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퍼/단독] ‘청주 지게차 사고’ 회사 은폐 자료 입수

입력 2015.09.20 (13:27) 수정 2015.09.21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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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9일 청주에서 화장품 등을 제조하는 (주)에버코스에서 지게차에 받혀 숨진 이 씨.
이 씨의 넋을 위로하는 사십구재가 지난 15일 열렸습니다.

국화국화


지난달 이 씨의 죽음이 사회에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는데요. 바로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르는 사람이 안타깝게 죽었다는 정황 때문이었습니다.

CCTVCCTV


사고 당시 CCTV 화면에 기록된 모습들은 보는 사람들을 모두 의아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게차에 순식간에 받힌 뒤 5미터 정도를 끌려간 이 씨. 여기까지는 어느 회사에서나 있을 수 있는 산업재해였습니다. 하지만 그 뒤 상황이 비정상적으로 진행됐습니다. 회사 직원들이 웅성웅성하더니 20분이 지난 뒤에 사고 발생지점에 승합차 한 대가 들어섭니다. 그러더니 들것도 없이 담요에 이 씨를 싸서 승합차로 옮깁니다.

CCTV 화면에 잡히지 않은 상황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들뿐이었습니다. 승합차로 병원에 갔을까요? 아닙니다. 회사 밖으로 나간 승합차는 또 지정병원 구급 차량이 올 때까지 길가에 차를 대고 기다립니다. 지정병원이란 회사와 계약관계를 맺은 병원을 말합니다. 이 씨는 지정병원 구급차로 후송되지만 여기서는 치료가 힘들겠다는 소견을 듣고 다른 병원으로 또 후송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시간이 1시간 이상 흘러버렸다는 것이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특히 놀라운 건 119신고를 하지만 도착한 119구급대가 돌아가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한 직원이 심각하지 않은 찰과상이라며 돌려보냈기 때문입니다. 중상을 입은 사람을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후송해 치료받게 한다는 상식적인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지역 사회 시민 단체들은 (주)에버코스를 상대로 살인 등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경찰 역시 업무상 과실치사 보다 훨씬 처벌이 강한 부작위 살인혐의 적용이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119를 돌려보내고 지정병원으로 사내 차량을 이용해 부상자를 후송시키는 일, 상식적으로 이해가 어려운 행동들입니다. 하지만 숨진 이 씨는 이 전에도 같은 일을 경험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지난해 1월에도 지게차에 큰 부상을 입고 회사를 석 달 여 간 나가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도 사내 차량으로 지정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것이 유족들의 진술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이 회사의 비상사태 대비 대응 지침서 때문입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지침서를 보면 상황별로 어느 병원으로 후송하라고 자세히 정해져 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119에 신고하고 수해나 인명 피해 등 다른 사고 시에는 지정한 A나 B 병원으로 데려가도록 명시해놓았습니다. 비상사태를 대비해 훈련하는 시나리오에는 골절 등의 인명 사고가 났을 때는 즉시 가능한 차량을 수배해 사고자를 탑승시키고 지정병원으로 가라고 적혀있습니다. 한 마디로 119구급대를 부르지 않고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부상자를 이송시키는 겁니다.

회사 측은 지침서를 누가 만들었는지 묻자 이미 "그때 이걸 만들었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서"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또 "큰 상처가 아니면 119를 불러서 가는 것보다 가까운데 병원이 있으면 그냥 바로 가는 게 상식적이지 않느냐"며 취재진에게 오히려 KBS에서 다치면 다 119를 부르냐고 되물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정병원 제도를 두고 119까지 돌려보내는 상황이 산업재해를 숨기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직원직원


취재진이 단독 입수한 지역 고용노동청의 특별근로감독 조사 결과, (주)에버코스는 조사가 이뤄진 2012년 7월부터 2015년 8월까지 모두 26건의 산업재해를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습니다. 특별감독 직전에 있었던 수시감독에서도 미신고 산업재해가 3건 드러났었는데요. 모두 합치면 3년 새 29건이나 숨겼습니다. 29건 가운데는 숨진 이 씨가 지난해 1월 당했던 지게차 부상 사고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미끄러지는 사고부터 기계에 손가락이 협착되는 사고까지 휴업 3일 이상 등의 재해입니다.

