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짧은 만남 긴 이별” 2박 3일의 기록

입력 2015.10.24 (07:49) 수정 2015.10.25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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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1년 8개월 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금강산에서 재개됐습니다.

사흘간의 1차 상봉 행사에 이어 24일부터는 우리 측 이산가족들이 북녘의 가족을 만나는 2차 행사가 시작되는데요.

오늘 ‘특집 남북의 창’에서는 진한 감동과 아쉬움의 여운을 남겼던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서울과 개성에서 동시에 열린 만월대 전시회 소식 집중 소개해드립니다.

먼저 2박 3일, 눈물의 상봉 장면을 영상으로 기록했습니다.

이현정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올해 여든 다섯 살의 이순규 할머니.

결혼한 지 일곱 달 꿈같은 신혼 시절, 남편과 헤어진 뒤 65년을 홀로 살았습니다.

<녹취> 이순규(85살/北 남편 상봉 예정) : "결혼하고 7개월을 못 살았어. 동네 사람이 한 10일만 훈련받고 보내준다고 하고 (남편을) 데려간 거야, 그게 끝이야. 돌아가신 줄 알고 제사를 지냈지. 한 40년을 지냈어."

이제 엿새 후면 꿈에 그리던 남편을 만나게 됩니다.

<녹취> "(기분이) 어떻다고 표현할 수가 없어요. (많이 기다리셨죠?) 말도 못하죠. 평생을 기다리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남기고 간 구두로 그리움을 달래야 했던 아들은 다가올 만남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납니다.

<녹취> 오장균(65살/北 아버지 상봉 예정) : "65년이라는 세월을 한꺼번에 표현하기는 사실 힘들고, 아버지라고 하는 그 이름을 불러보게 됐다는 그것이 정말 좋고요. 아,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

이른 아침, 강원도 속초의 이산가족 상봉단 숙소.

지팡이를 짚고 휠체어에 몸을 실은 이산가족들이 속속 도착합니다.

남쪽 최고령 95살 김남규 할아버지도 휠체어를 탄 채 북녘의 동생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녹취> 김남규(95살/北 여동생 상봉 예정) : "(동생 만나니까 기분 어떠세요?) 좋죠."

어느 누구 하나 가슴 아프지 않은 사연이 있을까...

<녹취> 박순하(78살/北 오빠 상봉 예정) : "아이고, 우리 오빠가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있었구나 하고 눈물이 나와."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을 만나기 위해 이순규 할머니도 아들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결혼 선물로 주고 싶었던 시계와 구두를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녹취> 이순규(85살, 北 남편 상봉 예정) : "결혼할 때 구두를 신었기 때문에 내 일생이 거기에 묻힌 거 아니야. 결혼할 때는 시계 같은 게 시골에 별로 없으니까..."

<녹취> "이것 내려라."

한 번도 뵌 적 없는 아버지를 위해 선물 꾸러미를 한 가득 싣고 온 남쪽의 아들...

<녹취> 손종운(67살/北 아버지 상봉 예정) : "모르겠어요. 나 자신도...(아버지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옷 종류하고 생활필수품, 내의 종류 그런 거 (챙겨) 왔습니다."

무엇을 준들 아까울까요.

하지만 한 가족에게 허락된 분량은 여행가방 두 개..

그리운 마음까지 꾹꾹 눌러 담아,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챙겨 왔습니다.

<녹취> "여자 내복 2개, 할아버지 내복 2개, 의약품..."

과자와 사탕은 물론, 영양제, 약품에 라면까지... 선물 목록이 다양합니다.

<녹취> "(여기 라면이 많은데 왜 라면을 많이 사셨어요?) 우리 동생들이 많이 사서...라면 좀 먹어보라고요."

가족을 만난다는 설렘이 너무 컸던 걸까요...

혈압이 올라가는 등 가벼운 이상 증상을 호소하는 어르신들도 나타납니다.

<녹취> 이옥연(87살/北 남편 상봉 예정) : "(남편이) 살아있다고 기별을 들어도 참말인가 싶은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나를 마음 놓으라고 하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했죠."

