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만나요”…이산가족 내일 첫 상봉

입력 2015.10.19 (17:46) 수정 2015.10.1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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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면 볼 줄 알았다가 60년 넘게 생이별을 하게 된 분들이 많습니다.

60년쯤 되면 그리움도 말라버렸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드디어 내일 금강산에서 1년 8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집니다.

이번에 막냇동생을 만나러 가십니다.

김준겸 어르신 그리고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자리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교수님한테 잠깐 여쭤볼까요?사실 이산가족 상봉이 전에도 한다고 그러다가 중간에 어그러진 적도 있고 그래서 사실 이번에도 걱정을 했는데 다행스럽게 열리게 됐어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일단 2013년 2월 말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고 그동안 1년 8개월 동안 중단되다가 이번에 개최됩니다.

무엇보다도 8월 25일 남북간의 합의에 의해서 이번 합의가 실천된다는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김준겸 할아버지처럼 65년 만에 상봉을 앞두고 있는데.

이번 남북관계 개선에 정말 단초가 되고 실마리가 되기 때문에 저희가 매우 기대가 큽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 막냇동생을 만나러 가신다고요.

처음 헤어졌던 게 아주 어릴 때라고 들었습니다.

언제 헤어지셨어요?

-제가 17살 때고 막냇동생은 1살 때였습니다.

-피붙이네요, 그야말로.

그러면 그게 횟수로는 6.25 전쟁 나고 그 해인가요?

-그렇죠.

그 해에 헤어졌죠.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남쪽으로 내려오시다가 그렇게 됐나요?

-그게 그렇지는 않고 먼저 은율에서 살 당시에.

-황해도.

-황해도 은율이요.

바로 구월산 밑이에요.

-구월산 유격대가 있던 곳.

-거기서 불이 나서 집은 아주 다 타버리고 몸만 나왔죠.

갈 데가 없어서 먼저 송화에서 살던 데 그리로 갔어요.

-지금 피난을 가신 건가요? 전쟁통에 불이 나서?

-피난 겸 갈 데가 없으니까 먼저 살던 곳이 송화군이에요.

그리 갔죠? 외갓집 동네인데.

-막냇동생분은 어리니까 그냥 그 근처에 계시고.

-어머니가 업고 같이 다 가족이 거기로 갔죠.

-그러셨어요.

-그래서 간 날 저녁에 바로 그날이 50년 12월 24일날이에요.

-성탄절 전날이군요.

-그래서 거기서 나는 친구들하고 놀다가 잠이 들었고 또 5촌이 그 당시에 초도로 피난 나갔다가 배를 갖고 자기 가족들을 데리러 나왔어요.

어머니가 그걸 아시고 나를 깨우더라고요.

네 5촌이 가족들을 데리러 나왔는데 너도 같이 피난을 가라.

그래서 잠결에 그냥 입은 채 그대로 5촌 따라 나섰죠.

그게 해변가예요.

새벽 한 3시경 됐습니다, 그때가.

한참 걸어가니까, 한 10리 정도 걸어가니까 거기서 배를 타게 돼서 초도로 건너와서 그때 이별을 했죠.

-그야말로 허겁지겁 작별인사도 어떻게 보면 없이.

-그렇죠.

2, 3일 있다가 다시 들어올 줄 알았죠.

그전에도 2, 3일 만에 피난 나갔다가 돌아오고 또 2, 3일 갔다고 돌아오고.

-그럴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영원히 헤어질 줄은 몰랐죠.

-이번에 부모님 생사도 또 확인을 하셨다고요.

-부모님 생사는 확인을 하지 못했고 연세가 있으니까 다 돌아가신 걸로 인정이 됐죠.

-확인을 한 건 아니지만 연세가 있으시니까.

-이번에는 큰누님하고 누이동생하고 나는 동생이 김준철로 알고 김준철로 신청했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통보가 오기를 김준철은 아니고 김선길로 나와 있더라고요.

동생하고 조카 김영철로 나왔어요.

그래서 나는 그걸 몰랐죠.

-하여튼 지금 만나러 가시는 건 막냇동생하고 조카분을 만나러 가시는 거군요.

그런데 1살 피붙이면.

지금 보면 초로의 노인이 됐을 텐데.

-모르죠.

서로가 모르죠.

