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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도둑 맞은 충무공의 고서는 왜 고물상을 전전했을까?
입력 2015.08.18 (17:01) 수정 2015.08.19 (07:39) 취재후
[취재후] 도둑 맞은 충무공의 고서는 왜 고물상을 전전했을까?
■ 사라졌던 ‘장계별책’이 박물관에?

지난 4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라진 유물 6점 가운데 하나인 '장계별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지난 1969년 4월, 국내 한 신문에 이순신 장군 종가에 소장돼 있다는 기록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장계별책'의 소재가 거의 반세기만에 다시 확인된 것이다.

'장계(狀啓)별책'은 임진왜란이 발생한 1592년에서 1594년 사이,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선조와 광해군에게 올린 전황보고서, '장계'가 68편 실린 책이다. 충무공 사후인 1622년에 국가기관에서 필사해 엮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왜군의 상황과, 사망자와 부상자가 몇 명인지 등의 전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국보 제76호인 '임진장초'에 실린 장계가 61편인데, 임진장초에는 없고 '장계별책'에만 있는 장계만 12편에 이른다. 특히 임진왜란 중 병조판서를 지낸 오성 이항복이 이순신 장군에 관해 쓴 내용 등이 추가로 수록돼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장계별책'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으니 학계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장계별책'의 등장이 곧 경찰 수사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음을…

장계별책이 보관됐던 김씨 집 창고장계별책이 보관됐던 김씨 집 창고


■ 고물상을 두루 헤맨 국보급 문화재

경찰 수사가 시작된 건 지난 4월 21일. 국립해양박물관이 '장계별책'을 소장하고 있음이 확인된 직후다. 경찰은 도난당한 국보급 문화재를 해양박물관에서 매입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순신 장군 종가 역시 사라진 '장계별책'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곧바로 경찰의 역추적이 시작됐다. 그 결과 감춰졌던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 2007년 6월, 피의자 55살 김 모씨는 덕수 이씨 15대 종부인 59살 최 모씨로부터 집안의 잡동사니를 정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김씨와 최씨는 같은 교회 신도로 평소 안면이 있어서 최씨가 김씨에게 돈을 주고 집안 정리를 부탁한 것이다.

이후 김씨는 종가집의 고서적 수백권을 고물상에 팔아 넘기겠다며 가져와 그중 값어치가 있어보이는 고서적 112권을 자신의 집에 은닉한다. 김씨가 유출한 112권 중에 한권이 바로 '장계별책'이었던 것이다. 김씨는 이 책들을 4년 넘게 보관하다가 지난 2011년 6월 '장계별책'을 다른 고물수집상에게 단돈 5백만 원에 팔아치운다. 국보급이라는 평가를 받는 문화재가 단돈 5백만 원에 거래된 것이다. 이후 몇몇의 문화재 거래상을 거친 뒤, 국립해양박물관은 지난 2013년 4월 3천만 원을 주고 '장계별책'을 매입했다.

지난 13일 열린 경찰의 장계별책 유출·은닉 피의자 검거 브리핑지난 13일 열린 경찰의 장계별책 유출·은닉 피의자 검거 브리핑


■ ‘장계별책’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경찰은 국립해양박물관 학예사를 문화재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박물관 측이 '장계별책'이 장물임을 알고도 매입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박물관 측이 실소유주를 알아내기 위한 형식적인 노력만 하고 실질적인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물관 측은 '장계별책'이 지정 문화재나 도난 신고된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매매상을 통해 구입해도 문제될 것이 없고 매입과정을 공고하는 등 형식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장계별책'쯤 되는 책은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만 검색만 해봐도 누구 소유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박물관 측이 '장계별책' 매입 직전에 아산 현충사를 방문해 이순신 장군 관련 유물 6점을 복제해 갈 정도로 이순신 관련 유물 수집에 공을 들였는데 '장계별책'의 존재를 모르고 매입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다.

