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유령’한테 후원받는 ‘금배지’

입력 2015.09.0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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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새 여의도는 비고, 지역구는 붐볐습니다. 최근 전장에서 돌아온 여의도 정가에선 '신화' 같은 이야기들이 떠돕니다. "A 의원이 한번에 몇 천 장을 챙겼다더라", 대략 이런 정보들입니다. 3천 장을 끌어모았다는 B 의원은 "당에서 보면 나 같은 '효자'가 어딨냐?"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당원(黨員)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마치 전리품처럼, 그것도 '명'(名)이 아닌 종이를 셀 때 쓰는 '장'(張)으로 표현하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내년 4월 13일에 20대 국회의원 총 선거가 치러집니다. 공천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추세는 읽힙니다. 과거 3김 시대처럼 실력자에게 눈 도장을 찍기 위해 주변을 기웃거리던 모습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신 모두 가방을 싸 지역으로, 지역으로 내려갑니다. 하루라도 빨리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당원을 한 명이라도 더 모아 '자력갱생'하는게 절대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투표하는 모습투표하는 모습


이유는 '상향식 공천'입니다. '낙하산 공천'과는 달리 국민이나 당원이 총선에 나설 후보자를 직접 뽑는 방식입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아예 국민들에게 100% 공천권을 돌려주자는 '오픈프라이머리'(국민공천제)를 연일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당이 부정적이고, 당내 반발 세력도 상당합니다.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평입니다. 그래서 결국엔 현재 '50 대 50'인 일반 국민과 당원 참여 비율에서 일반 국민 비중을 좀 더 높이는 수준으로 절충될 거란 전망이 많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비슷합니다. 공천선거인단을 구성할 때 일반 국민의 참여 비율을 현재 60%(권리당원 40%)에서 더 높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3년 전, 19대 총선에서 100% 국민 참여 경선을 실시했다가 새누리당에 패한 쓰라린 경험이 있습니다. 당의 '주인'인 권리당원을 배제하는게 말이 되느냐는 주장도 많습니다. 아직 20대 총선 룰은 불확실하지만, 어떤 결론이 나오건 총선 예비주자 입장에서 결국 기댈 곳은 '조직력' 밖에는 없습니다.

2015년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 신규 당원 증가 수2015년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 신규 당원 증가 수


사실 성적표는 지난달 말에 나왔습니다. 여야 모두 선거권을 가진 책임당원 또는 권리당원이 되기 위해선 최소한 6개월 이상 당비를 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내년 3월 쯤, 경선을 통해 총선 후보를 정한다고 가정하면 늦어도 지난달 말까지는 입당해야 투표권이 생깁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새누리당 당원은 271만 명, 새정치연합은 243만 명이었습니다. 여기서 올해 새누리당은 30만 명, 새정치연합은 30~40만 명이 더 늘었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구체적인 수치는 '영업비밀'이라며 꼭꼭 감추고 있습니다.

영업이 한창일 때는 하루 이틀새 각 시.도당 사무실에는 수 백, 수 천장 씩 뭉텅이 입당원서가 날아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찜찜합니다. 책임당원 모집이 이렇게 쉬울 리가 없습니다. 과연 당비를 자발적으로 납부하고, 당의 무급 자원봉사를 하는 진성당원, 즉 '진짜 당원'이 얼마나 될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실제로 '무리한 영업'의 흔적은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기자가 만난 C 씨도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충북 지역 모 업체 대표는 비정규직으로 갓 입사한 C 씨에게 △△△당 입당 원서를 내밀었습니다. 주변 동료 10여 명은 입당 원서에 사인했습니다. 일부 직원의 당비는 업체 대표가 대납해 주기로 했습니다. ○○○당 일을 도왔던 C 씨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여기 법이 그러니 어떡하느냐, 싫으면 회사를 그만 둬야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C 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 뒀습니다. 입사 9일 만이었습니다.

입당 강요 실제 전화 녹취입당 강요 실제 전화 녹취


입당을 강요하면 정당법 상 입당 강요죄에 해당합니다. 당비까지 대납해 주면 불법 기부와 사전 선거운동 혐의가 추가됩니다. 그런데 전례를 보면 이른바 '유령 당원'을 모집한 측근이 텀터기를 쓸뿐, 후보자 본인이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후보자가 모집에 직접 관여했는지 어렵다는 이유입니다. 이런 구조라면 정치인들은 유령 당원 모집에 꺼리낌없이 나설 수 있게 됩니다. 유령 당원이 적발되면 혜택을 본 후보자까지 엄벌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옵니다.

