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성국 발해, 대륙 진출의 꿈

입력 2015.08.22 (08:33) 수정 2015.08.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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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혹시 발해를 기억하십니까?

고구려가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이 서기 698년에 건국한 뒤 230년간, 중국 지린성과 러시아 연해주 대부분 등 우리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나라입니다.

러시아 극동 연해주에는 지금도 발해의 유적과 유물들이 산재해 있는데요,

그곳에서 발해 유적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유라시아 친선특급 행사를 치른 것처럼 요즘 유라시아 대륙과의 소통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천년 전 만주와 연해주를 경략했던 발해의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모스크바 하준수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연해주를 누비며 달리길 230km,

중국. 북한 국경과 가까운 크라스키노 입니다.

다시 드넓은 늪지대를 40여 분 걸어가면 나타나는 천막들,

발해의 염주성. 성터 발굴 현장입니다.

지난 1980년 시작돼 35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발굴 작업,

지금은 한국의 동북아 역사재단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녹취> 김은옥(길림대 고고학 박사과정) : "(다 사람 손으로 합니까?) 네..그렇죠. 기계를 안쓰고. 삽하고 호미하고..공구를 가지고 토기편 같은 경우 돌이랑 구별하기 어려운 면이 있거든요. 그걸 돌하고 구별해야 하니까.."

바로 이때, 근처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녹취> "우라~~"

모두를 흥분시킨 건 바로 이 작은 청동 낙타상입니다.

<녹취> 겔만(박사/러시아 발굴단장) : "정말 행복해요. 아주 희귀한 발견이죠. 이런 건 본 적이 없어요."

발해 유적 발굴 사상 청동 낙타상이 발견된 것은 처음입니다.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2cm에 불과한 이 정교한 쌍봉 낙타상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이번 낙타상의 발굴은 지난 2012년 낙타 뼈 출토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낙타는 고대부터 이용된 교통 수단, 따라서 발해와 서역의 교류가 대단히 활발했다는 실질적인 증거가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 입니다.

<녹취> 예브게니아 겔만(박사/러시아 발굴단장) : "캬라반(대상)이 상품을 갖고 육로로 이곳에 왔다는 증거죠. 발해가 여러 나라와 교역했다는 상징인 것입니다."

<인터뷰> 김은국(박사/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발해인들이 가지고 있던 대외교류의 무한한 개방성과 교류의 다양성을 표현해주는 상징적인 유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곳에서는 발해 전 시기의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토층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토층의 높이는 2m 30cm에 달합니다. 발해 건국부터 멸망까지 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른바 '타임 캡슐'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략 6개의 층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각층이 서로 다른 건축 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은국(동북아역사재단) : "과연 발해부터 시작했을까? 최하층에 발해 이전 유물로 볼수 있는 것들이 나오거든요. 발해가 아니라면 고구려인거죠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라는 확증을 잡을 수 있는거죠."

움푹 파인 이 웅덩이에서는 각종 토기와 뼈 등이 출토돼 저장고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녹취> 정석배(한국전통문화대학 교수) : "한군데에 모여 있다는 것은 이곳이 이 성의 식량을 저장했던 곳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 거죠"

발해의 염주성은 대륙은 물론 바다 건너 일본과도 교역했던 교통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10km 거리에 있는 우수리스크..

다시 서쪽으로 6km를 달리면 또 다른 발굴 현장이 나옵니다.

여기서는 고구려 양식의 발해 성벽이 발굴됐습니다.

<인터뷰> 윤형준(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사) : "한번 쌓고 안쪽에 약간 들여서 쌓는 것인데..들여쌓기는 고구려 건축 양식이기 때문에 발해대에서 고구려 전통을 계승한 성벽 쌓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강과 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임을 짐작케 합니다.

<인터뷰> 윤형준(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사) : "여기서 발해인들이 영역을 확장해 나가면서 주변의 말갈을 복속시키고 발해의 대제국을 건설하는 기초를 닦았던 하나의 시점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발해의 대표적인 유물인, 발해 입방체. 양초나 깃대를 꽂는 용도로 쓰인 유물이 발견됐습니다.

