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겉은 번지르르…속은 엉성한 뮤지엄

입력 2015.07.15 (06:00) 수정 2015.07.1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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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교박물관에 ‘광교’ 없고, 경기도미술관엔 ‘그림’ 없다.

경기도 수원시에 광교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박물관이 함께 생겼습니다. 이름은 '수원광교박물관'입니다. 거대한 신도시가 만들어지면 애초 그 땅에 뿌리박고 살아오던 사람들의 생활상과 이야기도 함께 사라지겠죠. 또 도시건설과정에서 미처 몰랐던 유물이 나올 수도 있구요. 이런 이유에서, 즉 발굴 과정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옛 마을의 생활상을 보존하기 위해 박물관을 짓게 된 겁니다.

그런데 박물관의 전시품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광교' 유물이 많지 않습니다. 전체 전시면적으로 따지면 10%나 될까요? 왠지 구색맞추기로 광교유물관을 꾸며놨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전시관은 2개의 개인 기증관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광교박물관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이름이 광교박물관이니 모두 광교 유물로 박물관을 채워야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광교지역이 수원 생활권에도 중심지가 아닌 변방에 속했기에 유물의 양이나 질에서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자 그럼 두 기증관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는 '소강 민관식실'이고, 다른 하나는 '사운 이종학실'입니다. 이종학 선생(1927~2002년)은 수원의 향토 사학자로 독도 연구의 최고 권위자였고, 초대 독도박물관장을 지내신 분입니다. 전시관은 이종학 선생이 수집해 기증한 조선시대 고문서, 금강산과 독도 관련 자료, 일제강점기 자료 등을 비교적 담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전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민관식실은 전시관 구성과 전시품 선정에 몇가지 의문점을 자아냅니다.

말조각상말조각상


민관식 선생(1918~2006년)은 국회의원, 문교부장관, 대한체육회장 등을 지낸신 분입니다. 특히 태릉선수촌을 만드는 등 한국 스포츠 행정에 공로가 큰 분으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전시관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것이 말 조각상입니다. 말띠 생인 민관식 선생이 유난히 말 조각을 좋아했고 많이 모았다고 합니다. 사료적 가치가 있다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취미로 모은 것들이지요. 공직을 옮길 때마다 새로 만든 명패들도 보이구요, 가족 사진, 그리고 프로야구 선수의 사인볼도 있습니다.

민관식실은 민관식 선생의 성장기부터 학창시절, 그리고 국회의원과 체육행정 시기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순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광교박물관의 부속 전시관이라고 보다는 '민관식 기념관'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옛 서울농대의 전신인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했으니 수원과 아주 인연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만, 일부 전시품 선정과 전시관 구성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평생 모은 소중한 것들은 시민들에게 돌려준 기증자와 유족의 순수한 마음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공립박물관은 운영하는 주최측이 박물관의 정체성과 그에 걸맞는 콘텐츠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을 했는지 되돌아봤으면 합니다.

광교박물관은 경기도시공사와 LH가 350억 원을 들여 지었고, 수원시에 넘겨줬습니다. 운영권을 넘겨받은 수원시는 광교박물관 유물구입비로 한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경기도립 미술관경기도립 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얘기도 해보겠습니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경기도립 미술관으로, 경기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립미술관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천경자전을 상설전으로 두고 있듯이, 규모가 있는 공립미술관들은 자기 미술관을 대표하는 콜렉션을 중심으로 상설전을 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기획전과 특별전을 함께 여는 방식이죠.

경기도미술관에는 지금 단 하나의 전시만이 열리고 있습니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화가나 조각가의 작품전이냐구요? 아닙니다. 경기도에서 미래의 피카소를 꿈꾸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냐구요? 그것도 아닙니다. 먼나라 브라질 만화가의 작품인 '모니카와 떠나는 세계명화여행전'입니다.

브라질 만화가 작품브라질 만화가 작품


세계적인 명화들을 어린이들이 친숙한 만화캐릭터 다시 그린 작품으로, 교육적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입장료를 보니 입이 떡 벌어집니다. 어른은 만 원인데 어린이는 만3천 원입니다. 평상시엔 어른은 4천 원, 어린이는 2천 원이니, 어린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평상시보다 6배 이상 비싼 겁니다.

물론 작품의 퀄리티를 가격으로 단순 비교할 수 없겠죠. 다만 상업적 성격이 짙어 보이는 이 전시가 경기도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전시라는 것, 그래서 일반 회화나 소장품을 보고 싶은 관객들의 선택권을 아예 없앴다는 것은 두고두고 뒷말을 낳을 것 같습니다.

경기도미술관에도 나름 고충이 있습니다. 세월호 추모관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난 한해 정상적인 전시가 어려웠고, 전시관 1층의 일부 공간을 세월호 유가족에게 내주기도 했습니다. 운영 예산도 반토막이 났습니다. 2010년 40억 원이던 운영예산은 올해 27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근 3년동안 작품구입에는 아예 예산을 배정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전시가 최선이었는지, 공공 미술관의 설립 취지와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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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겉은 번지르르…속은 엉성한 뮤지엄
    • 입력 2015-07-15 06:00:30
    • 수정2015-07-15 16:58:18
    취재후·사건후
■ 광교박물관에 ‘광교’ 없고, 경기도미술관엔 ‘그림’ 없다.