상봉을 앞두고 하루 앞서 모인 남쪽의 389명의 이산가족들...

내일이면 가족을 만난다는 부푼 기대감 때문일까요.

밤늦도록 숙소의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상봉 날 아침.

이른 아침부터 숙소 앞이 분주한데요.

밤사이 천식 증세가 악화된 김순탁 할머니가 결국 구급차 신세를 지게 된 겁니다.

<녹취> 김순탁(77살/北 오빠 상봉 예정) : "내가 (건강이) 이렇다고 안 오려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안 보면 다시 못 볼 것 같아..."

허릿병이 도진 여든 세 살의 염진례 할머니도 끝내 구급차로 금강산에 가기로 했습니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오빠를 만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이를 악물고 구급차에 몸을 싣습니다.

다른 이산가족들도 서둘러 금강산행 버스에 올라탑니다.

<녹취> 신판례(82살/北 오빠 상봉 예정) :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녹취> 김남규(95살/北 동생 상봉 예정) : "기분 좋죠. 첫 만남이요? 반가운데 뭐 인사말 해야지."

이산가족들을 실은 16대의 버스가 1년 8개월 만에 군사 분계선을 넘어 북녘 땅 금강산으로 향합니다.

그렇게 채 한 시간도 안 돼 도착한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넓디 넓은 상봉장 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북녘의 가족을 기다리는 이산가족들.

잠시 뒤 상봉장의 문으로 그리웠던 얼굴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냅니다.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가요.

마침내 남과 북으로 헤어졌던 혈육이 65년 만에 만났습니다.

<녹취> "아이고, 오빠야..."

<녹취> 김복순(76살/南 오빠 상봉) : "우리는 오빠 사랑도 못 받고 자랐어. 아이고, 어쩌면 좋아..."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끌려간 오빠를 한평생 그리며 살아온 여동생들.

세 여동생을 살뜰히 챙겼던 기억 속 자상한 오빠는 어느새 구순을 앞둔 노인이 됐습니다.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가슴 속 한.

함께 하지 못한 형제 생각에 눈물이 절로 납니다.

<녹취> "얘가 복녀잖아. (얘가 복녀야?) (내가 복순이지...)"

벅찬 기대를 안고 상봉길에 올랐던 이순규 할머니도 남편 오인세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녹취>이순규 (85살/南 남편 상봉) :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요."

태중에 헤어져 처음 아버지의 얼굴을 본 아들은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불러 봅니다.

<녹취> 오장균(65살/南 아버지 상봉) : "반갑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있다.) 65년 만입니다. 저는 이제 아버지 없는 자식이 아니고 아버지 있는 자식으로 당당하게 서겠습니다."

<녹취> 오인세(83살/北 부인·아들 상봉) : "항상 내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단 말이야. (안 잊어버리고?) 그럼, 왜 잊어버려."

<녹취> "아이고, 살았어, 살았어."

상봉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

전쟁 때 헤어진 누나를 만난 박용득 할아버지 삼형제인데요.

<녹취>박용득(81살/南 누나 상봉) : "얘가 막내야 막내, 핏덩어리."

젖먹이였던 막내는 일흔이 넘어서야, 처음 누나를 불러 봅니다.

<녹취> "누나 봤다. 누나 봤어. 누나... 누나 봤다!"

<녹취> 신연자(61살/南 아버지 상봉) : "우리 아버지구나!"

환갑을 훌쩍 넘겨서야 생이별한 아버지를 처음 보는 딸은 울음을 참지 못합니다.

거동이 어려워 참석하지 못한 87살의 노모가 빠진 자리여서 가슴은 더욱 미어집니다.

<녹취> 신연자(61살/南 아버지 상봉) : "진짜 고마워요, 아버지. 오래 살아주셔서."

길고 길었던 기다림... 켜켜이 쌓였던 그리움을 달래기엔 2시간의 만남이 너무도 짧게만 느껴집니다.

