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퍼] “음란물에 내 모습이…” 디지털 낙인의 공포

입력 2015.10.04 (13:28) 수정 2015.10.0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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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 맞다니까. 들어가서 봐."

김은주(가명, 29)씨는 친구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한 파일공유 사이트에 올라온 음란물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얘기가 믿어지지 않았다. 친구는 음란물의 주인공 얼굴을 촬영해 김 씨에게 휴대전화로 전송했다. '아차'하는 순간 지난해 봄 남편과의 일이 떠올랐다. 악몽 같은 삶이 시작됐다.

■ 음란물 영상 확인하니…내 얼굴이

남편과 이혼을 준비하던 김 씨는 이혼숙려기간 중 잠시 남편과 화해했다. 남편은 김 씨와의 잠자리에서 성관계 장면을 촬영하자고 요구했고, 김 씨는 난처했지만 마지못해 이를 들어줬다.

"바로 삭제하라고 했고 남편은 삭제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삭제한 줄 알았죠.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애초에 거절했을 거예요."

하지만 곧 남편과의 관계는 다시 악화했다. 남편과 심한 말다툼을 벌인 다음 날, 남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며칠 뒤 김 씨는 친구에게 동영상의 존재를 듣게 됐다.

김 씨는 집을 벗어날 수 없었다. 거리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동영상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제목이 바뀌어 해외 사이트에까지 동영상이 올랐을 때, 김 씨는 직장을 관뒀다. 딸아이는 한창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남자친구도 아니고 남편이잖아요. 부부관계 하는 건 당연한데 제가 왜 이렇게 숨어서 죄인처럼 지내야 하나요? 가장 걱정되는 건 딸아이가 커서 이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지 않을까, 다른 학부모들한테도 소문이 퍼지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 남편 요구에 마지못해 촬영…유출 뒤 직장 잃어

김 씨처럼 은밀하게 찍었던 성관계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피해를 당한 사례는 꾸준히 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인터넷피해구제센터에 따르면 성관계 동영상 유출 신고는 2013년 1천166건에서 2014년 1천404건, 올해는 8월까지만 2천348건으로 급증 추세다.

성행위 동영상 유출 피해 신고성행위 동영상 유출 피해 신고


방심위 인터넷피해구제센터 박종훈 팀장은 "최근 들어 당사자 몰래 촬영한 영상보다 당사자가 촬영 사실을 알고 찍은 영상이 크게 늘고 있다"며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동영상이 유출돼 인터넷에 유포될 가능성이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에 촬영 자체를 하지 않는 게 유일한 예방책이라는 지적이다.

■ 일상이 된 해킹 위협…아예 촬영 말아야

더욱 큰 문제는 청소년의 경우다. 방심위 인터넷피해구제센터에 접수되는 신고는 대부분 성인이다. 청소년들은 신분 노출을 우려해 센터에 신고를 꺼린다. 대신 동영상을 삭제해주는 전문 업체에 문을 두드린다.

동영상 삭제 전문업체인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의 김호진 대표는 "한 달에 3백여 건의 삭제 문의가 접수되는데 이 가운데 청소년 비중은 60% 정도 된다"고 말했다. 진한 스킨십 사진이나 심지어 남자친구와 성관계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돼 피해를 보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것이다.

김호진 대표김호진 대표


김 대표는 유출 경로를 크게 3가지로 설명했다. 가장 많은 것이 헤어진 남자친구가 복수심에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경우다. 두 번째로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거나 해킹당해 동영상이 유출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자랑하려는 마음에 스스로 야한 사진과 영상을 올리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어떤 경우든 한번 인터넷에 유포된 동영상과 사진은 쉽게 삭제되지 않고 제2, 제3의 피해로 이어진다.