<인터뷰> 클류에프(박사/러시아 발굴단장) : "서기 8세기에 발해의 영토 경계선이 서쪽으로 확장됐고, 이 지역이 발해의 영역에 속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서기 698년, 고구려 유민들이 건국한 발해는 한때 해동성국으로 불리며 광대한 영토를 다스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성기의 발해 영토는, 오늘날의 중국 지린성과 연해주 대부분, 헤이룽장성, 랴오닝성 일부 등 사방 5천리에 달했다고 합니다.

발해는 그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5경 15부 62주를 설치했습니다.

발해의 멸망을 끝으로 우리 역사는 더 이상 대륙으로 나가지 못하고 반도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대외 정책 기조의 하나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했습니다.

한반도의 교통.물류망을 대륙으로 연결해,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 경제권을 연계함으로써, 우리 기업들에게 더 큰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 입니다.

지난달엔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해 유럽에 이르는 '유라시아 친선 특급' 행사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그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출발해 지나간 곳은, 천년 전 발해인들이 경략했던 땅입니다.

<인터뷰> 김은국(박사/동북아역사재단) : "서역문화와 당, 신라,일본 문화 등 주변의 모든 문화가 발해에 녹아서 발해만의 독특한 색깔을 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발해의 대외 개방성과 포용성 입니다."

바다와 대륙을 동시에 경영했던 해륙국가, 발해인의 기상은. 오늘날의 세계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인터뷰> 윤형준(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사) : "우리가 단순한 반도사관에 갇히지 않고 더 넓게 세계 경영을 하고자 하는 현대의 흐름에 맞게 역사 인식을 다시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봅니다."

발해 염주성 발굴 현장, 그 앞쪽으로 한줄기 철로가 지나갑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크라스키노와 하산을 지나 북한 나진항으로 이어지는 철길입니다.

시베리아에서 채취된 석탄이 이 철길을 따라 북한 나진항으로 운송되고 있습니다.

천 년 전 발해인들이 말 달리던 그 길이, 이제는 교통.물류 네트워크로 재탄생한 것 입니다.

서역과도 활발히 교류했던 발해인들의 기상이 깃든 이 철길이 한반도 종단철도와 이어짐으로써 대한민국의 대륙 진출 통로가 될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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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동성국 발해, 대륙 진출의 꿈
    • 입력 2015-08-22 08:37:25
    • 수정2015-08-22 09:00:20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혹시 발해를 기억하십니까?

고구려가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이 서기 698년에 건국한 뒤 230년간, 중국 지린성과 러시아 연해주 대부분 등 우리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나라입니다.

러시아 극동 연해주에는 지금도 발해의 유적과 유물들이 산재해 있는데요,

그곳에서 발해 유적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유라시아 친선특급 행사를 치른 것처럼 요즘 유라시아 대륙과의 소통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천년 전 만주와 연해주를 경략했던 발해의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모스크바 하준수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연해주를 누비며 달리길 230km,

중국. 북한 국경과 가까운 크라스키노 입니다.

다시 드넓은 늪지대를 40여 분 걸어가면 나타나는 천막들,

발해의 염주성. 성터 발굴 현장입니다.

지난 1980년 시작돼 35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발굴 작업,

지금은 한국의 동북아 역사재단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녹취> 김은옥(길림대 고고학 박사과정) : "(다 사람 손으로 합니까?) 네..그렇죠. 기계를 안쓰고. 삽하고 호미하고..공구를 가지고 토기편 같은 경우 돌이랑 구별하기 어려운 면이 있거든요. 그걸 돌하고 구별해야 하니까.."

바로 이때, 근처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녹취> "우라~~"

모두를 흥분시킨 건 바로 이 작은 청동 낙타상입니다.

<녹취> 겔만(박사/러시아 발굴단장) : "정말 행복해요. 아주 희귀한 발견이죠. 이런 건 본 적이 없어요."

발해 유적 발굴 사상 청동 낙타상이 발견된 것은 처음입니다.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2cm에 불과한 이 정교한 쌍봉 낙타상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이번 낙타상의 발굴은 지난 2012년 낙타 뼈 출토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낙타는 고대부터 이용된 교통 수단, 따라서 발해와 서역의 교류가 대단히 활발했다는 실질적인 증거가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 입니다.

