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무더기 도굴된 희귀 화석, 누가 가져갔을까?

입력 2015.07.16 (06:00) 수정 2015.07.16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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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석 수십 점이 사라졌어요!

"강원도 영월군의 고생대층 석회암지대에서 복족류와 두족류 화석 20여 점이 도굴됐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화석에 문외한인 저의 머릿속은 복잡했습니다. 현장 사진을 받아보니 지대에서 직육면체 모양으로 무엇인가를 떠 간 것 같긴 한데... '복족류는 무엇이고 두족류는 무엇인지…. 화석이 사라진 장소는 어떤 곳인지' 검색을 해봐도 잘 나오질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강원도 영월로 떠났습니다.

■ 두부 모 파듯 잘려 나간 석회암 지대

제가 도착한 곳은 강원도 영월군 문곡리의 한 하천지대였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흐른다는데, 올해 들어 워낙 가뭄인지라 맨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길 10여 분…. 드디어 도굴 흔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두부 모 파듯 잘려나간 암석두부 모 파듯 잘려나간 암석


흔적은 사진으로 보던 것 이상으로 생생했습니다. 크게는 한변의 길이가 30cm는 될 정도로 땅에서 두부 모 파듯이 직육면체 형태로 암석이 떨어져 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식의 도굴 흔적은 하천 일대 30m에 걸쳐 스무 군데 넘게 발견됐습니다. 화석이 있던 자리를 통째로 파서 가버린 건데요. 이곳에 있던 화석의 크기 자체는 다섯째 손가락 정도로 그렇게 크진 않은데, 화석이 있던 암석을 직사각형 형태로 통째로 잘라간 겁니다. 화석 근처에는 무엇인가를 뜻하는 듯한 문자도 보였습니다. S1, S2, S3… 식으로 써 놓았는데, 가까이 있는 서너 개 화석 근처에 마치 그룹이라도 짜듯 빨간 글씨로 적혀 있었습니다.

근처에 새겨진 빨간 문자들근처에 새겨진 빨간 문자들


지난 4월 말 학술 연구차 이곳을 찾았다가 도굴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박수인 강원대학교 지질·지구물리학부 명예교수의 설명을 빌리자면, 이곳에 있던 두족류와 복족류 화석은 오늘날의 오징어나 소라의 조상쯤 되는 생물이라고 합니다. 도굴당한 지역은 이러한 화석들이 많이 산출되는 곳으로 당시 생물이 살던 고생대층을 연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데요. 이처럼 특정한 환경에서 두족류, 복족류 화석이 대량으로 산출되는 지역은 우리나라에 더는 없다고 봐도 괜찮을 듯하다고 전했을 만큼 이번 도굴은 화석 연구에 큰 손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화석도 엄연한 문화재인데…문화재청과 영월군청의 엇박자

국가에서는 도굴된 화석들을 어떻게 관리했었는지 알아볼 차례였습니다. 우선 화석은 현행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매장문화재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허가 없이 마음대로 발굴해 갈 수 없고, 발견 즉시 신고해야 하는데요. 이번에 일어난 도굴 행위라든가, 공사장에서 부주의에 의한 화석 손실을 막기 위해 이렇게 법률로써 보호하는 겁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할까요. 전문가는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화석 산출지라고 이야기하는데 문화재청의 답변은 '이번 도굴이 있기 전까지는 그러한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였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라면 특별히 관리할 테지만, 그곳이 천연기념물도 아닐 뿐더러, 발견 시 신고한 기록이 데이터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지도 않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재청 이야기만 들으면, '아 정말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화석들인가?'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영월군청이 설치한 안내판영월군청이 설치한 안내판


하지만 답은 역시 현장에 있었습니다. 도굴 현장을 둘러보다가 한 안내판을 발견한 건데요. 안내판은 이곳이 '오만동 화석산출지'로 '영월군 지질 명소'라고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두족류, 복족류 화석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함부로 화석을 가져가면 안 된다는 주의 문구도 있었는데요. 영월군청에 확인해 보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지난해 설치했다고 합니다. 문화재청은 이곳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는데, 영월군청은 지질 명소라고 칭하며 안내판까지 설치하는 모습… 화석이라는 생소한 분야에서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엇박자가 확인됐고, 결국 소중한 화석은 사라진 뒤였습니다.

훼손된 문화재훼손된 문화재


■ 아직 수사는 오리무중

"예전에 견학 갔던 곳인데, 이제는 예전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게 돼서 슬프네요."라는 누리꾼의 댓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화석이라는 유구한 자연자원이 도굴돼 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은 물론, 다시 찾더라도 이미 잘려 나간 만큼 자연에 있을 때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은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만큼 도굴되지 않도록 미리 보호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하겠죠.

수사는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도굴 시기를 정확히 특정하기 어렵고, 근처에 흔적이 남은 CCTV도 마땅히 없다는데요. 지난 5월부터 수사가 시작된 지 2달이 넘어가지만, 아직 오리무중입니다. 사라진 화석이 특별히 경제적 가치는 없다고 해 화석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의 소행일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는 중입니다. 아무쪼록 비록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순 없을지라도, 잘려 나간 암석들을 되찾아 많은 사람이 오래 두고 볼 수 있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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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9] 영월서 희귀 ‘고생대 화석’ 무더기 도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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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무더기 도굴된 희귀 화석, 누가 가져갔을까?
    • 입력 2015-07-16 06:00:23
    • 수정2015-07-16 06:29:04
    취재후·사건후
■ 화석 수십 점이 사라졌어요!