■ 전문 업체 삭제 의뢰 60%가 청소년

이지영(가명, 17)양은 15살이던 중학생 시절 한 20대 남성과 영상 채팅을 했다. 상대 남성은 이 양에게 이른바 '몸캠 채팅'을 하자고 제안했다. '몸캠 채팅'이란 옷을 벗고 하는 음란 영상 채팅을 뜻한다. 처음엔 두려웠지만 둘만의 비밀로 간직하자는 말에 이 양은 컴퓨터 앞에서 옷을 벗고 말았다. 남성은 점점 더 어려운 요구를 해왔다. 이 양이 이를 거절하고 연락을 끊자 협박이 이어졌다. '몸캠 채팅'이 녹화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건 그때였다.

1년 뒤 이 양은 자신의 '몸캠 채팅' 영상을 한 파일공유 사이트에서 확인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망설이는 사이 동영상은 일파만파로 퍼져갔다.

"지금도 계속 올라오고 있더라고요. 어떤 친구들은 '이거 너야?'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아니라고는 하는데 그래도 얼굴이 다 보이니까 다들 눈치챘겠죠."

디지털 낙인디지털 낙인


이런 동영상은 범죄에 이용되기도 한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유혜란 상담사는 "영상을 퍼뜨리겠다고 협박하면 여학생들은 두려움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한다"며 "성폭행 등 2차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동영상 유포를 빌미로 여학생을 협박해 성관계를 맺는 일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여자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에게 나체 사진을 교환하자고 제안한 뒤 이를 가지고 성관계를 요구하는 등 협박한 혐의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피해 학생은 3백여 명에 달했다.

■ ‘몸캠 채팅’…성폭행 등 2차 범죄로 이어져

피해는 여학생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몸캠 채팅'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는 이른바 '몸캠 피싱'에 남학생들도 쉽게 넘어가고 만다.

한신교육연구소 임정혁 소장은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남자 청소년들은 '몸캠 피싱' 범죄자들에겐 손쉬운 표적이 된다"며 "이들이 동영상의 존재를 부모에게 알리고 돈을 뜯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임 소장은 "금욕을 가르치는 성교육이 아닌, 학생들 스스로 분별력과 판단력을 갖도록 하는 성교육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연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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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퍼] “음란물에 내 모습이…” 디지털 낙인의 공포
    • 입력 2015-10-04 13:28:46
    • 수정2015-10-05 00:27:44
    디지털퍼스트
"정말 너 맞다니까. 들어가서 봐."

김은주(가명, 29)씨는 친구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한 파일공유 사이트에 올라온 음란물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얘기가 믿어지지 않았다. 친구는 음란물의 주인공 얼굴을 촬영해 김 씨에게 휴대전화로 전송했다. '아차'하는 순간 지난해 봄 남편과의 일이 떠올랐다. 악몽 같은 삶이 시작됐다.

■ 음란물 영상 확인하니…내 얼굴이

남편과 이혼을 준비하던 김 씨는 이혼숙려기간 중 잠시 남편과 화해했다. 남편은 김 씨와의 잠자리에서 성관계 장면을 촬영하자고 요구했고, 김 씨는 난처했지만 마지못해 이를 들어줬다.

"바로 삭제하라고 했고 남편은 삭제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삭제한 줄 알았죠.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애초에 거절했을 거예요."

하지만 곧 남편과의 관계는 다시 악화했다. 남편과 심한 말다툼을 벌인 다음 날, 남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며칠 뒤 김 씨는 친구에게 동영상의 존재를 듣게 됐다.

김 씨는 집을 벗어날 수 없었다. 거리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동영상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제목이 바뀌어 해외 사이트에까지 동영상이 올랐을 때, 김 씨는 직장을 관뒀다. 딸아이는 한창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남자친구도 아니고 남편이잖아요. 부부관계 하는 건 당연한데 제가 왜 이렇게 숨어서 죄인처럼 지내야 하나요? 가장 걱정되는 건 딸아이가 커서 이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지 않을까, 다른 학부모들한테도 소문이 퍼지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 남편 요구에 마지못해 촬영…유출 뒤 직장 잃어

김 씨처럼 은밀하게 찍었던 성관계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피해를 당한 사례는 꾸준히 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인터넷피해구제센터에 따르면 성관계 동영상 유출 신고는 2013년 1천166건에서 2014년 1천404건, 올해는 8월까지만 2천348건으로 급증 추세다.

