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수조 원 쓰고도…국토부 해명 오류 투성이

입력 2015.09.23 (00:23) 수정 2015.09.2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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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고속열차 67분 단축”…사실은 11분 단축에 불과

지난 21일 국토부가 "준고속철도 도입하면서 13조 원을 들여 10분이 단축된다는 KBS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보도 해명자료'를 냈습니다. 서해선 충남 홍성에서 경기도 송산까지 90km가 완공되면 홍성에서 영등포 경우, 기준 120분에서 53분으로 줄어들어 67분이 단축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전 구간을 최고속도로, 그것도 역에 한 번도 정차하지도 않은 채 주파하면 그렇게 단축된다는 아주 이상적인 전제하에서 나온 수치입니다.
그러나 KBS는 열차가 정상적으로 달리고, 중간 정차역에 섰다가 출발하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11분이 단축된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그것도 수조 원의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말이죠.

이 준고속열차의 문제점을 얘기하려면 정부가 개발하다 사실상 실패한 차세대 고속열차 '해무'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지난 2007년부터 개발이 시작됐고 9년 동안 1000억 원 정도를 들였는데 처음 목표와는 달리 수출은 커녕 상용화도 힘들다는 내용입니다. 해무 개발은 2007년에 차세대 고속철도 개발사업이라는 국책 연구과제로 시작됐습니다.

■ 천억 쏟아부은 차세대 고속열차 ‘해무’…사실상 실패

시속 430km를 목표로 2007년 시작된 1차 사업에 670억 원, 2012년부터 시작된 2단계 사업에 160억, 그 외 연구과제 등 모두 1000억 원 정도의 예산이 쓰였습니다. 이 예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1차 사업 955억 8천만 원 중 정부가 669억 3천만 원, 2차 사업 178억 천만 원 중 정부가 149억 4천만 원을 지원한 겁니다. 민간 사업자보다 월등히 높은 예산이 배정됐죠. 민간 사업자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이 예산 배정은 국책연구사업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서울과 부산을 1시간 반에 연결하고 200조 원이 넘는 세계 고속철도 시장을 겨냥해 해외 수출도 하겠다는 게 목표였습니다.

고속철 해무고속철 해무


그렇게 해무는 개발됐고 지난 6월, 3년 정도의 시운전을 마지막으로 올 연말까지 마무리 보완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3년간 220회 모두 11만 7천 km를 달렸습니다. 2013년 3월엔 처음으로 시속 421km를 돌파했습니다. 최근 중국이 새로 선보인 고속열차가 시속 605km 시험운행에 성공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한 적이 있는데요 시험운행이지만 프랑스 떼제베의 기록 시속 575킬로미터를 넘어서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차가 됐습니다.
해무의 속도는 세계 5위입니다. 대단한 성과입니다. 우리 언론도 당시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습니다. KTX 산천이 5만 7천km의 시운전을 끝내고 2010년 2월 현장에 투입한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시운전을 시행한 겁니다. 국책연구사업이었으니 그리고 그동안 정부가 공언한 대로 상용화, 그러니까 현장에 금방 투입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은 해무의 상용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철도 관계자에게 들었습니다. 왜였을까요? 그래서 해무의 시운전 평가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 해무…수출은 커녕 상용화도 실패

속도대역별 주행거리속도대역별 주행거리


2012년 5월, 차량 출고 이후 총 누적 시운전 거리 11만 7천km 가운데 실제 목표였던 시속 400km 이상으로 달린 거리는 2.5%, 그러니까 2908km에 불과했습니다. 90% 가까이는 시운전속도가 300km 이하였습니다. KTX보다 느린 겁니다.
더구나 시운전 동안 회로 차단기나 제동시스템 등 모두 45차례 고장도 났던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차세대 고속열차의 시험 주행이라기엔 좀 초라한 성적이었습니다. 9년 동안 천억 원 가까운 예산을 쓰고 10만 km가 넘는 시운전도 했지만 이제 처음 목표였던 수출은 커녕 상용화도 불투명한 겁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300km밖에 달리지 못하는 차세대 고속열차는 상용화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사용 실적, 그러니까 고속열차를 개발했지만 고속으로 달려본 실적이 없으니 수출도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런데 상용화와 수출을 말했던 정부는 이제 상용화 여부를 묻는 취재진에게 말을 바꿨습니다. 해무는 속도를 어디까지 낼 수 있는 지 알아보는 파일럿 프로젝트였다는 겁니다.

