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체육단체 통합!” 왜 필요할까?

입력 2015.09.13 (00:01) 수정 2015.09.14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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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한국 스포츠개발원에서 발행하는 '스포츠과학'에 기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편집했습니다

■ 스포츠 혁명의 구조 (Structure of Sport Revolution)

“정 기자, 내가 솔직히 잘 몰라서 그러는데 체육단체 통합은 도대체 왜 하는 거예요?”

“엘리트 체육하고 생활체육하고 갈라져 있는 것을 통합하려고 하는 거죠”

“아 그래요? 그런데 그럼 왜 엘리트하고 생활체육을 같이 해야 해요? 지금까지처럼 그냥 따로 놔두면 안 되나요?”

“지금 엘리트 체육은 선수를 해도 대학 가기도 힘들고, 공부를 제대로 못 하니까 은퇴하면 먹고 살기도 힘들고 그래서 선수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생활체육은 운동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시설도 부족하고 제대로 된 지도자도 모자라고 비용도 너무 비싸죠. 그래서 선진국처럼 넓은 생활체육의 저변에서 엘리트 선수를 양성하고, 또 엘리트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은퇴 후 체육 지도자가 되면 모든 면에서 서로 윈윈(win-win)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처럼 엘리트 체육 따로, 생활체육 따로 떨어져 있으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체육단체 통합이 필요한 거죠”

요즘 체육계에서 가장 ‘핫’(hot)한 대화는 단연 체육 단체 통합이다. 가는 곳마다 같은 질문을 받고 같은 답변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언론보도를 통해 체육 단체 통합이 진행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정작 왜 체육단체 통합이 추진되는 지 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고 있다.

체육 단체 통합은 정확히 규정하자면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스포츠를 지탱해 온 패러다임(Paradigm)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혁명적인 변화의 상징이다. 단순히 엘리트 체육을 주도하는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을 주도하는 <국민생활체육회> 두 단체를 통합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그림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변화의 핵심은 명확하다.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에서 ‘스포츠 선진국 패러다임’으로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스포츠를 지탱해 온 패러다임은 경기력 강화 즉 올림픽과 월드컵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만들어 진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이다. 성과도 거뒀다. 88올림픽 4위, 2002월드컵 4강도 이뤄냈다.

김연아김연아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이제는 올림픽 금메달 뿐 아니라 국민들의 건강과 행복이 스포츠의 더 중요한 목표가 됐다. 경기력만을 강화하는 시스템 즉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에서 경기력은 더 강화하고 동시에 국민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선진국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스포츠도 이제 전면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입시비리, 승부조작, 폭력, 학습권 침해 등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을 지탱해 온 마지막 버팀목은 ‘경기력 강화’라는 궁극의 목표였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간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으로는 더 이상 경기력마저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하는 사례들이 누적되면서 ‘스포츠 선진국 패러다임’이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지속적이고 일관된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들을 종합해 본다면 2015년 현재 역사적인 ‘스포츠 패러다임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2009년 출범한 ‘초중고 축구 주말리그’는 하나의 전환기적인 사건이었다. ‘공부하는 축구선수’를 내세운 대한축구협회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지 않는 한 지속적인 학교축구팀 해체를 막을 수 없다는 자체 분석을 내렸다. 축구만 해도 힘든데 공부까지 하는 것은 무리라는 현장의 엄청난 반발이 있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으로 나타났다. 2014년 갤럽의 초중고 축구 리그제 만족도 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도자의 72.9%, 학부모의 87%, 선수의 96.1%가 보통 이상의 만족 평가를 내렸고 가장 중요한 발전 사항은 ‘경기력 향상’ 그리고 ‘운동과 학업병행’으로 나타났다.

2010년엔 대학스포츠 정상화를 목표로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대학 농구와 대학 축구, 대학 배구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기 위한 리그제를 받아 들였다. 올 해 초엔 학기 중 토너먼트 금지 그리고 최저학점 제도 즉 평균 C(-)를 받지 못한 선수는 대회 출전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한 ‘대학스포츠 운영규정’을 전격 시행했다.