이윽고 시작된 60여 년만의 첫 저녁상 서먹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는 어깨춤을 추고... 눈물 대신 술 한 잔을 들이킬 여유도 생겼습니다.

이 만남이 꿈인지 생시인지, 자꾸만 묻고 싶습니다.

<녹취> "내가 누구에요? (흥순이 딸, 흥순이 딸.)"

상봉의 기쁨에 절로 술이 넘어가고 외삼촌의 건강이 걱정되는 조카는 술잔을 슬며시 뺏어드는데요.

이렇게, 꿈같은 상봉 첫 날이 저물어 갑니다.

모두 여섯 시간, 세 차례의 상봉 기회가 주어지는 둘째 날.

대동강 맥주와 들쭉술에 정갈한 북한식 반찬들.

북쪽이 준비한 점심 식사 자리입니다

한복을 곱게 입은 북한 여성 안내원들이 밝은 표정으로 이산가족들을 맞이합니다

<녹취>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남쪽 가족에 이어 서둘러 상봉장으로 오는 북쪽 이산가족들.

그런데 갑자기 한 할아버지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맥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습니다.

주변 모두 가슴이 철렁해진 상황.

하지만 할아버지는 금세 몸을 추스르더니 서둘러 상봉장으로 향합니다.

재회 하루 만에 한결 가까워진 가족들...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보따리를 풉니다.

<녹취> "건강하세요!"

첫 만남에서 평생 가슴에 품어온 그리움의 한을 쏟아냈던 4남매는 오늘은 축배를 들며 여유 있게 재회의 기쁨을 만끽합니다.

<녹취> "아버지 (술)주면 안 돼. 조금만, 조금만. 안 돼..."

술을 뺏고 큰 아버지에게 연신 음식을 먹여주는 조카 며느리.

<녹취> 이경의(큰아버지 상봉) : "이것 조금만... 건강하세요, 우리 큰아버지 최고! 아프지 말고"

마주 보며 웃다가도 금세 목이 메는 두 사람 할아버지의 코끝이 붉어지고 조카며느리도 이내 흐느낍니다.

팔순을 넘긴 오인세, 이순규 부부도 마치 새신랑 새신부로 되돌아간 듯 다정하기만 합니다.

음식을 남편 접시에 놓아주고 포도주도 따라주며 서로를 살뜰히 챙깁니다.

<녹취> 오인세(83살/北 부인·아들 상봉) : "(우리 어머니 괴롭히지 마세요.) 내가 사랑해서 그래, 사랑해서."

아버지를 만난 지 하루만에 칠순을 바라보는 아들은 재롱둥이가 됐습니다.

<녹취> 오장균 65살(南 아버지 상봉) : "만나니 반갑고, 헤어지자니 슬프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아버지."

오찬 상봉 직후 진행된 2번째 단체 상봉. 상봉장 한 가운데서 익숙한 옛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딸은 또 한 번 노래를 청합니다.

<녹취> 이정숙(68살/南 아버지 상봉) : "우리가 이제 남한으로 가면 아버지 소리 못 듣잖아요. 집에 가서 들을 거니까 아버지가 노래 한 번만 더 해 주세요."

딸의 마음을 아는 아버지는 쉰 목소리로 또 노래를 부릅니다.

벌써 이별을 준비하는 리한식 할아버지는 아까운 시간을 쪼개 종이에 얼굴을 묻고 묵묵히 그림을 그립니다.

무려 40분을 꼬박 들여 정성을 다해 그려낸 건 꿈에서도 잊지 못했던 고향집.

북녘의 형을 기억하기 위해 동생이 청한 선물이었습니다.

<녹취> 이종인(55살/南 형제 상봉) : "이 (상봉)시간이 굉장히 아깝지만 그래도 형님한테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에 내일은 뭐 부탁도 못하고 해서 형님이 옛날에 살던 집을 한 번 그려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온 정성을 다해 마지막 글자 한 획까지 힘주어 완성하는 큰 형의 정성이 동생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녹취> 이종인(55살/南 형제 상봉) : "형님 제가 이거 간수 잘할게요. 언제 뵐지 모르지만 그림 보면서 형님 생각할게요."