■ “해무는 파일럿 프로젝트”…국토부의 말 바꾸기

하지만 해무 개발계획부터 중장기 전략, 지난 3월 해무에 관한 보도자료에도 상용화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지난 6월 8일 해무 고속열차 실용화 대책이라는 국토교통부의 비공개 내부문서를 보면 첫 페이지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07년부터 R&D 사업으로 추진해 온 해무 고속열차는 올해 말 신뢰성 검증을 마치고
국내 실용화 및 해외 진출을 추진 예정'
'특히 해외 고속철도 사업진출을 위해서는 동력분산식 고속차량의 국내 조기 상용화를 적극 추진할 예정'
'국내외 시장여건을 분석하고 맞춤형 실용화 모델을 정립하여 조기 실용화에 필요한 인센티브 제공과 제도 개선 등 대책을 추진'
누구에게 인텐시브를 준다는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해무의 시운전 시작과 함께 2∼3년 뒤에는 고속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1시간 30분 만에 갈 수 있을 거라는 정부의 말은 공염불로 그치게 됐다는 게 고속열차 전문가들의 설명이었습니다.

■ ‘실패한’ 해무 대신 250km급 준고속철도 도입 선회

해무는 파일럿 프로젝트였다는 정부의 말은 최고 시속 250km로 달릴 수 있는 준고속열차 도입과 맞물립니다. 해무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고 시속 250km로 달릴 수 있는 준고속열차를 상용화한다는 말입니다. 일견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속내는 고속열차 해무의 실용화가 어려워지자 속도를 줄인 준고속철을 도입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준고속철을 도입해도 막상 달릴 곳이 없다는 지적.
이건 또 어떤 얘기일까요 ?
올 상반기 경기도 화성에서 충남 홍성까지 89.2km, 서해선 복선철로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이 부분의 공사비만 3조 8천억 원 정도입니다. 사실 열차를 만드는 것보다 더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게 토목사업, 바로 선로를 까는 겁니다. 바로 이 노선에 고속열차 해무 430x의 속도를 대폭 낮춘 최고 시속 250km급의 준고속철을 달리게 한다는 계획입니다. 이 밖에도 서해선과 중앙선 등 5개 구간에서 250km 준고속철이 달릴 수 있는
노선 공사가 시작됩니다. 총공사비만 13조 8천억 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이 공사구간들이 2020년(빠른 구간은 2018년입니다.) 완공되고 시속 250km로 달릴 수 있는 준고속철이 도입돼도, 제대로 달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노선 곳곳에 시속 150이나 110km로 달릴 수밖에 없는 기존 선로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서해선의 경우 준고속철을 도입해도 단축시간은 가장 낮은 구간은 11분 정도에 불과하다는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취재 중 만난 고속철도 관계자는 경부선의 예를 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250km 열차를 만든다고 한들 지금 경부선에 투입하면 기존의 새마을호랑 시간차가 별로 안 나요. 선로에서 그런 속도를 못 내는 거죠"
최근 새로 개통한 호남선 KTX도 개통 뒤 2주일을 살펴봤더니 예정된 시간에 맞춰 도착한 열차는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습니다.

☞ [뉴스광장] 말로만 ‘1시간 33분’…호남선 KTX 절반 연착

용산에서 광주 송정까지의 이동 시간은 1시간 33분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하루 광주 송정에서 용산을 오가는 KTX 20여 편 가운데 1시간 33분이 걸리는 최단 시간 열차는 단 한 편에 불과하다는 거였습니다.
그나마 제시간에 도착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당시 코레일은 고객들의 승하차 시간이 예상보다 긴 데다 선로 안정화 작업 등으로 인해 열차 지연이 생기고 있지만, 경부선 KTX에 비해선 지연 시간이 줄었다고 해명했습니다.

