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 ‘굴곡진 인생사’

입력 2015.08.14 (18:00) 수정 2015.08.1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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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맹희이맹희

▲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오늘(14일) 중국 베이징에서 별세한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은 삼성가(家) '비운의 황태자'로 불린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맹희씨는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동생(삼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빼앗기는 등 굴곡진 삶을 살았다.

맹희씨는 1966년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그룹 경영을 맡게 됐다.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당시 삼성 계열사인 한국비료가 58톤의 사카린 원료를 밀수하려다 세관에 적발된 일로, 재벌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이병철 회장이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은퇴했다.

이병철 회장의 빈자리를 메운 건 장남인 맹희씨였다. 그는 제일제당 대표이사, 삼성물산 부사장, 삼성전자 부사장, 삼성문화재단 이사 등 그룹의 주요직에 올라 아버지의 공백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에는 맹희씨가 6개월간 그룹 경영을 맡았다가 혼란에 빠지자 자진해서 물러났다고 적혀 있다. 반면 맹희씨의 자서전에는 7년간 삼성을 경영한 것으로 돼 있다.

사카린 밀수 사건은 맹희씨가 잠시나마 삼성의 경영을 맡는 계기가 됐지만, 그 후 삼성가와의 관계가 뒤틀리는 요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1969년 이병철 회장이 경영 복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투서 사건이 발생했다. 사카린 밀수, 탈세 등에 이병철 회장이 직접 개입했다는 내용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그룹 경영권에 욕심을 낸 맹희씨가 투서한 것으로 판단했고, 결국 아버지의 눈 밖에 난 맹희씨는 후계자 경쟁에서 동생인 이건희 회장에게 밀렸다.

그 후 맹희씨는 개인적으로 제일비료를 설립했지만 실패하는 등 줄곧 삼성그룹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이건희·이맹희이건희·이맹희


1987년 후계자로 지목된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가 별세한 이후 반도체, 전자, 제당, 물산 등 삼성그룹의 주요 지분을 승계받았다. 맹희씨는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지분 등을 받는 데 그쳤다.

주로 해외에서 생활하던 맹희씨가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때는 3년 전인 2012년이다.

그해 맹희씨는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재산 분할 소송을 제기했다. 2008년 특검 과정에서 드러난 4조5000억 원 규모의 차명 주식이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라는 것이었다. 이병철 창업주의 차녀 숙희씨 등이 맹희씨 측에 포함돼 재산 분할을 요구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지금 생각 같아서는 한 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 "이맹희씨는 집 안에서 퇴출당한 양반이다" 등 공격적인 발언을 하면서 반감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직원이 맹희씨의 장남인 이재현 CJ 회장을 미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양측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세간의 주목을 받은 삼성가 상속 소송은 상속 청구 기한 만료, 상속 재산 증거 부족 등으로 1·2심에서 진 맹희씨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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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 ‘굴곡진 인생사’
    • 입력 2015-08-14 18:00:31
    • 수정2015-08-14 21:34:02
    경제
이맹희
▲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오늘(14일) 중국 베이징에서 별세한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은 삼성가(家) '비운의 황태자'로 불린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맹희씨는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동생(삼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빼앗기는 등 굴곡진 삶을 살았다.

맹희씨는 1966년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그룹 경영을 맡게 됐다.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당시 삼성 계열사인 한국비료가 58톤의 사카린 원료를 밀수하려다 세관에 적발된 일로, 재벌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이병철 회장이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은퇴했다.

이병철 회장의 빈자리를 메운 건 장남인 맹희씨였다. 그는 제일제당 대표이사, 삼성물산 부사장, 삼성전자 부사장, 삼성문화재단 이사 등 그룹의 주요직에 올라 아버지의 공백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에는 맹희씨가 6개월간 그룹 경영을 맡았다가 혼란에 빠지자 자진해서 물러났다고 적혀 있다. 반면 맹희씨의 자서전에는 7년간 삼성을 경영한 것으로 돼 있다.

사카린 밀수 사건은 맹희씨가 잠시나마 삼성의 경영을 맡는 계기가 됐지만, 그 후 삼성가와의 관계가 뒤틀리는 요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1969년 이병철 회장이 경영 복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투서 사건이 발생했다. 사카린 밀수, 탈세 등에 이병철 회장이 직접 개입했다는 내용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그룹 경영권에 욕심을 낸 맹희씨가 투서한 것으로 판단했고, 결국 아버지의 눈 밖에 난 맹희씨는 후계자 경쟁에서 동생인 이건희 회장에게 밀렸다.

그 후 맹희씨는 개인적으로 제일비료를 설립했지만 실패하는 등 줄곧 삼성그룹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이건희·이맹희


1987년 후계자로 지목된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가 별세한 이후 반도체, 전자, 제당, 물산 등 삼성그룹의 주요 지분을 승계받았다. 맹희씨는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지분 등을 받는 데 그쳤다.

주로 해외에서 생활하던 맹희씨가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때는 3년 전인 2012년이다.

그해 맹희씨는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재산 분할 소송을 제기했다. 2008년 특검 과정에서 드러난 4조5000억 원 규모의 차명 주식이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라는 것이었다. 이병철 창업주의 차녀 숙희씨 등이 맹희씨 측에 포함돼 재산 분할을 요구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지금 생각 같아서는 한 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 "이맹희씨는 집 안에서 퇴출당한 양반이다" 등 공격적인 발언을 하면서 반감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직원이 맹희씨의 장남인 이재현 CJ 회장을 미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양측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세간의 주목을 받은 삼성가 상속 소송은 상속 청구 기한 만료, 상속 재산 증거 부족 등으로 1·2심에서 진 맹희씨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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