지그시 바라보기만 하던 구순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꼭 안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은 사진으로 영원히 기록됐습니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상봉의 시간.

<녹취> 상봉장 안내방송 : "남측 가족 어르신들은 자리에 앉아 주시고요. 북측 가족 어르신들은 저녁 식사 맛있게 잘 하시고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놓고 싶진 않은 손을 애써 놓으며 상봉장을 나가는 아버지를 달래는 딸.

<녹취> "아버지 오늘 저녁 편안하게 주무시고요. 내일 아침에 오세요."

이제 내일 단 한 차례의 상봉만을 남겨둔 가족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작별의 시간이 가까워짐을 느낍니다.

상봉 3일째, 끝내 마지막 상봉이자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누나와 팔씨름도 해 보고.

<녹취> "업혀요. 어서 업혀"

큰누나를 처음 본 날 만세를 부르며 오열했던 세 형제들은 눈물대신 어깨춤으로 헤어질 누나를 위로합니다.

밤새워 쓴 아들의 편지가 아버지의 마음을 울리고.

<녹취> 채훈식(88살/南 아들 상봉) : "정말 고맙다."

고향 노래도 함께 부르고 모두 또 만날 것을 다짐해 보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돌려 세우진 못합니다.

전날 아버지의 노래 선물을 받았던 이정숙씨는 위로 차 들른 북측 상봉단장에게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해봅니다.

<녹취> "(상봉)단장님, 저도 좀 (북한에) 초청해주세요. 우리아버지 다시 한 번 만나게 약속 좀 해주세요."

<녹취> "이제 10분 후에 작별상봉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녹취> "아버지하고 이렇게 만나는 게 끝이래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아버지한테... 큰 절을 할게요."

이제 작별의 큰 절을 올릴 시간.

<녹취> 이정숙(68살/南 아버지 상봉) : "아버지 건강하시고 또 만날 때까지 건강하세요.(굳세게 살아야 해.)"

헤어지는 아버지께 딸은 이별의 징표로 손수건을 건넵니다. .

이별의 시간... 북녘 가족이 버스에 올라타면서 면회소 앞마당은 눈물바다로 변합니다.

일초라도 더 가족을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이산가족들...

<녹취> "얼굴 좀 봐봐."

<녹취> "오빠하고 고모하고 건강해야 돼. 언제 나중에 또 만나더라도... 언제가 될지 모르겠네."

<녹취> "건강하세요. 조카님 잘 가고."

손바닥 만 한 창틈으로 편지를 넣고 아버지 얼굴을 매만지는 아들.

누나의 작은 손에 매달린 세 형제는 맞잡은 손을 놓지 못합니다.

구순의 아버지를 보내는 딸은 잠시라도 시간을 붙들고 싶습니다.

<녹취> "아버지..."

눈물, 또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60여년의 기다림 그러나 2박 3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이산가족들이 돌아옵니다.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고 상봉의 행운을 누렸지만 또 다시 생이별한 이산가족들은 만감이 교차합니다.

<녹취> 염진례(83살/南 오빠 상봉) : "열아홉 살에 나가서... 얼마나 반가워요. 돌아가신 줄 알았더니. 원 없습니다."

<녹취> 김기주(75살/南 형 상봉) : "만날 때는 기쁘지만 헤어지는 걸 생각하니 착잡하고 그래요."

<녹취> 조주찬(83살/南 형수 상봉) : "너무 짧아. 근데 지난번에도 그렇고 전부 빨리 통일이 돼야 되는데 이거 큰일 났습니다."

오늘 2차 상봉에 나선 우리 이산가족은 90명.

1차 때와 마찬가지로 2박 3일 동안 6차례 12시간 동안 북녘 가족을 만납니다.

혈육을 지척에 두고도 60년이 넘게 가슴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이산가족들...

