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재건축 로비스트가 털어놓은 ‘검은 돈’의 실체

입력 2015.09.03 (00:0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재건축 수주 경쟁 치열…소문 속 ‘검은 돈’의 취재를 시작하다

시작은 특별할 것 없는 기사 한 줄에서 시작했습니다. 서울 서초구청이 재건축이 이뤄지고 있는 한 아파트에서 수주 경쟁에 뛰어든 건설사들이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살포한다는 의혹을 확인해 달라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자체 중에 처음이었습니다.

해당 아파트를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우리 아파트에 그런 일은 없다며 강력히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소문은 들었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소개의 소개를 받다보니 돈이나 선물을 받았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아파트에 대한 취재를 끝내고 나오는데 들리는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파트만 그런 건 아니다. 다른 아파트도 그런 곳이 있다고 하더라.

얘기를 들은 또 다른 아파트를 갔습니다. 그 아파트 주민들은 또 이야기 합니다. 우리 아파트만 그런 건 아니다. 그렇게 취재는 넓어졌습니다. 직접 받았다는 선물이나 돈을 보여준 주민들도 있었습니다.

예전만큼 눈에 띄게 이뤄지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음성적으로 치밀하게 뭔가 '검은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옛날부터 흔하게 나오던 말. "재건축 사업이 마무리되려면 최소한 한 두 명은 경찰서를 다녀와야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공공연한 비밀, '재건축 수주 로비'. 그 평범하고 흔하고 그리고 머리아픈 이 문제를 좀 밀도있게 취재해 보자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 재건축 로비스트를 만나다

재건축 로비스트재건축 로비스트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받았다는 사람들은 많았는데, 줬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건설사들은 한결같이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진짜 금품을 받은 게 맞다면 누구에게 받았느냐고, 그 출처를 추적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는 한 건도 못 했는데,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느라 하루를 온전히 길에서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본인이 직접 건설사의 돈을 조합원에게 주는 일을 했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09년 한 재건축 수주전 당시, 건설사의 의뢰를 받아 조합원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총 공사비의 2%선에서 로비 자금이 운영된다고 했습니다. 공사가 3천 억이면 5~60억 원. 그는 직접 이 돈을 운영했다고 말했습니다.

■ 민낯을 드러낸 ‘재건축 수주 비리’

돈뭉치돈뭉치


이른바 '로비 자금'은 어떻게 쓰였을까? 건설사에 표를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조합원의 성향을 파악하는 게 첫 임무라고 했습니다. 시작은 부담없이 친근하게. 주민설명회, 간담회 등의 형식을 빌려 쌀, 휴지 등 생필품을 전달하고, 건설사를 지지할 것 같은 확신이 들면 식사, 향응, 돈을 제공했다고 했습니다.

이 씨로부터 금품 제공 목록을 받았습니다. 조합원 누구에게 언제, 얼마의 돈과 향응을 제공했는지 자세히 적혀있습니다. 조합원 4~5명의 표를 움직일만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금품을 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뿌리고 이익이 남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사비를 부풀리는 등 로비에 들어간 자금은 건설사가 결국 다시 회수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건설사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전혀 있을 수 없는 '사실무근'이라고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금품 제공 명단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번엔 목록에 적힌 이름의 주인공을 찾아나섰습니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았습니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였습니다. 본인이 당시 돈을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선물과 여행 등 향응을 받았다고 한 것도 목록과 내용이 일치했습니다.

건설사는 이 할머니의 말 역시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당시, 그 집에 방문을 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극렬하게 반대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돈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이 건설사가 재건축 조합원들을 상대로 금품을 뿌린 의혹을 최근에 포착하고 관련자를 상대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 비리는 비리를…먹이사슬 같은 ‘검은 거래’

재건축 비리재건축 비리


취재를 하다보니 재건축 수주전을 둘러싼 검은 거래는 건설사와 조합원, 그 단순한 관계에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먹이사슬처럼 얽혀 있었습니다.

