리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노동시간이 줄어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깨우침을 줍니다.

"전세계에서 실제 식량 생산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농경민이나 목축민들은 수렵 채집민보다 잘 산다고 하기 어렵다. 시간의 효율성에 대한 연구들을 보더라도 하루 중 노동시간이 수렵 채집민들보다 오히려 길면 길었지 짧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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