이번 상봉행사가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가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이산가족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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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한반도] “짧은 만남 긴 이별” 2박 3일의 기록
    • 입력 2015-10-24 08:19:02
    • 수정2015-10-25 05:51:49
    남북의 창
<앵커 멘트>

1년 8개월 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금강산에서 재개됐습니다.

사흘간의 1차 상봉 행사에 이어 24일부터는 우리 측 이산가족들이 북녘의 가족을 만나는 2차 행사가 시작되는데요.

오늘 ‘특집 남북의 창’에서는 진한 감동과 아쉬움의 여운을 남겼던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서울과 개성에서 동시에 열린 만월대 전시회 소식 집중 소개해드립니다.

먼저 2박 3일, 눈물의 상봉 장면을 영상으로 기록했습니다.

이현정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올해 여든 다섯 살의 이순규 할머니.

결혼한 지 일곱 달 꿈같은 신혼 시절, 남편과 헤어진 뒤 65년을 홀로 살았습니다.

<녹취> 이순규(85살/北 남편 상봉 예정) : "결혼하고 7개월을 못 살았어. 동네 사람이 한 10일만 훈련받고 보내준다고 하고 (남편을) 데려간 거야, 그게 끝이야. 돌아가신 줄 알고 제사를 지냈지. 한 40년을 지냈어."

이제 엿새 후면 꿈에 그리던 남편을 만나게 됩니다.

<녹취> "(기분이) 어떻다고 표현할 수가 없어요. (많이 기다리셨죠?) 말도 못하죠. 평생을 기다리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남기고 간 구두로 그리움을 달래야 했던 아들은 다가올 만남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납니다.

<녹취> 오장균(65살/北 아버지 상봉 예정) : "65년이라는 세월을 한꺼번에 표현하기는 사실 힘들고, 아버지라고 하는 그 이름을 불러보게 됐다는 그것이 정말 좋고요. 아,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

이른 아침, 강원도 속초의 이산가족 상봉단 숙소.

지팡이를 짚고 휠체어에 몸을 실은 이산가족들이 속속 도착합니다.

남쪽 최고령 95살 김남규 할아버지도 휠체어를 탄 채 북녘의 동생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녹취> 김남규(95살/北 여동생 상봉 예정) : "(동생 만나니까 기분 어떠세요?) 좋죠."

어느 누구 하나 가슴 아프지 않은 사연이 있을까...

<녹취> 박순하(78살/北 오빠 상봉 예정) : "아이고, 우리 오빠가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있었구나 하고 눈물이 나와."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을 만나기 위해 이순규 할머니도 아들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결혼 선물로 주고 싶었던 시계와 구두를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녹취> 이순규(85살, 北 남편 상봉 예정) : "결혼할 때 구두를 신었기 때문에 내 일생이 거기에 묻힌 거 아니야. 결혼할 때는 시계 같은 게 시골에 별로 없으니까..."

<녹취> "이것 내려라."

한 번도 뵌 적 없는 아버지를 위해 선물 꾸러미를 한 가득 싣고 온 남쪽의 아들...

<녹취> 손종운(67살/北 아버지 상봉 예정) : "모르겠어요. 나 자신도...(아버지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옷 종류하고 생활필수품, 내의 종류 그런 거 (챙겨) 왔습니다."

무엇을 준들 아까울까요.

하지만 한 가족에게 허락된 분량은 여행가방 두 개..

그리운 마음까지 꾹꾹 눌러 담아,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챙겨 왔습니다.

<녹취> "여자 내복 2개, 할아버지 내복 2개, 의약품..."

과자와 사탕은 물론, 영양제, 약품에 라면까지... 선물 목록이 다양합니다.

<녹취> "(여기 라면이 많은데 왜 라면을 많이 사셨어요?) 우리 동생들이 많이 사서...라면 좀 먹어보라고요."

가족을 만난다는 설렘이 너무 컸던 걸까요...

혈압이 올라가는 등 가벼운 이상 증상을 호소하는 어르신들도 나타납니다.

