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國記] 신혼부부는 모르는 ‘몰디브 이야기’

입력 2015.09.01 (18:19) 수정 2015.09.0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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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 나시드 전 대통령모하메드 나시드 전 대통령

▲ 모하메드 나시드 前 대통령


■ 모하메드 나시드 前 대통령 재수감

오랜 비행 끝에 몰디브 수도 말레 공항에 도착하면 여행객들의 마음은 설렌다. 공항 부근 선착장에선 쾌속선이 여행객을 싣고 인도양의 에메랄드빛 물살을 헤치며 달린다. 여행객은 인도양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수 백개 산호섬 중 한 곳에 여장을 풀게 된다. 어느 섬이든 햇살은 따스하고 모래는 하얗고 바닷물은 맑다. 신혼부부라면 자연의 풍성함에 달콤함까지 더해지니 낙원이 따로 없을 것이다. 말레에서 쾌속선으로 90분 후에 닿는 마푸시 섬도 똑같이 아름답다. 고급 리조트는 없지만 실속파 배낭여행객들이 주로 찾아 고즈넉한 시간을 보낸다. 지난달 23일 밤, 마푸시 섬에 중년의 몰디브인 남자가 도착했다. 여러 명의 경찰관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일행이 향한 곳은 섬 한 켠에 설치돼 있는 감옥이었다. 이 날 밤 감옥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 이는 몰디브 전 대통령 모하메드 나시드였다.

압둘 가윰 전 대통령압둘 가윰 전 대통령

▲ 몰디브를 30년 동안 통치한 압둘 가윰 前 대통령


■ 30년 독재에 맞선 몰디브의 '양심수'

나시드는 '파란만장'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곡절 많은 삶을 이어왔다. 1989년 22살 때 처음 투옥됐다.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한 게 독재 정권의 미움을 샀다. 당시 몰디브에서 10년째 대통령을 지내던 압둘 가윰은 이후에도 20년을 더 통치해, 모두 30년간 철권을 휘둘렀다. 이 철권 통치자에게 맞선 인물이 나시드였다. 저항의 대가는 핍박과 시련이었다. 나시드는 가윰 정권에서 감옥을 제 집 드나들 듯 했다. 20차례 이상 투옥됐고 두 딸의 출생 소식도 감옥에서 들어야 했다. 30대 초반에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지만 '절도'라는 희한한 혐의를 쓰고 의사당에서 쫓겨났다. 스리랑카와 영국으로 망명길에 오르기도 했다. 국제 인권기구인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그에게 '양심수'라는 명칭을 붙여줬다. 온갖 박해 속에서도 몰디브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나시드는 마침내 2008년 대선에서 30년 독재자 압듈 가윰과 맞붙었다. 몰디브 사상 첫 민주 선거였다. 나시드는 1차 투표에서 가윰에 크게 뒤졌지만 결선 투표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며 승리했다. 최초의 민주정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수몰 위기 몰디브를 구하라!”

대통령이 되자 나시드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싸움의 최전선에 섰다. 몰디브 영토는 평균적으로 해수면에서 1.5미터 높이에 자리잡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이다. 해수면이 지금같은 추세로 높아지면 가장 먼저 지구상에서 사라질 나라 중 하나다. 유엔은 2100년 쯤에는 몰디브에서 더 이상 인간의 거주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시드는 "대통령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국민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며 미국, 영국, 인도 등 세계 각지를 돌았다. 몰디브의 절박한 문제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온난화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나시드는 몰디브 스스로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국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풍력, 태양광은 물론, 코코넛 껍질을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수중 각료회의수중 각료회의

▲ 지구온난화 문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수중 각료회의' (2009년 10월 17일)


2009년 10월 17일에는 세계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수중 각료회의를 열었다. 나시드 대통령과 각료 12명이 스쿠버 장비를 갖추고 6미터 해저로 들어가 30여분 간 회의를 열었다. 회의를 위해 대통령과 장관들은 스킨스쿠버 강습을 받았다. 회의 후 나시드는 '최전선에서 보내는 SOS'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는 "기후 변화로부터 몰디브를 구할 수 없다면 세계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인도양의 작은 나라 대통령이었지만 그 외침은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후변화에 맞선 나시드의 분투는 '아일랜드 프레지던트'(Island President)라는 다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2012년 서울환경영화제에서도 상영됐다.