-그래도 가슴이 떨려요?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눈 적 없는 동생을 어떻게 보면 만나러 가는 건데.

지금 심정은 어때요? 그래도 가슴이 떨리십니까?-가슴도 떨리도 감개무량하고 엄청나죠, 뭐.

-김준겸 어르신도 동생 얘기하니까 참 17살 그때 얼굴로 돌아간 것 같은 그런 표정을 지으셨는데요.

이번에 만날 가족들마다 사연이 다 절절합니다.

저희가 준비해 봤는데요.

영상 보시죠.

박영득 씨는 누나를 만난다는 생각에 짐 싸는 게 즐겁기만 합니다.

-할 얘기가 뭐냐하면.

살았네, 살았어.

누나 맞아? 누나야? 살았어? 그외에는 없어.

-첫 돌이 지난 직후 헤어진 아버지를 만나는 아들은 어느덧 칠순을 바라봅니다.

-다른 애들은 전부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부르는데 저는 아버지 석 자를 못 불렀으니까.

-어머니 뱃속에서 아버지와 헤어진 오장균 씨는 놋그릇과 신발, 장기알까지 보관해 왔습니다.

-옛날에 우리 아버지 밥그릇이에요, 이게.

-남편이 죽은 줄 알고 40년 넘게 제사까지 지내온 팔순의 부인은 기어서라도 금강산에 가겠다고 하는데요.

-내가 많이 그리고 산 거.

아들 때문에 여태까지 평생을 그냥 산 거 말하고 싶어요.

-65년 전 헤어진 두 딸을 이제야 만나게 된 구상연 할아버지.

두 딸에게 그렇게나 사주고 싶었던 꽃신과 따뜻한 외투를 준비해서 이제 곧 만나러 갑니다.

-65년 전에 전달해 줬어야 될 꽃신을 65년 만에 가지고 가는데.

하여튼 그런 마음마음들이 모여서 이산가족 상봉의 갖가지 사연들이 될 텐데.

이번에 몇 분 정도 만나시는 건가요?

-일단 1, 2차 상봉으로 나누어집니다.

1차 상봉은 북측이 남측 가족을 찾습니다.

98가족이 남측의 394명의 가족을 찾고요.

행사는 남측이 주관을 합니다.

그래서 내일 올라가고요.

그다음에 23일날은 쉬었다가 24일에서 26일까지 2차 상봉은 북측 주관이 하고 이건 남측 방문단, 90가족이 북측 294명의 가족을 찾는.

그래서 1, 2차로 나눠서 상봉이 이루어집니다.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진행되나요?

-금강산에 면회소 건물을 과거에 우리 정부가 지었습니다.

시설이 괜찮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숙박을 하고요.

과거보다 달라진 점은 면회시간을 우리측의 요청으로 길게 잡았습니다.

그래서 12시간의 상봉 시간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2시간씩 6번으로 12시간 정도인 거죠.

-그렇습니다.

-저도 금강산에 취재를 한번 갔습니다마는 면회소는 사실 저는 그때는 보지는 못했는데.

저렇게 저기도 함께 돌아다닐 수도 있나요?

-그렇습니다.

쭉 아무래도 면회소 안에서만 만나면 좀 답답하니까 야외도 가고요.

또 도시락으로 식사도 하고 둘러보면서 옛날 고향 생각도 하고.

그래서 면회 장소는 다양합니다.

-금강산이 지금 바위산이기는 하지만 단풍이 지금 한창 들었지 않을까 생각도 들어요.

지금 고향이 황해도시니까 사실 강원도잖아요.

이번에 가시는 건.

금강산은 전에 가보신 적이 있어요?

-한 15년 전에 한번 가봤어요.

-그러셨군요.

지금 갖고 오신 건 뭐예요? 저희가 그렇지 않아도 옆자리에 갖다놓으셔서 뭔가 하고 보고 있었는데.

-동생한테 전해 주려고.

-그때 헤어질 때 1살이었던 동생에게.

-이번에 가족 만나러 가신다고 3대가 모여서 준비했다고.

-따뜻하게 입으라고 털 있는 걸로.

-동생에게 줄 옷이군요.

-외투.

-여러 가지로.

-이런 외투를 전달해도 괜찮은 거죠?

-옷가지, 의류품은 많이 전달이.

-장갑도 있으시고.

바리바리 그래도 많이 싸셨네요.

