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제가 가해자입니다” 제 발로 경찰 찾는 ‘이상한’ 보험 사기

입력 2015.07.13 (14:48) 수정 2015.07.1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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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사기의 재구성 ① : 5년 만에 알아채다

"2010년 ○○에서 사고 난 적 있으시죠?"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제서야 50대 장모 씨는 5년 전 교통사고가 보험사기인 걸 알았습니다.

5년 전 경기도 부천의 한 사거리. 장 씨는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반대편 차선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접촉 사고를 냈습니다. 당연히 장 씨는 피해자, 가해자는 상대 차량이었습니다.

사고 처리는 순조로웠습니다. 가해자는 과실을 100% 인정했습니다. 스스로 경찰에 신고까지 했고, 사고처리 비용도 모두 보험처리 해줬습니다. 그래서 장 씨는 '사람 참 괜찮다'고 생각해, 가해자에게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크게 다친 데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라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선량해 보였던 가해자는 보험사기 피의자였던 겁니다. 피해자도 아닌 가해자가, 피해자와 짜고 입을 맞춘 것도 아닌데, 어떻게 보험사기를 친걸까? 황당하면서도 감쪽같은 보험사기 수법이었습니다.

■ 보험사기의 재구성 ② : "일부러 입건될 것. 단, 벌금형 나올 만큼만"

보험사기 일당의 수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접촉사고를 낸다 : 반드시 중앙선을 넘거나 신호를 위반해 접촉사고를 낸다.
2) 경찰에 신고한다 : 피해자와 합의하고 끝내지 않고, 경찰에 꼭 신고한다.
3) 가해자 입건된다 : '중앙선 침범' '신호 위반' 등으로 군말없이 입건된다.
4) 피해자와 합의한다 :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모두 보험으로 처리한다.

이렇게 하면, 가해자에 대한 처분은 거의 공식입니다. <형사 입건+벌금 2백~3백만 원> 입니다.

'중앙선 침범'과 '신호 위반' 등으로 사고를 내면, 이른바 '10대 과실'에 들어가기 때문에 피해자와 합의를 해도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중대한 사고가 아닌 접촉 사고 수준의 가벼운 사고이기 때문에 대부분 벌금으로 끝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해자 입장에서는 얻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증거 서류 화면증거 서류 화면


■ 보험사기의 재구성 ③ : 비밀은 운전자보험의 허점

비밀은 운전자보험에 있습니다. 운전자보험의 보장 내용 중 하나는 가해자로 형사입건됐을 때, 각종 처리 비용을 지원해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항목이 위로금, 방어비용(변호사선임비용), 벌금 등입니다. 보장을 받으려면 반드시 교통사고 피의자로 '입건'이 돼야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운전자보험은 중복가입이 가능합니다. 가해자가 '1건의 사고'로 여러 회사에서 보험금을 탈 수 있는 겁니다. 보험사기 일당은 이 점을 노렸습니다. 사고 1건당 많게는 보험사 15곳에서 보험금을 타냈습니다. 일부러 경찰에 신고를 해 전과 기록과 벌금형 선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 5년 전 장 씨가 당한 사고로, 가해자가 피해자인 장 씨에게 물어준 돈은 고작 수십만 원 수준. 그러나 가해자가 운전자보험으로 타낸 돈은 무려 5천9백만여 원 이었습니다. 더구나 '착하게도' 자신의 범행을 스스로 경찰에 알리고, 피해 보상도 모두 해줬기 때문에 들킬 리가 없었습니다. 같은 수법으로 5년 동안 27건, 10억 5천만여 원을 쏙쏙 빼먹었습니다.

이 사건을 1년 넘게 수사한 경찰관도 "저도 이런 보험사기는 처음 봤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자폭식 황당 보험사기자폭식 황당 보험사기


■ 다행히 제도 개선은 됐지만…

이미 보험업계에서는 이런 수법의 보험사기가 포착됐었나 봅니다. 2009년부터는 운전자보험금 지급 요건이 까다로워 졌습니다. 중복가입을 하더라도 무작정 중복 보상해주지 않고, 실제 쓰인 비용만큼 '비례 보상'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적발된 것처럼 사고 1건으로 여기저기 우려먹는 보험사기는 쉽게 통하지 않도록 해놓은 거죠. 손해보험협회는 그런 보험사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럼에도 빈틈은 있나 봅니다. 검거된 일당 12명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제도가 개선된 이후에만 범행을 저질렀고, 보험금을 쏙쏙 타냈습니다. 제도에 여전히 허점은 없는지 한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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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제가 가해자입니다” 제 발로 경찰 찾는 ‘이상한’ 보험 사기
    • 입력 2015-07-13 14:48:23
    • 수정2015-07-13 17:42:50
    취재후·사건후
■ 보험사기의 재구성 ① : 5년 만에 알아채다

"2010년 ○○에서 사고 난 적 있으시죠?"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제서야 50대 장모 씨는 5년 전 교통사고가 보험사기인 걸 알았습니다.