■ 나시드 대통령 임기 중도 하차…또 다른 가윰의 등장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나시드의 직무 수행은 순탄치 않았다. 가윰 전 대통령측 야당은 끊임없이 나시드 정부를 괴롭혔다. 각료들이 "장관으로서 수행해야 할 헌법상 직무를 야당 때문에 못한다."며 집단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2012년 초 형사법원장 체포 문제를 둘러싸고 가윰 전 대통령 측은 총공세에 나섰고 대대적인 소요 사태가 이어졌다. 군대와 경찰까지 시위대 편에 섰다. 결국 나시드는 5년 대통령 임기 중 3년 3개월을 재직한 상태에서 하야 성명을 내고 물러났다. 형식은 자진 하야였지만 사실상의 쿠데타라는 말이 무성했다. 2013년 새롭게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나시드는 근소한 차이로 또 다른 가윰에게 패했다. 압둘 가윰 전 대통령의 이복 동생인 야민 가윰, 현 몰디브 대통령이다. 몰디브를 30년간 지배한 가윰 측에게 나시드의 집권기는 짧은 휴식기였을 뿐이다.

나시드 수감 반대 수중 시위나시드 수감 반대 수중 시위

▲ 나시드 前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다이버들의 수중 시위


■ 신음하는 몰디브의 민주주의

또다른 가윰 정권은 나시드를 가만두지 않았다. 나시드는 올해 3월 반테러법 혐의로 13년 형을 선고받고 다시 투옥됐다. 나시드의 변호인들이 '불공정한 재판'이라며 전원 사임한 가운데 내려진 형량이었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일자 몰디브 정부는 지난 7월 나시드를 가택연금 상태로 전환시켰다. 하지만 한 달 후 그를 다시 마푸시 섬 감옥에 가뒀다. 20대에 시작된 감옥 생활은 질기게도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나시드 투옥 직후 유엔은 '인권에 대한 중대한 역행 행위'라고 가윰 정권을 비판했다. 미국 정부도 즉시 민주주의와 법치를 회복하라고 몰디브 정부에 촉구했다. 몰디브에는 인구보다 두 배 많은 한 해 약 6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주로 신혼여행객인 한국인 관광객도 한해 2만3천 명 정도 이 곳을 찾는다. 사람들은 어느 산호섬에서 꿈같은 휴가를 보내고 그 곳에서 만난 햇살과 바다와 모래를 평생의 추억으로 남길 것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신음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몰디브 풍경몰디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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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國記] 신혼부부는 모르는 ‘몰디브 이야기’
    • 입력 2015-09-01 18:19:23
    • 수정2015-09-01 18:27:08
    7국기
모하메드 나시드 전 대통령
▲ 모하메드 나시드 前 대통령


■ 모하메드 나시드 前 대통령 재수감

오랜 비행 끝에 몰디브 수도 말레 공항에 도착하면 여행객들의 마음은 설렌다. 공항 부근 선착장에선 쾌속선이 여행객을 싣고 인도양의 에메랄드빛 물살을 헤치며 달린다. 여행객은 인도양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수 백개 산호섬 중 한 곳에 여장을 풀게 된다. 어느 섬이든 햇살은 따스하고 모래는 하얗고 바닷물은 맑다. 신혼부부라면 자연의 풍성함에 달콤함까지 더해지니 낙원이 따로 없을 것이다. 말레에서 쾌속선으로 90분 후에 닿는 마푸시 섬도 똑같이 아름답다. 고급 리조트는 없지만 실속파 배낭여행객들이 주로 찾아 고즈넉한 시간을 보낸다. 지난달 23일 밤, 마푸시 섬에 중년의 몰디브인 남자가 도착했다. 여러 명의 경찰관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일행이 향한 곳은 섬 한 켠에 설치돼 있는 감옥이었다. 이 날 밤 감옥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 이는 몰디브 전 대통령 모하메드 나시드였다.

압둘 가윰 전 대통령
▲ 몰디브를 30년 동안 통치한 압둘 가윰 前 대통령


■ 30년 독재에 맞선 몰디브의 '양심수'