2011년에는 새로 제정된 ‘학교체육진흥법’이 오랜 산고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선진국형 최저학력제도가 명시됨으로써 엘리트 운동선수도 공부를 병행해야만 한다는 법적 근거가 완성됐다.

2012년은 일반 학생들의 스포츠 참여를 지원하기 위한 ‘학교 스포츠클럽 리그’가 본격 도입됐다. 교내리그, 지역리그, 전국대회를 거치는 종목별 리그 대회는 출범 3년 만에 42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가할 만큼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학교 스포츠 클럽리그’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핵심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2013년 정부는 ‘스포츠비전 2018’을 발표하면서 학교체육과 생활체육 그리고 엘리트 체육을 통합하는 미래 스포츠 비전을 명시했다. 동시에 학교 스포츠 클럽 외에도 각 지역 공동체에 생활체육을 보급하기 위해 ‘종합형 스포츠클럽’을 도입했다. 향후 인구 천 명 당 1개씩, 모두 5 만개의 ‘마을 스포츠 클럽’을 육성함으로써 국민 건강은 물론 엘리트 선수 양성의 산실로 키워가겠다는 명확한 방향성도 제시됐다.

2014년엔 체육단체 통합 논의가 본격화됐다. 대한체육회장과 국민생활체육회장 그리고 여야 정치권과 정부가 합의한 체육단체통합은 ‘스포츠 선진화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을 선언하는 상징이나 다름없다. 2015년 들어 체육단체통합을 명시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대한민국 스포츠의 역사적인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는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학교스포츠클럽학교스포츠클럽


‘스포츠 선진화 패러다임’이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학교 스포츠클럽’ 참여 학생들이 엘리트 선수 양성을 위한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스포츠 선진화 패러다임’의 상징인 ‘스포츠클럽’에서 엘리트 선수를 양산해 낼 수만 있다면 기존의 경기력 중심 패러다임 즉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은 이제 역할을 다 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 해 가을 학교 스포츠클럽 전국 대회 결승전을 KBS에서 중계 방송했다. 그 날 현장에서 놀라운 선수를 목격했다. 남자 중학부에 출전한 그 선수는 마치 핸드볼의 전설 윤경신을 연상시키는 듯 했다. 다른 선수들보다 10센티미터는 더 큰 키, 날렵한 점프, 공중에서 수비수를 따돌리는 체공 능력 그리고 골키퍼가 손도 댈 수 없이 내리꽂는 슈팅 스피드까지 한 눈에도 물건이다 싶었다. 당장 협회 관계자에서 “저 놈 눈여겨 보시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더 놀라웠다. “정기자 저 놈 집에 한 번 안 가본 코치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알고 보니 이미 핸드볼 선수로 영입하려고 수많은 코치가 학부모를 만났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어느 누가 집을 찾아가서 설득하려 해도 부모님의 대답은 언제나 딱 한 마디였다고 한다. “우리 아들 전교 1등입니다. 핸드볼은 취미로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모든 코치들은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기존의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에서는 더 이상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선수난에 허덕이는 일부 비인기 종목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가 아니더라도 운동선수만 하겠다고 하면 일단 영입해서 훈련부터 시켜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일부 종목에서는 학교 스포츠 클럽 팀이 기존의 엘리트 선수들을 위협할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핸드볼 협회는 이미 엘리트 선수팀과 전국 대회에서 상위 입상한 학교 스포츠 클럽 팀을 모두 참가시키는 오픈 대회 형식의 토너먼트를 기획하고 있을 정도다.

최근 출범한 중고 농구 주말리그는 아주 특별한 규정을 도입했다. 바로 ‘참가선수 예외규정’이다. 중고 농구의 선수난이 얼마나 심각한 지 그리고 앞으로 선수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 어디에 있는 지 여실히 보여주는 이 규정은 다음과 같다.
“등록 선수를 12명 미만으로 보유한 팀은 소속 학생 중 스포츠 클럽팀 선수 등 비등록 학생을 전체 선수 12명 내에서 참가신청 할 수 있음.”
현재의 선수등록 규정을 엄격하게 규정한다면 일단 엘리트 선수로 등록할 경우 학교스포츠클럽 대회는 출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선수를 충원할 수 없기 때문에 학교장의 특별 허가를 받아 주말리그에 참가시키는 방식이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학교스포츠클럽학교스포츠클럽


