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國記] 교사 4만 명 일제조사…학교에서 무슨 일이?

입력 2015.08.05 (06:06) 수정 2015.08.1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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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세계 언론의 해외 토픽을 장식했던 사진이다. 인도 비하르 주의 한 시험장 건물에 사람들이 인간 스파이더맨 처럼 매달려 있다. 고등학생 수험생의 가족과 지인들이다. 정답지를 작성해 전달하거나 필요한 자료를 그 때 그 때 넣어준다. 수험생들은 버젓이 교과서나 노트도 펼쳐본다. 비하르 주 일제고사 응시생은 140만 명 정도였는데, 도처에서 유사한 상황이 펼쳐졌다. 수 백 명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적발돼 체포되거나 고사장에서 쫓겨났다.

■ ‘학력 위조’ 교사 1,600 명 사직 

그런데 이번에는 비하르 주의 교사들이 화제다. 최근 공립학교 교사 1,600 명이 사직서를 내고 학교를 떠났다. 형식은 자진 사퇴지만 내용은 퇴출이다. 교사 임용 때 제출한 증명서가 문제가 됐다. 대학 졸업 증명서나 학위 증명서 등 교사 임용에 핵심적 자료를 위조한 사람들이다. 대다수가 초등학교 교사들이었다. 비하르 주 법원이 무자격 교사들 중 "자진해서 사직하면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하자 1,600명이 사직서를 냈다. 법원은 사직을 거부했다가 들통나면 봉급을 회수하고 기소하겠다고 밝혔다.

■ 비하르 주정부, 교사 4만 명 임용서류 정밀조사

이번 대규모 사직과 함께 무자격 교사들이 학교에서 사라진 걸까? 그럴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교사 임용 서류 위조 문제를 공익 소송으로 제기한 시민 운동가는 최소한 4만 명이 위조 서류로 교사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가 확보한 자료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것이어서 신빙성이 높다. 일부 소심한 교사들만 사직했을 뿐, 대다수는 버티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래서 비하르 주 정부는 각 시군구에 흩어져 있는 4만 명의 임용 서류를 한 데 모으고 있다. 하나 하나 조사해서 위조 여부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조사가 마무리되면 대대적인 퇴출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하르 주에서 교사의 학력 위조 문제가 이번에만 불거진 게 아니다. 지난해에도 교사 779 명이 학교에서 퇴출됐다. 2008년에는 무려 만5천 명의 임용 서류 위조 사실이 드러나 교단에서 추방됐다.

비하르 주 공립 중학교 교실비하르 주 공립 중학교 교실

▲ 비하르 주 공립 중학교 교실


■ 고질적 ‘부패 사슬’…교사가 자국 대통령 이름 몰라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건 교육 현장에 뿌리내린 부패 사슬 때문이다. 주거와 연금이 보장되는 교사는 평범한 인도인들에게 괜찮은 직업이다. 하지만 자격 있는 지망자는 부족하다. 자연스럽게 교육 관료나 정치인이 개입한 불법 채용 커넥션이 형성된다. 돈이 오가고 서류가 위조되고, 공모와 방조가 이뤄진다. 하르야나 주에서는 주총리까지 연루된 교사 채용 비리가 터졌고, 마드야 프라데시 주에서는 대입 부정과 공무원 채용 비리가 망라된 '브야팜 스캔들'이 진행중이다.

이렇게 무자격 교사들이 판을 치는 교육 현장은 그 수준이 황당할 정도로 열악하다. 비하르 주에서는 2013년에 초등 교사 만 명이 검증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는데, 이들은 인도 대통령 이름을 모르거나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 이름을 대지 못했다. 1년이 360일이라고 가르치는 교사가 있었고 인도의 수도가 뉴델리라는 걸 모르는 교사도 있었다.

