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저성과자 해고”…사회안전망은 어디에?

입력 2015.09.21 (00:13) 수정 2015.09.2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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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이 드디어 대타협에 성공했다.' 최근 언론에서 흔히 보는 문장입니다. 이 말만 보면 마치 대타협 자체가 무조건 '좋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타협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타협이란 형식보다 그 안에 있는 내용이겠죠.
차근 차근히 짚어보죠

■ ‘저성과자 해고’…남용 우려

이번 노사정 대타협의 핵심은 '일반해고', 즉 저성과자나 근무 태도 불량자를 해고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번 대타협에서 기업들이 가장 반기는 부분입니다. 물론 일선 현장에서 여태 저성과자 해고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근로기준법에 저성과자 해고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기업들이 조심스러워 했던 것이죠.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의 지적처럼 이번 대타협은 일반해고를 뒷받침할 행정지침의 구체적 내용을 떠나서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다'는 메시지 말입니다.

저성과자 해고저성과자 해고


하지만 저성과자 해고는 노사정 대타협이나 정부의 행정지침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 판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모 회사는 2009년 인사평가를 통해 최하위 등급을 받은 근로자들의 연봉을 삭감했습니다. 직원들은 인사고과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법원은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해당 회사는 2005년 부진 인력 대상자 명단을 만들어 관리해왔는데 이 사건 근로자들은 모두 이 명단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1) 법원은 이 사건 회사가 근로자들에 대한 인사평가를 하면서 개개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부진인력 대상자 집단을 대상으로 차별적으로 시행했다고 판단했습니다. 평가체계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2) 또 회사가 부진인력 대상자들을 퇴출시키려고 업무 분장에 불이익을 주는 등 차별적인 대우를 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사용자의 인사평가권은 무제한적인 권리가 아니며,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체계가 전제돼야 해고나 감봉 등 인사 조치가 정당하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겁니다. 또 특정 집단을 퇴출시키기 위한 불순한 동기로 인사평가가 남용돼서는 안 된다는 점도 명확히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 법원 판례는 '직무부진 그 자체만으로 해고사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에게 그러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었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2012.5.29. 선고 2011두4760 판결) 기업이 직무부진 근로자와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만 그 이후 해고가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저성과자 해고의 전제 조건은 공정한 인사평가체계와 재교육 등 해고 방지 노력입니다. 특히 업무 실적이 비교적 드러나는 서비스 판매업과 달리 사무직의 경우엔 평가 방법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 유연성 확대되는 만큼 사회안전망은 늘어나나?

이번 노사정 논의의 핵심 쟁점이었던 '저성과자 해고' 도입과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모두 유연성 확대와 관련된 의제였습니다. 특히 저성과자 해고 도입은 외환 위기 때 도입된 정리해고 이후로, 우리 노동시장에 가장 큰 충격이 될 사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합니다. 취약한 사회안전망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일정한 삶을 질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근로기준법상 해고가 엄격했기 때문입니다.

저성과자 해고저성과자 해고


해고는 곧 살인이라고 주장하는 노동계가 이번 대타협에서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무엇을 얻었을까요? 합의문을 보면 사회안전망 확충 항목에 이것저것 들어가 있습니다만, 해고에 직면한 근로자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은 '실업급여' 강화입니다. 액수는 직전 소득 대비 50%에서 60%로, 지급 기간은 30일는 늘린다는 겁니다. '최저임금' 등 나머지 대부분은 "종합적인 개선방안을 논의해 마련한다"고 돼 있어 단시일내에 이뤄내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일 가정 양립 지원', '사회보험제도의 효율성 제고', '취약계층 취업지원 프로그램' 일부는 그동안 고용노동부가 수차례 정책 발표를 하면서 포함됐던 내용들인데 더욱 구체적인 담보성을 획득해야 할 겁니다.