서울시 체육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전문형 학교 스포츠 클럽 창단 지원’사업도 눈여겨 봐야 한다. 비인기 종목 뿐 아니라 농구 등 인기 종목까지 선수가 없어 팀이 줄줄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엘리트 팀 창단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시작된 사업이다.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스포츠 클럽 리그에 참가할 팀을 만드는 과정에서 장비와 지도자를 지원한 뒤 그 중 재능이 있는 선수를 엘리트 선수로 키워내겠다는 전략이다.

지금까지 나열했던 모든 사례들은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내용이다. 아직까지도 상당수의 엘리트 출신 체육인들은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한국 스포츠의 패러다임 전환은 이미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다. 그리고 체육단체 통합은 ‘스포츠 선진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선언하는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물론 체육 단체를 통합한다고 해서 당장 스포츠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성급한 꿈이다.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된다고 해도 성숙한 스포츠 문화가 정착되려면 적어도 한 세대는 지나야 할 것이다. 지금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아이들이 국가대표가 되고 프로 선수가 되고 또 그들이 은퇴하고 다시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유소년 스포츠를 지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스포츠 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스포츠 혁명의 구조(Structure of Sport Revolution)는 의외로 단순하다. 구체제의 패러다임이 기능을 잃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들이 누적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패러다임이 미래를 이끌어 갈 지배적 시스템으로 대체된다. 지난 반 세기 동안 대한민국 스포츠를 지배했던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은 이제 그 시대적 역할을 다하고 ‘스포츠 선진국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 기존의 패러다임에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던 수많은 정책 모델과 현장의 사례들이 강력한 증거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두 체육단체의 통합이 완성되는 순간이 바로 ‘스포츠 선진국 패러다임’시대의 공식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지금처럼 각자의 이익에 따라 흩어져 있는 체육단체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작업은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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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체육단체 통합!” 왜 필요할까?
    • 입력 2015-09-13 00:01:05
    • 수정2015-09-14 01:21:51
    취재후·사건후
※ 본 기사는 한국 스포츠개발원에서 발행하는 '스포츠과학'에 기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편집했습니다 ■ 스포츠 혁명의 구조 (Structure of Sport Revolution) “정 기자, 내가 솔직히 잘 몰라서 그러는데 체육단체 통합은 도대체 왜 하는 거예요?” “엘리트 체육하고 생활체육하고 갈라져 있는 것을 통합하려고 하는 거죠” “아 그래요? 그런데 그럼 왜 엘리트하고 생활체육을 같이 해야 해요? 지금까지처럼 그냥 따로 놔두면 안 되나요?” “지금 엘리트 체육은 선수를 해도 대학 가기도 힘들고, 공부를 제대로 못 하니까 은퇴하면 먹고 살기도 힘들고 그래서 선수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생활체육은 운동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시설도 부족하고 제대로 된 지도자도 모자라고 비용도 너무 비싸죠. 그래서 선진국처럼 넓은 생활체육의 저변에서 엘리트 선수를 양성하고, 또 엘리트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은퇴 후 체육 지도자가 되면 모든 면에서 서로 윈윈(win-win)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처럼 엘리트 체육 따로, 생활체육 따로 떨어져 있으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체육단체 통합이 필요한 거죠” 요즘 체육계에서 가장 ‘핫’(hot)한 대화는 단연 체육 단체 통합이다. 가는 곳마다 같은 질문을 받고 같은 답변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언론보도를 통해 체육 단체 통합이 진행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정작 왜 체육단체 통합이 추진되는 지 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고 있다. 체육 단체 통합은 정확히 규정하자면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스포츠를 지탱해 온 패러다임(Paradigm)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혁명적인 변화의 상징이다. 단순히 엘리트 체육을 주도하는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을 주도하는 <국민생활체육회> 두 단체를 통합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그림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변화의 핵심은 명확하다.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에서 ‘스포츠 선진국 패러다임’으로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스포츠를 지탱해 온 패러다임은 경기력 강화 즉 올림픽과 월드컵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만들어 진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이다. 성과도 거뒀다. 88올림픽 4위, 2002월드컵 4강도 이뤄냈다.