■ 국토부 “사실이 아닙니다”…과연 어떤 속도가 맞을까요?

자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국토부가 해명자료를 통해 적극 반박했죠. 충남권 지역 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명도 꽤 열심히 했습니다. 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KBS 보도에 나온 들인 비용에 비해 단축시간이 턱없이 적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무려 1시간이 단축된다는 거였죠.
이상했습니다. 제가 참고한 자료는 중장기 운송전략. 공식적인 자료였기 때문이죠.
뭐가 잘못된 걸까요? 제가 보도에 인용한 자료는 표정속도입니다. 지식백과를 보면 표정속도란 '출발한 역으로부터 도착한 역까지의 소요시간(정차시간 포함)으로 주행거리를 나눈 수치. 정차시간을 포함하지 않는 운행시간으로 주행거리를 나눈 평균속도와 구별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간에 정차역에서 소요한 시간과 달린 시간 등을 전부 계산한 속도입니다. 열차가 출발하면 정차를 하고 가속을 하고 또 정차하기 위해 감속도 하고 그런 거죠. 그런 속도로 계산한 겁니다. 국토부 해명 속의 속도와는 다른 겁니다. 출발해서 시속 250km로 처음부터 끝까지 달린 속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정부가 도입하려는 준고속철도는 최고 시속이 250km 이지 평균 250km로 달릴 수 있는 열차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열차는 없습니다. 최고속도와 실제 주행 속도는 엄연히 다르니까요. 시간 차이는 여기서 생겼습니다.

■ “화물열차 다닐 수 있다” VS “설계에 반영 안 돼”

국토부는 또 여객 열차만 다닐 수 있고 화물열차는 다닐 수 없도록 선로 설계가 돼 있어 반쪽 노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는 보도 내용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보도의 내용은 올 초 철도 관계자들이 국토부의 국실장들과 가진 자리에서 새로운 노선 설계에 물류 기능이 빠져있는 게 문제라는 지적을 토대로 나온 겁니다.
당시 "미래전략이 있는 거냐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물류 기능 포기하고 이러면 반쪽짜리 철도가 되는 거다"는 지적이 나온 거죠. 간단히 말하자면 화물열차는 무게가 더 나가기 때문에 노선 설계부터 반영돼야 합니다. 여객 열차를 피하기 위한 회피노선도 필요하고요. 그런 게 없으면 여객 열차가 다니지 않는 야간 시간대에 이용해야 하는데 야간에는 통상적으로 노선 점검이 이뤄지는 시간입니다. 올 초 설계에는 이런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국토부는 "화물열차도 가능하도록 선로조건 및 시설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완공 이후에는 현재보다 나은 선로조건에서 화물열차도 더 빠르게 운행할 수 있다"고 해명자료에 썼습니다. 다닐 수 있다가 아니라 다니게 하고 있다는 거죠. 국토부의 또 한 관계자는 올 초 있었던 철도 관계자들과 실무진들과의 만남에서 그런 얘기가 오갔던 점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지금 다시 최근의 설계도를 확보하려 하고 있습니다. 과연 화물열차가 다닐 수 있도록 설계가 반영되었는지를 말이죠. 그리고 보도를 통해 다시 사실 여부를 밝히겠습니다. 보도 이후 많은 분들이 격려와 질책을 함께 해 주셨습니다. 제가 보도한 건 고속철도 개발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명확하게 하자는 겁니다. 앞으로도 고속철도 개발사업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겠습니다. 수천억, 수조 원을 들인 사업들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혹시 불합리한 점은 없는지, 불합리한 이득을 얻는 사람은 없는지 말입니다.
끝으로 국토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준고속철도는 적은 비용으로 고속철도에 버금가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 시스템으로 많은 철도 선진국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본 자료에서 준고속철도를 도입하면 요금은 한 6천 원 정도 인상된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비용 고효율은 누구에게 해당하는 걸까요.
국토부 해명에 대한 해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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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리포트] 천 억 들인 고속철 ‘해무’…실용화?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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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수조 원 쓰고도…국토부 해명 오류 투성이
    • 입력 2015-09-23 00:23:43
    • 수정2015-09-23 07:06:28
    취재후·사건후
■ “준고속열차 67분 단축”…사실은 11분 단축에 불과

