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나쁜 선생님 있는 데잖아요”…어린이집 사건, 그 후

입력 2015.07.26 (09:01) 수정 2015.07.2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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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 TV를 도배하던 즈음입니다. 어머니가 아직 말이 서툰 네 살 아이를 붙잡고 묻습니다. "우리 강아지,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맴매 안 했어?"

어린이집 폭행 사건에 우리는 분노했습니다. 아이를 둔 부모는 불안했고, 성난 엄마들은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반년…, '어린이집'은 우리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어린이들


■ “저는 김희망, 김사랑(가명)입니다”

희망이·사랑이 남매는 어린이집 폭행 피해자입니다. '주먹 폭행'으로 세상에 알려졌던 그 어린이집입니다. 희망이·사랑이 부모를 기억합니다. 사건 당시, 취재 현장에서 만났습니다. 원장의 사과 앞에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구청장 앞에서 아버지는 내내 말없이 '주먹'만 굳게 쥐고 있었습니다.

■ 무섭고 아파하는 아이들, 아직 지우지 못한 ‘상처’

# AM 10:00 - 4D 체험관 앞

6개월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입체 상영관 앞이었습니다. 다시 만난 희망이는 떼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습니다. 극장 안이 무서워 들어가지 않겠답니다. 희망이를 달래고, 아버지와 얘기하는 사이. 희망이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상영관 문틈을, 상영관 옆 물품보관함 사이 틈을 몰래 엿보고 있었습니다. 캄캄한 게 무섭다고 했습니다.

희망이의 이런 행동을 알게 된 건 새 어린이집에 보낸 뒤입니다. 단체 관람에 갔다가 선생님이 희망이 때문에 애를 먹었답니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우는 희망이를 달래며 극장 밖에 있어야 했답니다.

예전 어린이집에서 캄캄한 방에 홀로 갇혀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방이 그저 무서웠을 겁니다. 이유도 몰랐을 겁니다. 그래서 희망이는 아직 '도깨비 방'을 잊을 수 없습니다. 희망이는 우리 나이로 '여섯 살'입니다.

도깨비방도깨비방


"캄캄한 곳이 무서워?"
"네, 나쁜 선생님이 있는 데잖아요."
- 희망이 인터뷰 中


# PM 03:30 - 사랑이 집

희망이의 여동생 '사랑이'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올해 네 살입니다. 사랑이는 사건 당시 공개된 CCTV 속 폭행 피해 아이 중 한 명입니다. 사랑이의 색칠공부 책에는 어린이집에서의 힘들었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삐뚤빼뚤 보통의 아이들 것과는 다릅니다. 네 살, 선 밖으로 색연필이 삐쳐나간 게 거의 없습니다. 삐쳐나가면 손찌검이 가해졌습니다. 가해 교사는 이걸 '교육방식'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어머니가 휴대전화로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습니다. 심리 치료를 위해 사랑이의 상태를 촬영해 둔 것이라고 했습니다. 늦은 밤잠에서 깬 사랑이가 엄마를 찾으며 하염없이 울고 있습니다. 사랑이의 밤은 아직도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놀이터놀이터


# PM 04:15 - 놀이터

사랑이를 만났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온 놀이터, 사랑이는 혼자입니다. 보다 못한 엄마가 다른 아이들에게 데려가 함께 놀자고 달래지만, 사랑이는 고개를 돌립니다. 그리고는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새 어린이집에서도 아직 많은 친구와 어울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이의 마음은 그렇게 굳게 닫혀버렸습니다.

어린이집 사건 이후 맞벌이를 포기한 어머니. 해줄 수 있는 게 안아주는 것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그 어린이집에 가게 된 건 순전히 부모 때문이잖아요. 아이들이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1~2년 동안 아이들이 아파하는 동안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게 저를 힘들게 해요."
- 희망이·사랑이 어머니 인터뷰 中


# PM 05:40 - 상담치료센터

희망이와 사랑이가 심리치료를 받는 날입니다. 치료를 받은 지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상담소장은 희망이와 사랑이가 이제야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조금 더디다고도 했습니다.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깊은 까닭일 것입니다. 요즘은 어린이집에서 당했던 일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에게 일깨워 주는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희망이는 놀이치료에서 서 있는 인형들을 모두 때려눕혔습니다.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살펴본 치료과정이 담긴 CCTV. 책상 위 장난감을 쓸어버리거나, 선생님에게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했습니다. 사랑이는 반대로 두,세 살 아기가 돼버렸습니다. 엄마 가슴에 집착하거나, 말 대신 울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동안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억눌린 감정'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상담실상담실


"어른하고는 다르죠. 그래서 (치료가) 더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치료를 하지 않거나 치료가 잘못될 경우에는 아이들의 뇌 발달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 정은숙(심리치료센터 소장) 인터뷰 中


어린이어린이


■ ‘희망’과 ‘사랑’의 힘으로…

지난 7일, 해당 가해교사는 법원으로부터 징역 9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은 8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습니다. 이 어린이집 원장은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벌금 500만 원,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정부와 정치권은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같은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가해교사도, 원장도 법의 심판에 따라 죗값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들도 스스로의 삶에서 힘든 시간이 되겠죠. '9개월의 시간과 벌금 5백만 원'. 그러나 그들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은 얼마의 시간을 더 견뎌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요? 아마 그 시간은 보육교사나 원장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시간보다 더 길고, 힘겨울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가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보여 줄 차례입니다.