경기도 수원시에 광교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박물관이 함께 생겼습니다. 이름은 '수원광교박물관'입니다. 거대한 신도시가 만들어지면 애초 그 땅에 뿌리박고 살아오던 사람들의 생활상과 이야기도 함께 사라지겠죠. 또 도시건설과정에서 미처 몰랐던 유물이 나올 수도 있구요. 이런 이유에서, 즉 발굴 과정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옛 마을의 생활상을 보존하기 위해 박물관을 짓게 된 겁니다.

그런데 박물관의 전시품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광교' 유물이 많지 않습니다. 전체 전시면적으로 따지면 10%나 될까요? 왠지 구색맞추기로 광교유물관을 꾸며놨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전시관은 2개의 개인 기증관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광교박물관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이름이 광교박물관이니 모두 광교 유물로 박물관을 채워야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광교지역이 수원 생활권에도 중심지가 아닌 변방에 속했기에 유물의 양이나 질에서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자 그럼 두 기증관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는 '소강 민관식실'이고, 다른 하나는 '사운 이종학실'입니다. 이종학 선생(1927~2002년)은 수원의 향토 사학자로 독도 연구의 최고 권위자였고, 초대 독도박물관장을 지내신 분입니다. 전시관은 이종학 선생이 수집해 기증한 조선시대 고문서, 금강산과 독도 관련 자료, 일제강점기 자료 등을 비교적 담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전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민관식실은 전시관 구성과 전시품 선정에 몇가지 의문점을 자아냅니다.

말조각상


민관식 선생(1918~2006년)은 국회의원, 문교부장관, 대한체육회장 등을 지낸신 분입니다. 특히 태릉선수촌을 만드는 등 한국 스포츠 행정에 공로가 큰 분으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전시관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것이 말 조각상입니다. 말띠 생인 민관식 선생이 유난히 말 조각을 좋아했고 많이 모았다고 합니다. 사료적 가치가 있다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취미로 모은 것들이지요. 공직을 옮길 때마다 새로 만든 명패들도 보이구요, 가족 사진, 그리고 프로야구 선수의 사인볼도 있습니다.

민관식실은 민관식 선생의 성장기부터 학창시절, 그리고 국회의원과 체육행정 시기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순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광교박물관의 부속 전시관이라고 보다는 '민관식 기념관'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옛 서울농대의 전신인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했으니 수원과 아주 인연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만, 일부 전시품 선정과 전시관 구성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평생 모은 소중한 것들은 시민들에게 돌려준 기증자와 유족의 순수한 마음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공립박물관은 운영하는 주최측이 박물관의 정체성과 그에 걸맞는 콘텐츠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을 했는지 되돌아봤으면 합니다.

광교박물관은 경기도시공사와 LH가 350억 원을 들여 지었고, 수원시에 넘겨줬습니다. 운영권을 넘겨받은 수원시는 광교박물관 유물구입비로 한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경기도립 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얘기도 해보겠습니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경기도립 미술관으로, 경기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립미술관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천경자전을 상설전으로 두고 있듯이, 규모가 있는 공립미술관들은 자기 미술관을 대표하는 콜렉션을 중심으로 상설전을 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기획전과 특별전을 함께 여는 방식이죠.

경기도미술관에는 지금 단 하나의 전시만이 열리고 있습니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화가나 조각가의 작품전이냐구요? 아닙니다. 경기도에서 미래의 피카소를 꿈꾸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냐구요? 그것도 아닙니다. 먼나라 브라질 만화가의 작품인 '모니카와 떠나는 세계명화여행전'입니다.

브라질 만화가 작품


세계적인 명화들을 어린이들이 친숙한 만화캐릭터 다시 그린 작품으로, 교육적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입장료를 보니 입이 떡 벌어집니다. 어른은 만 원인데 어린이는 만3천 원입니다. 평상시엔 어른은 4천 원, 어린이는 2천 원이니, 어린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평상시보다 6배 이상 비싼 겁니다.

물론 작품의 퀄리티를 가격으로 단순 비교할 수 없겠죠. 다만 상업적 성격이 짙어 보이는 이 전시가 경기도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전시라는 것, 그래서 일반 회화나 소장품을 보고 싶은 관객들의 선택권을 아예 없앴다는 것은 두고두고 뒷말을 낳을 것 같습니다.

경기도미술관에도 나름 고충이 있습니다. 세월호 추모관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난 한해 정상적인 전시가 어려웠고, 전시관 1층의 일부 공간을 세월호 유가족에게 내주기도 했습니다. 운영 예산도 반토막이 났습니다. 2010년 40억 원이던 운영예산은 올해 27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근 3년동안 작품구입에는 아예 예산을 배정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전시가 최선이었는지, 공공 미술관의 설립 취지와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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