지난 21일 국토부가 "준고속철도 도입하면서 13조 원을 들여 10분이 단축된다는 KBS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보도 해명자료'를 냈습니다. 서해선 충남 홍성에서 경기도 송산까지 90km가 완공되면 홍성에서 영등포 경우, 기준 120분에서 53분으로 줄어들어 67분이 단축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전 구간을 최고속도로, 그것도 역에 한 번도 정차하지도 않은 채 주파하면 그렇게 단축된다는 아주 이상적인 전제하에서 나온 수치입니다.
그러나 KBS는 열차가 정상적으로 달리고, 중간 정차역에 섰다가 출발하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11분이 단축된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그것도 수조 원의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말이죠.

이 준고속열차의 문제점을 얘기하려면 정부가 개발하다 사실상 실패한 차세대 고속열차 '해무'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지난 2007년부터 개발이 시작됐고 9년 동안 1000억 원 정도를 들였는데 처음 목표와는 달리 수출은 커녕 상용화도 힘들다는 내용입니다. 해무 개발은 2007년에 차세대 고속철도 개발사업이라는 국책 연구과제로 시작됐습니다.

■ 천억 쏟아부은 차세대 고속열차 ‘해무’…사실상 실패

시속 430km를 목표로 2007년 시작된 1차 사업에 670억 원, 2012년부터 시작된 2단계 사업에 160억, 그 외 연구과제 등 모두 1000억 원 정도의 예산이 쓰였습니다. 이 예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1차 사업 955억 8천만 원 중 정부가 669억 3천만 원, 2차 사업 178억 천만 원 중 정부가 149억 4천만 원을 지원한 겁니다. 민간 사업자보다 월등히 높은 예산이 배정됐죠. 민간 사업자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이 예산 배정은 국책연구사업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서울과 부산을 1시간 반에 연결하고 200조 원이 넘는 세계 고속철도 시장을 겨냥해 해외 수출도 하겠다는 게 목표였습니다.

고속철 해무


그렇게 해무는 개발됐고 지난 6월, 3년 정도의 시운전을 마지막으로 올 연말까지 마무리 보완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3년간 220회 모두 11만 7천 km를 달렸습니다. 2013년 3월엔 처음으로 시속 421km를 돌파했습니다. 최근 중국이 새로 선보인 고속열차가 시속 605km 시험운행에 성공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한 적이 있는데요 시험운행이지만 프랑스 떼제베의 기록 시속 575킬로미터를 넘어서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차가 됐습니다.
해무의 속도는 세계 5위입니다. 대단한 성과입니다. 우리 언론도 당시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습니다. KTX 산천이 5만 7천km의 시운전을 끝내고 2010년 2월 현장에 투입한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시운전을 시행한 겁니다. 국책연구사업이었으니 그리고 그동안 정부가 공언한 대로 상용화, 그러니까 현장에 금방 투입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은 해무의 상용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철도 관계자에게 들었습니다. 왜였을까요? 그래서 해무의 시운전 평가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 해무…수출은 커녕 상용화도 실패

속도대역별 주행거리


2012년 5월, 차량 출고 이후 총 누적 시운전 거리 11만 7천km 가운데 실제 목표였던 시속 400km 이상으로 달린 거리는 2.5%, 그러니까 2908km에 불과했습니다. 90% 가까이는 시운전속도가 300km 이하였습니다. KTX보다 느린 겁니다.
더구나 시운전 동안 회로 차단기나 제동시스템 등 모두 45차례 고장도 났던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차세대 고속열차의 시험 주행이라기엔 좀 초라한 성적이었습니다. 9년 동안 천억 원 가까운 예산을 쓰고 10만 km가 넘는 시운전도 했지만 이제 처음 목표였던 수출은 커녕 상용화도 불투명한 겁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300km밖에 달리지 못하는 차세대 고속열차는 상용화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사용 실적, 그러니까 고속열차를 개발했지만 고속으로 달려본 실적이 없으니 수출도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런데 상용화와 수출을 말했던 정부는 이제 상용화 여부를 묻는 취재진에게 말을 바꿨습니다. 해무는 속도를 어디까지 낼 수 있는 지 알아보는 파일럿 프로젝트였다는 겁니다.