[연관 기사]

☞ [뉴스9] 어린이집 폭행 그 이후…‘상처의 늪’에 빠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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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나쁜 선생님 있는 데잖아요”…어린이집 사건, 그 후
    • 입력 2015-07-26 09:01:45
    • 수정2015-07-26 09:26:36
    취재후·사건후
올 초,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 TV를 도배하던 즈음입니다. 어머니가 아직 말이 서툰 네 살 아이를 붙잡고 묻습니다. "우리 강아지,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맴매 안 했어?" 어린이집 폭행 사건에 우리는 분노했습니다. 아이를 둔 부모는 불안했고, 성난 엄마들은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반년…, '어린이집'은 우리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들
■ “저는 김희망, 김사랑(가명)입니다” 희망이·사랑이 남매는 어린이집 폭행 피해자입니다. '주먹 폭행'으로 세상에 알려졌던 그 어린이집입니다. 희망이·사랑이 부모를 기억합니다. 사건 당시, 취재 현장에서 만났습니다. 원장의 사과 앞에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구청장 앞에서 아버지는 내내 말없이 '주먹'만 굳게 쥐고 있었습니다. ■ 무섭고 아파하는 아이들, 아직 지우지 못한 ‘상처’ # AM 10:00 - 4D 체험관 앞 6개월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입체 상영관 앞이었습니다. 다시 만난 희망이는 떼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습니다. 극장 안이 무서워 들어가지 않겠답니다. 희망이를 달래고, 아버지와 얘기하는 사이. 희망이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상영관 문틈을, 상영관 옆 물품보관함 사이 틈을 몰래 엿보고 있었습니다. 캄캄한 게 무섭다고 했습니다. 희망이의 이런 행동을 알게 된 건 새 어린이집에 보낸 뒤입니다. 단체 관람에 갔다가 선생님이 희망이 때문에 애를 먹었답니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우는 희망이를 달래며 극장 밖에 있어야 했답니다. 예전 어린이집에서 캄캄한 방에 홀로 갇혀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방이 그저 무서웠을 겁니다. 이유도 몰랐을 겁니다. 그래서 희망이는 아직 '도깨비 방'을 잊을 수 없습니다. 희망이는 우리 나이로 '여섯 살'입니다.
도깨비방
"캄캄한 곳이 무서워?" "네, 나쁜 선생님이 있는 데잖아요." - 희망이 인터뷰 中 # PM 03:30 - 사랑이 집 희망이의 여동생 '사랑이'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올해 네 살입니다. 사랑이는 사건 당시 공개된 CCTV 속 폭행 피해 아이 중 한 명입니다. 사랑이의 색칠공부 책에는 어린이집에서의 힘들었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삐뚤빼뚤 보통의 아이들 것과는 다릅니다. 네 살, 선 밖으로 색연필이 삐쳐나간 게 거의 없습니다. 삐쳐나가면 손찌검이 가해졌습니다. 가해 교사는 이걸 '교육방식'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어머니가 휴대전화로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습니다. 심리 치료를 위해 사랑이의 상태를 촬영해 둔 것이라고 했습니다. 늦은 밤잠에서 깬 사랑이가 엄마를 찾으며 하염없이 울고 있습니다. 사랑이의 밤은 아직도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놀이터
# PM 04:15 - 놀이터 사랑이를 만났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온 놀이터, 사랑이는 혼자입니다. 보다 못한 엄마가 다른 아이들에게 데려가 함께 놀자고 달래지만, 사랑이는 고개를 돌립니다. 그리고는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새 어린이집에서도 아직 많은 친구와 어울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이의 마음은 그렇게 굳게 닫혀버렸습니다. 어린이집 사건 이후 맞벌이를 포기한 어머니. 해줄 수 있는 게 안아주는 것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그 어린이집에 가게 된 건 순전히 부모 때문이잖아요. 아이들이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1~2년 동안 아이들이 아파하는 동안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게 저를 힘들게 해요." - 희망이·사랑이 어머니 인터뷰 中 # PM 05:40 - 상담치료센터 희망이와 사랑이가 심리치료를 받는 날입니다. 치료를 받은 지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상담소장은 희망이와 사랑이가 이제야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조금 더디다고도 했습니다.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깊은 까닭일 것입니다. 요즘은 어린이집에서 당했던 일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에게 일깨워 주는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희망이는 놀이치료에서 서 있는 인형들을 모두 때려눕혔습니다.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살펴본 치료과정이 담긴 CCTV. 책상 위 장난감을 쓸어버리거나, 선생님에게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했습니다. 사랑이는 반대로 두,세 살 아기가 돼버렸습니다. 엄마 가슴에 집착하거나, 말 대신 울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동안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억눌린 감정'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상담실
"어른하고는 다르죠. 그래서 (치료가) 더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치료를 하지 않거나 치료가 잘못될 경우에는 아이들의 뇌 발달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 정은숙(심리치료센터 소장) 인터뷰 中
어린이
■ ‘희망’과 ‘사랑’의 힘으로… 지난 7일, 해당 가해교사는 법원으로부터 징역 9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은 8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습니다. 이 어린이집 원장은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벌금 500만 원,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정부와 정치권은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같은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가해교사도, 원장도 법의 심판에 따라 죗값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들도 스스로의 삶에서 힘든 시간이 되겠죠. '9개월의 시간과 벌금 5백만 원'. 그러나 그들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은 얼마의 시간을 더 견뎌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요? 아마 그 시간은 보육교사나 원장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시간보다 더 길고, 힘겨울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가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보여 줄 차례입니다. [연관 기사] ☞ [뉴스9] 어린이집 폭행 그 이후…‘상처의 늪’에 빠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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