-이건 뭐예요?

-랜턴인데.

-손전등이군요.

-전지약이 안 들어가고 태양열로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력사정이 좀 어렵더라도, 이게 태양열 전지다.

-태양열만 받으면 쓸 수 있으니까.

-참 요긴하게 쓰이겠네요.

-그리고 내복, 치약, 칫솔.

-그야말로 필요한 일용품들은 다 갖고 가고 싶은 심정이실 거예요.

-바지 같은 거는 거기서는 마음대로 사입지 못하잖아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고 몇 가지 가져왔어요.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만나고 나시면 사실 이산가족이 1회로 정해져 있잖아요.

앞으로 정례화하기로 했는데 다들 연세들도 많으시고 하니까 어떻게 보십니까, 앞으로?

-김준겸 할아버지같이 이번에 만나시는 분들은 사실은 이산가족을 위해서 적십자사에서 컴퓨터 추첨을 해서 당첨되는데.

정말 로또상봉이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숫자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고령화되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시켜야 하지 않느냐.

사실 이번에 가족 중에서도 부자지간, 부모와 자식간에 만나는 가족은 다섯 가족에 불과합니다.

우리 김준겸 할아버지처럼 주로 형제간, 자매간, 조카, 삼촌간의 만남이죠.

고령화 이산가족 상봉이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과연 할 수 있겠느냐.

사망 시기가 가까워지기 때문에.

그래서 정부가 제도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되는데 북한측과 협상을 아주 제대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망이 있으시면 한말씀만 해 주세요.

-이번에 만나는 것도 대통령과 여러 각료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또 적십자사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또 북한의 적십자사분들께도 참 감사를 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조심히 잘 만나고 돌아오십시오.

-앞으로 이번에 만나고 나서도 또 한 2년 정도는 있다가 또 한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2년이 아니고 원하시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되어야겠죠.

-그런 환경은 안 되겠고 한 2년 정도만 있다가 또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마음이 전달이 될 겁니다.

하여튼 우리 이산가족 문제는 인권 문제로 남북이 정치적 상황과 별개로 정례화됐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시사진단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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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년 만에 만나요”…이산가족 내일 첫 상봉
    • 입력 2015-10-19 17:48:03
    • 수정2015-10-19 20:43:07
    시사진단
-며칠 뒤면 볼 줄 알았다가 60년 넘게 생이별을 하게 된 분들이 많습니다.

60년쯤 되면 그리움도 말라버렸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드디어 내일 금강산에서 1년 8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집니다.

이번에 막냇동생을 만나러 가십니다.

김준겸 어르신 그리고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자리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교수님한테 잠깐 여쭤볼까요?사실 이산가족 상봉이 전에도 한다고 그러다가 중간에 어그러진 적도 있고 그래서 사실 이번에도 걱정을 했는데 다행스럽게 열리게 됐어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일단 2013년 2월 말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고 그동안 1년 8개월 동안 중단되다가 이번에 개최됩니다.

무엇보다도 8월 25일 남북간의 합의에 의해서 이번 합의가 실천된다는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김준겸 할아버지처럼 65년 만에 상봉을 앞두고 있는데.

이번 남북관계 개선에 정말 단초가 되고 실마리가 되기 때문에 저희가 매우 기대가 큽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 막냇동생을 만나러 가신다고요.

처음 헤어졌던 게 아주 어릴 때라고 들었습니다.

언제 헤어지셨어요?

-제가 17살 때고 막냇동생은 1살 때였습니다.

-피붙이네요, 그야말로.

그러면 그게 횟수로는 6.25 전쟁 나고 그 해인가요?

-그렇죠.

그 해에 헤어졌죠.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남쪽으로 내려오시다가 그렇게 됐나요?

-그게 그렇지는 않고 먼저 은율에서 살 당시에.

-황해도.

-황해도 은율이요.

바로 구월산 밑이에요.

-구월산 유격대가 있던 곳.

-거기서 불이 나서 집은 아주 다 타버리고 몸만 나왔죠.

갈 데가 없어서 먼저 송화에서 살던 데 그리로 갔어요.

-지금 피난을 가신 건가요? 전쟁통에 불이 나서?

-피난 겸 갈 데가 없으니까 먼저 살던 곳이 송화군이에요.

그리 갔죠? 외갓집 동네인데.