■ “해무는 파일럿 프로젝트”…국토부의 말 바꾸기

하지만 해무 개발계획부터 중장기 전략, 지난 3월 해무에 관한 보도자료에도 상용화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지난 6월 8일 해무 고속열차 실용화 대책이라는 국토교통부의 비공개 내부문서를 보면 첫 페이지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07년부터 R&D 사업으로 추진해 온 해무 고속열차는 올해 말 신뢰성 검증을 마치고
국내 실용화 및 해외 진출을 추진 예정'
'특히 해외 고속철도 사업진출을 위해서는 동력분산식 고속차량의 국내 조기 상용화를 적극 추진할 예정'
'국내외 시장여건을 분석하고 맞춤형 실용화 모델을 정립하여 조기 실용화에 필요한 인센티브 제공과 제도 개선 등 대책을 추진'
누구에게 인텐시브를 준다는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해무의 시운전 시작과 함께 2∼3년 뒤에는 고속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1시간 30분 만에 갈 수 있을 거라는 정부의 말은 공염불로 그치게 됐다는 게 고속열차 전문가들의 설명이었습니다.

■ ‘실패한’ 해무 대신 250km급 준고속철도 도입 선회

해무는 파일럿 프로젝트였다는 정부의 말은 최고 시속 250km로 달릴 수 있는 준고속열차 도입과 맞물립니다. 해무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고 시속 250km로 달릴 수 있는 준고속열차를 상용화한다는 말입니다. 일견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속내는 고속열차 해무의 실용화가 어려워지자 속도를 줄인 준고속철을 도입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준고속철을 도입해도 막상 달릴 곳이 없다는 지적.
이건 또 어떤 얘기일까요 ?
올 상반기 경기도 화성에서 충남 홍성까지 89.2km, 서해선 복선철로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이 부분의 공사비만 3조 8천억 원 정도입니다. 사실 열차를 만드는 것보다 더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게 토목사업, 바로 선로를 까는 겁니다. 바로 이 노선에 고속열차 해무 430x의 속도를 대폭 낮춘 최고 시속 250km급의 준고속철을 달리게 한다는 계획입니다. 이 밖에도 서해선과 중앙선 등 5개 구간에서 250km 준고속철이 달릴 수 있는
노선 공사가 시작됩니다. 총공사비만 13조 8천억 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이 공사구간들이 2020년(빠른 구간은 2018년입니다.) 완공되고 시속 250km로 달릴 수 있는 준고속철이 도입돼도, 제대로 달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노선 곳곳에 시속 150이나 110km로 달릴 수밖에 없는 기존 선로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서해선의 경우 준고속철을 도입해도 단축시간은 가장 낮은 구간은 11분 정도에 불과하다는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취재 중 만난 고속철도 관계자는 경부선의 예를 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250km 열차를 만든다고 한들 지금 경부선에 투입하면 기존의 새마을호랑 시간차가 별로 안 나요. 선로에서 그런 속도를 못 내는 거죠"
최근 새로 개통한 호남선 KTX도 개통 뒤 2주일을 살펴봤더니 예정된 시간에 맞춰 도착한 열차는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습니다.

☞ [뉴스광장] 말로만 ‘1시간 33분’…호남선 KTX 절반 연착

용산에서 광주 송정까지의 이동 시간은 1시간 33분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하루 광주 송정에서 용산을 오가는 KTX 20여 편 가운데 1시간 33분이 걸리는 최단 시간 열차는 단 한 편에 불과하다는 거였습니다.
그나마 제시간에 도착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당시 코레일은 고객들의 승하차 시간이 예상보다 긴 데다 선로 안정화 작업 등으로 인해 열차 지연이 생기고 있지만, 경부선 KTX에 비해선 지연 시간이 줄었다고 해명했습니다.