"강원도 영월군의 고생대층 석회암지대에서 복족류와 두족류 화석 20여 점이 도굴됐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화석에 문외한인 저의 머릿속은 복잡했습니다. 현장 사진을 받아보니 지대에서 직육면체 모양으로 무엇인가를 떠 간 것 같긴 한데... '복족류는 무엇이고 두족류는 무엇인지…. 화석이 사라진 장소는 어떤 곳인지' 검색을 해봐도 잘 나오질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강원도 영월로 떠났습니다.

■ 두부 모 파듯 잘려 나간 석회암 지대

제가 도착한 곳은 강원도 영월군 문곡리의 한 하천지대였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흐른다는데, 올해 들어 워낙 가뭄인지라 맨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길 10여 분…. 드디어 도굴 흔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두부 모 파듯 잘려나간 암석


흔적은 사진으로 보던 것 이상으로 생생했습니다. 크게는 한변의 길이가 30cm는 될 정도로 땅에서 두부 모 파듯이 직육면체 형태로 암석이 떨어져 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식의 도굴 흔적은 하천 일대 30m에 걸쳐 스무 군데 넘게 발견됐습니다. 화석이 있던 자리를 통째로 파서 가버린 건데요. 이곳에 있던 화석의 크기 자체는 다섯째 손가락 정도로 그렇게 크진 않은데, 화석이 있던 암석을 직사각형 형태로 통째로 잘라간 겁니다. 화석 근처에는 무엇인가를 뜻하는 듯한 문자도 보였습니다. S1, S2, S3… 식으로 써 놓았는데, 가까이 있는 서너 개 화석 근처에 마치 그룹이라도 짜듯 빨간 글씨로 적혀 있었습니다.

근처에 새겨진 빨간 문자들


지난 4월 말 학술 연구차 이곳을 찾았다가 도굴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박수인 강원대학교 지질·지구물리학부 명예교수의 설명을 빌리자면, 이곳에 있던 두족류와 복족류 화석은 오늘날의 오징어나 소라의 조상쯤 되는 생물이라고 합니다. 도굴당한 지역은 이러한 화석들이 많이 산출되는 곳으로 당시 생물이 살던 고생대층을 연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데요. 이처럼 특정한 환경에서 두족류, 복족류 화석이 대량으로 산출되는 지역은 우리나라에 더는 없다고 봐도 괜찮을 듯하다고 전했을 만큼 이번 도굴은 화석 연구에 큰 손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화석도 엄연한 문화재인데…문화재청과 영월군청의 엇박자

국가에서는 도굴된 화석들을 어떻게 관리했었는지 알아볼 차례였습니다. 우선 화석은 현행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매장문화재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허가 없이 마음대로 발굴해 갈 수 없고, 발견 즉시 신고해야 하는데요. 이번에 일어난 도굴 행위라든가, 공사장에서 부주의에 의한 화석 손실을 막기 위해 이렇게 법률로써 보호하는 겁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할까요. 전문가는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화석 산출지라고 이야기하는데 문화재청의 답변은 '이번 도굴이 있기 전까지는 그러한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였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라면 특별히 관리할 테지만, 그곳이 천연기념물도 아닐 뿐더러, 발견 시 신고한 기록이 데이터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지도 않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재청 이야기만 들으면, '아 정말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화석들인가?'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영월군청이 설치한 안내판


하지만 답은 역시 현장에 있었습니다. 도굴 현장을 둘러보다가 한 안내판을 발견한 건데요. 안내판은 이곳이 '오만동 화석산출지'로 '영월군 지질 명소'라고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두족류, 복족류 화석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함부로 화석을 가져가면 안 된다는 주의 문구도 있었는데요. 영월군청에 확인해 보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지난해 설치했다고 합니다. 문화재청은 이곳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는데, 영월군청은 지질 명소라고 칭하며 안내판까지 설치하는 모습… 화석이라는 생소한 분야에서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엇박자가 확인됐고, 결국 소중한 화석은 사라진 뒤였습니다.

훼손된 문화재


■ 아직 수사는 오리무중

"예전에 견학 갔던 곳인데, 이제는 예전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게 돼서 슬프네요."라는 누리꾼의 댓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화석이라는 유구한 자연자원이 도굴돼 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은 물론, 다시 찾더라도 이미 잘려 나간 만큼 자연에 있을 때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은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만큼 도굴되지 않도록 미리 보호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하겠죠.

수사는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도굴 시기를 정확히 특정하기 어렵고, 근처에 흔적이 남은 CCTV도 마땅히 없다는데요. 지난 5월부터 수사가 시작된 지 2달이 넘어가지만, 아직 오리무중입니다. 사라진 화석이 특별히 경제적 가치는 없다고 해 화석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의 소행일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는 중입니다. 아무쪼록 비록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순 없을지라도, 잘려 나간 암석들을 되찾아 많은 사람이 오래 두고 볼 수 있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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