성행위 동영상 유출 피해 신고


방심위 인터넷피해구제센터 박종훈 팀장은 "최근 들어 당사자 몰래 촬영한 영상보다 당사자가 촬영 사실을 알고 찍은 영상이 크게 늘고 있다"며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동영상이 유출돼 인터넷에 유포될 가능성이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에 촬영 자체를 하지 않는 게 유일한 예방책이라는 지적이다.

■ 일상이 된 해킹 위협…아예 촬영 말아야

더욱 큰 문제는 청소년의 경우다. 방심위 인터넷피해구제센터에 접수되는 신고는 대부분 성인이다. 청소년들은 신분 노출을 우려해 센터에 신고를 꺼린다. 대신 동영상을 삭제해주는 전문 업체에 문을 두드린다.

동영상 삭제 전문업체인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의 김호진 대표는 "한 달에 3백여 건의 삭제 문의가 접수되는데 이 가운데 청소년 비중은 60% 정도 된다"고 말했다. 진한 스킨십 사진이나 심지어 남자친구와 성관계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돼 피해를 보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것이다.

김호진 대표


김 대표는 유출 경로를 크게 3가지로 설명했다. 가장 많은 것이 헤어진 남자친구가 복수심에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경우다. 두 번째로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거나 해킹당해 동영상이 유출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자랑하려는 마음에 스스로 야한 사진과 영상을 올리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어떤 경우든 한번 인터넷에 유포된 동영상과 사진은 쉽게 삭제되지 않고 제2, 제3의 피해로 이어진다.

■ 전문 업체 삭제 의뢰 60%가 청소년

이지영(가명, 17)양은 15살이던 중학생 시절 한 20대 남성과 영상 채팅을 했다. 상대 남성은 이 양에게 이른바 '몸캠 채팅'을 하자고 제안했다. '몸캠 채팅'이란 옷을 벗고 하는 음란 영상 채팅을 뜻한다. 처음엔 두려웠지만 둘만의 비밀로 간직하자는 말에 이 양은 컴퓨터 앞에서 옷을 벗고 말았다. 남성은 점점 더 어려운 요구를 해왔다. 이 양이 이를 거절하고 연락을 끊자 협박이 이어졌다. '몸캠 채팅'이 녹화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건 그때였다.

1년 뒤 이 양은 자신의 '몸캠 채팅' 영상을 한 파일공유 사이트에서 확인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망설이는 사이 동영상은 일파만파로 퍼져갔다.

"지금도 계속 올라오고 있더라고요. 어떤 친구들은 '이거 너야?'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아니라고는 하는데 그래도 얼굴이 다 보이니까 다들 눈치챘겠죠."

디지털 낙인


이런 동영상은 범죄에 이용되기도 한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유혜란 상담사는 "영상을 퍼뜨리겠다고 협박하면 여학생들은 두려움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한다"며 "성폭행 등 2차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동영상 유포를 빌미로 여학생을 협박해 성관계를 맺는 일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여자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에게 나체 사진을 교환하자고 제안한 뒤 이를 가지고 성관계를 요구하는 등 협박한 혐의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피해 학생은 3백여 명에 달했다.

■ ‘몸캠 채팅’…성폭행 등 2차 범죄로 이어져

피해는 여학생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몸캠 채팅'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는 이른바 '몸캠 피싱'에 남학생들도 쉽게 넘어가고 만다.

한신교육연구소 임정혁 소장은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남자 청소년들은 '몸캠 피싱' 범죄자들에겐 손쉬운 표적이 된다"며 "이들이 동영상의 존재를 부모에게 알리고 돈을 뜯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임 소장은 "금욕을 가르치는 성교육이 아닌, 학생들 스스로 분별력과 판단력을 갖도록 하는 성교육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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