반면 박물관 측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구입된 문화재인 만큼 반환할 의무가 없고 담당 학예사를 입건한 것도 경찰의 오버(?)라고 맞서고 있다. 특히 '장개별책'이 이순신 장군의 유물이지만, 표지에 '충민공계초'라고 적혀 있고 두 책이 서로 다른 책일 수 있다며 무혐의를 주장하고 있다.('장계별책'의 표지에는 '충민공계초(忠愍公啓草)'라고 적혀 있으며 충민공은 이순신 장군이 충무공 시호를 받기 전에 사용하던 시호다. 반면 현충사에서는 '충민공계초'와 '장계별책'이 같은 책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장계별책' 소유권 문제는 결국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핵심은 박물관 측이 장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장계별책'을 구입했는지 여부인데, 학예사가 입건돼 형사재판까지 함께 진행되는 만큼 형사재판 결과에 따라 소유권 문제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장계별책 등 압수한 이순신 장군 종가 고서적장계별책 등 압수한 이순신 장군 종가 고서적


■ 허술한 문화재 관리…관리 실태 점검 급하다

'장계별책'과 '충민공계초'가 같은 책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고,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국보급 문화재가 도난당한 뒤 고물상을 전전하다 장물로 국립박물관에 전시됐다는 사실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가장 심각한 건 우리의 허술한 문화재 관리 실태다.

'장계별책'은 1969년 소재가 확인된 뒤 국립해양박물관에서 발견될 때까지 존재 여부조차 확인이 안 될 정도로 관리가 허술했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에서 이순신 장군 유물을 관리하긴 하지만 종가에서 기탁한 19점만 관리하고 나머지 유물의 관리는 종가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관리를 못하면 현황 파악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순신 장군 종가에 대한 문화재 조사는 1920년대 일제가 진행한 뒤 전혀 없다가 해방 뒤에는 지난 2009년 이뤄진 게 전부다. 그동안 어떤 유물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부실한 문화재 관리 속에 난중일기 중 을미년 일기와 충무사 영정, 우의정 교지같은 충무공과 관련된 주요 유물 5점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경찰이 충무공 관련 유물 5점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이순신 장군 문화재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 실태 점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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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18 (17:01)
    • 수정 2015.08.19 (07:39)
    취재후
[취재후] 도둑 맞은 충무공의 고서는 왜 고물상을 전전했을까?
■ 사라졌던 ‘장계별책’이 박물관에?

지난 4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라진 유물 6점 가운데 하나인 '장계별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지난 1969년 4월, 국내 한 신문에 이순신 장군 종가에 소장돼 있다는 기록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장계별책'의 소재가 거의 반세기만에 다시 확인된 것이다.

'장계(狀啓)별책'은 임진왜란이 발생한 1592년에서 1594년 사이,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선조와 광해군에게 올린 전황보고서, '장계'가 68편 실린 책이다. 충무공 사후인 1622년에 국가기관에서 필사해 엮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왜군의 상황과, 사망자와 부상자가 몇 명인지 등의 전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국보 제76호인 '임진장초'에 실린 장계가 61편인데, 임진장초에는 없고 '장계별책'에만 있는 장계만 12편에 이른다. 특히 임진왜란 중 병조판서를 지낸 오성 이항복이 이순신 장군에 관해 쓴 내용 등이 추가로 수록돼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장계별책'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으니 학계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장계별책'의 등장이 곧 경찰 수사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음을…

장계별책이 보관됐던 김씨 집 창고장계별책이 보관됐던 김씨 집 창고


■ 고물상을 두루 헤맨 국보급 문화재

경찰 수사가 시작된 건 지난 4월 21일. 국립해양박물관이 '장계별책'을 소장하고 있음이 확인된 직후다. 경찰은 도난당한 국보급 문화재를 해양박물관에서 매입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순신 장군 종가 역시 사라진 '장계별책'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곧바로 경찰의 역추적이 시작됐다. 그 결과 감춰졌던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 2007년 6월, 피의자 55살 김 모씨는 덕수 이씨 15대 종부인 59살 최 모씨로부터 집안의 잡동사니를 정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김씨와 최씨는 같은 교회 신도로 평소 안면이 있어서 최씨가 김씨에게 돈을 주고 집안 정리를 부탁한 것이다.