김연아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이제는 올림픽 금메달 뿐 아니라 국민들의 건강과 행복이 스포츠의 더 중요한 목표가 됐다. 경기력만을 강화하는 시스템 즉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에서 경기력은 더 강화하고 동시에 국민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선진국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스포츠도 이제 전면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입시비리, 승부조작, 폭력, 학습권 침해 등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을 지탱해 온 마지막 버팀목은 ‘경기력 강화’라는 궁극의 목표였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간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으로는 더 이상 경기력마저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하는 사례들이 누적되면서 ‘스포츠 선진국 패러다임’이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지속적이고 일관된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들을 종합해 본다면 2015년 현재 역사적인 ‘스포츠 패러다임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2009년 출범한 ‘초중고 축구 주말리그’는 하나의 전환기적인 사건이었다. ‘공부하는 축구선수’를 내세운 대한축구협회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지 않는 한 지속적인 학교축구팀 해체를 막을 수 없다는 자체 분석을 내렸다. 축구만 해도 힘든데 공부까지 하는 것은 무리라는 현장의 엄청난 반발이 있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으로 나타났다. 2014년 갤럽의 초중고 축구 리그제 만족도 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도자의 72.9%, 학부모의 87%, 선수의 96.1%가 보통 이상의 만족 평가를 내렸고 가장 중요한 발전 사항은 ‘경기력 향상’ 그리고 ‘운동과 학업병행’으로 나타났다. 2010년엔 대학스포츠 정상화를 목표로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대학 농구와 대학 축구, 대학 배구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기 위한 리그제를 받아 들였다. 올 해 초엔 학기 중 토너먼트 금지 그리고 최저학점 제도 즉 평균 C(-)를 받지 못한 선수는 대회 출전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한 ‘대학스포츠 운영규정’을 전격 시행했다. 2011년에는 새로 제정된 ‘학교체육진흥법’이 오랜 산고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선진국형 최저학력제도가 명시됨으로써 엘리트 운동선수도 공부를 병행해야만 한다는 법적 근거가 완성됐다. 2012년은 일반 학생들의 스포츠 참여를 지원하기 위한 ‘학교 스포츠클럽 리그’가 본격 도입됐다. 교내리그, 지역리그, 전국대회를 거치는 종목별 리그 대회는 출범 3년 만에 42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가할 만큼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학교 스포츠 클럽리그’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핵심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2013년 정부는 ‘스포츠비전 2018’을 발표하면서 학교체육과 생활체육 그리고 엘리트 체육을 통합하는 미래 스포츠 비전을 명시했다. 동시에 학교 스포츠 클럽 외에도 각 지역 공동체에 생활체육을 보급하기 위해 ‘종합형 스포츠클럽’을 도입했다. 향후 인구 천 명 당 1개씩, 모두 5 만개의 ‘마을 스포츠 클럽’을 육성함으로써 국민 건강은 물론 엘리트 선수 양성의 산실로 키워가겠다는 명확한 방향성도 제시됐다. 2014년엔 체육단체 통합 논의가 본격화됐다. 대한체육회장과 국민생활체육회장 그리고 여야 정치권과 정부가 합의한 체육단체통합은 ‘스포츠 선진화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을 선언하는 상징이나 다름없다. 2015년 들어 체육단체통합을 명시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대한민국 스포츠의 역사적인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는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학교스포츠클럽