책걸상도 없이 공부하는 공립학교 학생들책걸상도 없이 공부하는 공립학교 학생들

▲ 책걸상도 없이 공부하는 공립학교 학생들


■ 23년 결근한 교사도…교육 행정 ‘구멍’

비하르 주에서 좀 더 심할 뿐, 교사 자질 부족은 인도 교육 현장의 고질적 문제다. 그 대표적인 게 교사들의 무단 결근 문제다. 세계은행 조사에 의하면, 인도 전체적으로 평일에 공립 초등학교 교사 네 명 중 한 명은 결근한다. 그리고 출근한 교사 중 절반 정도만 실제로 가르친다. 학생의 결석이 아니라 교사의 결근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심지어 24년 교사 경력 중 23년을 결근한 교사도 있었다. 1990년 생물 교사로 임용됐지만 첫 해만 학교에 나온 후 전혀 출근하지 않았다. 다른 학교로 전근되기도 했지만 무단 결근은 계속됐다. 교육 행정의 낙후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런 교사 무단 결근으로 한 해 1조7천 억원이 낭비된다는 보고서도 있다.

DPS 란치DPS 란치

▲ DPS는 인도 전역에 100개가 넘는 학교를 운영하는 대표적 사립학교 체인이다


■ 최고급 ‘사립’- 민망한 ‘공립’

인도에서 소수를 위한 엘리트 교육은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사립학교들은 완전 영어 교육에 수준 높은 시설과 교사진을 갖추고 있다. 이런 학교에는 부유한 내국인 뿐 아니라, 영어를 배우려는 외국의 조기 유학생이 다니기도 한다. '둔 스쿨', '델리 퍼블릭 스쿨', '모던 스쿨' 등이다. 하지만 평범한 인도인 자녀들이 다니는 공립 학교는 이런 학교에 비교할 수 조차 없을만큼 열악한 상황 속에 있다. 초중등 교육의 극단적 양극화다.

부패한 관료와 무능한 교사들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어찌 컨닝에 열중하는 학생들만 나무랄 수 있겠는가. 시험장 건물의 인간 스파이더맨은 인도 공교육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주는 자화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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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05 06:06:00
    • 수정2015-08-19 13:36:13
    7국기
지난 3월 세계 언론의 해외 토픽을 장식했던 사진이다. 인도 비하르 주의 한 시험장 건물에 사람들이 인간 스파이더맨 처럼 매달려 있다. 고등학생 수험생의 가족과 지인들이다. 정답지를 작성해 전달하거나 필요한 자료를 그 때 그 때 넣어준다. 수험생들은 버젓이 교과서나 노트도 펼쳐본다. 비하르 주 일제고사 응시생은 140만 명 정도였는데, 도처에서 유사한 상황이 펼쳐졌다. 수 백 명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적발돼 체포되거나 고사장에서 쫓겨났다.

■ ‘학력 위조’ 교사 1,600 명 사직 

그런데 이번에는 비하르 주의 교사들이 화제다. 최근 공립학교 교사 1,600 명이 사직서를 내고 학교를 떠났다. 형식은 자진 사퇴지만 내용은 퇴출이다. 교사 임용 때 제출한 증명서가 문제가 됐다. 대학 졸업 증명서나 학위 증명서 등 교사 임용에 핵심적 자료를 위조한 사람들이다. 대다수가 초등학교 교사들이었다. 비하르 주 법원이 무자격 교사들 중 "자진해서 사직하면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하자 1,600명이 사직서를 냈다. 법원은 사직을 거부했다가 들통나면 봉급을 회수하고 기소하겠다고 밝혔다.