-막냇동생분은 어리니까 그냥 그 근처에 계시고.

-어머니가 업고 같이 다 가족이 거기로 갔죠.

-그러셨어요.

-그래서 간 날 저녁에 바로 그날이 50년 12월 24일날이에요.

-성탄절 전날이군요.

-그래서 거기서 나는 친구들하고 놀다가 잠이 들었고 또 5촌이 그 당시에 초도로 피난 나갔다가 배를 갖고 자기 가족들을 데리러 나왔어요.

어머니가 그걸 아시고 나를 깨우더라고요.

네 5촌이 가족들을 데리러 나왔는데 너도 같이 피난을 가라.

그래서 잠결에 그냥 입은 채 그대로 5촌 따라 나섰죠.

그게 해변가예요.

새벽 한 3시경 됐습니다, 그때가.

한참 걸어가니까, 한 10리 정도 걸어가니까 거기서 배를 타게 돼서 초도로 건너와서 그때 이별을 했죠.

-그야말로 허겁지겁 작별인사도 어떻게 보면 없이.

-그렇죠.

2, 3일 있다가 다시 들어올 줄 알았죠.

그전에도 2, 3일 만에 피난 나갔다가 돌아오고 또 2, 3일 갔다고 돌아오고.

-그럴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영원히 헤어질 줄은 몰랐죠.

-이번에 부모님 생사도 또 확인을 하셨다고요.

-부모님 생사는 확인을 하지 못했고 연세가 있으니까 다 돌아가신 걸로 인정이 됐죠.

-확인을 한 건 아니지만 연세가 있으시니까.

-이번에는 큰누님하고 누이동생하고 나는 동생이 김준철로 알고 김준철로 신청했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통보가 오기를 김준철은 아니고 김선길로 나와 있더라고요.

동생하고 조카 김영철로 나왔어요.

그래서 나는 그걸 몰랐죠.

-하여튼 지금 만나러 가시는 건 막냇동생하고 조카분을 만나러 가시는 거군요.

그런데 1살 피붙이면.

지금 보면 초로의 노인이 됐을 텐데.

-모르죠.

서로가 모르죠.

-그래도 가슴이 떨려요?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눈 적 없는 동생을 어떻게 보면 만나러 가는 건데.

지금 심정은 어때요? 그래도 가슴이 떨리십니까?-가슴도 떨리도 감개무량하고 엄청나죠, 뭐.

-김준겸 어르신도 동생 얘기하니까 참 17살 그때 얼굴로 돌아간 것 같은 그런 표정을 지으셨는데요.

이번에 만날 가족들마다 사연이 다 절절합니다.

저희가 준비해 봤는데요.

영상 보시죠.

박영득 씨는 누나를 만난다는 생각에 짐 싸는 게 즐겁기만 합니다.

-할 얘기가 뭐냐하면.

살았네, 살았어.

누나 맞아? 누나야? 살았어? 그외에는 없어.

-첫 돌이 지난 직후 헤어진 아버지를 만나는 아들은 어느덧 칠순을 바라봅니다.

-다른 애들은 전부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부르는데 저는 아버지 석 자를 못 불렀으니까.

-어머니 뱃속에서 아버지와 헤어진 오장균 씨는 놋그릇과 신발, 장기알까지 보관해 왔습니다.

-옛날에 우리 아버지 밥그릇이에요, 이게.

-남편이 죽은 줄 알고 40년 넘게 제사까지 지내온 팔순의 부인은 기어서라도 금강산에 가겠다고 하는데요.

-내가 많이 그리고 산 거.

아들 때문에 여태까지 평생을 그냥 산 거 말하고 싶어요.

-65년 전 헤어진 두 딸을 이제야 만나게 된 구상연 할아버지.

두 딸에게 그렇게나 사주고 싶었던 꽃신과 따뜻한 외투를 준비해서 이제 곧 만나러 갑니다.

-65년 전에 전달해 줬어야 될 꽃신을 65년 만에 가지고 가는데.

하여튼 그런 마음마음들이 모여서 이산가족 상봉의 갖가지 사연들이 될 텐데.

이번에 몇 분 정도 만나시는 건가요?

-일단 1, 2차 상봉으로 나누어집니다.

1차 상봉은 북측이 남측 가족을 찾습니다.