이후 김씨는 종가집의 고서적 수백권을 고물상에 팔아 넘기겠다며 가져와 그중 값어치가 있어보이는 고서적 112권을 자신의 집에 은닉한다. 김씨가 유출한 112권 중에 한권이 바로 '장계별책'이었던 것이다. 김씨는 이 책들을 4년 넘게 보관하다가 지난 2011년 6월 '장계별책'을 다른 고물수집상에게 단돈 5백만 원에 팔아치운다. 국보급이라는 평가를 받는 문화재가 단돈 5백만 원에 거래된 것이다. 이후 몇몇의 문화재 거래상을 거친 뒤, 국립해양박물관은 지난 2013년 4월 3천만 원을 주고 '장계별책'을 매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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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계별책’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경찰은 국립해양박물관 학예사를 문화재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박물관 측이 '장계별책'이 장물임을 알고도 매입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박물관 측이 실소유주를 알아내기 위한 형식적인 노력만 하고 실질적인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물관 측은 '장계별책'이 지정 문화재나 도난 신고된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매매상을 통해 구입해도 문제될 것이 없고 매입과정을 공고하는 등 형식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장계별책'쯤 되는 책은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만 검색만 해봐도 누구 소유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박물관 측이 '장계별책' 매입 직전에 아산 현충사를 방문해 이순신 장군 관련 유물 6점을 복제해 갈 정도로 이순신 관련 유물 수집에 공을 들였는데 '장계별책'의 존재를 모르고 매입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다.

반면 박물관 측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구입된 문화재인 만큼 반환할 의무가 없고 담당 학예사를 입건한 것도 경찰의 오버(?)라고 맞서고 있다. 특히 '장개별책'이 이순신 장군의 유물이지만, 표지에 '충민공계초'라고 적혀 있고 두 책이 서로 다른 책일 수 있다며 무혐의를 주장하고 있다.('장계별책'의 표지에는 '충민공계초(忠愍公啓草)'라고 적혀 있으며 충민공은 이순신 장군이 충무공 시호를 받기 전에 사용하던 시호다. 반면 현충사에서는 '충민공계초'와 '장계별책'이 같은 책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장계별책' 소유권 문제는 결국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핵심은 박물관 측이 장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장계별책'을 구입했는지 여부인데, 학예사가 입건돼 형사재판까지 함께 진행되는 만큼 형사재판 결과에 따라 소유권 문제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장계별책 등 압수한 이순신 장군 종가 고서적장계별책 등 압수한 이순신 장군 종가 고서적


■ 허술한 문화재 관리…관리 실태 점검 급하다

'장계별책'과 '충민공계초'가 같은 책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고,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국보급 문화재가 도난당한 뒤 고물상을 전전하다 장물로 국립박물관에 전시됐다는 사실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가장 심각한 건 우리의 허술한 문화재 관리 실태다.

'장계별책'은 1969년 소재가 확인된 뒤 국립해양박물관에서 발견될 때까지 존재 여부조차 확인이 안 될 정도로 관리가 허술했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에서 이순신 장군 유물을 관리하긴 하지만 종가에서 기탁한 19점만 관리하고 나머지 유물의 관리는 종가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관리를 못하면 현황 파악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순신 장군 종가에 대한 문화재 조사는 1920년대 일제가 진행한 뒤 전혀 없다가 해방 뒤에는 지난 2009년 이뤄진 게 전부다. 그동안 어떤 유물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부실한 문화재 관리 속에 난중일기 중 을미년 일기와 충무사 영정, 우의정 교지같은 충무공과 관련된 주요 유물 5점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경찰이 충무공 관련 유물 5점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이순신 장군 문화재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 실태 점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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