5년 전 경기도 부천의 한 사거리. 장 씨는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반대편 차선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접촉 사고를 냈습니다. 당연히 장 씨는 피해자, 가해자는 상대 차량이었습니다.

사고 처리는 순조로웠습니다. 가해자는 과실을 100% 인정했습니다. 스스로 경찰에 신고까지 했고, 사고처리 비용도 모두 보험처리 해줬습니다. 그래서 장 씨는 '사람 참 괜찮다'고 생각해, 가해자에게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크게 다친 데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라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선량해 보였던 가해자는 보험사기 피의자였던 겁니다. 피해자도 아닌 가해자가, 피해자와 짜고 입을 맞춘 것도 아닌데, 어떻게 보험사기를 친걸까? 황당하면서도 감쪽같은 보험사기 수법이었습니다.

■ 보험사기의 재구성 ② : "일부러 입건될 것. 단, 벌금형 나올 만큼만"

보험사기 일당의 수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접촉사고를 낸다 : 반드시 중앙선을 넘거나 신호를 위반해 접촉사고를 낸다.
2) 경찰에 신고한다 : 피해자와 합의하고 끝내지 않고, 경찰에 꼭 신고한다.
3) 가해자 입건된다 : '중앙선 침범' '신호 위반' 등으로 군말없이 입건된다.
4) 피해자와 합의한다 :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모두 보험으로 처리한다.

이렇게 하면, 가해자에 대한 처분은 거의 공식입니다. <형사 입건+벌금 2백~3백만 원> 입니다.

'중앙선 침범'과 '신호 위반' 등으로 사고를 내면, 이른바 '10대 과실'에 들어가기 때문에 피해자와 합의를 해도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중대한 사고가 아닌 접촉 사고 수준의 가벼운 사고이기 때문에 대부분 벌금으로 끝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해자 입장에서는 얻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증거 서류 화면


■ 보험사기의 재구성 ③ : 비밀은 운전자보험의 허점

비밀은 운전자보험에 있습니다. 운전자보험의 보장 내용 중 하나는 가해자로 형사입건됐을 때, 각종 처리 비용을 지원해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항목이 위로금, 방어비용(변호사선임비용), 벌금 등입니다. 보장을 받으려면 반드시 교통사고 피의자로 '입건'이 돼야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운전자보험은 중복가입이 가능합니다. 가해자가 '1건의 사고'로 여러 회사에서 보험금을 탈 수 있는 겁니다. 보험사기 일당은 이 점을 노렸습니다. 사고 1건당 많게는 보험사 15곳에서 보험금을 타냈습니다. 일부러 경찰에 신고를 해 전과 기록과 벌금형 선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 5년 전 장 씨가 당한 사고로, 가해자가 피해자인 장 씨에게 물어준 돈은 고작 수십만 원 수준. 그러나 가해자가 운전자보험으로 타낸 돈은 무려 5천9백만여 원 이었습니다. 더구나 '착하게도' 자신의 범행을 스스로 경찰에 알리고, 피해 보상도 모두 해줬기 때문에 들킬 리가 없었습니다. 같은 수법으로 5년 동안 27건, 10억 5천만여 원을 쏙쏙 빼먹었습니다.

이 사건을 1년 넘게 수사한 경찰관도 "저도 이런 보험사기는 처음 봤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자폭식 황당 보험사기


■ 다행히 제도 개선은 됐지만…

이미 보험업계에서는 이런 수법의 보험사기가 포착됐었나 봅니다. 2009년부터는 운전자보험금 지급 요건이 까다로워 졌습니다. 중복가입을 하더라도 무작정 중복 보상해주지 않고, 실제 쓰인 비용만큼 '비례 보상'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적발된 것처럼 사고 1건으로 여기저기 우려먹는 보험사기는 쉽게 통하지 않도록 해놓은 거죠. 손해보험협회는 그런 보험사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럼에도 빈틈은 있나 봅니다. 검거된 일당 12명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제도가 개선된 이후에만 범행을 저질렀고, 보험금을 쏙쏙 타냈습니다. 제도에 여전히 허점은 없는지 한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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