이렇게 산업재해를 은폐하면서 이 업체가 달성한 기록을 볼까요? 회사가 처음 재해 기록을 시작한 2003년부터 이 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이 회사는 무재해 4000여 일을 달성했습니다. 재해가 4000여 일 동안이나 없었다고 기록한 셈입니다. 보름에 한 번꼴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안전점검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입니다. 실제 안전점검표 상에도 2012년부터 2015년 모두 재해자수, 재해자율은 0으로 표기돼 있었습니다. 이 업체는 덕분에 산재 보험료도 연간 천6백만 원에서 3천2백만 원까지 지난 매년 지속적으로 감액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업체는 도대체 왜 산업재해를 숨겨왔던 것일까요? 바로 경제적 손실 때문입니다. (주)에버코스의 경우 지금도 LG생활건강에 화장품 등을 납품하고 있는데요. 해마다 협력사 평가를 하는데 전체 230점 가운데 안전보건 점수가 대략 10% 정도를 차지합니다. 산업재해가 많이 보고될수록 점수가 깎이고 협력계약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기업의 존폐가 걸려 있는 겁니다.

이 씨가 숨지게 된 정황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고용노동부는 특별감독이나 수시감독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은폐됐던 산재도 밝혀지지 않았을 겁니다. 업체도 늘 그렇듯 재해자수를 0으로 표기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산업재해를 숨겨 무재해로 둔갑시키고 감독의 눈을 피하게 되면서 안전은 더욱 소홀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단단해진다는 겁니다. 반대로 보면 산업재해가 제대로 신고가 돼야 어떤 이유로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고 이후 안전 대비책도 제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5년간 산업재해자 수가 9만 8천여 명에서 9만여 명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 통계는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로 접수돼 보험 처리가 인정된 산업재해만을 집계한 것입니다.

산업재해 은폐 건수산업재해 은폐 건수


실제 이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를 은폐하다가 적발된 건수가 2013년 192건에서 지난해에는 726건으로 3.8배나 급증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실제 산업재해가 줄고 있어서 산업재해자 수가 줄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숨기기 때문이라는 정황에 더 힘이 실리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산재를 숨기지 못하도록 사업장에서 재해가 생기면 우선적으로 119에 신고를 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아직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는 사람의 생명을 먼저 생각하는 의식과 근로환경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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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파일K] 무재해 산업현장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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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20 13:27:03
    • 수정2015-09-21 06: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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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9일 청주에서 화장품 등을 제조하는 (주)에버코스에서 지게차에 받혀 숨진 이 씨.
이 씨의 넋을 위로하는 사십구재가 지난 15일 열렸습니다.

국화


지난달 이 씨의 죽음이 사회에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는데요. 바로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르는 사람이 안타깝게 죽었다는 정황 때문이었습니다.

CCTV


사고 당시 CCTV 화면에 기록된 모습들은 보는 사람들을 모두 의아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게차에 순식간에 받힌 뒤 5미터 정도를 끌려간 이 씨. 여기까지는 어느 회사에서나 있을 수 있는 산업재해였습니다. 하지만 그 뒤 상황이 비정상적으로 진행됐습니다. 회사 직원들이 웅성웅성하더니 20분이 지난 뒤에 사고 발생지점에 승합차 한 대가 들어섭니다. 그러더니 들것도 없이 담요에 이 씨를 싸서 승합차로 옮깁니다.

CCTV 화면에 잡히지 않은 상황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들뿐이었습니다. 승합차로 병원에 갔을까요? 아닙니다. 회사 밖으로 나간 승합차는 또 지정병원 구급 차량이 올 때까지 길가에 차를 대고 기다립니다. 지정병원이란 회사와 계약관계를 맺은 병원을 말합니다. 이 씨는 지정병원 구급차로 후송되지만 여기서는 치료가 힘들겠다는 소견을 듣고 다른 병원으로 또 후송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시간이 1시간 이상 흘러버렸다는 것이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특히 놀라운 건 119신고를 하지만 도착한 119구급대가 돌아가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한 직원이 심각하지 않은 찰과상이라며 돌려보냈기 때문입니다. 중상을 입은 사람을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후송해 치료받게 한다는 상식적인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지역 사회 시민 단체들은 (주)에버코스를 상대로 살인 등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경찰 역시 업무상 과실치사 보다 훨씬 처벌이 강한 부작위 살인혐의 적용이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119를 돌려보내고 지정병원으로 사내 차량을 이용해 부상자를 후송시키는 일, 상식적으로 이해가 어려운 행동들입니다. 하지만 숨진 이 씨는 이 전에도 같은 일을 경험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지난해 1월에도 지게차에 큰 부상을 입고 회사를 석 달 여 간 나가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도 사내 차량으로 지정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것이 유족들의 진술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이 회사의 비상사태 대비 대응 지침서 때문입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지침서를 보면 상황별로 어느 병원으로 후송하라고 자세히 정해져 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119에 신고하고 수해나 인명 피해 등 다른 사고 시에는 지정한 A나 B 병원으로 데려가도록 명시해놓았습니다. 비상사태를 대비해 훈련하는 시나리오에는 골절 등의 인명 사고가 났을 때는 즉시 가능한 차량을 수배해 사고자를 탑승시키고 지정병원으로 가라고 적혀있습니다. 한 마디로 119구급대를 부르지 않고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부상자를 이송시키는 겁니다.