<녹취> 이옥연(87살/北 남편 상봉 예정) : "(남편이) 살아있다고 기별을 들어도 참말인가 싶은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나를 마음 놓으라고 하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했죠."

상봉을 앞두고 하루 앞서 모인 남쪽의 389명의 이산가족들...

내일이면 가족을 만난다는 부푼 기대감 때문일까요.

밤늦도록 숙소의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상봉 날 아침.

이른 아침부터 숙소 앞이 분주한데요.

밤사이 천식 증세가 악화된 김순탁 할머니가 결국 구급차 신세를 지게 된 겁니다.

<녹취> 김순탁(77살/北 오빠 상봉 예정) : "내가 (건강이) 이렇다고 안 오려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안 보면 다시 못 볼 것 같아..."

허릿병이 도진 여든 세 살의 염진례 할머니도 끝내 구급차로 금강산에 가기로 했습니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오빠를 만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이를 악물고 구급차에 몸을 싣습니다.

다른 이산가족들도 서둘러 금강산행 버스에 올라탑니다.

<녹취> 신판례(82살/北 오빠 상봉 예정) :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녹취> 김남규(95살/北 동생 상봉 예정) : "기분 좋죠. 첫 만남이요? 반가운데 뭐 인사말 해야지."

이산가족들을 실은 16대의 버스가 1년 8개월 만에 군사 분계선을 넘어 북녘 땅 금강산으로 향합니다.

그렇게 채 한 시간도 안 돼 도착한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넓디 넓은 상봉장 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북녘의 가족을 기다리는 이산가족들.

잠시 뒤 상봉장의 문으로 그리웠던 얼굴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냅니다.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가요.

마침내 남과 북으로 헤어졌던 혈육이 65년 만에 만났습니다.

<녹취> "아이고, 오빠야..."

<녹취> 김복순(76살/南 오빠 상봉) : "우리는 오빠 사랑도 못 받고 자랐어. 아이고, 어쩌면 좋아..."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끌려간 오빠를 한평생 그리며 살아온 여동생들.

세 여동생을 살뜰히 챙겼던 기억 속 자상한 오빠는 어느새 구순을 앞둔 노인이 됐습니다.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가슴 속 한.

함께 하지 못한 형제 생각에 눈물이 절로 납니다.

<녹취> "얘가 복녀잖아. (얘가 복녀야?) (내가 복순이지...)"

벅찬 기대를 안고 상봉길에 올랐던 이순규 할머니도 남편 오인세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녹취>이순규 (85살/南 남편 상봉) :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요."

태중에 헤어져 처음 아버지의 얼굴을 본 아들은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불러 봅니다.

<녹취> 오장균(65살/南 아버지 상봉) : "반갑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있다.) 65년 만입니다. 저는 이제 아버지 없는 자식이 아니고 아버지 있는 자식으로 당당하게 서겠습니다."

<녹취> 오인세(83살/北 부인·아들 상봉) : "항상 내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단 말이야. (안 잊어버리고?) 그럼, 왜 잊어버려."

<녹취> "아이고, 살았어, 살았어."

상봉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

전쟁 때 헤어진 누나를 만난 박용득 할아버지 삼형제인데요.

<녹취>박용득(81살/南 누나 상봉) : "얘가 막내야 막내, 핏덩어리."

젖먹이였던 막내는 일흔이 넘어서야, 처음 누나를 불러 봅니다.

<녹취> "누나 봤다. 누나 봤어. 누나... 누나 봤다!"

<녹취> 신연자(61살/南 아버지 상봉) : "우리 아버지구나!"

환갑을 훌쩍 넘겨서야 생이별한 아버지를 처음 보는 딸은 울음을 참지 못합니다.

거동이 어려워 참석하지 못한 87살의 노모가 빠진 자리여서 가슴은 더욱 미어집니다.

<녹취> 신연자(61살/南 아버지 상봉) : "진짜 고마워요, 아버지. 오래 살아주셔서."

길고 길었던 기다림... 켜켜이 쌓였던 그리움을 달래기엔 2시간의 만남이 너무도 짧게만 느껴집니다.