■ 비하르 주정부, 교사 4만 명 임용서류 정밀조사

이번 대규모 사직과 함께 무자격 교사들이 학교에서 사라진 걸까? 그럴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교사 임용 서류 위조 문제를 공익 소송으로 제기한 시민 운동가는 최소한 4만 명이 위조 서류로 교사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가 확보한 자료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것이어서 신빙성이 높다. 일부 소심한 교사들만 사직했을 뿐, 대다수는 버티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래서 비하르 주 정부는 각 시군구에 흩어져 있는 4만 명의 임용 서류를 한 데 모으고 있다. 하나 하나 조사해서 위조 여부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조사가 마무리되면 대대적인 퇴출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하르 주에서 교사의 학력 위조 문제가 이번에만 불거진 게 아니다. 지난해에도 교사 779 명이 학교에서 퇴출됐다. 2008년에는 무려 만5천 명의 임용 서류 위조 사실이 드러나 교단에서 추방됐다.

비하르 주 공립 중학교 교실
▲ 비하르 주 공립 중학교 교실


■ 고질적 ‘부패 사슬’…교사가 자국 대통령 이름 몰라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건 교육 현장에 뿌리내린 부패 사슬 때문이다. 주거와 연금이 보장되는 교사는 평범한 인도인들에게 괜찮은 직업이다. 하지만 자격 있는 지망자는 부족하다. 자연스럽게 교육 관료나 정치인이 개입한 불법 채용 커넥션이 형성된다. 돈이 오가고 서류가 위조되고, 공모와 방조가 이뤄진다. 하르야나 주에서는 주총리까지 연루된 교사 채용 비리가 터졌고, 마드야 프라데시 주에서는 대입 부정과 공무원 채용 비리가 망라된 '브야팜 스캔들'이 진행중이다.

이렇게 무자격 교사들이 판을 치는 교육 현장은 그 수준이 황당할 정도로 열악하다. 비하르 주에서는 2013년에 초등 교사 만 명이 검증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는데, 이들은 인도 대통령 이름을 모르거나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 이름을 대지 못했다. 1년이 360일이라고 가르치는 교사가 있었고 인도의 수도가 뉴델리라는 걸 모르는 교사도 있었다.

책걸상도 없이 공부하는 공립학교 학생들
▲ 책걸상도 없이 공부하는 공립학교 학생들


■ 23년 결근한 교사도…교육 행정 ‘구멍’

비하르 주에서 좀 더 심할 뿐, 교사 자질 부족은 인도 교육 현장의 고질적 문제다. 그 대표적인 게 교사들의 무단 결근 문제다. 세계은행 조사에 의하면, 인도 전체적으로 평일에 공립 초등학교 교사 네 명 중 한 명은 결근한다. 그리고 출근한 교사 중 절반 정도만 실제로 가르친다. 학생의 결석이 아니라 교사의 결근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심지어 24년 교사 경력 중 23년을 결근한 교사도 있었다. 1990년 생물 교사로 임용됐지만 첫 해만 학교에 나온 후 전혀 출근하지 않았다. 다른 학교로 전근되기도 했지만 무단 결근은 계속됐다. 교육 행정의 낙후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런 교사 무단 결근으로 한 해 1조7천 억원이 낭비된다는 보고서도 있다.

DPS 란치
▲ DPS는 인도 전역에 100개가 넘는 학교를 운영하는 대표적 사립학교 체인이다


■ 최고급 ‘사립’- 민망한 ‘공립’

인도에서 소수를 위한 엘리트 교육은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사립학교들은 완전 영어 교육에 수준 높은 시설과 교사진을 갖추고 있다. 이런 학교에는 부유한 내국인 뿐 아니라, 영어를 배우려는 외국의 조기 유학생이 다니기도 한다. '둔 스쿨', '델리 퍼블릭 스쿨', '모던 스쿨' 등이다. 하지만 평범한 인도인 자녀들이 다니는 공립 학교는 이런 학교에 비교할 수 조차 없을만큼 열악한 상황 속에 있다. 초중등 교육의 극단적 양극화다.

부패한 관료와 무능한 교사들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어찌 컨닝에 열중하는 학생들만 나무랄 수 있겠는가. 시험장 건물의 인간 스파이더맨은 인도 공교육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주는 자화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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