회사 측은 지침서를 누가 만들었는지 묻자 이미 "그때 이걸 만들었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서"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또 "큰 상처가 아니면 119를 불러서 가는 것보다 가까운데 병원이 있으면 그냥 바로 가는 게 상식적이지 않느냐"며 취재진에게 오히려 KBS에서 다치면 다 119를 부르냐고 되물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정병원 제도를 두고 119까지 돌려보내는 상황이 산업재해를 숨기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직원


취재진이 단독 입수한 지역 고용노동청의 특별근로감독 조사 결과, (주)에버코스는 조사가 이뤄진 2012년 7월부터 2015년 8월까지 모두 26건의 산업재해를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습니다. 특별감독 직전에 있었던 수시감독에서도 미신고 산업재해가 3건 드러났었는데요. 모두 합치면 3년 새 29건이나 숨겼습니다. 29건 가운데는 숨진 이 씨가 지난해 1월 당했던 지게차 부상 사고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미끄러지는 사고부터 기계에 손가락이 협착되는 사고까지 휴업 3일 이상 등의 재해입니다.

이렇게 산업재해를 은폐하면서 이 업체가 달성한 기록을 볼까요? 회사가 처음 재해 기록을 시작한 2003년부터 이 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이 회사는 무재해 4000여 일을 달성했습니다. 재해가 4000여 일 동안이나 없었다고 기록한 셈입니다. 보름에 한 번꼴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안전점검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입니다. 실제 안전점검표 상에도 2012년부터 2015년 모두 재해자수, 재해자율은 0으로 표기돼 있었습니다. 이 업체는 덕분에 산재 보험료도 연간 천6백만 원에서 3천2백만 원까지 지난 매년 지속적으로 감액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업체는 도대체 왜 산업재해를 숨겨왔던 것일까요? 바로 경제적 손실 때문입니다. (주)에버코스의 경우 지금도 LG생활건강에 화장품 등을 납품하고 있는데요. 해마다 협력사 평가를 하는데 전체 230점 가운데 안전보건 점수가 대략 10% 정도를 차지합니다. 산업재해가 많이 보고될수록 점수가 깎이고 협력계약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기업의 존폐가 걸려 있는 겁니다.

이 씨가 숨지게 된 정황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고용노동부는 특별감독이나 수시감독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은폐됐던 산재도 밝혀지지 않았을 겁니다. 업체도 늘 그렇듯 재해자수를 0으로 표기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산업재해를 숨겨 무재해로 둔갑시키고 감독의 눈을 피하게 되면서 안전은 더욱 소홀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단단해진다는 겁니다. 반대로 보면 산업재해가 제대로 신고가 돼야 어떤 이유로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고 이후 안전 대비책도 제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5년간 산업재해자 수가 9만 8천여 명에서 9만여 명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 통계는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로 접수돼 보험 처리가 인정된 산업재해만을 집계한 것입니다.

산업재해 은폐 건수


실제 이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를 은폐하다가 적발된 건수가 2013년 192건에서 지난해에는 726건으로 3.8배나 급증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실제 산업재해가 줄고 있어서 산업재해자 수가 줄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숨기기 때문이라는 정황에 더 힘이 실리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산재를 숨기지 못하도록 사업장에서 재해가 생기면 우선적으로 119에 신고를 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아직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는 사람의 생명을 먼저 생각하는 의식과 근로환경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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