■ 국토부 “사실이 아닙니다”…과연 어떤 속도가 맞을까요?

자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국토부가 해명자료를 통해 적극 반박했죠. 충남권 지역 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명도 꽤 열심히 했습니다. 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KBS 보도에 나온 들인 비용에 비해 단축시간이 턱없이 적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무려 1시간이 단축된다는 거였죠.
이상했습니다. 제가 참고한 자료는 중장기 운송전략. 공식적인 자료였기 때문이죠.
뭐가 잘못된 걸까요? 제가 보도에 인용한 자료는 표정속도입니다. 지식백과를 보면 표정속도란 '출발한 역으로부터 도착한 역까지의 소요시간(정차시간 포함)으로 주행거리를 나눈 수치. 정차시간을 포함하지 않는 운행시간으로 주행거리를 나눈 평균속도와 구별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간에 정차역에서 소요한 시간과 달린 시간 등을 전부 계산한 속도입니다. 열차가 출발하면 정차를 하고 가속을 하고 또 정차하기 위해 감속도 하고 그런 거죠. 그런 속도로 계산한 겁니다. 국토부 해명 속의 속도와는 다른 겁니다. 출발해서 시속 250km로 처음부터 끝까지 달린 속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정부가 도입하려는 준고속철도는 최고 시속이 250km 이지 평균 250km로 달릴 수 있는 열차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열차는 없습니다. 최고속도와 실제 주행 속도는 엄연히 다르니까요. 시간 차이는 여기서 생겼습니다.

■ “화물열차 다닐 수 있다” VS “설계에 반영 안 돼”

국토부는 또 여객 열차만 다닐 수 있고 화물열차는 다닐 수 없도록 선로 설계가 돼 있어 반쪽 노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는 보도 내용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보도의 내용은 올 초 철도 관계자들이 국토부의 국실장들과 가진 자리에서 새로운 노선 설계에 물류 기능이 빠져있는 게 문제라는 지적을 토대로 나온 겁니다.
당시 "미래전략이 있는 거냐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물류 기능 포기하고 이러면 반쪽짜리 철도가 되는 거다"는 지적이 나온 거죠. 간단히 말하자면 화물열차는 무게가 더 나가기 때문에 노선 설계부터 반영돼야 합니다. 여객 열차를 피하기 위한 회피노선도 필요하고요. 그런 게 없으면 여객 열차가 다니지 않는 야간 시간대에 이용해야 하는데 야간에는 통상적으로 노선 점검이 이뤄지는 시간입니다. 올 초 설계에는 이런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국토부는 "화물열차도 가능하도록 선로조건 및 시설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완공 이후에는 현재보다 나은 선로조건에서 화물열차도 더 빠르게 운행할 수 있다"고 해명자료에 썼습니다. 다닐 수 있다가 아니라 다니게 하고 있다는 거죠. 국토부의 또 한 관계자는 올 초 있었던 철도 관계자들과 실무진들과의 만남에서 그런 얘기가 오갔던 점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지금 다시 최근의 설계도를 확보하려 하고 있습니다. 과연 화물열차가 다닐 수 있도록 설계가 반영되었는지를 말이죠. 그리고 보도를 통해 다시 사실 여부를 밝히겠습니다. 보도 이후 많은 분들이 격려와 질책을 함께 해 주셨습니다. 제가 보도한 건 고속철도 개발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명확하게 하자는 겁니다. 앞으로도 고속철도 개발사업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겠습니다. 수천억, 수조 원을 들인 사업들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혹시 불합리한 점은 없는지, 불합리한 이득을 얻는 사람은 없는지 말입니다.
끝으로 국토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준고속철도는 적은 비용으로 고속철도에 버금가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 시스템으로 많은 철도 선진국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본 자료에서 준고속철도를 도입하면 요금은 한 6천 원 정도 인상된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비용 고효율은 누구에게 해당하는 걸까요.
국토부 해명에 대한 해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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