98가족이 남측의 394명의 가족을 찾고요.

행사는 남측이 주관을 합니다.

그래서 내일 올라가고요.

그다음에 23일날은 쉬었다가 24일에서 26일까지 2차 상봉은 북측 주관이 하고 이건 남측 방문단, 90가족이 북측 294명의 가족을 찾는.

그래서 1, 2차로 나눠서 상봉이 이루어집니다.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진행되나요?

-금강산에 면회소 건물을 과거에 우리 정부가 지었습니다.

시설이 괜찮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숙박을 하고요.

과거보다 달라진 점은 면회시간을 우리측의 요청으로 길게 잡았습니다.

그래서 12시간의 상봉 시간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2시간씩 6번으로 12시간 정도인 거죠.

-그렇습니다.

-저도 금강산에 취재를 한번 갔습니다마는 면회소는 사실 저는 그때는 보지는 못했는데.

저렇게 저기도 함께 돌아다닐 수도 있나요?

-그렇습니다.

쭉 아무래도 면회소 안에서만 만나면 좀 답답하니까 야외도 가고요.

또 도시락으로 식사도 하고 둘러보면서 옛날 고향 생각도 하고.

그래서 면회 장소는 다양합니다.

-금강산이 지금 바위산이기는 하지만 단풍이 지금 한창 들었지 않을까 생각도 들어요.

지금 고향이 황해도시니까 사실 강원도잖아요.

이번에 가시는 건.

금강산은 전에 가보신 적이 있어요?

-한 15년 전에 한번 가봤어요.

-그러셨군요.

지금 갖고 오신 건 뭐예요? 저희가 그렇지 않아도 옆자리에 갖다놓으셔서 뭔가 하고 보고 있었는데.

-동생한테 전해 주려고.

-그때 헤어질 때 1살이었던 동생에게.

-이번에 가족 만나러 가신다고 3대가 모여서 준비했다고.

-따뜻하게 입으라고 털 있는 걸로.

-동생에게 줄 옷이군요.

-외투.

-여러 가지로.

-이런 외투를 전달해도 괜찮은 거죠?

-옷가지, 의류품은 많이 전달이.

-장갑도 있으시고.

바리바리 그래도 많이 싸셨네요.

-이건 뭐예요?

-랜턴인데.

-손전등이군요.

-전지약이 안 들어가고 태양열로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력사정이 좀 어렵더라도, 이게 태양열 전지다.

-태양열만 받으면 쓸 수 있으니까.

-참 요긴하게 쓰이겠네요.

-그리고 내복, 치약, 칫솔.

-그야말로 필요한 일용품들은 다 갖고 가고 싶은 심정이실 거예요.

-바지 같은 거는 거기서는 마음대로 사입지 못하잖아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고 몇 가지 가져왔어요.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만나고 나시면 사실 이산가족이 1회로 정해져 있잖아요.

앞으로 정례화하기로 했는데 다들 연세들도 많으시고 하니까 어떻게 보십니까, 앞으로?

-김준겸 할아버지같이 이번에 만나시는 분들은 사실은 이산가족을 위해서 적십자사에서 컴퓨터 추첨을 해서 당첨되는데.

정말 로또상봉이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숫자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고령화되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시켜야 하지 않느냐.

사실 이번에 가족 중에서도 부자지간, 부모와 자식간에 만나는 가족은 다섯 가족에 불과합니다.

우리 김준겸 할아버지처럼 주로 형제간, 자매간, 조카, 삼촌간의 만남이죠.

고령화 이산가족 상봉이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과연 할 수 있겠느냐.

사망 시기가 가까워지기 때문에.

그래서 정부가 제도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되는데 북한측과 협상을 아주 제대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망이 있으시면 한말씀만 해 주세요.

-이번에 만나는 것도 대통령과 여러 각료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또 적십자사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또 북한의 적십자사분들께도 참 감사를 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조심히 잘 만나고 돌아오십시오.

-앞으로 이번에 만나고 나서도 또 한 2년 정도는 있다가 또 한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2년이 아니고 원하시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되어야겠죠.

-그런 환경은 안 되겠고 한 2년 정도만 있다가 또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마음이 전달이 될 겁니다.

하여튼 우리 이산가족 문제는 인권 문제로 남북이 정치적 상황과 별개로 정례화됐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시사진단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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