지난 2008년부터 5년동안 재건축 사업에 참여했었다는 한 대형건설사의 협력업체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는 카드 거래 내역을 보여줬습니다. 대표의 이름으로 1~2백만 원이 입금됐고, 식당이나 스크린골프장 등에서 사용됐습니다. 카드는 본인이 만들었지만, 직접 사용한 건 대형건설사 직원이었다고 했습니다.

재건축 과정에서 민원이 발생하면 조합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건설사 대신 본인이 직접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대형 건설사 직원과 협력업체 대표는 지난해 9월 배임죄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고,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공공관리제 도입, 이후에도 여전한 관행

아파트아파트


각종 주택 규제 완화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올 하반기 새로 공급되는 물량만 4만 5천여 가구에 이릅니다. 서울에만 현재 160여 곳에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해외 시장이 위축되고 국내 공공택지 개발은 중단되면서 건설사들은 재건축 사업 수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지난 2010년 공공관리제를 도입했습니다. 자치단체장이 재건축.재개발사업에 직접 참여.관리하는 제도입니다. 건설사가 조합원을 개별 접촉해 홍보하거나, 금품을 제공하면 안 됩니다. 서초구청이 재건축 아파트의 금품살포 의혹에 대해 수사를 의뢰한 것도 바로 이 공공관리제 떄문입니다. 공공관리제가 시행된 이후에도 재건축 사업장에서 불법적인 금품 살포관행이 여전하다는 반증입니다.

재건축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불법으로 사용된 로비 자금은 결국 공사비 부풀리기나 공사비를 낮추기 위한 부실 공사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습니다.

재건축 사업장 마다 벌어지는 투명하지 않은 검은 경쟁.

결국 건설사와 협력업체, 주민, 그리고 지역 사회 그 어디에도 이롭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연관 기사]