기업의 효율성을 위해 유연화를 도입할 필요도 있지만 사회안전망 확충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덴마크 모델처럼 말입니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덴마크의 실업급여는 직전 소득의 80%이고 지급 기간도 3년 정도입니다. 물론 실업 기간에는 국가가 직업교육을 시켜줍니다. 대타협을 돌이킬 수 없다면 최소한 앞으로 국회에서 노동개혁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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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9] 일반 해고·취업 규칙 변경…노동시장 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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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21 00:13:29
    • 수정2015-09-21 00:14:10
    취재후·사건후
'노사정이 드디어 대타협에 성공했다.' 최근 언론에서 흔히 보는 문장입니다. 이 말만 보면 마치 대타협 자체가 무조건 '좋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타협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타협이란 형식보다 그 안에 있는 내용이겠죠.
차근 차근히 짚어보죠

■ ‘저성과자 해고’…남용 우려

이번 노사정 대타협의 핵심은 '일반해고', 즉 저성과자나 근무 태도 불량자를 해고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번 대타협에서 기업들이 가장 반기는 부분입니다. 물론 일선 현장에서 여태 저성과자 해고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근로기준법에 저성과자 해고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기업들이 조심스러워 했던 것이죠.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의 지적처럼 이번 대타협은 일반해고를 뒷받침할 행정지침의 구체적 내용을 떠나서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다'는 메시지 말입니다.

저성과자 해고


하지만 저성과자 해고는 노사정 대타협이나 정부의 행정지침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 판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모 회사는 2009년 인사평가를 통해 최하위 등급을 받은 근로자들의 연봉을 삭감했습니다. 직원들은 인사고과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법원은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해당 회사는 2005년 부진 인력 대상자 명단을 만들어 관리해왔는데 이 사건 근로자들은 모두 이 명단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1) 법원은 이 사건 회사가 근로자들에 대한 인사평가를 하면서 개개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부진인력 대상자 집단을 대상으로 차별적으로 시행했다고 판단했습니다. 평가체계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2) 또 회사가 부진인력 대상자들을 퇴출시키려고 업무 분장에 불이익을 주는 등 차별적인 대우를 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사용자의 인사평가권은 무제한적인 권리가 아니며,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체계가 전제돼야 해고나 감봉 등 인사 조치가 정당하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겁니다. 또 특정 집단을 퇴출시키기 위한 불순한 동기로 인사평가가 남용돼서는 안 된다는 점도 명확히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 법원 판례는 '직무부진 그 자체만으로 해고사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에게 그러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었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2012.5.29. 선고 2011두4760 판결) 기업이 직무부진 근로자와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만 그 이후 해고가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저성과자 해고의 전제 조건은 공정한 인사평가체계와 재교육 등 해고 방지 노력입니다. 특히 업무 실적이 비교적 드러나는 서비스 판매업과 달리 사무직의 경우엔 평가 방법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 유연성 확대되는 만큼 사회안전망은 늘어나나?

이번 노사정 논의의 핵심 쟁점이었던 '저성과자 해고' 도입과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모두 유연성 확대와 관련된 의제였습니다. 특히 저성과자 해고 도입은 외환 위기 때 도입된 정리해고 이후로, 우리 노동시장에 가장 큰 충격이 될 사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합니다. 취약한 사회안전망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일정한 삶을 질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근로기준법상 해고가 엄격했기 때문입니다.

저성과자 해고


해고는 곧 살인이라고 주장하는 노동계가 이번 대타협에서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무엇을 얻었을까요? 합의문을 보면 사회안전망 확충 항목에 이것저것 들어가 있습니다만, 해고에 직면한 근로자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은 '실업급여' 강화입니다. 액수는 직전 소득 대비 50%에서 60%로, 지급 기간은 30일는 늘린다는 겁니다. '최저임금' 등 나머지 대부분은 "종합적인 개선방안을 논의해 마련한다"고 돼 있어 단시일내에 이뤄내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일 가정 양립 지원', '사회보험제도의 효율성 제고', '취약계층 취업지원 프로그램' 일부는 그동안 고용노동부가 수차례 정책 발표를 하면서 포함됐던 내용들인데 더욱 구체적인 담보성을 획득해야 할 겁니다.

기업의 효율성을 위해 유연화를 도입할 필요도 있지만 사회안전망 확충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덴마크 모델처럼 말입니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덴마크의 실업급여는 직전 소득의 80%이고 지급 기간도 3년 정도입니다. 물론 실업 기간에는 국가가 직업교육을 시켜줍니다. 대타협을 돌이킬 수 없다면 최소한 앞으로 국회에서 노동개혁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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