나시드는 '파란만장'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곡절 많은 삶을 이어왔다. 1989년 22살 때 처음 투옥됐다.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한 게 독재 정권의 미움을 샀다. 당시 몰디브에서 10년째 대통령을 지내던 압둘 가윰은 이후에도 20년을 더 통치해, 모두 30년간 철권을 휘둘렀다. 이 철권 통치자에게 맞선 인물이 나시드였다. 저항의 대가는 핍박과 시련이었다. 나시드는 가윰 정권에서 감옥을 제 집 드나들 듯 했다. 20차례 이상 투옥됐고 두 딸의 출생 소식도 감옥에서 들어야 했다. 30대 초반에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지만 '절도'라는 희한한 혐의를 쓰고 의사당에서 쫓겨났다. 스리랑카와 영국으로 망명길에 오르기도 했다. 국제 인권기구인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그에게 '양심수'라는 명칭을 붙여줬다. 온갖 박해 속에서도 몰디브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나시드는 마침내 2008년 대선에서 30년 독재자 압듈 가윰과 맞붙었다. 몰디브 사상 첫 민주 선거였다. 나시드는 1차 투표에서 가윰에 크게 뒤졌지만 결선 투표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며 승리했다. 최초의 민주정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수몰 위기 몰디브를 구하라!”

대통령이 되자 나시드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싸움의 최전선에 섰다. 몰디브 영토는 평균적으로 해수면에서 1.5미터 높이에 자리잡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이다. 해수면이 지금같은 추세로 높아지면 가장 먼저 지구상에서 사라질 나라 중 하나다. 유엔은 2100년 쯤에는 몰디브에서 더 이상 인간의 거주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시드는 "대통령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국민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며 미국, 영국, 인도 등 세계 각지를 돌았다. 몰디브의 절박한 문제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온난화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나시드는 몰디브 스스로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국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풍력, 태양광은 물론, 코코넛 껍질을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수중 각료회의
▲ 지구온난화 문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수중 각료회의' (2009년 10월 17일)


2009년 10월 17일에는 세계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수중 각료회의를 열었다. 나시드 대통령과 각료 12명이 스쿠버 장비를 갖추고 6미터 해저로 들어가 30여분 간 회의를 열었다. 회의를 위해 대통령과 장관들은 스킨스쿠버 강습을 받았다. 회의 후 나시드는 '최전선에서 보내는 SOS'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는 "기후 변화로부터 몰디브를 구할 수 없다면 세계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인도양의 작은 나라 대통령이었지만 그 외침은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후변화에 맞선 나시드의 분투는 '아일랜드 프레지던트'(Island President)라는 다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2012년 서울환경영화제에서도 상영됐다.

■ 나시드 대통령 임기 중도 하차…또 다른 가윰의 등장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나시드의 직무 수행은 순탄치 않았다. 가윰 전 대통령측 야당은 끊임없이 나시드 정부를 괴롭혔다. 각료들이 "장관으로서 수행해야 할 헌법상 직무를 야당 때문에 못한다."며 집단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2012년 초 형사법원장 체포 문제를 둘러싸고 가윰 전 대통령 측은 총공세에 나섰고 대대적인 소요 사태가 이어졌다. 군대와 경찰까지 시위대 편에 섰다. 결국 나시드는 5년 대통령 임기 중 3년 3개월을 재직한 상태에서 하야 성명을 내고 물러났다. 형식은 자진 하야였지만 사실상의 쿠데타라는 말이 무성했다. 2013년 새롭게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나시드는 근소한 차이로 또 다른 가윰에게 패했다. 압둘 가윰 전 대통령의 이복 동생인 야민 가윰, 현 몰디브 대통령이다. 몰디브를 30년간 지배한 가윰 측에게 나시드의 집권기는 짧은 휴식기였을 뿐이다.

나시드 수감 반대 수중 시위
▲ 나시드 前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다이버들의 수중 시위


■ 신음하는 몰디브의 민주주의

또다른 가윰 정권은 나시드를 가만두지 않았다. 나시드는 올해 3월 반테러법 혐의로 13년 형을 선고받고 다시 투옥됐다. 나시드의 변호인들이 '불공정한 재판'이라며 전원 사임한 가운데 내려진 형량이었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일자 몰디브 정부는 지난 7월 나시드를 가택연금 상태로 전환시켰다. 하지만 한 달 후 그를 다시 마푸시 섬 감옥에 가뒀다. 20대에 시작된 감옥 생활은 질기게도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나시드 투옥 직후 유엔은 '인권에 대한 중대한 역행 행위'라고 가윰 정권을 비판했다. 미국 정부도 즉시 민주주의와 법치를 회복하라고 몰디브 정부에 촉구했다. 몰디브에는 인구보다 두 배 많은 한 해 약 6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주로 신혼여행객인 한국인 관광객도 한해 2만3천 명 정도 이 곳을 찾는다. 사람들은 어느 산호섬에서 꿈같은 휴가를 보내고 그 곳에서 만난 햇살과 바다와 모래를 평생의 추억으로 남길 것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신음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몰디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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