☞ [취재파일K] 재건축, 검은 돈의 실체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재건축 로비스트가 털어놓은 ‘검은 돈’의 실체
    • 입력 2015-09-03 00:06:35
    취재후·사건후
■ 재건축 수주 경쟁 치열…소문 속 ‘검은 돈’의 취재를 시작하다 시작은 특별할 것 없는 기사 한 줄에서 시작했습니다. 서울 서초구청이 재건축이 이뤄지고 있는 한 아파트에서 수주 경쟁에 뛰어든 건설사들이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살포한다는 의혹을 확인해 달라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자체 중에 처음이었습니다. 해당 아파트를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우리 아파트에 그런 일은 없다며 강력히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소문은 들었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소개의 소개를 받다보니 돈이나 선물을 받았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아파트에 대한 취재를 끝내고 나오는데 들리는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파트만 그런 건 아니다. 다른 아파트도 그런 곳이 있다고 하더라. 얘기를 들은 또 다른 아파트를 갔습니다. 그 아파트 주민들은 또 이야기 합니다. 우리 아파트만 그런 건 아니다. 그렇게 취재는 넓어졌습니다. 직접 받았다는 선물이나 돈을 보여준 주민들도 있었습니다. 예전만큼 눈에 띄게 이뤄지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음성적으로 치밀하게 뭔가 '검은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옛날부터 흔하게 나오던 말. "재건축 사업이 마무리되려면 최소한 한 두 명은 경찰서를 다녀와야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공공연한 비밀, '재건축 수주 로비'. 그 평범하고 흔하고 그리고 머리아픈 이 문제를 좀 밀도있게 취재해 보자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 재건축 로비스트를 만나다
재건축 로비스트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받았다는 사람들은 많았는데, 줬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건설사들은 한결같이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진짜 금품을 받은 게 맞다면 누구에게 받았느냐고, 그 출처를 추적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는 한 건도 못 했는데,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느라 하루를 온전히 길에서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본인이 직접 건설사의 돈을 조합원에게 주는 일을 했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09년 한 재건축 수주전 당시, 건설사의 의뢰를 받아 조합원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총 공사비의 2%선에서 로비 자금이 운영된다고 했습니다. 공사가 3천 억이면 5~60억 원. 그는 직접 이 돈을 운영했다고 말했습니다. ■ 민낯을 드러낸 ‘재건축 수주 비리’
돈뭉치
이른바 '로비 자금'은 어떻게 쓰였을까? 건설사에 표를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조합원의 성향을 파악하는 게 첫 임무라고 했습니다. 시작은 부담없이 친근하게. 주민설명회, 간담회 등의 형식을 빌려 쌀, 휴지 등 생필품을 전달하고, 건설사를 지지할 것 같은 확신이 들면 식사, 향응, 돈을 제공했다고 했습니다. 이 씨로부터 금품 제공 목록을 받았습니다. 조합원 누구에게 언제, 얼마의 돈과 향응을 제공했는지 자세히 적혀있습니다. 조합원 4~5명의 표를 움직일만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금품을 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뿌리고 이익이 남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사비를 부풀리는 등 로비에 들어간 자금은 건설사가 결국 다시 회수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건설사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전혀 있을 수 없는 '사실무근'이라고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금품 제공 명단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번엔 목록에 적힌 이름의 주인공을 찾아나섰습니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았습니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였습니다. 본인이 당시 돈을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선물과 여행 등 향응을 받았다고 한 것도 목록과 내용이 일치했습니다. 건설사는 이 할머니의 말 역시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당시, 그 집에 방문을 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극렬하게 반대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돈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이 건설사가 재건축 조합원들을 상대로 금품을 뿌린 의혹을 최근에 포착하고 관련자를 상대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 비리는 비리를…먹이사슬 같은 ‘검은 거래’
재건축 비리
취재를 하다보니 재건축 수주전을 둘러싼 검은 거래는 건설사와 조합원, 그 단순한 관계에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먹이사슬처럼 얽혀 있었습니다. 지난 2008년부터 5년동안 재건축 사업에 참여했었다는 한 대형건설사의 협력업체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는 카드 거래 내역을 보여줬습니다. 대표의 이름으로 1~2백만 원이 입금됐고, 식당이나 스크린골프장 등에서 사용됐습니다. 카드는 본인이 만들었지만, 직접 사용한 건 대형건설사 직원이었다고 했습니다. 재건축 과정에서 민원이 발생하면 조합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건설사 대신 본인이 직접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대형 건설사 직원과 협력업체 대표는 지난해 9월 배임죄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고,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공공관리제 도입, 이후에도 여전한 관행
아파트
각종 주택 규제 완화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올 하반기 새로 공급되는 물량만 4만 5천여 가구에 이릅니다. 서울에만 현재 160여 곳에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해외 시장이 위축되고 국내 공공택지 개발은 중단되면서 건설사들은 재건축 사업 수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지난 2010년 공공관리제를 도입했습니다. 자치단체장이 재건축.재개발사업에 직접 참여.관리하는 제도입니다. 건설사가 조합원을 개별 접촉해 홍보하거나, 금품을 제공하면 안 됩니다. 서초구청이 재건축 아파트의 금품살포 의혹에 대해 수사를 의뢰한 것도 바로 이 공공관리제 떄문입니다. 공공관리제가 시행된 이후에도 재건축 사업장에서 불법적인 금품 살포관행이 여전하다는 반증입니다. 재건축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불법으로 사용된 로비 자금은 결국 공사비 부풀리기나 공사비를 낮추기 위한 부실 공사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습니다. 재건축 사업장 마다 벌어지는 투명하지 않은 검은 경쟁. 결국 건설사와 협력업체, 주민, 그리고 지역 사회 그 어디에도 이롭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연관 기사] ☞ [취재파일K] 재건축, 검은 돈의 실체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