‘스포츠 선진화 패러다임’이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학교 스포츠클럽’ 참여 학생들이 엘리트 선수 양성을 위한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스포츠 선진화 패러다임’의 상징인 ‘스포츠클럽’에서 엘리트 선수를 양산해 낼 수만 있다면 기존의 경기력 중심 패러다임 즉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은 이제 역할을 다 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 해 가을 학교 스포츠클럽 전국 대회 결승전을 KBS에서 중계 방송했다. 그 날 현장에서 놀라운 선수를 목격했다. 남자 중학부에 출전한 그 선수는 마치 핸드볼의 전설 윤경신을 연상시키는 듯 했다. 다른 선수들보다 10센티미터는 더 큰 키, 날렵한 점프, 공중에서 수비수를 따돌리는 체공 능력 그리고 골키퍼가 손도 댈 수 없이 내리꽂는 슈팅 스피드까지 한 눈에도 물건이다 싶었다. 당장 협회 관계자에서 “저 놈 눈여겨 보시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더 놀라웠다. “정기자 저 놈 집에 한 번 안 가본 코치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알고 보니 이미 핸드볼 선수로 영입하려고 수많은 코치가 학부모를 만났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어느 누가 집을 찾아가서 설득하려 해도 부모님의 대답은 언제나 딱 한 마디였다고 한다. “우리 아들 전교 1등입니다. 핸드볼은 취미로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모든 코치들은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기존의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에서는 더 이상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선수난에 허덕이는 일부 비인기 종목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가 아니더라도 운동선수만 하겠다고 하면 일단 영입해서 훈련부터 시켜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일부 종목에서는 학교 스포츠 클럽 팀이 기존의 엘리트 선수들을 위협할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핸드볼 협회는 이미 엘리트 선수팀과 전국 대회에서 상위 입상한 학교 스포츠 클럽 팀을 모두 참가시키는 오픈 대회 형식의 토너먼트를 기획하고 있을 정도다. 최근 출범한 중고 농구 주말리그는 아주 특별한 규정을 도입했다. 바로 ‘참가선수 예외규정’이다. 중고 농구의 선수난이 얼마나 심각한 지 그리고 앞으로 선수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 어디에 있는 지 여실히 보여주는 이 규정은 다음과 같다. “등록 선수를 12명 미만으로 보유한 팀은 소속 학생 중 스포츠 클럽팀 선수 등 비등록 학생을 전체 선수 12명 내에서 참가신청 할 수 있음.” 현재의 선수등록 규정을 엄격하게 규정한다면 일단 엘리트 선수로 등록할 경우 학교스포츠클럽 대회는 출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선수를 충원할 수 없기 때문에 학교장의 특별 허가를 받아 주말리그에 참가시키는 방식이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학교스포츠클럽
서울시 체육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전문형 학교 스포츠 클럽 창단 지원’사업도 눈여겨 봐야 한다. 비인기 종목 뿐 아니라 농구 등 인기 종목까지 선수가 없어 팀이 줄줄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엘리트 팀 창단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시작된 사업이다.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스포츠 클럽 리그에 참가할 팀을 만드는 과정에서 장비와 지도자를 지원한 뒤 그 중 재능이 있는 선수를 엘리트 선수로 키워내겠다는 전략이다. 지금까지 나열했던 모든 사례들은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내용이다. 아직까지도 상당수의 엘리트 출신 체육인들은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한국 스포츠의 패러다임 전환은 이미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다. 그리고 체육단체 통합은 ‘스포츠 선진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선언하는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물론 체육 단체를 통합한다고 해서 당장 스포츠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성급한 꿈이다.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된다고 해도 성숙한 스포츠 문화가 정착되려면 적어도 한 세대는 지나야 할 것이다. 지금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아이들이 국가대표가 되고 프로 선수가 되고 또 그들이 은퇴하고 다시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유소년 스포츠를 지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스포츠 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스포츠 혁명의 구조(Structure of Sport Revolution)는 의외로 단순하다. 구체제의 패러다임이 기능을 잃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들이 누적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패러다임이 미래를 이끌어 갈 지배적 시스템으로 대체된다. 지난 반 세기 동안 대한민국 스포츠를 지배했던 ‘스포츠 강국 패러다임’은 이제 그 시대적 역할을 다하고 ‘스포츠 선진국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 기존의 패러다임에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던 수많은 정책 모델과 현장의 사례들이 강력한 증거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두 체육단체의 통합이 완성되는 순간이 바로 ‘스포츠 선진국 패러다임’시대의 공식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지금처럼 각자의 이익에 따라 흩어져 있는 체육단체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작업은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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