이윽고 시작된 60여 년만의 첫 저녁상 서먹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는 어깨춤을 추고... 눈물 대신 술 한 잔을 들이킬 여유도 생겼습니다.

이 만남이 꿈인지 생시인지, 자꾸만 묻고 싶습니다.

<녹취> "내가 누구에요? (흥순이 딸, 흥순이 딸.)"

상봉의 기쁨에 절로 술이 넘어가고 외삼촌의 건강이 걱정되는 조카는 술잔을 슬며시 뺏어드는데요.

이렇게, 꿈같은 상봉 첫 날이 저물어 갑니다.

모두 여섯 시간, 세 차례의 상봉 기회가 주어지는 둘째 날.

대동강 맥주와 들쭉술에 정갈한 북한식 반찬들.

북쪽이 준비한 점심 식사 자리입니다

한복을 곱게 입은 북한 여성 안내원들이 밝은 표정으로 이산가족들을 맞이합니다

<녹취>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남쪽 가족에 이어 서둘러 상봉장으로 오는 북쪽 이산가족들.

그런데 갑자기 한 할아버지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맥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습니다.

주변 모두 가슴이 철렁해진 상황.

하지만 할아버지는 금세 몸을 추스르더니 서둘러 상봉장으로 향합니다.

재회 하루 만에 한결 가까워진 가족들...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보따리를 풉니다.

<녹취> "건강하세요!"

첫 만남에서 평생 가슴에 품어온 그리움의 한을 쏟아냈던 4남매는 오늘은 축배를 들며 여유 있게 재회의 기쁨을 만끽합니다.

<녹취> "아버지 (술)주면 안 돼. 조금만, 조금만. 안 돼..."

술을 뺏고 큰 아버지에게 연신 음식을 먹여주는 조카 며느리.

<녹취> 이경의(큰아버지 상봉) : "이것 조금만... 건강하세요, 우리 큰아버지 최고! 아프지 말고"

마주 보며 웃다가도 금세 목이 메는 두 사람 할아버지의 코끝이 붉어지고 조카며느리도 이내 흐느낍니다.

팔순을 넘긴 오인세, 이순규 부부도 마치 새신랑 새신부로 되돌아간 듯 다정하기만 합니다.

음식을 남편 접시에 놓아주고 포도주도 따라주며 서로를 살뜰히 챙깁니다.

<녹취> 오인세(83살/北 부인·아들 상봉) : "(우리 어머니 괴롭히지 마세요.) 내가 사랑해서 그래, 사랑해서."

아버지를 만난 지 하루만에 칠순을 바라보는 아들은 재롱둥이가 됐습니다.

<녹취> 오장균 65살(南 아버지 상봉) : "만나니 반갑고, 헤어지자니 슬프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아버지."

오찬 상봉 직후 진행된 2번째 단체 상봉. 상봉장 한 가운데서 익숙한 옛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딸은 또 한 번 노래를 청합니다.

<녹취> 이정숙(68살/南 아버지 상봉) : "우리가 이제 남한으로 가면 아버지 소리 못 듣잖아요. 집에 가서 들을 거니까 아버지가 노래 한 번만 더 해 주세요."

딸의 마음을 아는 아버지는 쉰 목소리로 또 노래를 부릅니다.

벌써 이별을 준비하는 리한식 할아버지는 아까운 시간을 쪼개 종이에 얼굴을 묻고 묵묵히 그림을 그립니다.

무려 40분을 꼬박 들여 정성을 다해 그려낸 건 꿈에서도 잊지 못했던 고향집.

북녘의 형을 기억하기 위해 동생이 청한 선물이었습니다.

<녹취> 이종인(55살/南 형제 상봉) : "이 (상봉)시간이 굉장히 아깝지만 그래도 형님한테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에 내일은 뭐 부탁도 못하고 해서 형님이 옛날에 살던 집을 한 번 그려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온 정성을 다해 마지막 글자 한 획까지 힘주어 완성하는 큰 형의 정성이 동생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녹취> 이종인(55살/南 형제 상봉) : "형님 제가 이거 간수 잘할게요. 언제 뵐지 모르지만 그림 보면서 형님 생각할게요."