몇해 전만 하더라도 정치권은 '당원제'를 상향식 민주주의와 정당 개혁의 핵심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에 관심도 없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 호주머니 털어 월 2천 원 당비를 내는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여야 모두 이제와선 앞다퉈 당원의 권리를 줄이겠다고 합니다. '자기 부정'이고 '자기 모순'입니다. 이는 또 정치권 스스로 제도를 잘못 운영해 온 '자기 책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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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9] 총선 앞두고 산더미 입당 원서…또 ‘가짜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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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유령’한테 후원받는 ‘금배지’
    • 입력 2015-09-04 19:17:05
    취재후·사건후
몇 달새 여의도는 비고, 지역구는 붐볐습니다. 최근 전장에서 돌아온 여의도 정가에선 '신화' 같은 이야기들이 떠돕니다. "A 의원이 한번에 몇 천 장을 챙겼다더라", 대략 이런 정보들입니다. 3천 장을 끌어모았다는 B 의원은 "당에서 보면 나 같은 '효자'가 어딨냐?"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당원(黨員)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마치 전리품처럼, 그것도 '명'(名)이 아닌 종이를 셀 때 쓰는 '장'(張)으로 표현하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내년 4월 13일에 20대 국회의원 총 선거가 치러집니다. 공천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추세는 읽힙니다. 과거 3김 시대처럼 실력자에게 눈 도장을 찍기 위해 주변을 기웃거리던 모습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신 모두 가방을 싸 지역으로, 지역으로 내려갑니다. 하루라도 빨리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당원을 한 명이라도 더 모아 '자력갱생'하는게 절대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투표하는 모습
이유는 '상향식 공천'입니다. '낙하산 공천'과는 달리 국민이나 당원이 총선에 나설 후보자를 직접 뽑는 방식입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아예 국민들에게 100% 공천권을 돌려주자는 '오픈프라이머리'(국민공천제)를 연일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당이 부정적이고, 당내 반발 세력도 상당합니다.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평입니다. 그래서 결국엔 현재 '50 대 50'인 일반 국민과 당원 참여 비율에서 일반 국민 비중을 좀 더 높이는 수준으로 절충될 거란 전망이 많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비슷합니다. 공천선거인단을 구성할 때 일반 국민의 참여 비율을 현재 60%(권리당원 40%)에서 더 높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3년 전, 19대 총선에서 100% 국민 참여 경선을 실시했다가 새누리당에 패한 쓰라린 경험이 있습니다. 당의 '주인'인 권리당원을 배제하는게 말이 되느냐는 주장도 많습니다. 아직 20대 총선 룰은 불확실하지만, 어떤 결론이 나오건 총선 예비주자 입장에서 결국 기댈 곳은 '조직력' 밖에는 없습니다.
2015년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 신규 당원 증가 수
사실 성적표는 지난달 말에 나왔습니다. 여야 모두 선거권을 가진 책임당원 또는 권리당원이 되기 위해선 최소한 6개월 이상 당비를 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내년 3월 쯤, 경선을 통해 총선 후보를 정한다고 가정하면 늦어도 지난달 말까지는 입당해야 투표권이 생깁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새누리당 당원은 271만 명, 새정치연합은 243만 명이었습니다. 여기서 올해 새누리당은 30만 명, 새정치연합은 30~40만 명이 더 늘었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구체적인 수치는 '영업비밀'이라며 꼭꼭 감추고 있습니다. 영업이 한창일 때는 하루 이틀새 각 시.도당 사무실에는 수 백, 수 천장 씩 뭉텅이 입당원서가 날아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찜찜합니다. 책임당원 모집이 이렇게 쉬울 리가 없습니다. 과연 당비를 자발적으로 납부하고, 당의 무급 자원봉사를 하는 진성당원, 즉 '진짜 당원'이 얼마나 될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실제로 '무리한 영업'의 흔적은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기자가 만난 C 씨도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충북 지역 모 업체 대표는 비정규직으로 갓 입사한 C 씨에게 △△△당 입당 원서를 내밀었습니다. 주변 동료 10여 명은 입당 원서에 사인했습니다. 일부 직원의 당비는 업체 대표가 대납해 주기로 했습니다. ○○○당 일을 도왔던 C 씨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여기 법이 그러니 어떡하느냐, 싫으면 회사를 그만 둬야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C 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 뒀습니다. 입사 9일 만이었습니다.
입당 강요 실제 전화 녹취
입당을 강요하면 정당법 상 입당 강요죄에 해당합니다. 당비까지 대납해 주면 불법 기부와 사전 선거운동 혐의가 추가됩니다. 그런데 전례를 보면 이른바 '유령 당원'을 모집한 측근이 텀터기를 쓸뿐, 후보자 본인이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후보자가 모집에 직접 관여했는지 어렵다는 이유입니다. 이런 구조라면 정치인들은 유령 당원 모집에 꺼리낌없이 나설 수 있게 됩니다. 유령 당원이 적발되면 혜택을 본 후보자까지 엄벌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옵니다. 몇해 전만 하더라도 정치권은 '당원제'를 상향식 민주주의와 정당 개혁의 핵심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에 관심도 없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 호주머니 털어 월 2천 원 당비를 내는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여야 모두 이제와선 앞다퉈 당원의 권리를 줄이겠다고 합니다. '자기 부정'이고 '자기 모순'입니다. 이는 또 정치권 스스로 제도를 잘못 운영해 온 '자기 책임'이기도 합니다. [연관 기사] ☞ [뉴스9] 총선 앞두고 산더미 입당 원서…또 ‘가짜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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