<녹취> 예브게니아 겔만(박사/러시아 발굴단장) : "캬라반(대상)이 상품을 갖고 육로로 이곳에 왔다는 증거죠. 발해가 여러 나라와 교역했다는 상징인 것입니다."

<인터뷰> 김은국(박사/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발해인들이 가지고 있던 대외교류의 무한한 개방성과 교류의 다양성을 표현해주는 상징적인 유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곳에서는 발해 전 시기의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토층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토층의 높이는 2m 30cm에 달합니다. 발해 건국부터 멸망까지 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른바 '타임 캡슐'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략 6개의 층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각층이 서로 다른 건축 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은국(동북아역사재단) : "과연 발해부터 시작했을까? 최하층에 발해 이전 유물로 볼수 있는 것들이 나오거든요. 발해가 아니라면 고구려인거죠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라는 확증을 잡을 수 있는거죠."

움푹 파인 이 웅덩이에서는 각종 토기와 뼈 등이 출토돼 저장고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녹취> 정석배(한국전통문화대학 교수) : "한군데에 모여 있다는 것은 이곳이 이 성의 식량을 저장했던 곳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 거죠"

발해의 염주성은 대륙은 물론 바다 건너 일본과도 교역했던 교통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10km 거리에 있는 우수리스크..

다시 서쪽으로 6km를 달리면 또 다른 발굴 현장이 나옵니다.

여기서는 고구려 양식의 발해 성벽이 발굴됐습니다.

<인터뷰> 윤형준(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사) : "한번 쌓고 안쪽에 약간 들여서 쌓는 것인데..들여쌓기는 고구려 건축 양식이기 때문에 발해대에서 고구려 전통을 계승한 성벽 쌓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강과 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임을 짐작케 합니다.

<인터뷰> 윤형준(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사) : "여기서 발해인들이 영역을 확장해 나가면서 주변의 말갈을 복속시키고 발해의 대제국을 건설하는 기초를 닦았던 하나의 시점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발해의 대표적인 유물인, 발해 입방체. 양초나 깃대를 꽂는 용도로 쓰인 유물이 발견됐습니다.

<인터뷰> 클류에프(박사/러시아 발굴단장) : "서기 8세기에 발해의 영토 경계선이 서쪽으로 확장됐고, 이 지역이 발해의 영역에 속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서기 698년, 고구려 유민들이 건국한 발해는 한때 해동성국으로 불리며 광대한 영토를 다스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성기의 발해 영토는, 오늘날의 중국 지린성과 연해주 대부분, 헤이룽장성, 랴오닝성 일부 등 사방 5천리에 달했다고 합니다.

발해는 그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5경 15부 62주를 설치했습니다.

발해의 멸망을 끝으로 우리 역사는 더 이상 대륙으로 나가지 못하고 반도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대외 정책 기조의 하나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했습니다.

한반도의 교통.물류망을 대륙으로 연결해,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 경제권을 연계함으로써, 우리 기업들에게 더 큰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 입니다.

지난달엔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해 유럽에 이르는 '유라시아 친선 특급' 행사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그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출발해 지나간 곳은, 천년 전 발해인들이 경략했던 땅입니다.

<인터뷰> 김은국(박사/동북아역사재단) : "서역문화와 당, 신라,일본 문화 등 주변의 모든 문화가 발해에 녹아서 발해만의 독특한 색깔을 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발해의 대외 개방성과 포용성 입니다."

바다와 대륙을 동시에 경영했던 해륙국가, 발해인의 기상은. 오늘날의 세계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인터뷰> 윤형준(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사) : "우리가 단순한 반도사관에 갇히지 않고 더 넓게 세계 경영을 하고자 하는 현대의 흐름에 맞게 역사 인식을 다시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봅니다."

발해 염주성 발굴 현장, 그 앞쪽으로 한줄기 철로가 지나갑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크라스키노와 하산을 지나 북한 나진항으로 이어지는 철길입니다.

시베리아에서 채취된 석탄이 이 철길을 따라 북한 나진항으로 운송되고 있습니다.

천 년 전 발해인들이 말 달리던 그 길이, 이제는 교통.물류 네트워크로 재탄생한 것 입니다.

서역과도 활발히 교류했던 발해인들의 기상이 깃든 이 철길이 한반도 종단철도와 이어짐으로써 대한민국의 대륙 진출 통로가 될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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