지그시 바라보기만 하던 구순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꼭 안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은 사진으로 영원히 기록됐습니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상봉의 시간.

<녹취> 상봉장 안내방송 : "남측 가족 어르신들은 자리에 앉아 주시고요. 북측 가족 어르신들은 저녁 식사 맛있게 잘 하시고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놓고 싶진 않은 손을 애써 놓으며 상봉장을 나가는 아버지를 달래는 딸.

<녹취> "아버지 오늘 저녁 편안하게 주무시고요. 내일 아침에 오세요."

이제 내일 단 한 차례의 상봉만을 남겨둔 가족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작별의 시간이 가까워짐을 느낍니다.

상봉 3일째, 끝내 마지막 상봉이자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누나와 팔씨름도 해 보고.

<녹취> "업혀요. 어서 업혀"

큰누나를 처음 본 날 만세를 부르며 오열했던 세 형제들은 눈물대신 어깨춤으로 헤어질 누나를 위로합니다.

밤새워 쓴 아들의 편지가 아버지의 마음을 울리고.

<녹취> 채훈식(88살/南 아들 상봉) : "정말 고맙다."

고향 노래도 함께 부르고 모두 또 만날 것을 다짐해 보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돌려 세우진 못합니다.

전날 아버지의 노래 선물을 받았던 이정숙씨는 위로 차 들른 북측 상봉단장에게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해봅니다.

<녹취> "(상봉)단장님, 저도 좀 (북한에) 초청해주세요. 우리아버지 다시 한 번 만나게 약속 좀 해주세요."

<녹취> "이제 10분 후에 작별상봉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녹취> "아버지하고 이렇게 만나는 게 끝이래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아버지한테... 큰 절을 할게요."

이제 작별의 큰 절을 올릴 시간.

<녹취> 이정숙(68살/南 아버지 상봉) : "아버지 건강하시고 또 만날 때까지 건강하세요.(굳세게 살아야 해.)"

헤어지는 아버지께 딸은 이별의 징표로 손수건을 건넵니다. .

이별의 시간... 북녘 가족이 버스에 올라타면서 면회소 앞마당은 눈물바다로 변합니다.

일초라도 더 가족을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이산가족들...

<녹취> "얼굴 좀 봐봐."

<녹취> "오빠하고 고모하고 건강해야 돼. 언제 나중에 또 만나더라도... 언제가 될지 모르겠네."

<녹취> "건강하세요. 조카님 잘 가고."

손바닥 만 한 창틈으로 편지를 넣고 아버지 얼굴을 매만지는 아들.

누나의 작은 손에 매달린 세 형제는 맞잡은 손을 놓지 못합니다.

구순의 아버지를 보내는 딸은 잠시라도 시간을 붙들고 싶습니다.

<녹취> "아버지..."

눈물, 또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60여년의 기다림 그러나 2박 3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이산가족들이 돌아옵니다.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고 상봉의 행운을 누렸지만 또 다시 생이별한 이산가족들은 만감이 교차합니다.

<녹취> 염진례(83살/南 오빠 상봉) : "열아홉 살에 나가서... 얼마나 반가워요. 돌아가신 줄 알았더니. 원 없습니다."

<녹취> 김기주(75살/南 형 상봉) : "만날 때는 기쁘지만 헤어지는 걸 생각하니 착잡하고 그래요."

<녹취> 조주찬(83살/南 형수 상봉) : "너무 짧아. 근데 지난번에도 그렇고 전부 빨리 통일이 돼야 되는데 이거 큰일 났습니다."

오늘 2차 상봉에 나선 우리 이산가족은 90명.

1차 때와 마찬가지로 2박 3일 동안 6차례 12시간 동안 북녘 가족을 만납니다.

혈육을 지척에 두고도 60년이 넘게 가슴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이산가족들...

이번 상봉행사가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가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이산가족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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